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20화 (120/269)

제120화

하베스터 #9

[너희 고소할 거야! 고소!]

“하하. 저희를 고소한다고요?”

고찬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으면 안되는 데 상대가 억지를 쓰는게 어이가 없었다.

[그래! 너희들 프랜차이즈 사서 사모펀드에 웃돈 받고 팔아넘기려고 하지! 그거 사기야 사기! 알아!]

“…참신한 의견 감사합니다. 네네.”

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쾅쾅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대현 이새끼야!]

[우리 가게 내놔라 이 새끼야!]

[인테리어 비 내놔!]

[친구라고 봐줬더니만 우리가 호구로 보여! 이새끼야?!]

무리하게 점포 수 늘리겠다고 인수한 가게들의 인테리어비 등을 주지 못해서 문제가 발생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바쁘신 것 같으니 이만 줄이겠습니다.”

고찬하는 그리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김대현 성격을 보면 다시 전화를 걸 것 같은데 전화를 걸지 못하는 걸 보니 그의 앞날에 파란만장한 일들이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는 듯 했다.

* * *

경찰 일을 끝마치고 간만에 시현 탐정사무소에 출근(?)한 류하리는 시현이 계약자 원형재와 함께 있는 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 오셨군요.”

시현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오늘은 마엔싱도, 채권추심 모드도 아닌 어디까지나 평소의 시현이었다.

그런데 원형재가 벌벌 떨고 있다.

‘이 남자, 처음엔 꽤 안하무인이더니만, 하긴. 시현이 그 감금지하실이 붙어있는 비닐하우스를 보여줬었지….’

비닐 필름들을 걸어서 장막처럼 만들 수 있고 천장에 쇠 갈고리가 걸려있는 그 기묘한 비닐하우스를 떠올린 류하리는 몸서리를 쳤다.

시현이 연출로 만든게 아니라 원래부터 그렇게 만들어져 있었다니.

과연 어떤 놈들이 무슨 목적으로 그런 걸 만들었을까?

그러고 보니 신림동 건달인 서경록도 그곳에 끌려갔던 걸 시현이 구해주고 그 후 시현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고 했었나?

체면 따지는 건달도 그럴진대 원형재 같은 일반인은 시현을 두려워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 두려워하는 게 좀 과한 것 같다?

어쨌건 류하리는 시현에게 따지고 들었다.

“요새 김대현의 채널이 업로드 되자 않던데요? 뭔일 생겼나요?”

“그래요?”

“시침 떼지 말아요. 알고 있었죠?”

그녀는 사무실 탁자에 놓여있던 노트북에 다가갔다.

“이것 좀 쓸게요.”

그녀는 노트북을 펼쳐서 김대현의 채널을 살펴보았다.

오늘도 김대현의 채널은 업로드 되는 게 없고 대신 채널 밑에 사람들이 리플을 남기는 이야기가 상당히 오밀조밀, 세밀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야 이 채널 망했어.’

‘여기 편집자 지금은 결룡TV로 갔더라. 편집이 똑같아.’

‘소문에 의하면 김대현 이놈이 칼침 맞고 입원했다던데?’

‘끝장이구만. 양아치 콘셉트로 놀아도 사업해서 돈 잘 버는 게 좋았지 뭐 그 나이 처먹고 칼질이야 칼질은. 진짜 조폭들도 그 나이에 칼질하면 막장이라던데.’

‘편집자 월급도 못주는 막장 인생인가?’

‘최근 갑자기 확 막장으로 가버렸지?’

‘역시 월급쟁이가 최고다. 스트리머로 반짝 벌어봤자 그 씀씀이 그대로 사생활만 팔고 나중에 인기 떨어지면 망하는 거야.’

‘네 다음 월 200따리.’

‘…180이다.’

‘실화냐? 최저임금은 받냐?’

이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곳의 댓글란은 사실 시현이 의도적으로 폭격해서 원하는 대로 여론을 조성하고 있었으니까…

여기에 나오는 말들은 다들 언중유골, 어느정도는 근거가 있는 말이리라.

“확인해봐야 겠네.”

류하리는 관악경찰서에 가있는 경찰대학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뭐? 김대현이? 그 양아치새끼 지금 서울 보라매 병원에 입원해있어.]

“네? 크게 다쳤어요?”

[응. 크게 다쳤어.]

“누구에게 뭐하다가요?”

[인테리어 업자들이나 다른 업자들에게 무리하게 가게를 인수한다고 뻥카를 뻥뻥 쳐놨는데 정작 대금 지불할 때 부족한 거야. 그런데 남의 가게는 이미 부숴놓고 인테리어 하고 있었는데 못주겠다고, 가게 안 가져 갈테니까 없던 일로 물리자고 하니까 칼부림이 났지 뭐야.]

“칼부림이요?”

[그래. 이 미친 놈들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지들끼리 칼부림을 했고 거기서 그놈 아킬레스건이 잘렸지 뭐야?]

“세상에. 그래서 관악서에서는 어떻게 하려고요?”

[아 볼 거 없지. 죄다 구속할 거야. 이새끼들. 그렇잖아도 벼르고 있었는데 잘됐지. 그런데 류하리 간만이다? 몸은 이제 괜찮은 거야? 괜찮으면 언제 함 저녁이라도 함께….]

“응 고맙고 바빠서 미안해요. 좋은 밤 보내요.”

류하리는 즉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장탄식을 했다.

“결과론 적으로 발모가지를 자르긴 했네요.”

* * *

시현은 이 일을 맡을 때 말했다.

김대현의 손목이나 발목을 잘라버리겠다고.

근돼 문신 폭력남은 몸뚱이 하나만 있으면 쉽게 재기한다.

그들은 폭력과 허세, 성공에 대한 선망을 가진 이들 만의 네트워크가 있고 그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빠르고 쉽게 돈을 만들고 재기할 수 있다.

유흥업, 요식업, 윤락업소 등 그런 이들이 잘 알고, 쉽게 뛰어들 수 있는 사업이 많으니 전과가 있건 없건 간에 그들은 너무나 쉽게 재기한다.

이 재기를 막기 위해서는 결국 그들이 이 네트워크 안에서 존중받는 이유를 없애야 한다.

폭력과 허세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시현은 손목이나 발목을 하나 잘라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류하리가 나름 경찰이라고 발끈하니까 농담이라고 뒤로 뺐다.

경찰 앞에서 사람을 불구로 만들겠다는 선언은 해도 너무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시현의 말대로 되고 말았다.

‘그가 직접 자른 것도 아니니 그에게 뭐라고 말할 수도 없고. 아니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알았다면 그야말로 신내린 거 아냐? 아 이 남자 어떤 의미로는 신내린 거 맞지.’

류하리는 복잡한 심정으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시현이 자른 건 아니니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김대현이 이런 상황에 몰려 아킬레스 건이 잘린 건 시현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정작 시현은 능청을 떨고 있었다.

“뭐 아예 잘린 게 아니니 아킬레스 건 재건수술이나 봉합수술을 하면 될 겁니다. 이야. 요새 의술이 아주 좋아져서요.”

“뭐 알겠어요. 이건 당신이 개입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들끼리의 사고지요?”

“그렇지요. 저는 그저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금액을 좀 말해줬을 뿐인데 본인이 열정적으로 괜히 덩치 단기간에 불리려다가 사고가 난 거지요.”

“하지만 당신이 인수한 김대현의 채권은 어쩌죠? 25%가격으로 인수하긴 했지만 금액이 꽤 될텐데?”

“뭐 그건 다 받아냈습니다.”

“네? 어떻게요?”

“이제 건달 포차와 건달 떡볶이는 제겁니다.”

“…네?”

너무나 황당한 소리라서 류하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M&A떡밥을 뿌리니까 김대현 이친구, 은닉재산을 모아서 가맹점 늘리는데 쓰면서 스리슬쩍 법인 지분을 자신에게 돌려놨더라고요. 돈세탁하기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조금씩 나눠놓을 때는 믿을 수 있던 사람이라도 20억 정도 되는 인수자금이 들어오면 믿기 힘들어져서 그랬을 수도 있지요.”

“……..”

“그때 채권추심을 걸었는데 마침 본인이 병원에 가있어서 대리인인 아버님께서 시원하게 지분을 넘겨주셨습니다. 현금은 다 날아가고 사업체 지분만 남았더군요.”

“………”

류하리는 시현의 이 예술적인 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니까 김대현이 병원에서 치료받느라 제정신 아닐 때 채권추심을 강행해서 하필 은닉재산들 정리하고 있을 때 정확한 타이밍에 급소를 찔러 재산을 강탈했다는 것이다.

우연히 이렇게 될리는 없다.

‘도청… 도청이구나.’

류하리는 시현이 김대현을 도청했을 가능성을 떠올리고 혀를 찼다.

‘크으… 이남자 대한민국 법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류하리는 경찰로서의 윤리의식과 데드맨으로서 31일의 저주에 속박된 시현에 대한 동정심 속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현은 그 상황에서 손가락을 짝짝 맞춰보며 암산을 해보았다.

“뭐 그래도 손해긴 하군요. 헬기 대여비용에 바람잡이들 인건비, 쉐라톤 호텔 연회실 대여와 헬리 포트 사용비, 채권 인수비용 생각하면 남는 건 부실한 현물뿐이군요.”

즉 김대현은 몸도 망가져 현금과 차도 잃어, 집도 날리고, 사업체까지 시현에게 빼앗긴 게 된다.

거기에 시내에서 칼부림을 한 혐의로 구속되어 감옥에 갈 것 같으니….

이번에 들어가면 확실히 인생의 파멸을 맛보지 않을까?

“자 그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현은 계약자 원형재를 바라보았다.

그는 처음에 여기저기 행패를 부리던 때와 달리 벌벌 떨고 있었다.

“아 저기… 아, 악마님?”

“저는 악마가 아닙니다. 탐정이지요.”

“,,,,…”

“저희 서비스에 만족하셨습니까? 수명 1년의 비용에 이정도의 만족감, 이만한 가성비도 없다고 생각하는 데요. 다른 놈들은 영혼을 통째로 달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원형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하셨으면 정산이라고 해주시면 됩니다.”

“정산!”

시현 탐정사무소에서 원형재는 정산을 외쳤다.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그, 그럼 이제… 저는 당신과 모든 일 다 끝난건가요?”

“뭐 그거랑 저와의 채무관계는 또 별개 문제긴 하지요. 제 사업체에 가서 일하셔서 당신도 결실의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사업체요?”

“네…. 잠시 제 사업체들의 현황을 봐야 겠군요.”

시현은 류하리가 펼쳐놓은 노트북에 다가가서 엑셀 파일을 열어보았다.

여러 업체들의 급여대장과 직원 현황이 담겨있었다.

‘뭐야? 한두 개가 아니잖아?’

류하리는 그걸 보고 기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당장 김대현을 파멸시키면서 김대현의 법인 두 개를 시현이 인수해버렸다.

이런 식으로 업체들을 인수해나간다면 상당히 많은 법인들을 단기간 안에 모을 수 있으리라.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조진거야? 지금까지?’

류하리는 시현의 손에 처리당했을 무수히 많은 법인사업자들에게 묵념을 보냈다.

* * *

그렇게 시현이 노트북을 보며 궁리하고 있을 때였다.

“저 그런데 혹시 그 건달 떡볶이 그거 인수하시면 주방 스탭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원형재가 시현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건달 떡볶이라는 상호가 마음에 안들어요. 건달 포차도 그렇고. 그냥 건실한 사람들은 들어가기엔 거부감이 많은 브랜드 아닙니까? 약간 리뉴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건달 떡볶이는 위생문제로 공격당한 것도 있고 하니까 법인은 동결시키고 가게는 다른 프랜차이즈로 바꿀까 했는데….”

“아, 아니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뭐 상호야 바꾸더라도 제가 요식업계에 있었기 때문에…. 제가 해보겠습니다.”

“흠. 알겠습니다. 그럼 고용점장이 되시는 걸로….”

“점장 말입니까?”

“네. 하지만 일단 오늘은 가서 편히 쉬세요. 나중에 천천히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지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원형재를 내보냈다.

원형재는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훌훌 털어버렸는지 꽤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현 탐정사무소를 나갔다.

류하리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산뜻하게 해결했군요.”

“네. 이제 저 사람은 드디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새 출발 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 사들인 법인에서 일을 하면서 말이죠?”

“네. 요새 같은 구직난에 참 훌륭한 애프터 서비스 아닙니까?”

“으음.”

류하리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캘린더를 확인해보았다.

“2주 걸렸군요.”

김대현을 파멸시키는 데 걸린 시간 2주.

처음에 류하리가 31일 넘기면 어쩌냐고 걱정했던 게 좀 바보같이 여겨졌다.

“그만큼 김대현씨가 성격이 급했던 모양입니다. 뭐 수확의 기쁨을 일찍 누리니 좋지 않습니까?”

“상추도 심고 나서 제대로 따려면 40일은 걸리는데….”

류하리가 불평 아닌 불평을 토했다.

시현은 웃으면서 서류를 타자기에 넣었다.

-타다다닥!

타자기가 경쾌하게 서류를 접수했다.

“자 그럼… 2주 내에 다음 계약자를 마련하도록… 타자기의 악마에게 부탁해보죠.”

또 다른 31일의 시작이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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