소설리스트

데드맨31-115화 (115/269)

제115화

하베스터 #4

“스스로 씻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돼지새끼처럼 브러시질을 당해야 정신을 차리겠습니까? 브러시 질을 당하면 인간 피부는 다 벗겨지고 쓰라릴텐데 그 쓰라림의 고통이 상상이상일 겁니다. 상처가 감염되어 고열이 오르고 진물이 지고 썩어들어갈 수도 있는데 산채로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고통은 뭐 체험해보기 전엔 상상하기 힘들겁니다.”

“….”

“선택은?”

“아, 알겠어. 말이 안 통하는 놈이네 진짜.”

원형재는 투덜거리며 씻기 시작했다.

기온이 그렇게 낮지 않은데 지하수라서 그런지 물이 얼음장처럼 차다.

“으억… 젠장.”

“그런데 저사람 그거 잖아요? 그거?”

류하리는 원형재를 막대하는 시현을 보며 물어보았다.

‘평소에 고객만족~고객만족~ 입에 달고 살더니만 고객을 돼지 취급하고 있네?’

류하리는 시현이 강압적으로 구는 것에 대해서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아직 계약을 안했으면 고객이 아니죠. 사실 인력사무실에서 행패를 부렸으니 좀 더 굴릴 생각이었습니다만….”

“그래도 고객이 될지 모르면 받아주시죠. 여기서 아저씨 목욕하는 거 지켜보는 것도 싫은데.”

류하리는 비닐 장막 너머에 있어서 원형재가 목욕하는 장면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뿌연 비닐 필름 너머로 과한 살덩이가 꾸불텅 대는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류하리에게 부담을 안겨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원형재씨.”

“어?!”

“혹시 원한이 있습니까? 당신을 이렇게 만든?”

“대현….”

“대현?”

“김대현이라는 놈이 있네. 그놈이 나에게 사기를 쳐서 내가 망했어. 녀석에게 떼인 돈을 받으려고 했는데 놈은 이미 마누라에게 넘기고 위장파산을 했지.”

원형재는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었는지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왜 그동안 안 물어봤냐고 타박할 것 같다.

그 정도로 원한이 쌓이고 쌓여서 주체를 못하는 거겠지.

“음 김대현이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인데요?”

류하리와 시현은 기억을 더듬었다.

“들어봤다면 아마 그녀석이 인기 스트리머라서 그럴거야.”

“스트리머요?”

“그래. 나에게 사기치고 돈은 마누라에게 넘기고 배째던 놈이 어느새 인기 스트리머가 되었더군.”

“그럼 돈을 받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시현이 그렇게 물어보았지만 원형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돈을 주려고 하질 않아! 깡패 놈이라서 녀석 채널에 내 사연을 풀어내도 사람들이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어! 애초에 콘셉트가 깡패라 이거지. ”

“그래서 일하는 데 행패를 부리셨습니까? 깡패에게 피해자가 되었다고 해서 당신이 남에게 행패를 부릴 자격이 생기는 것도 아닐텐데요.”

“흥. 젊어서 아직 아무것도 모르나 보군. 사람은 말야.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걸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거에 집착해서 매몰되는 사람이 있어! 난 후자지! 어떻게든 뭐라도 하려고 해도 매 순간순간 날 비웃고 있을 그 김대현이! 그놈의 얼굴이 떠오른다고! 그래서 정신을 차려보면 늘 이따위지!”

아무래도 사기를 당하고 협박을 당한 트라우마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하고 재기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증오가 지나쳐서 화를 끼치는 것 같군요. 흠 좋습니다. 만약 제가 그 김대현이라는 친구를 시원하게 파멸시켜버린다면 1년치 수명을 넘겨주시겠습니까?”

“응? 수명?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죠. 당신의 남은 생명 1년을 받아가겠습니다.”

“…혹시 미친 건가?”

“편하실 대로 생각하시죠. 하겠습니까? 안하겠습니까?”

“수명 1년 따위 아까울 것도 없지. 하지만….”

반신반의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모든 사람들이 그러했다.

시현이 수명을 달라고 하면 미친놈인가 싶어서 반신반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시현의 말에 넘어가 계약을 맺고 만다.

애초에 그럴만한 사람들이니까 타자기의 악마가 계약자로 지목한 것이겠지.

“그럼 된 겁니다. 계약하시죠.”

시현은 원형재와 계약을 나누었다.

“그럼 이제부터 원형재 님은 저희 시현 탐정사무소의 고객이 되셨습니다. 아 이거… 참 저희 시현탐정사무소의 우수한 고객서비스 정신을 보여드려야 겠군요.”

“어. 그럼.”

“그럼 일단 옷을 입으시지요.”

시현은 준비한 옷으로 원형재를 갈아 입혔다.

* * *

시현은 비닐하우스 옆에 있는 농가 주택으로 류하리와 원형재를 안내했다.

찬물에 대충 씻어서 비누거품도 머리에 남아있는 원형재가 투덜거리며 몸을 떨었다.

“으 춥구만. 아가씨? 아가씨는 뭐야? 저 친구랑? 애인인가?”

“아 저는….”

“그녀는 조수입니다.”

“조수? 당신은 뭔데?”

“탐정이죠.”

“탐정? 깡패가 아니라?”

“탐정입니다. 그러니까 고객님과 계약도 하지 않았습니까?”

“…이상한 계약이군.”

그때 시현이 농가 주택의 지하실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다.

벽의 평범한 문을 열자 지하 계단이 나타났는데 위에 LED 조명들이 박혀있고 밑에는 사람 감금하기 좋게 감옥처럼 꾸며진 공간이 나왔다.

“…….”

“어….”

류하리와 원형재는 그 모습을 보고 질렸다.

‘와 세상에. 이 문짝, 배식 투입구가 있어.’

류하리는 두꺼운 문에 배식 투입구가 붙어있는 걸 보며 당황했다.

누가 봐도 사람을 감금하기 위한 시설이다.

“자 그럼 여기. 볼까요?”

시현은 그 방들을 관리하는 관리실로 보이는 곳에 노트북을 연결했다.

“아무래도 랜선은 여기에 둬서….”

시현은 그렇게 변명하고 김대현의 채널을 찾아보았다.

* * *

폭력, 사기, 횡령등의 전과를 가진 남자 김대현은 출소 이후 스트리밍을 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아니 대체 요새 애들은 왜 이런 걸 좋아하는 거지? 원 참! 이놈은 사기꾼이라니까! 사기꾼! 사기꾼에 깡패새낀데 왜?!”

“원래부터 많은 남자애들은 이런 거 좋아했습니다. 딱히 요새 애들만의 문제는 아니죠.”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김대현의 채널을 살펴보았다.

김대현의 채널 곳곳에는 원형재를 포함해 피해자들의 악플이 달려 있지만 그중 진지하고 길게 이야기 한 글들은 운영측이 지워버리고 짧게 욕설만 퍼부은 것은 옹호하는 세력이 들러붙어서 말싸움으로 난장판이 벌어져 있었다.

아마도 전략적으로 채널을 잘 관리하는 것 같다.

“이렇게 명백하게 피해자가 있는데도 좋아하는 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

“그래서 인력사무소 여자직원에게 행패를 부리셨습니까?”

“아니 나는 피해자라서 그 뭐냐. 제정신이 아니었어.”

원형재는 그렇게 변명했다.

전형적으로 자신에겐 관대하고 남에겐 엄격한 사람이다.

하지만 일단 계약한 이상 고객은 고객. 시현은 미소를 지으며 사탕바구니를 그에게 건넸다.

“일단 이거라도 드시죠. 흠. 응?”

시현은 채널을 검색하던 도중 영상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김대현이 데리고 다니는 애들 중에서 구면인 얼굴이 있었다.

바로 어제, 문래동 마트 주차장에서 태그를 박았던 ‘철새’들이 영상에 출몰한 것이었다.

전에 찍어둔 영상이니까 시현을 만나기 전부터 그들은 김대현과 알고 있는 사이였으리라.

“아….”

그제야 시현은 이 철새들이 대현 형님 아냐고 말했던 걸 떠올렸다.

“이거 참. 세상이 좁군요. 역시 철새들에 태그 박고 그들의 생태계를 조사하면 뭐가 걸려도 걸린다니까요.”

“그, 그러네요.”

“역시 열심히 씨를 뿌리고 다니면 결실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다니까요.”

“그 무슨 농부 같은 말을….”

류하리는 시현의 뻔뻔한 소리에 기막혀했다.

뭔가 엄청나게 보람찬 소리를 하는 것 같은데 범죄자의 소리다.

아니 아직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지만 이런 감금용 지하실을 보면 언제든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게 준비되어 있다.

“그럼 우선 피해자들을 모으도록 하지요. 하는 김에 제대로, 본격적으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고 미소를 지었다.

* * *

김대현이 돈을 버는 수법은 프랜차이즈 사기였다.

장사가 잘되건 잘되지 않건 일단 있는 가게를 하나 찍어서 인수하거나 해서 가게를 손에 넣은뒤 그 가게를 프랜차이즈 업체로 만든다.

그렇게 해서 프랜차이즈 업체를 창업하고 가맹점을 모으고 장사가 아주 잘되는 것처럼 하면서 가맹비와 인테리어 비, 기타 등등의 경비를 마구 뽑아낸 뒤 파산시켜버리는 것이다.

이러다가 인테리어 비용이나 권리금을 부풀려 사기를 치다가 소송을 당하기도 하고, 몇 개는 합의하고 몇 개는 뭉개면서 그렇게 살아온 그였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심심풀이로 한 스트리밍이 그만 대박을 터뜨렸다.

원래부터 김대현은 사람들에 대한 친화력과 말빨은 좀 서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사기를 치고 다니지.

어쨌건 이제는 스트리밍이 수입을 크게 올리기 시작하자 빚쟁이들이 많은 김대현은 즉시 타인의 명의로 회사를 세우고 그 회사에 소속된 스트리머로 활동하며 철저히 자신에게는 돈이 오지 않도록 했다.

법인 카드로 먹고 살면서 채권자가 찾아오면 자신은 돈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 * *

“그래서 저희들은 돈을 못받습니다.”

“오히려 만나러 가면 김대현 그놈이 데리고 다니는 패거리들이… 저희를 공격해요.”

시현이 모아온 김대현의 피해자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음. 대단한데?’

류하리는 시현이 피해자를 모아온 것에 감탄했다.

김대현은 폭력을 휘두르는 놈이기 때문에 그의 피해자들은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나는 걸 꺼려하고 있었다.

인터넷 상으로 피해자라고 사연을 다는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자신도 피해자니 만나자고 하면 사람들은 김대현이 자신들을 조지려고 불러내는 구나. 그렇게 의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현은 그들을 경찰서 앞에서 보기로 하고 그 다음에 자신의 신분, 탐정임을 보여주고 그들을 탐정 사무소로 불러들인 것이다.

이렇게 신뢰를 주어서 피해자들을 한자리에 모으니 그들이 약 여섯명.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닌 걸 보니 그간 몸고생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 일목요연하다.

“공격한다고요? 폭행으로 신고는 하셨습니까?”

“아니 그런데 그 폭행이….”

“전기 킥보드를 타고 와서 뒤통수를 때리고 갑니다.”

“뒤통수를 때리고 간다고요?”

“네. 이거 보시죠.”

피해자중 한명이 자신의 머리를 내밀었다.

뒤통수에 크게 꿰멘 자국이 보였다.

“…헐.”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큼지막한 상처다. 사람 머리에 저런 상처를 남기다니. 정말 뒷생각 아무것도 없는 미치광이들이나 저지를 수 있는 짓이다.

“커다란 금속 공구로 때린 거에요.”

“이런. 위험하군요. 그러다가 죽으면 어쩌려고.”

“그러니까 말이죠. 같이 다니는 놈들도 생각이 없는 놈들이에요.”

시현이 만나본 그 ‘철새’들을 떠올려본다.

‘생각이 없는 놈들 맞네.’

하지만 그럼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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