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화
참칭의 대가 #1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취업준비생 김석영씨는 의기양양하고 있었다.
취업대란의 시대지만 그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왜냐면 그는 국제 도시공학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기 때문이었다.
“으하하하! 역시 나는 대단해! 이제 내 앞길은 탄탄대로라니까.”
곧 졸업하게 되면 그는 최고의 대기업에서 보란 듯이 자신의 실력을 펼쳐나갈 게 분명했다.
대학 동기들은 벌써부터 그를 부러워하며 술을 사라고 전화해대곤 했다.
실제로 공모전 상금이 무려 1만 USD에 달했기 때문에 세금을 제외하고도 취준생에게는 상당한 돈이었다.
그래서 김석영은 그날도 친구들에게 술을 사고 자신 역시 얼큰하게 취해서 집에 들어오고 있었다.
“으억… 너무 마셨나.”
그는 집 근처 전봇대에서 잠시 앉아서 쉬다가 가물가물해지는 눈앞에 잠깐 눈을 감았다.
그리고….
* * *
“일어나보세요.”
누군가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으음….”
김석영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김석영씨 맞으시죠?”
경찰들이 김석영을 내려보고 있었다.
“네… 아 죄송합니다. 어제 과음을 해서….”
그는 경찰들에게 사과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경찰들은 그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응? 뭐에요 이건?”
“김석영씨….”
“부녀자 성폭행 범으로 체포합니다.”
“예?!”
김석영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부녀자들을 성폭행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 * *
월세살이들이 많은 원룸촌, 빌라촌 일대에서 연속적인 연쇄 강간 사건이 일어났다.
항상 복면을 쓰고 사건을 벌여서 진범이 잡히지 않던 중 유일한 목격자가 지목한 범인이 바로 김석영이었다.
김석영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그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판사들의 권위에 도전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눈물을 흘리며 구구절절한 반성문을 써냈다면 판사들이 형식상의 감형을 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석영는 무죄를 주장했고 선고가 내려지자 항고를 했으며 이는 판사들에게 괘씸한 놈으로 미운털이 박히는 계기가 되었다.
판사들은 죄를 인정하지 않고 반성의 여지가 없다는 이유로 징역 10년의 중형을 때렸다.
물론 여러 사람들을 연쇄적으로 강간한 중범죄자에게 징역 10년은 너무 적다는 여론이 빗발쳤지만 이 사건은 특이하게도 강간 외에 혐의를 찾을 수 없었다.
보통 강간에 따르는 폭행, 강도가 없었기에 주거 침입죄와 강간, 협박죄 등을 적용하면 법원은 법원 나름대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김석영씨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 때문에 무고한 옥살이를 시작해야 했다.
* * *
감옥의 생활은 고통스러웠다. 특히 짓지도 않은 죄로 들어온 사람에게는 매 순간순간이 지옥이었다.
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나.
왜 세상은 이다지도 불공평한가.
단체 방에 갇혀있을 때도 그는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독방에서 매일같이 후회와 회한으로 고통 받아야 했다.
그리고 천년과도 같은 4년이 지났을 때….
진범이 잡혔다.
다른 지방에서 똑같은 수법으로 원룸에 침입하다가 잡힌 남자가 자신의 죄를 자백한 것이었다.
결국 김석영씨는 4년의 무고한 옥살이 끝에 석방되었다.
* * *
“아….”
간만에 세상에 나오니 정말 많은 게 바뀌어 있었다.
하필이면 연쇄 부녀자 강간범이라는 누명을 쓰게 된 그의 가족들은 그야말로 난도질당했다.
SNS에서 사람들은 정의의 사도라도 된 마냥 그의 가족들의 정체를 밝혔다.
여자 친구였던 사람이나 여동생의 친구들, 그런 사람들이 그의 가족들의 신상명세를 인터넷에 올리고 그 결과 온 가족들의 신상이 파헤쳐졌다.
부모님에겐 자식 교육을 제대로 못한 죄로 비난이 쏟아졌고 여동생에게는 ‘이건 좀 그런데 내 친구네 오빠가 연쇄 강간범이라는데 내 친구 너무 당당하게 고개 들고 살아. 그건 좀 아니지 않아?’
‘쓰니 말이 맞아. 자칫 잘못했으면 쓰니도 그 친구랑 같이 지내다가 오빠에게 눈독 들여졌으면 어쩔 뻔 했어?’
‘뭐 연좌제는 좀 그렇지만 그렇다고 쓰니 친구가 떳떳하게 사는 것도 좀….’
이런 음습한 괴롭힘이 이어졌다.
이렇게 온 가족이 덩달아 규탄을 받아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정체를 감추고 이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진범이 잡히고 그의 무고함이 밝혀진 지금.
SNS에서 그와 그의 가족을 질타했던 사람들은 그를 잊었다.
사람들은 인지부조화의 존재다.
자신의 잘못을 직시하고 사과하기 보다는 잊었다거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쪽을 더 좋아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증거를 날조하거나 기억을 조작해서까지 자신의 옳다고 주장하고 싶어 한다.
개개인들은 물론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체포당할 때는 그렇게 대서특필했던 신문들이 진범이 잡혔을 때는 시들하게 취재했다.
이미 한 번 빨아먹은 이벤트에 진범이 나왔다는 사실은 언론사를 별로 흥분시키지 못한 모양이었다.
진범이 잡힌 게 그 정도니 김석영이 석방되었다는 건 뭐 더 말할 것도 없이 시시한 일이었다.
석방된 김석영씨는 취직을 할 수도 없었다.
대학 졸업 내정이던 상태에서 연쇄강간마로 찍혀서 대학에서는 자신들의 품위를 위해 김석영씨를 제적시켜버린 것이었다.
제적무효 신청을 해서 그게 받아들여져 제적이 취소된다 하더라도 지금 김석영씨의 정신은 엉망진창이었다.
취업준비생이던 시절의 빠릿빠릿함은 없다.
취업을 위해 따뒀던 Toeic, HSK 등등의 자격증들도 심지어 전공과목들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는 것은 굴욕과 분노와 증오뿐이다.
4년간의 감옥생활, 그것도 억울한 옥살이는 사람을 극한의 스트레스로 밀어 넣는다.
매일같이 자살충동에 사로잡혀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공부나 독서, 기타 자기개발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오히려 정말 자신의 손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들어온 진범들은 태연히 안에서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범죄수법도 배우고 범죄자들 끼리 영치식을 나눠 먹으며 인맥도 다지고….
아주 다들 보람찬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가장 열심히 일해야 할 취준생 시절의 4년을 그런 극한의 스트레스 속에서 거의 정신병 생길 정도로 고통 받은 김석영씨에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학 학비 아깝네. 완전 인생 한 방에 날아갔잖아? 제적을 무효화 시킨다고 해도 다시 졸업할 수 있을까? 그렇게 졸업한다해도 나이는 헛되이 네 살 더 먹어버렸는데 취직이 될까? 스펙도 다시 쌓아야 하고 무엇보다 공부도 다시 해야 하는데….”
스스로 그렇게 말한 김석영씨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울음소리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발! 나에게 대체 왜 이러는 데!”
공원 벤치에서 그는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 * *
김석영씨는 석방되자마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4년의 억울한 옥살이. 그것도 한창나이의 청년을 가둬두어서 커리어를 날려먹고 그 영혼을 분쇄하다시피한 중범죄.
국가가 한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이 아닐까?
하지만 그 배상액은 고작 4억이었다.
‘수사과정에서 고문이나 강요가 없었고 경찰이나 검찰, 판사, 그 누구도 잘못이라 할 만큼 큰 실수가 없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각자 최선을 다했을 뿐인 불행한 결과이므로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다만 김석영씨 개인의 고초에 대해서 보상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정의에 규합하기에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가 배상하는 것은 옳다.’
그게 판결의 이유였다.
“웃기지마!”
김석영씨는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는 걸 듣고 기가 막혀서 난동을 피우고 말았다.
“그렇게 아니라고 했는데 내 말은 듣지도 않았잖아! 그런데 4억?!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 뭐야! 그 잘난 척하면서 내주는 그 태도는?!”
“김석영씨.”
판사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심정은 이해합니다. 법정 모독죄를 추가하기 전에 앉으세요.”
“이따위 법정에 뭔 명예가 있다고 모독을 해! 당신들에게 개기면 마음껏 날 벌할 수 있는 거잖아! 해봐! 어디 실컷 해보라고! 판사는 지좆대로 무고한 사람도 범인으로 만들 수 있고 아무나 깜빵에 처넣을 수 있다는 걸 보여 줘봐! 어디! 이게 무슨 법치주의야? 너희들 마음대로 하고 있을 뿐이잖아!”
결국 옆의 변호사가 김석영씨를 제지해서 억지로 앉히고 재판은 끝이 났다.
* * *
그리고 진범은 6년형을 받았다.
죄를 자백했고 수사에 협조적이며 이전까지 전과가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법무부에서는 항소했다.
4억의 배상금은 너무 과하다는 것이었다.
이게 받아들여져 김석영씨의 배상금은 2억이 되었다.
변호사 선임비 2천만 원을 제하면 1억8천만 원.
4년간 무고한 옥살이를 하면서 커리어를 다 날려버리고 정신병이라 불러도 좋을 PTSD를 안게 만든 대가가 고작 1억 8천만이라니?
* * *
“뭐 이따위 법이 다 있어?!”
김석영씨는 분노했다.
“내가 4년 살았는데 진범이 6년이라고?! 난 10년형을 선고 받았었잖아?! 왜 진범이 나보다 형량이 적어?! 그리고 왜 줬다가 다시 빼앗아?!”
김석영씨네 집에서는 정부 배상금을 전셋집 보증금과, 그동안 어렵게 생활하면서 진 빚을 갚는데 써버렸다.
그런데 정부에서 2억을 반환하라고 하니 대출받아서라도 내놔야 할 판이 되었다.
일부러 줬다 빼앗기.
김석영씨를 괘씸하다고 여기고 괴롭히려고 이러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데 변호사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전과가 없고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으니까요.”
“초범은 무슨! 연쇄적으로 범죄를 저질렀잖아?! 나도 당시에 초범이었을 텐데 나는 연쇄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초범 취급 없었다고! 이건 그거 아냐? 자기들이 오심 했으니까 적당히 묻어버리려고 형량도 그냥저냥 때린 거지?! 언론에 타서 괜히 부각되는 게 싫으니까?”
김석영씨가 잡혔을 때 경찰과 언론은 연쇄 강간마를 드디어 잡았다고 기뻐하며 대서특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진범이 잡힌 뒤에는 언론도 사회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그런 무관심속에서 은근슬쩍 사건을 축소해서 대충 처리하고 넘어가려는 게 아니냐?
김석영씨는 그런 의심, 아니 확신을 가지고 분개하고 또 분개했다.
그러나 변호사는 냉담했다.
“그가 자백을 해서 김석영씨가 무사히 풀려날 수 있지 않았습니까? 만약 그가 자기가 걸린 사건만 자백했으면 5년 이하의 형벌을 받았을 겁니다. 김석영씨는 여전히 교도소에 있었을 거고요. 그러니 다행으로 여겨야지요.”
변호사는 냉담하게 그렇게 말했다.
김석영씨가 판사에게 정면으로 도전한 후로 그를 담당한 변호사의 태도가 냉담해졌다.
변호사 역시 법조계의 사람이다. 판사에게 밉보이는 짓을 하면 한소리 듣지 않을 수 없다.
“…젠장.”
김석영씨는 그렇게 분노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