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19화 (119/269)

제119화

하베스터 #8

선금없이 신뢰없다.

그래서 김대현은 어쩔 수 없이 여자 친구 명의나 가족들 명의로 돌려뒀던 은닉재산들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집도 담보로 잡고 재산도 털어내서 일단 어떻게든 가게들을 가맹시킬 수 있었다.

‘뭐 프랜차이즈 사업부만 20억에 파는 거고… 직영점은 법인에 딸려있으니까 넘기더라도 가맹된 사업체는 내 쪽으로 가지고 있는 거니까.’

계산이 그리 밝지 않은 김대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마엔싱의 인수조건은 굉장히 파격적이고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김대현의 건달 떡볶이 집에 갑자기 구청의 위생점검이 들이 닥쳤다.

* * *

‘아이고! 먹다가 식중독에 걸렸지 뭡니까!’

‘화장실 들락날락 거리느라 못살겠어요!’

‘농담아니라 죽다 살아났음! 떡볶이 떡을 똥꼬로 뽑나?’

‘고소해야 합니다! 이거 어떻게 고소하죠?’

배달 앱에서 평가가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단지 악플만 달리는 게 아니다.

김대현의 프랜차이즈에서 음식을 사먹은 소비자들이 일제히 배탈이 났다고 구청에 신고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구청에서 결국 위생점검을나왔는데….

가게의 위생상태가 좋지 않고 유통기한이 지난 식자재를 재활용하며 조리사들의 위생상태도 좋지 못하다.

요식업에서 흔히들 저지르기 쉬운 실수나 부주의를 고스란히 다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영업정지까지는 아니지만 시정명령을 받게 되었다.

매출은 많지만 원가, 인건비 제하면 순익은 그리 많지 않은 가게에서 시정명령을 받고 벌금을 물게 되면 바로 적자로 돌아서게 된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 * *

‘페라리 어디다 팔아먹었음?’

‘이새끼 페라리 폐차되었다는 데?’

‘연료에 설탕 넣었단다. 크크. 꼴 좋네.’

‘꼴 보아하니 그동안 양아치 콘셉트로 나댄 거 고스란히 처 받는 구만?’

‘병신 문신돼지새끼 내 그럴 줄 알았다.’

‘오죽 멍청하면 그런 걸 당하냐? 너 설마 시발 노상에 주차하고 다니냐? 남들 보고 페라리랑 맥라렌 보고 쫄라고? 아주 등신새끼네 이거? 요새 아파트 주차장 다 보안되는데 미쳤다고 슈퍼카를 노상에 주차하냐? 등신인가?’

김대현의 채널에 악플들이 조직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김대현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 전에 김대현의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사정을 올릴 때는 사람들이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김대현은 나쁜남자 콘셉트를 잡고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김대현이 나쁜 남자라는 건 다 알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김대현을 갱스터 영화나 학원폭력만화의 강자로서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김대현의 무용담 같은 것이었다.

‘나도 저렇게 남들 등쳐먹어야지.’

‘공부 못해도 저렇게 성공한다.’

‘저렇게 고급차 끌고 간지나게 살수 있다.’

피해자들의 애 닳는 호소도 어차피 이걸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달리는 악플은 달랐다.

조롱이고 무시고 괴롭힘이었다.

‘이새끼 그동안 타던 차 리스차량인데 리스 끝나서 지금 빌빌대는 거임.’

‘애미애비 다 팔아도 인수 비 못댔대. 븅신새끼.’

조직적인 악플들이 쉴새없이 달려서 삭제하려고 해도 힘들고 막아도 막아도 계속 새로운 공격이 들어왔다.

* * *

“씨발!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진짜 노리고 하는 공격이라고! 이새끼들 중에 있어. 틀림없이!”

김대현은 의심에 사로잡혀 미칠 것 같았다.

어떤 놈들이 그를 조직적으로 모함하고 있고 그들 중에는 그의 차에 시럽을 처넣은 놈이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지금 당장이라도 이 악플을 단 놈들에게 쫓아가 그놈들의 머리를 쪼개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가맹점 수를 불리겠다고 친구들에게 가게를 인수받은 것 만으로 해야 할 일이 갑자기 확 늘어 정신이 없다.

그런데 김대현의 똘마니들에게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아이고 형님. 저 신고가 들어와서 경찰 출두하라는 데요.”

“저, 저도요.”

“뭐? 이 바쁜 와중에 그게 무슨 귀신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아무리 바빠도 경찰이 오라는데 어쩝니까 가봐야지.”

“뭐 때문이래?”

“그 있잖아요. 그 블로그 매입합니다 한 거. 그거 정보통신법 위반으로 어떤 놈이 신고 걸었어요.”

“아니 썅. 왜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이번에 갑자기 몰아치는 거야? 이거 틀림없이 어떤 새끼가 작업거는 거다!”

김대현은 머리를 쥐어뜯으려다 멈칫했다.

이미 스트레스 때문에 원형탈모증이 생기고 있었다.

살면서 깜빵 들어간 거 외에 이렇게 스트레스 받은 적이 없어서 머리털이 다 빠진다.

* * *

김대현을 두들겨 패는 동안 시현은 사들였던 불량채권을 상당부분 회수하고 있었다.

신용정보회사에서 찾지 못했던 사람들의 8~90%를 찾고, 쪽방이나 원룸에서 고독사해서 연락이 끊긴 사람들은 찾아서 장례를 치러주었다.

“음… 이건 별로 남는 게 없군요. 아 이런 걸 하리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시현은 고독사한 사람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면서 아쉬워했다.

류하리는 경찰 업무를 하느라 여기 따라오지 않았다.

“나쁜 짓 할 때는 따라오고 좀 괜찮은 면을 보이려고 하면 없단 말이지.”

불량 채권을 회수하는 작업은 왠지 사채업자들이나 할 것 같은 냉혈한의 일처럼 보이지만 시현은 사실 돈을 바라고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다.

그는 간절한 사람들을 발굴해낼 필요가 있었다.

타자기의 악마에게서 승리하기 위해서, 계약자가 될 만한 사람들을 미리 발굴해 처리해야 한다.

농담 삼아서 류하리에게 뭐 수확의 결실이 어쩌구 저쩌구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는 진심으로 보답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씨를 뿌리고 있었다.

노고를 들이고 또 들여서… 자신의 영혼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그 과정에서 이런 불우한 환경에 처한 이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접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류하리에게 보여서 자신이 냉혈한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바로 잡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

“으… 언제나 수고하시는 군요.”

고독사 사건을 정리하는 업체의 직원들이 모자를 벗고 시현에게 인사했다.

“일단 고인의 시체는 청소했습니다. 물품들은 확인하셨겠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시죠.”

그들은 품목을 작성하고서 시현에게 마지막 확인을 부탁했다.

시현이 방안에 들어가보니 작은 원룸이다.

이 방의 주인은 30대 남자로 회사를 다니다 나와 창업을 했다가 하필이면 그때 건강이 나빠져서 쓰러져 사업도 몸도 돌보지 못하고 망했다.

아내와는 이혼하고 혼자서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보려다가 그만 쇼크가 와서 어디 연락도 못하고 쓸쓸하게 원룸에서 죽어간 것이다.

“…….”

시현은 방을 돌아보았다.

개발자라서 그런지 작업용 노트북은 상당히 좋다.

그리고 노트북 옆에 업자들이 치우면서 정리된 먹다 남은 시리얼 봉투가 눈에 띈다.

1+1 상품이었는지 테이프로 같은 시리얼이 그대로 붙어있는 게 이 사람의 생활감을 그대로 느끼게 해줘서 마음이 아팠다.

“TV, 세탁기, 냉장고가 있습니다만 이건 근처에서 이미 한 번 중고로 사온 것 같네요. 그리 좋은 제품은 아닙니다.”

컴퓨터를 제외하면 헌 TV, 세탁기, 냉장고, 안에 있던 돈 약간과 식료품이 짐의 전부인데 중고 가전들 대부분은 거의 돈이 안 된다.

작업용 노트북은 업자들이 인수가격을 제시했는데 일반적인 중고시장가격보다 낮다.

그렇다고 업자를 욕할 수도 없는게 혼자 살다가 죽어서 벌레가 꼬여있는 끔찍한 환경을 치우고 정돈하고 세척하는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그들이 물품들을 정비해서 가져가는 비용을 후려친다고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장례는….”

“가족이 다들 여의치 않아서 어렵다고 합니다.”

“하아. 그럼 장례비를 이만큼 내면….”

적자다.

고급 노트북이 포함된 살림살이가 있는데도 적자니 이런 게 없는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고독사하는 사람이 나오면 그들의 장례비만으로 이미 적자를 보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시현은 그래도 장례비를 자신이 내기로 했다.

“괜찮으십니까?”

“뭐 어쩔 수 없지요. 이건. 사람의 존엄에 관련된 일이니까.”

“……”

“저희도 그럼 좀 깎아드리겠습니다.”

“아니요. 그러지 마세요. 프로는 자기 일의 가치를 깎는 게 아닙니다.”

시현은 업자들에게 청소비용을 다 지불하고 고독사한 사람의 집을 정리하고 나왔다.

“이걸로 이번 분기 불량 채권은 대충 정리되었군. 결산을 해보면….”

결산상으로는 약 212만원 흑자. 여기에 채권에 따라서 차근차근 갚아나갈 사람들이 있으니 적지 않은 금액이 계속 들어올 것이다.

이득같아 보이긴 하지만 시현은 일감을 찾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인기 탐정이다.

1주일에 500 혹은 그 이상의 돈을 쉽게 벌어들이는 그가 이만한 공을 들이고 고작 이것밖에 못 벌면 손해다.

“음 뭐 그래도 이번 분기에는 고독사한 사람이 두 명 밖에 없었군. 자 그럼 슬슬… 김대현이나 마무리 지을까?”

시현은 고독사한 사람의 집을 둘러보느라 착잡해진 기분을 풀기 위해 김대현이나 두들겨 주기로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남들이 보면 즐긴다고 오해하겠네.”

과연 오해일까?

* * *

변호사 곽찬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그는 변호사가 아니다.

서민극단의 배우이자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는 소상공인 고찬하였다.

그런 그의 앞에는 스마트폰이 두 대 놓여있었는데 한 대는 그가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변호사 곽찬을 연기하기 위해 쓰는 전화기였다.

[이제와서 그런 게 어딨어!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전화기 너머에서 김대현이 꽥꽥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저기 사장님. 지금 저희가 괜한 말 하는 거 아니잖아요. 사장님 네 가게가 위생문제로 행정처분을 받았다고 뉴스에 떴는데….”

[그런 인터넷 찌라시 때문에 인수를 못하겠다는 게 말이 돼?]

“행정처분 받은 게 맞잖습니까?”

[아니 하여튼 별거 아니라니까. 그거 행정조사 나오면 어지간한 식당 다 걸리는 거라고! 우리 가맹점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데 이거 안사면 후회한다! 나중에 울며불며 찾아와도 그때가면 소용이 없어!]

“그렇게 사업이 잘되시면 안 팔고 그냥 장사하셔서 부자 되시면 되겠군요.”

[크아! 진짜!]

화상통화도 아니라서 김대현의 얼굴이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김대현이 방방 뛰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겠지… 무리해서 가맹점을 막 늘렸을텐데 이제와서 인수 안하겠다고 하면 환장하겠지.’

가뜩이나 사업도 안 돼, 집단적으로 악플들이 채널을 때리고 있는데 쫄다구들 경찰 조사 받느라 관리도 못해서 스트리밍 구독자 수는 빠지고 있지….

김대현은 총제적 난국에 빠져있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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