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화
참칭의 대가 #2
“그럼… 날 범인으로 지목한 여자에게 민사라도 겁시다.”
김석영씨는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했던 여성을 떠올렸다.
“그건 곤란할 겁니다.”
변호사는 심드렁한 태도로 답했다.
“네? 왜요? 그 여자의 헛소리 때문에 내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는데?”
“우선 위증죄는 본인이 위증이라고 인지하고 있을 때 성립됩니다. 위증이 아니라 본인이 그렇다고 믿고 있었다면 위증죄는 성립하지 않지요.”
“그걸 아니까 민사로 걸자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법정 증언에 대해서 위증이 아닌 실수나 잘못이 있었다고 해서 처벌하진 않습니다. 위증 외에는 처벌할 수가 없어요. 만약 증언에 착오가 있을 때 그 사람을 벌한다면 누가 증언대에 쉽게 서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증언 얻기 까다로운데?”
“웃기지 마요! 그럼 그 여자의 실수 때문에 인생을 날린 나는 뭐? 그냥 당하고만 있으라고?”
“이보세요. 김석영씨. 저는 조언해드리는 겁니다. 원래대로라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고 수임이나 받고 수임료나 청구하면 끝인데 조언을 해드리고 있는 거 아닙니까? 제게 성질내지 마세요.”
“당신에게 성질내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당신은 내 변호사잖아요? 어떻게 방법이 없습니까?”
“법이 그렇게 되어있는 걸 어떻게 합니까? 저 말고 다른 변호사라도 백이면 백, 다 이렇게 말할 겁니다.”
“…그럼 하다못해 개인적으로 그 여자를 만나서 사과라도 받아야겠어요.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어렵겠는데요.”
“그, 무슨….”
김석영이 보기에 이 변호사는 아무래도 알아볼 생각도 없이 그저 귀찮은 일을 하기 싫어서 안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이 변호사에게 의존할 수는 없겠다 싶은 그는 자신이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 * *
“증인의 신분정보를 구하고 싶다고요? 어렵겠는데요?”
법원 행정과의 직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증인이나 고소인 정보를 알려줬다고 보복당하면 어쩝니까? 절대 안 됩니다.”
“아니 그건 그렇지만….”
지금까지 다른 사건들에서는 증인들, 고소인들 잘들 알아내서 보복하더만… 유독 자신에게만 까다롭다.
“그럼 정보공개신청을….”
“…….”
행정 직원이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나 싶어서 김석영씨를 흘겨보았다.
그때 그의 곁에 한 남자가 다가왔다.
얇은 코트 차림의 젊은 남자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뭔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
“네? 누구신데요?”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그는 김석영씨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시현 탐정사무소?”
“예. 보아하니 사람을 찾으시는 것 같은데….”
“아.”
보아하니 흥신소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흥신소라면 보통 깡패나 퇴역경찰이 하는 일 아닌가? 너무 젊어 보이는데?’
그리 생각한 김석영씨는 말을 잘해서 어떻게 요령이라도 알아볼까 하고 물어보았다.
“제 재판에 증언한 증인을 찾아보고 싶은데요.”
“흠. 증인을 말입니까? 보복하시게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 여자의 잘못된 증언으로 제가 누명을 쓰고 복역하다가 이제 겨우 세상에 나왔습니다.”
“아….”
탐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석영씨군요. 당신이….”
“절 아시나요?”
“그야 신문에 났으니까요.”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저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을 찾고 싶은데… 법원에선 전혀 협력을 해주지 않는 군요.”
“당연하죠. 보통 피해자를 찾아낼 때는 합의나 보상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불러내던가 합니다. 증인은 불러낼 이유가 별로 없지요.”
“제가 고소를 한다면요?”
“사실 그래서 일부러 되건 안 되건 고소를 해서 성명불상 상태에서 찾아내는 방법이 있는데 김석영씨의 경우는 오심사건에 걸려있으니 고소 첫 단계에서 기각될 겁니다.”
“네? 왜, 왜 그렇게 단언하죠?”
“그야 판사들 체면이 있는데 김석영씨가 그 일을 계속 파고드는 걸 좋아하겠습니까? 판검사들이 원하는 건 김석영씨가 그냥 교통사고 당했다고 생각하고 과거는 잊고 미래를 위해 진취적으로 달려 나가고 자기네들 치부는 건드리지 않고 그냥 끝나는 걸 원하는 거죠.”
“윽….”
김석영은 탐정의 말에 혀를 찼다.
그도 느낌으로는 알고 있었는데 이 탐정은 정확하게 그걸 언어로 선명하게 드러냈다.
“내가 피해자인데….”
“판사나 검사들도 자신들이 항상 올바른 판결을 내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올바른 판결을 내리지 않을 때마다 책임을 져야 한다면 판검사가 남아나지 않겠지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모든 오심에서 판검사들은 면책되어 있습니다.”
“…!”
“자신들은 안전한 곳에서 일방적으로 정의의 철퇴를 마구 휘두르게 보장되어 있는 거죠.”
“젠장!”
“그래서 원하시는 건 뭡니까? 설마 증인을 찾아내서 복수하는 겁니까? 증인도 법정의 편의주의 때문에 위증이 아닌 이상 처벌할 수는 없고… 민사의 책임에도 면책되어있는데….”
“아뇨. 그건 됐습니다. 저는 그저 그녀를 찾아서 대체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서 그랬는지, 그리고 하다못해 사과라도 받고 싶습니다.”
“흠. 그렇군요. 그럼 절 고용하시죠.”
“…얼마죠?”
“음 주당 500만원입니다.”
“네?!”
너무 큰 금액에 김석영은 깜짝 놀랐다.
“아 탐정은 다 그 정도 받는데요?”
“아니 하지만 이제 막 출소한 제게 그런 큰돈은….”
물론 국가소송으로 배상받은 돈이 있다. 하지만 그건 벌써 집 전세금으로 써버렸고 오히려 너무 많이 줬다고 토해내라고 하는 것 때문에 대출을 받아야 할 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생겼다고 생각하는 지 김석영씨의 집안에는 벌써부터 친척이니 먼 친구니 하는 놈들이 그 돈을 노리고 연락이 꼬이고 있다.
‘이놈도 그런 놈인가?’
탐정이 자기 주급이 500만원이라고 말하는 데 이놈도 결국 자신을 벗겨먹으려는 놈이 아닌가?
그런 의심이 들었다.
“음, 어쩔 수 없군요. 시현탐정사무소는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여깁니다만… 수임을 받지 않으면 고객이 아니지요. 그럼….”
“자, 잠깐!”
“네?”
“일을 맡기겠습니다. 그런데… 일하는 걸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아.”
탐정이 난처해했다.
“그건 좀… 봐서 좋을 게 없는데요.”
“봐야겠어요. 고객만족이 최우선이라면서요?”
“…휴우.”
“네?”
“아, 알겠습니다.”
탐정은 그리 말하고 계약서를 내밀었다.
김석영씨는 그 탐정의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럼….”
탐정은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뭐 따라오시죠.”
탐정은 그리 말하고 법원 주차장으로 향했다.
* * *
법원 주차장에 주차된 SUV차량에 올라탄 탐정은 김석영씨에게 차에 타라고 손짓하고 노트북을 꺼내서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사건에 연관된 경찰들은 당연히 일을 함구할 겁니다. 하지만 같은 서에 근무하다가 정년이 다되었다던가. 모종의 이유로 그만둔 사람들은 입이 가볍지요.”
“아 네.”
“마침 흥신소를 하고 있군요.”
탐정은 전화로 그 흥신소에 연락했다.
[어이쿠. 이게 누구야? 엄청 잘나가는 탐정 아니야? 서&정에서도 이번에 크게 빚을 졌다던데?]
“과찬의 말씀입니다. 실은 다른 게 아니라… 김석영씨 사건 알지요?”
[아 그거? 알지.]
“증인이었던 여성분의 정보를 알려주십시오.”
[아 그게 말이지.]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정보료는 얼마면 될까요?”
[100만.]
“너무 비싼데요?”
[뭔 소리야. 자네 이걸로 더 많이 벌 수 있잖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그쪽에서 제안하는 일들에도 가격을 올려 받도록 하지요. 어차피 더 많이 버실 테니까.”
[…아 잠깐. 하하하. 우리 사이가 또 그렇지는 않잖아? 그렇지?]
“네. 죄송합니다. 이게 제 사적인 일이면 모르겠는데 또 다 고객님의 지출로 이어지는 거라서.”
[알겠네. 그래도 70만 정도는 어떤가?]
“받아들이겠습니다.”
탐정은 간단히 거래를 끝마치고 증인의 정보를 받아냈다.
“엑?”
보고 있던 김석영은 난감해졌다.
500만원을 주기로 한 일인데 하루 만에 끝나다니.
물론 이 탐정이 없었으면 혼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겠지만 이남자, 말 몇 마디, 전화 몇 통화로 500만원을 뜯어갈 셈인가?
“보아하니 불만스러우신 모양이로군요. 그러면 같이 가실까요?”
“네?”
“아마 증인을 만나려고 하실 텐데 혼자 만나는 것보다 백업이 하나 있는 편이 든든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마침 교통비도 절감하고요.”
“아 네.”
“그럼 가지요.”
“자, 잠깐만요.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습니까?”
“아, 아뇨. 가, 갑시다.”
* * *
김석영씨와 탐정이 도착한 곳은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한 장기요양병원이었다.
이름이 장기요양병원이라고 하지만 옆에 정신병원이 붙어있는게 일반적인 요양병원이 아니라 상당히 중증 환자들이나 정신병자들을 수용하는 시설로 보였다.
“여, 여긴….”
“여깁니다.”
탐정은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접수처에 말을 걸어보았지만 접수처에서는 면회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게, 사람을 만날 상태가 아니신데요.”
“아 그렇습니까? 정말 친한 친구라서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은데 그것도 안 되겠습니까? 먼발치에서라도 상관없습니다.”
“네.”
“으음… 그러시군요. 아 그런데 슬슬 식사시간 아닙니까?”
탐정은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잠시 후 음식 배달부가 와서 간호 데스크에 피자며 치킨 등을 쌓기 시작했다.
“이, 이건?”
“그냥 성의입니다.”
“…….”
“어 저기 그, 물리치료실이 저기 있는데 저긴 밖에서 볼 수 있거든요. 마침 재활훈련을 해야 해서….”
간호사들과 요양보조사들은 탐정에게 받아먹은 게 있자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주었다.
탐정과 김석영씨가 기다리고 있자 잠시 후 한 중년 여성이 요양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 나와 물리치료실에 와서 난간을 잡고 걷고 있었다.
그런데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듯 했다. 공허한 시선으로 그저 요양사들의 주는 자극에 응해서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가 뭐 학대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녀는 원래부터 저런 상태였어요.”
“원래부터 저런상태였다면....”
“아시죠? 프로포폴? 저 여성은 원래 그, 안좋은 쪽에서 일하면서 프로포폴을 투약하다가 과다 투약한 이후로 조현증 증상을 보이다가 약을 강하게 쓰면서 폐인이 되었답니다. 최근에 겨우 재활하고 있어요.”
요양사 한 명이 변명하듯 그렇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탐정은 쓴 웃음을 지었다.
* * *
조사해본 결과 이 증인이던 여성은 이미 증인이던 시절에 정신과 치료를 요하는 심각한 조현증 환자임이 밝혀졌다.
즉 법적으로 그녀의 증언능력은 의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당시 김석영씨를 변호했던 국선 변호인이나 검찰, 법원은 모두 다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저 간만에 나온 증언에 목이 말라서 어떻게든 사건을 종결시키는 데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나중에 증인에게 정신병이나 마약 과용의 소지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오히려 그걸 묻어버렸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