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화
하베스터 #7
“아 진짜. 이거 전 경찰인데 이래도 되나 모르겠어요. 그런데 헬기까지 빌리다니 바람잡이 비용이 꽤 쎄군요?”
“뭐 이미 페라리를 타고 다니는 놈이라 격차를 보여주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요.”
시현이 머리를 쓸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돈이 아깝지 않나요?”
“그럼 어여쁜 아가씨와 고공에서 데이트를 했다고 해두죠. 그러면 아깝지 않군요.”
“…아.”
류하리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 제 미소가 좀 백만불짜리 미소긴 하죠.”
“사양하지 않는 모습이 과연 류하리 경위님 답군요.”
“하지만 당신 그 정장차림도 멋져요. 이 야경의 불빛과 당신의 정장 차림에 건배.”
류하리가 빈 손으로 건배하는 시늉을 해보였다.
* * *
김대현의 주거지는 관악구의 빌라촌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곳은 2호선으로 서울 남부의 중심이면서도 구시가지라 지적이 복잡해 대규모 뉴타운 계획이 세워지지 않으면 쉽게 재개발이 되지 않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철로 통근하는 직장인들에게는 매우 편리한 위치라서 서울에 막 상경한 직장인들의 자취공간으로는 인기가 있었다.
즉 월세가 매우 잘나가는 곳이다.
그 필로티 주차장에 고급차를 주차해두면 길가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살 수 있었다.
자취하는 월급쟁이들 사이에서 부러움을 사는 그 재미와 우월감이라니.
김대현은 오늘도 집을 나서기 전 주차해둔 차를 살펴보면서 담배를 한 대 입에 물었다.
“아 진짜 이거 건물 탐나네.”
김대현이 월세로 살고 있는 빌라 건물은 세입자들이 늘 차고 넘치는 곳이다.
게다가 언젠가 뉴타운 계획이 잡히면 그야말로 엄청난 가치로 폭등하게 될 곳!
김대현도 그것에 눈독들이고 빌라 주인에게 자신에게 팔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지만 빌라 주인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은퇴한 노부부가 건물주였는데 협박과 폭력으로 빼앗자니 노인네라서 뒷탈이 생길 것 같다.
“음 뭐… 노인네들 뒈지고 나면 그 다음에 하면 되지. 시간은 많다. 돈 생길 일도 많고.”
김대현은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아무데나 꽁초를 내다 버린 후 자신의 페라리에 올라탔다.
그리고….
-끼이이이익!
갑자기 엔진이 미쳐 날뛰면서 그만 비탈길 아래로 차가 주욱 미끄러지다 전봇대에 들이받고 말았다.
* * *
“아니 젠장. 운전 미숙 아니라니깐. 갑자기 차가 퍼졌다고!”
김대현은 센터에 차량을 입고하면서 화를 냈다.
정비기사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저기… 그건 저에게 말하셔도 소용없고요. 이거 엔진 완전히 타버렸는데요. 이러면 이거 페라리 본사에서 엔진 공수해와야 할 것 같은데….”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연료에 시럽이 들어가 있습니다.”
“시럽?”
“콘 시럽이요. 거 커피에 넣는 거 있잖아요.”
“뭐?”
“아마도 누가 테러하려고 넣은 것 같은데… 엄청 악질적이네요.”
“이, 이런 미친?!”
“덕분에 엔진이랑 연료계통이 다 타버려서 이거 못 살립니다.”
호환되는 엔진이 흔하게 굴러다니는 일반 차량들과 달리 생산대수가 적은 스포츠카 엔진이 타버린 거라 수리비가 거의 새 차 뽑는 가격과 비슷하게 나온다.
문제는 엔진이 죽어서 중고로 팔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법인 리스 차량이시죠?”
“그렇기는 한데….”
보험처리가 되지 않으면 리스 회사에서 전액 인수를 요구할 것이다.
“잠깐만 설마 멕라렌도?!”
“연료에 혼입되어 있는 상태면 연료통만 갈면 되니까 빨리 확인해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젠장. 아, 알겠어. 아 이거 보험 되나?”
“남이 넣은 거라면 되겠지요.”
“뭐? 뭐야 그 소리는? 남이 넣은 게 아니면? 내가 넣었다는 거야?!”
“보험사에서 그거로 물고 늘어질 거라 이거지요. 제 이야기는…..”
“아 기분 나쁘니까 그런 소리는 꺼내지도 말아! 알겠어?!”
김대현은 씩씩거리며 정비기사를 윽박지르고 집으로 향했다.
* * *
조사해보니 맥라렌에도 역시 연료 주입구를 누군가가 강제로 뜯은 흔적이 있었다.
차를 운행하면 엔진이 터질 것 같아서 견인차를 불러서 차를 싣고 정비공장에 가져가니 역시 이것도 연료통에 콘 시럽이 들어가 있었다.
“으아아아! 어떤 개새끼가! 잡히기만 해봐! 죽었어!”
김대현이 분노하고 있을 때였다.
리스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XX장기리스팀 고진후라고 합니다. 김대현 고객님이시죠? 페라리 사고 나신?]
“네.”
[죄송한데 당사에서는 보험처리가 불가하므로 사용자에게 전액을 청구한다는 사실을 통보 드리려고 이렇게 연락드렸습니다.]
“네? 뭐라고?! 무슨 개소리야! 내가 그동안 리스료를 얼마나 냈는데! 이 개새끼야! ”
[본 통화는 녹음중입니다. 고객님.]
“녹음이고 나발이고 그동안 보험료랑 리스료는 비싸게 받아 처먹고 나에게 다 씌우겠다니 말이 돼!”
[고객님. 고객님이 연료에 넣으셨잖아요.]
“뭐?!”
[CCTV에 고객님이 연료주입구에 콘 시럽 넣는 장면이 찍혔습니다. 고객님. 이거 안 좋은 언론 탈까봐 그냥 넘어가는 거지 원래대로라면 저희가 고소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보험사기로….]
“그아아아!”
김대현은 너무 화가 나서 입에서 거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 * *
“…….”
류하리는 시현이 특수분장용 실리콘 마스크를 만지작거리는 걸 보며 말문이 막혔다.
“그건 대체?”
“할로윈 분장용 가면입니다.”
“아니 누가 봐도 그건 아니잖아요? 오더 메이드 같은데… 그러고보니 전에 그 실리콘 도장으로 지문 위조한 적이 있었지요? 아니 남으로 분장하는 것만으로 불법이라는 거 아세요?”
“뭔가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이건 김대현의 얼굴이 아닙니다.”
“네?”
“이건 사실 개그맨 강힘찬의 얼굴입니다.”
“…….”
개그맨 강힘찬, 전직 유도선수 출신으로 현재는 예능프로 전반에 걸쳐 인기 폭발인 예능인이다.
국민 MC 중 한 명인 강힘찬의 실리콘 마스크.
실제로 잘 보면 김대현이 아니라 강힘찬의 얼굴이긴 하다.
“뭐 CCTV해상도가 낮아서 김대현처럼 보일 수는 있겠군요.”
짧은 머리 사각진 얼굴에 김대현이 평소에 잘 입고 다니는 오버핏을 입고 체구가 거대한 사람이 돌아다니면 CCTV정도의 해상도와 거리에서는 누가 봐도 김대현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MC 강힘찬 분장이라고 우기면 또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아니 아무리 화질이 안 좋아도 그래도 문제 되지 않을까요? 자세히 정밀 조사를 한다면 말이죠.”
실리콘 마스크를 쓰고 옷을 비슷하게 입고 카메라 앞을 오간다면 물론 CCTV 화질로는 분간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영상분석 전문가들이 투입된다면 못 알아차릴 정도는 아니다.
시현이 말한 대로 이 실리콘 마스크는 개그맨 강힘찬을 본떠 만들어진 것이라 자세히 보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김대현은 굴복하고 손해를 자기가 떠안을 겁니다. 결국은 말이죠.”
시현은 단언했다.
“네? 왜 그렇게 생각하지요? 피해액이 한두푼이 아닐텐데?”
“보험사가 CCTV를 빌미로 배상을 거부하고 리스 회사는 그것 때문에 김대현의 법인에 전액 인수를 청구할 테지요. 여기서 문제를 키우게 되면 보험사나 리스 회사가 보험사기를 이유로 김대현을 고소할 겁니다. 그런데 김대현은 이미 사기전과가 있고 지금도 차명계좌로 살아가고 있단 말이지요.”
“…아.”
“법에 걸릴게 많으니까 굴복할 겁니다. 보험 문제로 금융감독원이 출동하면 어설프게 봐주는 거 없이 십중팔구 실형을 살게 되니까요.”
“으와.”
“게다가 공격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네? 또요?”
“예. 제가 왜 채권을 매입하느냐 궁금하셨죠? 이게 참 사람 쓰기 좋단 말이죠.”
“……”
* * *
김대현은 자신과 비슷한 사업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그들의 매장을 명의상으로나마 자기네 프랜차이즈로 가맹시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뭐 하자면 하긴 하겠지만 인수 비용이나 가게 인테리어는 어쩌고?”
“일단 간판 좀 바꿔 달고 바꿀만한 곳은 우리 가게로 바꿔야지.”
“비용이 들텐데? 게다가 우리가 거 인테리어도 하거든?”
프랜차이즈 사기를 치기 위해서 이들은 인테리어 회사도 직접 가지고 있다. 진짜 가맹한 사람들이 있을 경우 인테리어를 자신들의 회사에 몰아주면서 비용을 과다 청구하고 더 싸구려 자재로 마감해버리는 식으로 돈을 이중으로 뜯기 위해서 였다.
다들 인테리어 회사를 명의상 가지고 있으니 가게는 넘기더라도 그 인테리어 공사는 자신들이 직접 하고 싶어했다.
“아니 인테리어는 필요없을 거야. 그냥 명의상 가맹점만 늘리면 되지.”
“그러다 실사 나오면 어쩌려고 임마. 하다 못해 네x버나 카카x 지도로 상호 검색만 해봐도 들통 나잖아.”
“그럼 뭐 인테리어 해야지.”
“그래서 그거 어떻게 하려고?”
“인테리어를 해도 내가 해야 일관성 있어 보이지….”
“아니 이자식 웃긴 놈이네. 우리도 벗겨먹으려고? 너네 인테리어 조또 아니구만 우리도 다 할 수 있다. 그거.”
“뭐 임마? 우리 인테리어가 어때서?”
“디자인 감각 좆도 없잖아. 네 전 여친이 디자인한 거 아니냐 그거. 아무런 자격증도 없이 그냥 놀던 애. 반면 우리네 디자이너는 임마 그래도 문신도 디자인하고 대회 상도 타고….”
“씨발.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가게 안 판다? 그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흠흠. 알겠어. 인테리어 너 네가 해라.”
가게를 사서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 김대현은 친구에게 인테리어를 양보했다.
“그래 얼마 줄건데?”
“뭐?”
“아니 씁. 자재랑 공임은 뭐 땅에서 나오냐 하늘에서 나오냐? 다 돈들잖아.”
“야 임마. 그렇잖아도 지금 차가 퍼져서 돈 없어 죽겠어.”
“외상으로 해달라고?”
“응.”
“외상같은 소리 하네. 임마 사기 전과 있는 네놈을 어떻게 믿냐?”
“아니 이 새끼가 그런데 친구라고 봐주니까 막 말이 선을 넘네? 너 임마 주뎅이가 월남간첩수준이야. 알아?”
“가게 사고 싶지 않나보다?”
“아니 아니지. 사고 싶어. 응 응.”
김대현이 성질을 죽이고 굽히자 친구라는 놈이 피식 웃었다.
“야 조건 정말 좋나 보구나. 대체 어떻길래 그래? 나도 팔 수 있냐?”
“아 너는 안 돼.”
“뭐 왜?”
“넌 다트바잖아. 다트바는 제외야. 떡볶이처럼 한국적인거, 응? 한국적인 게 세계적인 것이다.”
“아 진짜 웃긴 놈이네. 이거. 너 임마 그러다 못팔면 어쩌려고 그래?”
“아니 이놈 진짜 부자야. 헬기타고 다니던데? 게다가 이새끼 보니까 자기가 운영하는 펀드의 돈 따먹으려고 재료 모집하는 거라서 안살 리가 없어.”
* * *
그런 식으로 김대현은 친구들과 교섭해서 그들의 가게를 빌려서 자신의 가맹점 수를 불리기로 했다.
하지만 친구들도 돈 문제에 관해서는 절대로 김대현을 믿지 않았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