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하베스터 #6
“대체 무슨 사이에요?”
류하리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별건 아니고… 제가 생명의 은인이죠.”
“생명의 은인이요?”
“네. 저희가 본 비닐하우스 있죠? 거기서 정육점 고기처럼 해체당할 뻔 한 걸 제가 구해줬습니다.”
“......”
아 거기 그런 곳이었구나.
아니 그런 곳이라는 분위기를 풍기긴 했었지.
그렇지만 정말 그런 곳이었다니. 류하리는 혀를 찼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 아직도 그런 끔찍하고 야만적인 풍습이 곳곳에 남아있다니.....
“그 이후로는 부담스럽게 선생님 선생님하면서….”
“……”
류하리가 본 바로 시현은 상대의 경칭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특별히 즐긴 건 아니지만 부담을 느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지.’
류하리가 시현의 뻔뻔함에 기막혀 하는 사이 시현은 설명했다.
“뭐 수명을 빼앗는 데드맨의 힘을 보면 미신에 약한 사람들은 과하게 겁을 먹거든요.”
“그래요? 겁을 먹은 건가요 그게?”
“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못할, 불가해의 무시무시한 존재를 만나면 눈을 감던가 아니면 숭배하기 마련이죠.”
“후우. 네 알겠어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김대현의 사업규모나 씀씀이를 확인해봐야 겠죠. 어떻게 해야 그 인간을 완벽히 파멸로 몰아 넣는지 연구를 좀 해봐야죠. 건달이니 반달이니 하는 저런 친구들은 보통 발목이나 손목 하나를 없애주면….”
“어허.”
류하리가 혀를 찼다.
“요새 너무 선 넘는 거 아니에요? 당신 사정이 급하다는 건 잘 알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제가 경찰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아하하. 설마 제가 직접 자르겠어요? 결과론적으로 말하는 겁니다.”
“…….”
그렇게 말하니까 더 무섭다.
“보아하니 차량들은 법인 리스군요. 김대현의 수입원은 스트리머 수익과 떡볶이집, 포차가 있는데 대부분의 이런 허세 있는 친구들이 그렇지만 수입과 지출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군요.”
“버는 족족 다 쓰나보죠?”
“그렇겠죠. 약간의 경제적 타격을 주는 것만으로도 균형이 흔들리겠지만 흠… 좀 더 뼈저린 교훈을 줄 셈입니다.”
“……..”
“왜요?”
“으음.”
류하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은 31일마다 한 건씩 처리해야 한다고 했지요?”
“네.”
“그런데 이건 31일 이상 걸리지 않겠어요?”
류하리는 궁금해했다.
시현이 만든 새 명함, 마엔싱이란 이름이나 마샹 홀딩스라는 회사 명칭을 보면 그는 지금 해외 펀드매니저로 위장해서 김대현에게 접근하려 하고 있다.
‘목적은 아마도 프랜차이즈 사기를 치는 김대현에게서 프랜차이즈 사업체를 인수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거겠지?’
명함 한 장만으로 류하리는 시현이 무슨 수법을 쓰려는 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보통 인수 합병을 미끼로 접근한다면 그 협의가 한 달은 커녕 반년도 넘게 걸릴 수 있었다.
한 달 안에 승부를 내야 하는 시현에게 이건 너무 멀리 돌아가는 길이 아닌가?
“보아하니까 외국인 사업가인척 해서 그에게 사업체를 인수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닌지요?”
“수확과 결실의 기쁨을 누리는 데 31일만 투자해서 쓰겠습니까? 농부의 마음으로 꾸준히 하는 거지요.”
“하지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도 31일 안에 승부를 볼 생각입니다.”
“이걸요? 어떻게요?”
“뭐 지켜보시죠.”
시현은 그리 말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 * *
김대현은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똘마니 김윤성에게 보테가의 클러치를 들게 하고 거들먹거리며 신도림 쉐라톤 호텔 로비에 들어왔다.
“아니 무슨 호텔에서 보재? 이놈은? 이거 사기꾼 아냐?”
“그래도 그 서경록 아저씨가 추천했다니까….”
“그 아저씬 나 존나 싫어한다니까. 자긴 정통건달이고 나는 양아치라 이거지. 웃겨 진짜. 틀딱새끼.”
김대현은 서경록의 흠을 잡으며 엘리베이터를 불렀다.
최상층의 연회장에는 파티션이 쳐져있고 작은 룸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
약속장소에는 그들만 있지 않았다.
테이블에는 회사의 이름과 명패가 간이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다들 요식업계나 프랜차이즈 업계인 걸로 보였다.
‘성화F&B 조진석 이사’
‘바른푸드 이석정 상무’
‘FA 유통 김양식 사장’
다들 머리 희끗희끗한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가 김대현과 김윤성을 보고 흠칫 놀랐다.
“어….”
“안녕하심까!”
김대현은 이상한 분위기에서도 오히려 고함을 뻥뻥 치고 자리에 앉았다.
‘건달포차 김대현 사장’
그의 자리도 이렇게 마련되어 있었다.
‘뭐야 이 자리는… 음 쫄지 말자.’
김대현은 어째 격식있어 보이는 자리에서 위축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젊은 사업가로 보이는 남자가 비서와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마엔싱 님의 전속 변호인인 곽찬이라고 합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변호인은 그렇게 말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실은 이번에 프랜차이즈 업체를 인수하고자 이렇게 이 자리를 모셨습니다.”
“업체 인수라면….”
“이렇게 많이 부를 필요가 있습니까?”
“하하. 다들 아시다시피 최근 평원버거가 외국계 사모펀드에 팔린건 아실 겁니다. 얼마에 팔린지 아십니까?”
“얼마죠?”
김대현이 물어보았다.
“2천억입니다.”
“…….?!”
“뭐 평원버거는 전국에 가맹점이 천이백이 넘는 초대형 브랜드니까요. 하지만 천이백개의 매장을 일제히 여는데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
“2천억이면 천이백개까진 무리더라도 매장 천 개는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2천억을 가지고 평원버거를 인수할 게 아니라 초원버거라던가 들판버거 같은 걸 만들어도….”
“……”
모여있던 사람들이 수근거린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노고나 아이디어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럼 뭡니까? 인수 비용이 과당하다? 프랜차이즈는 돈만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말을 하려는 겁니까?”
“아니요 그럴리가요. 전국에 천이백이나 되는 가맹점을 유치하고 유지할 수 있는 건 그만큼 평원버거의 브랜드, 프랜차이즈의 상품성이 대단하다는 뜻이지요. 무작정 2천억 들여서 전국에 가게를 확장해봐야 파리만 날리지 않겠습니까?”
변호사 곽찬은 그렇게 말하고 눈을 빛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프랜차이즈가 크기 전에 미리 양수계약서를 체결하고 싶다는 게 제 클라이언트, 마엔싱 씨의 의향입니다.”
“네?”
“마엔싱 씨는 마샹 홀딩스의 사장이며… 현재는 홍콩의 펀드매니저이십니다. 사모펀드인 HS2H의 투자자문의원이시지요.”
모두들 마엔싱이라 하는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누가 봐도 귀티나고 이지적으로 보이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마엔싱씨는 개인적으로,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여러분들의 프랜차이즈를 인수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때 마엔싱이 말없이 손가락을 들더니 변호사 곽찬을 불렀다.
그리고 귓속말을 한다.
“…아 네. 예. 알겠습니다. 음 일단 다섯 개 업체 정도를 사고 싶다고 하시는 데요.”
“다섯 개?”
“아니 잠깐만. 우리 업체의 가치나 그런 걸 보지도 않고 사겠다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여기 인수 조건에 대해서 사양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변호사는 서류를 꺼내서 모두에게 배부했다.
“그럼 추후 자세한 조정은 제게 연락 주십시오.”
변호사가 그렇게 말하자 마엔싱과 그의 비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하고 별다른 말도 없이 물러났다.
“어…뭐야. 겁나 거들먹 거리네?”
김대현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잠시 후….
-투두두두두…..
호텔 위에서 헬기가 날아올랐다.
…헬기를 타고 왔다 갔다 한단 말인가?
김대현은 그 모습에 그만 주눅이 들고 말았다.
그도 페라리에 멕라렌을 끌고 다니며 자신이 남부럽지 않은 부자임을 과시하고 스트리밍에서 은근 슬쩍 차자랑 재산자랑을 하며 사람들에게서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그와는 비교도 안되는 진짜 부자의 냄새가 난다.
“…혀, 형님. 이거 진짜 부자같은데요?”
데려온 똘마니 김윤성이 서류를 뒤적이며 감탄했다.
“그런데 왜 프랜차이즈를….”
“아마도 사적으로 사겠다는건 그거네.”
“으음. 그거구만.”
김대현 말고 다른 업체 사람들은 마엔싱의 뜻을 알아챈 것 같았다.
“저 홍콩 놈이 뭐라는 겁니까?”
“음? 자넨 그것도 모르나?”
“네?”
“아니 저 사람은 투자회사를 하면서 동시에 투자 자문도 맡고 있지 않나. 외국 사모펀드를 말야.”
“네.”
“그 사모펀드는 자기 돈은 아닌거지. 그냥 자문만 해주는 거고. 그런데 사모펀드에 자문을 하면 이 프랜차이즈를 사라 마라 할 수 있는 입장이지 않나?”
“그렇죠.”
“그러니까 그 사모펀드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프랜차이즈를 비싸게 팔 권한이 있는 거나 다름없지. 그런데 그러려면 우선 프랜차이즈를 가지고 있어야 겠지?”
“아….”
“아마도 그때 쓰려는 도구로 프랜차이즈를 사려는 것 같구만. 으음.”
“법에 안걸리나요?”
“뭐 인수가격이야 인수하는 쌍방 합의하에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거지.”
“법에 걸릴까봐 염려가 되니까 굳이 외국에 와서 하려는 거 아니겠나.”
“음 그래도 상당히 좋은 조건인데… 그런데 포차랑 떡볶이, 고깃집 같은 한국 로컬 프랜차이즈에 관심이 있다고? 이런… 우리 회사엔 없는데.”
“저희는 좀 있지요.”
“음 우리 쪽도 어떻게 안될까?”
“……”
마엔싱이 프랜차이즈를 사들이겠다는 가격이 꽤 파격적인지 자신들의 사업에 자부심을 가질법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조건 맞춰서 팔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었다.
“으음. 나도 보자.”
김대현은 똘마니 김윤성에게서 자료를 받아들고 읽어보았다.
글자가 너무 많아서 읽기 불편하지만 중요한 부분은 알 수 있었다.
마엔싱이 사들이겠다고 하는 가게들의 구성을 보면 김대현에게는 매우 유리한 조건이다.
게다가 매입 가격도 파격적이다. 프랜차이즈 두 개를 팔면 못해도 20억을 만질 수 있다.
가맹점이 많으면 매입 가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진짜 팔자를 고칠 가격이 된다.
다만 문제는 김대현의 경우 가맹점 수가 기준에 못 미친 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맹점이야 얼마든지 늘릴 수 있지.’
마침 김대현에게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프랜차이즈 사기를 치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그 녀석들에게 가게를 가맹시키게 하면 마엔싱이 제시한 조건은 순식간에 달성시킬 수 있다.
돈을 좀 나눠줘야 하겠지만 다른 녀석들도 이런 조건이라면 좋다고 쌍수들고 환영할 것이다.
* * *
“풉. 아하하하하하. 마, 마엔싱… 아 미쳐. 아하하하. 헬기까지.”
마엔싱의 비서 역할을 하던 류하리가 배를 잡고 웃어댔다.
사람들 모아두고 그 뻔뻔스러운 연기라니! 시현의 연기력에 류하리는 표정 관리하느라 죽을 뻔했다.
웃으면 안 되는 걸 아는데 웃겨서 미치겠는 것이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