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참칭의 대가 #3
즉 김석영씨는 경찰과 검찰, 사법부의 편의주의에 의해서 희생당한 완벽한 희생양이라는 소리였다.
“뭐야 이 자식들! 어떻게 이런 짓을….”
김석영씨는 이제야 밝혀진 사실에 분개했다.
판사와 검사, 경찰들 할 것 없이 모두 다 졸속으로 사건을 처리했다.
언론의 질타를 피하기 위해 대충 사건을 수습하고 싶어서 증인의 상태를 의심하지도 않고 졸속으로 처리한 것이다.
그런 주제에 나중에 진범이 잡히자 자신들의 졸속 처리가 드러나는 게 두려워서 오히려 증거를 인멸하고 김석영씨에게는 입을 다물라고 한다.
그런데 그 변호사조차 판사와 검사와 한통속인지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판검사, 경찰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자신을 파멸시켰다고 생각하니 김석영씨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런 김석영씨의 곁에서 탐정은 피자를 한 조각 베어 물며 물리치료실 앞의 벤치에 앉아있었다.
“하루 만에 끝나긴 했지만 그럴만한 가격이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렇군요.”
이 탐정이 없었다면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사람을 찾을 수도 없었겠지.
그리 생각하면 500만원의 지출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이 남자가 쓴 경비만도 얼추 100만원은 될 것 같으니까.
“사실은 경비는 따로 청구인데… 워낙 짧게 끝났으니 그건 그냥 빼드리겠습니다.”
“네.”
“그런데 이제부터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이제부터요? 으음….”
김석영씨는 환자의 입원자료를 받아들고 생각에 잠겼다.
“이, 일단 이걸 이용해서 다시 행정소송이라도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아 그렇게 말입니까? 합법적으로?”
“네.”
김석영씨는 그렇게 대답하고 난감해했다.
합법적으로?
뭔가 달리 불법적으로 해결할 방도라도 있는 건가?
상대는 판검사들인데?
“흐음….”
탐정은 피자를 다 먹어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혹시 뭔가 더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그 명함의 전화번호로 연락 주십시오. 절대로 경솔한 행동을 하지 마시고 행동을 하기 전에 꼭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탐정은 그리 말하고 미소를 지었다.
“저희 시현 탐정사무소는 언제나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니까요.”
그렇게 말한 탐정은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혹시 가실 거라면 제 차로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여기서는 차 없이 대중교통으로 나가기 불편하실 것 같군요.”
“아 네….”
* * *
김석영씨는 수상한 탐정의 도움 덕분에 증인이 원래부터 증언할 능력이 없었으며 증언의 신빙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얻어내었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변호사들에게 찾아가니 다들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억울하시겠지만…. 사건이 이미 종결되어버려서….”
“네?”
“일단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소하겠습니다만 오랜 싸움이 될 겁니다.”
“오랜 싸움이래도 상관없습니다! 해야지요!”
김석영씨는 싸우기로 결의했다.
* * *
하지만 그것은 참으로 지루한 싸움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니 시작은 하는지도 모를 지루한 싸움, 게다가 판사와 검사, 경찰들 모두 그냥 몰랐다, 실수였다 라고 하기만 하면 면책되는 가벼운 벌에 불과했다.
저들은 너무 쉽게 면책 받을 수 있는 가벼운 실수 때문에 김석영씨는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망가뜨렸다.
아니 그 후 얻은 PTSD나 신경증을 생각하면 김석영씨는 이미 망가져 있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법과 질서 안에서는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임을 알았다.
법률과 질서는 정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사회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하지만 국가가 모든 판결을 독점하고 정의를 참칭하는 이 상황에서 과연 한 개인이 국가나 사회에 대항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김석영씨는 고통 받으며 답을 찾아 배회했고 곧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었다.
* * *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해.’
이 사이트는 계속해서 서버를 스위칭하며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등 주로 남미의 호스팅 업체를 오가며 정부의 단속을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접속하기가 쉽지 않았다. VPN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뉴스 댓글란 등에서 사이다패스를 연호하고 있었다.
김석영씨는 그런 상황을 알고 자신의 사연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 * *
“으 젠장. 이게 아닌데.”
성신아 경위는 사이다패스 합동수사본부에서 고생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엽기 살인범이니 만큼 쉽게 잡아서 끝날 거라고 생각한 일이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좋은 일을 빠르게 처리해서 공을 쉽게 세우고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것.
그게 성신아 경위의 노림수였다.
하지만 실상 업무에 진입해보니 사이다패스는 흔적도 없이 살인을 계속하고 있고 그 모방 범들은 각지에서 출몰하고 있으며 이를 막지 못하는 수사 인원들에게 언론의 비난과 질타가 쏟아지고 있었다.
게다가 더 화딱지가 나는 건 그녀에게는 별다른 실무를 집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료사진을 주로 찍는 사진사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거 내가 카메라맨인지 경찰인지 모르겠네. 이럴 거 같았으면 기자를 했지.”
게다가 페이퍼 워크도 상당히 많았다.
사이다패스의 모방범죄가 벌어지면 그게 사이다패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분석해서 보고서를 올려야 하는데 경찰, 검찰, 법무부에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는 작업만으로도 합동수사본부가 마비될 정도였다.
다행인 것은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주로 활약하는 최형림 검사가 아주 일에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아예 보고서 사양을 만들어서 사건마다 약간씩 고쳐서 보고서를 써내서 일이 대폭 줄었지만 그래도 한 번 모방범죄가 터질 때마다 수사본부가 발칵 뒤집어지는 것은 여전했다.
성신아 경위는 또 사진들을 골라서 메일로 송부하면서 한 편으로는 뉴스를 검색하고, 인터넷을 서핑하고 있었다.
근무시간을 때워 퇴근시간을 앞당기기 위한 인터넷 서핑이 아니라 사이다패스에 대한 여론의 동향을 알기 위한, 어디까지나 업무상의 정보수집활동이었다.
그런데… 그런 성신아 경위에게 김석영씨 사건이 눈에 띄었다.
* * *
“이거에요! 이거! 선배님! 이거라니까요.”
성신아는 최형림에게 김석영 오심 사건을 들고 왔다.
“사이다패스는 법조인에게 강력한 증오를 표시했어요. 정확히는 이 나라 사법체계 그 자체를 증오한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이만한 일이라면 미끼를 안 물 수가 없어요. 사이다패스라는 놈의 성격을 감안해보면 이번에 반드시 움직입니다!”
성신아는 확신을 가지고 주장했다.
“저도 그거엔 공감합니다.”
최형림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런데 선배, 시계 바뀌었네요?”
“네 좀, 종류별로 바꿔서….”
최형림은 자신의 시계를 알아보는 성신아를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미카엘은 최형림이 이전, 시현을 고용하기 위해 전당포에 맡겼던 롤렉스 데이저스트를 되찾아 주면서 그 외에도 드레스 워치, 스포츠 워치를 하나씩 더 사다 주었다.
종류별 상황별로 구색을 갖추어 낄 수 있게 갖춰준 것이다.
그러나 그 사정을 모르는 성신아는 최형림이 재벌가 아들이라 돈이 많아서 명품 시계들을 원하는 대로 바꿔 달고 다닐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라고 명품시계를 차고 있는 거기도 하고….’
최형림은 성신아의 호들갑을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처한 감정을 느꼈다.
“그럼 지금 당장 함정을 파지요.”
“문제는 김석영씨를 담당했던 판사였던 박원일 서울 형사3부장님은 저희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 왜요?”
“왜냐니요. 음… 검사인 제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판사들은 검사들도 아래로 깔아보는 엘리트 의식이 투철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검사나 경찰이 함정수사를 할 테니 미끼가 되어달라면 말을 들어줄까요? 하물며 일반 판사도 아니라 고법 부장판사인데?”
대한민국은 3권 분립을 헌법에서 정의한 국가이며 그 3권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로 나뉜다.
이중 사법부를 상징하는 게 바로 법원이며 판사들은 그 법원의 정점에 선 슈퍼 엘리트들로 전원 고급 관료들이다.
그런 고급 관료가 고작해야 경찰대학 갓 졸업한 성신아 경위나 재벌가 자제라 해도 평검사인 최형림의 말을 들어서 자신을 미끼 수사의 재료로 제공할 리 없다.
특히 판사는 검사들이 자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걸 매우 싫어한다.
고작 행정부의 밑에 있는 놈들이 자기들끼리 대검찰청이니 뭐니 하면서 은근히 법원이랑 급 맞추려고 노력하는 걸 내심 우습게보고 있었다.
즉 둘 사이에는 어쨌건 경쟁의식이 있다.
그런데 그런 판사가 검사의 수사지휘를 따르겠냐 그거다.
무엇보다도 함정수사는 자신이 위험해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법적으로도 위법의 소지가 다분하다.
영화나 소설, 만화 등에서는 쉽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관료들의 알력, 조직 간의 위계, 공무원 사회의 악습 등이 현실의 장벽이 되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성신아도 평소라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성신아는 어떻게든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류하리에게 나는 서울중앙지방경찰청에서 근무하고 잘나간다고 선언했는데 사이다패스 사건에 물려버렸으니 얼마나 애간장이 타겠는가?
“그래도 설득 한 번 해보죠. 정말 사이다패스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이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잖아요?”
성신아는 여전히 미련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사이다패스에 대해서 분석한 사람들은 누가 보더라도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법원, 검찰, 경찰, 이 세 조직이 얼마나 관료적이고 경직되어있는지 안다면 그 경직성을 초월해서 움직이라는 게 탁상공론이라는 걸 안다.
‘당신이 경찰이 아니라 청와대 민정수석 같은 사람이면 모르겠지….’
대통령 직속의 민정수석 정도가 움직이지 않으면 법원, 검찰, 경찰을 통합해서 움직인다는 건 불가능하다.
“으음….”
최형림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잠시 후 생각을 바꾸었다.
“알겠습니다. 같이 가시지요.”
* * *
사이다패스 수사본부는 서울 서부지검이 전담하고 있다가 역량의 부족을 느끼고 법무부 쪽으로 이관되었다.
법무부 검찰국.
이곳은 검사들에게 있어서는 승진 확정코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자리다.
그 법무부 검찰국의 형사기획과장이 직접 사이다패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법무부 형사기획과장 천용덕 검사는 최형림이 올린 제안서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진심인가? 최 검사?”
형사기획과장 천용덕 검사는 제안을 보자마자 실망, 아니 거의 환멸의 표정을 지어보였다.
“고법 부장판사가 이런 수사에 응할 리가 없지. 말을 거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워 할 걸세.”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