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5화
참칭의 대가 #5
그래서 그가 집안에 들어가면 매일 매일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이다패스의 위협을 받게 되어 경호팀이 붙고나서도 변함이 없었다.
* * *
-쨍그랑!
고급진 수입산 도자기가 최신 OLED TV에 충돌해 박살났다.
대리석이 깔린 아파트 바닥위로 온갖 고급진 물건들이 나뒹굴고 창문에도 프랑스 산 크리스털 잔이 날아와 충돌한다.
“이 개자식아! 또 뭐야! 응?! 어떤 년이냐고!”
“아니 부인! 지금 다른 사람들도 와 있는데!”
“세상 시선 신경 쓰면 좀 작작 굴어야지! 아니 자기 딸 뻘인 것들이랑 놀아나고 싶어!?”
“아니라구요!”
박원일 판사는 자택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법원 보안관리대원들이 이 소란을 들을 것을 생각하면서 진땀을 흘렸다.
서울 고법 부장판사 쯤 되면 법원에서도 아주 높으신 분, 사회 지층이라는 말에 손색이 없는 위치다.
그런데 마누라랑 이런 쌈박질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이다니.
진짜 치부를 드러내도 이것처럼 부끄럽진 않으리라.
“성취가 요절해서 아쉽지?! 딸 뻘 계집들 갖다 바치던 딴따라가 뒈져서?! 아이고 세상 사람들! 이게 대한민국 고등판사입니다!”
“그만해요! 부인! 당신 남편 모욕하면 당신 얼굴에 누워서 침 뱉기니까!”
“개 후레 잡놈아! 아니라고는 못하는 구나!? 썅. 이게 오해이길 바랬는데! 왜 그딴 변명도 못하냐?!”
“변명하면 변명하는 대로 화낼 거잖소. 부인!”
이미 탐정 사무소를 고용해 알아냈을 테니 변명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이라고, 아니라고 듣고 싶은 게 그녀의 심정인 듯 했다.
법원 보안관리대에서 뽑힌 경호 팀원들은 이 참사(?)에 말문이 막히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 아내가 던진 투척물(?)에 맞고 멍이 시퍼렇게 든 박원일 판사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말을 거는 것 자체가 민망할 지경이다.
“출근합세.”
“네. 판사님.”
법원보안관리대원들이 박원일 판사를 호위하며 엘리베이터를 불렀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열린 순간 박원일 판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엘리베이터 안의 창문에 박원일에 대한 고발장이 커다란 전지 한 장에 시뻘건 글씨로 휘갈겨 써서 붙어있었던 것이다.
“헉?”
“잠시 피하십시오.”
보안대원들은 가스총과 삼단봉을 꺼내들고 대기했다.
엘리베이터에 폭발물이 설치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들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일단 집안으로 도로 들어가시고 경찰을 부르도록 하지요.”
보안대원들은 부부싸움으로 어색한 분위기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박원일 판사는 그 전까지 사이다패스의 위협 따위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일이 닥치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보안이 잘 되어있으며 택배나 배달부들이 오가긴 하지만 그들 역시 CCTV에 의해서 철저히 감시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대자보를 붙이다니?
* * *
경찰의 대테러대책반과 폭발물 감지반이 달려와 엘리베이터를 점검하고 폭발물이 없다는 걸 확인 했다.
놀란 그들이 CCTV를 뒤져보았지만 CCTV는 어느 순간 망가져있었다.
갑자기 화면이 어두워지더니만 그대로 화면이 나가버린 것이었다.
“아, 아니 이게 대체?”
“일단 CCTV업체와 관련자 전원 조사해야겠군요.”
“아이고.”
경찰들이 절로 곡소리를 냈다.
폐쇄된 아파트에 갑자기 침입한 놈이 CCTV에 찍히지 않았다면 보안회사와 경비업체 관련자를 조사하는 게 상식이긴 하다.
그러나 사이다패스 사건에서 지금까지 CCTV가 도움이 된 적이 없다.
조사해봤자 잡힐 건 없는데 조사해야 할 인물은 많다.
그만큼 인력, 행정력이 낭비된다.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는 노릇.
경찰들은 보람 없이 낭비될 시간과 인력에 미리 한탄한 것이었다.
* * *
합동수사본부는 박원일 판사의 경호 인력을 대폭 늘리고 그 외에도 이 사건에 관련된 이들에 대한 경호를 늘렸다.
당시의 판사인 박원일 서울 고법 판사.
당시 담당 검사였지만 지금은 법복을 벗고 로펌에 들어간 김제철 변호사.
그리고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들까지 전부 다 24시간 밀착 경호에 들어갔다.
실제로 경호임무를 맡게 된 경찰들은 죽을 맛이었다.
24시간 밀착 경호를 하려면 한 명당 못해도 4명을 배정해야 로테이션 해가며 밀착 경호가 가능한데 이 4명 또한 1주일 이상 긴장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런데 경호할 대상이 엄청나게 많으니 가뜩이나 인력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는 경찰 입장에서는 업무가 과중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 * *
시현 탐정사무소에서 시현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다다닥!
타자기가 경쾌하게 울린다.
[왠지 류하리 양이 오지 않는 군요.]
“…그런 사적인 흥미를 보이다니 놀랍군.”
[궁금해서 그러는 겁니다.]
“악마인 당신도 궁금한 게 있나?”
[알려고 하면 모든 걸 다 알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저는 그 순간에 인간성을 상실합니다. 전지전능한 인간성을 가진 존재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성이 우리들에게 매력적인 겁니다.]
“뭐 지금은 경찰이 한창 바쁠 때니까. 나를 감시하는 업무는 우선순위가 낮으니 잠시 미루어 두었겠지.”
시현은 경찰들이 현재 사이다패스에 대항해 경호임무를 늘려서 힘들어 하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전화가 울리자 그는 잽싸게 충전 중이던 전화를 집어 들었다.
“아. 손님이군.”
[류하리 양이길 기대한 거 아닙니까?]
“관심 끊어.”
시현은 타자기의 악마에게 그리 말하고 전화를 받았다.
“예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시현 탐정사무소입니다.”
[저기. 시현씨 맞으시죠? 저에요. 전에 그 조사 부탁했던.]
“네 사모님. 무슨 일이신지요?”
[뉴스 봐서 알고 계시겠죠? 제 남편이 글쎄 그 미치광이 살인마에게 노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남편을 감시하면서 지켜주시면 안될까요?]
전화기 너머의 상대는 바로 박원일 서울 고법 판사의 아내 김이향이었다.
그런데 아마 이번에 사이다패스의 표적이 되면서 김이향은 혹시 남편이 죽을까봐 불안해진 모양이었다.
‘그렇게 철딱서니 없이 불륜을 하고 돌아다니는 남편인데도 죽을까봐 걱정을 하나 보군. 하지만 상대는 사이다패스인데….’
시현은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경호 임무는 저희의 주 업무가 아닙니다. 하물며 그 판사님은 지금 경찰들에게 밀착경호를 받고 있을 텐데요? 게다가 경찰들 말고 법원 보안관리대에서도 차출해서 경호팀을 꾸리고 있지 않습니까?”
[네. 그건 그렇지만 불안해서요. 다들 별 소득 없이 계속 그 범인을 못 잡고 있잖아요?]
경찰들이 사이다패스에게 속수무책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탐정인 시현에게 부탁해도 문제다.
‘음 보통 탐정들에겐 이거 아주 좋은 일인데….’
경호 업무는 일이 없는 탐정들에게는 계속해서 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꿀 같은 일이다.
그러나 시현처럼 빠르게 여러 일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손해 보는 일이다.
‘내가 서&정 탐정사무소처럼 하청을 줄 수는 없는 일이고 거절해야겠군. 타자기도 보아하니 별말 없는 것 같고.’
수명을 건 계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보아하니 타자기의 악마는 사이다패스와는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만 경호는 제 전문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경찰들에게 미운털이 박혀있어서, 경찰들이 경호하는 대상을 제가 경호하게 되면 경찰들과 마찰이 예상됩니다.”
[그, 그런가요?]
“예. 그리고 경호 팀은 하나의 지휘체계하에 통일되어 있는 게 좋습니다. 독단적으로 다른 경호팀을 추가로 더 넣으면 서로서로 동선이 겹쳐져서 오히려 사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럼,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시현은 그렇게 의뢰를 거절했다.
그런데 시현이 전화를 끊자마자 류하리에게 전화가 오는 게 아닌가?
“네.”
[저기… TV보셨어요?]
“TV요?”
시현은 리모컨을 들어 TV를 켜보았다.
그러자 TV에서는 서두현 S전산 이사의 사망 특보가 나오고 있었다.
“서두현 이사….”
[사이다패스에요!]
“놀랍군요.”
시현도 그 말을 듣고 대번에 왜 서두현 이사가 살해당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설마 전직 법무부 장관을 살해하다니….”
* * *
전직 법무부 장관 서두현이 사이다패스에게 살해당했다.
그 사실은 경찰과 검찰은 물론 전국을 뒤집었다.
이제 더 이상 모방범죄를 염려해서 사이다패스를 언론에서 다루는 걸 통제한다는 게 불가능해졌다.
TV건 라디오건 어디서나 연일 사이다패스의 이름이 들려왔다.
당연히 검찰과 경찰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사이다패스가 김석영 오심사건에 반응하리라는 건 다들 예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판사인 박원일 서울 고법 형사3부장.
당시의 검사인 김제철 현 법무법인 신양 대표.
당시 수사를 진행한 김운천 경감.
직접 김석영을 체포했던 최병렬 경장, 김상철 경장 등등….
이런 사람들만 경호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이다패스는 모두의 예상을 뒤덮고 당시의 법무부 장관을 죽여 버린 것이다.
* * *
“젠장! 저 새끼들 다 내쫓아!”
법무부 검찰국의 형사과장인 천용덕 검사는 엘리트들인 검사집단에서도 슈퍼 엘리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오게 한 것은 사건 현장 앞에 몰려와 있는 언론들이었다.
그들은 안의 영상을 찍기 위해 근처에서 드론을 띄워서 살해현장인 아파트 전경을 촬영하고 있었다.
“드론을 날린 놈들은 기소시키겠습니다. 하지만 언론인을 기소하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가뜩이나 나빠진 여론이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만.”
서부지검에서 파견 나온 최형림 검사가 그렇게 말했다.
당돌한 놈이다.
까마득한 선배인 천용덕에게 자기 의견을 피력하다니.
“그래서 드론을 날려둔 놈들은 기록해뒀다가 나중에 잠잠해질 때 손봐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거 좋군. 그렇게 하게.”
화내려고 하면 얄밉지 않게 대안을 제시하고 빠지는 재주도 있다.
천용덕은 화를 내려다가 입을 다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피바다였다.
서두현 전 법무부장관은 이 넓은 거실에서 도망쳐서 부엌 쪽으로 도망치다가 단 일격에 머리가 깨져 즉사하고 말았다.
어찌나 끔찍한 광경인지 산전수전 다 겪은 검시관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였다.
“아니 어떻게 여기서 사람을 죽일 수가 있지?”
천용덕 검사도 살해현장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살해현장은 한남동에 위치한 최고급 빌라 겸 아파트로… 한때 성취가 살기도 했던 곳이다.
강변북로를 끼고 한강을 내려다보는 높은 언덕위에 있는 아파트, 언덕이라지만 거의 절벽이라 보통 사람은 절대로 오를 수 없고 보안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서 무슨 북한 무장공비래도 침투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곳곳에 깔려있는 CCTV는 몇 대인가?
이래서야 이건 밀실살인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말이 되는가? 이 과학수사의 시대에 밀실살인이라니?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