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27화 (127/269)

제127화

참칭의 대가 #7

“으아아아아!”

성신아는 들어오자마자 비명을 지르더니 방금 전까지 류하리가 드러누웠던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아. 좀 따뜻하네.”

류하리가 앉아있던 자리에 그대로 앉으니 그녀의 온기가 남아있었나 보다.

시현은 둘러댔다.

“방금 전까지 제가 앉아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십니까? 성신아 경위님?”

“아니 다른 건 아니고 근처에 일이 있어서 들렀다가 겸사겸사 왔어요. 당신, 제가 알려준 대로 류하리가 경찰이라는 건 확인해봤나요?”

“확인할 게 뭐 있습니까? 경찰 맞지요.”

“어쨌나요? 그 후?”

“물론 가만히 있었습니다.”

“네? 왜요?”

“왜냐면 어차피 류 경위를 적발해서 제가 어찌 한다고 해봤자 경찰이 제게 미운털 박은 건 이제 와서 변하지 않을 텐데 기왕이면 익숙한 사람 그대로 두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상대가 경찰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 조심하면 되니까 말이지요.”

“오호? 혹시 류하리가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 건가요? 외모가 반반하니까?”

“하하하. 그럴 수도 있겠군요. 험악한 강력계 형사가 매일같이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시현이 능청을 떨었다.

“하지만 오르지도 못할 나무 쳐다보지 않는 게 좋을 걸요? 류하리네 집은 부자인데다가 좀 음습한 구석이 있는 곳인데 탐정같이 이상한 일 하는 사람을 사위로 맞아들일 것 같지 않군요. 서&정 탐정사무소처럼 뭐 TV에라도 나오지 않는 한 말이죠.”

“아 그 집안은 사윗감에게 원하는 게 가문이나 배경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능력을 더 중요시하지요.”

“음? 아니 벌써 거기까지 알아봤어요? 잘 아는 것처럼 말하네요? 정말 사귀는 거예요?”

“하하하하. 아닙니다.”

“으 그보다 드러누워도 되나요? 되지요? 너무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아요.”

성신아는 시현에게 물어보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날름 소파에 드러누웠다.

류하리와 똑같이 드러누운 그녀는 옆에 손을 뻗어서 테이블 위에 놓인 사탕 바구니를 잡고 사탕을 하나 까서 입에 넣었다.

“으아… 죽겠다.”

“일이 많아서 피곤하신 모양이로군요.”

“네. 사이다패스 때문에 죽겠어요. 젠장. 경찰 검찰 할 거 없이 이번 사건 때문에 전국적으로 비상이 걸려서….”

“전국적으로요?”

“네. 김석영 사건에 관계가 있을 수 있는 사람 하나하나 전부 다 찾아내서 보고하라고 위에서 지시사항이 내려왔어요. 그리고 관련 부서들, 김석영 사건 관련자들이 있는 곳은 뭐 난리 났죠. 경비하느라 다들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있어요.”

“흠.”

“아 TV좀 켜도 되나요?”

“네.”

“그럼.”

성신아는 TV를 켜고 사탕 바구니를 부스럭 거렸다.

아주 자기 집 안방 같은 편안한 모습이다.

TV에서는 역시나, 서두현 전 법무부장관 살인 사건에 대한 뉴스로 가득 차 있었다.

최형림이 검찰 대변인으로 나와서 기자회견을 가지는 장면이 또다시 재방송으로 방영되고 있었다.

“아 선배님 역시 근사하다니까.”

“…….”

“그런데 당신 생각은 어때요? 혹시 뭐 짚이는 거 있어요?”

“네?”

“탐정일이 뭐 추리소설의 그런 탐정은 아니더라도 눈치나 감은 있을 거 아니에요? 뭐라도 좋으니까….”

“아 죄송하지만 저는 고객님이 아니면 좀… 알다시피 탐정일은 발로 뛰고 몸으로 벌어먹는 서비스직이라 서비스를 공짜로 해주면 안 되거든요. 그동안 제 서비스를 정당한 가격으로 이용한 고객님들을 생각해서도 헐값에 저 자신을 팔면 안 되지요.”

“흠. 하긴 탐정 일이라는 게 돈 받고 하는 일이니까. 굳이 경찰들을 위해서 심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긴 하겠군요. 하지만 간단한 브레인스토밍도 안돼요?”

성신아는 드러누우니 졸음이 쏟아지는지 하품을 하더니 눈을 감았다.

남의 사무실, 그것도 경찰이 불법사찰까지 진행하는 탐정의 사무실에 들어와서 이렇게 자기 집처럼 편하게 누워있다니 어떤 의미에서는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

정말 잔다.

* * *

-끼익….

잠시 후 류하리가 조심스럽게 소장실을 열고 나왔다.

“맙소사….”

“나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아니 어이가 없어서 그래요.”

류하리와 시현이 말하자 잠깐 잠들었던 성신아가 퍼뜩 깼다.

“어? 뭐, 뭐야? 류하리?!”

“성신아. 너는 왜 여기 와 있어? 사이다패스 전담으로 한창 바쁠 때 아냐?”

“보아하니 경찰인 거 별로 숨길 생각도 없구나. 저 사람 앞에서 다 말하네?”

“너 때문에 그렇잖아!? 무슨 생각으로 내가 경찰이라는 건 또 밝힌 건데? 내가 하는 일에 훼방을 놓기 위해 그런 짓까지 해야겠어?”

류하리와 성신아가 서로서로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걸 본 시현이 의자를 내밀었다.

“일단 다들 앉아서 좀 쉬시지요. 둘 다 많이 피곤한 것 같은데.”

“아니. 당신….”

“결국 두 분 다 숨 돌릴 여유가 필요해서 오신 거 아닙니까? 좀 쉬세요. 정말 죽을 것 같아 보이니까.”

그런데 시현이 말하기 무섭게 TV에서 속보가 나오기 시작했다.

‘경남 양산시. 졸음운전, 경찰차 추락. 경찰 2명 중태.’

사이다패스 사건이 수사조직을 조이기 시작한 결과가 최악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 맙소사.”

“젠장.”

류하리와 성신아, 두 경찰이 동시에 신음했다.

* * *

피로에 지쳐 졸음운전 중 가이드레일을 받고 길 아래로 추락해 중태에 빠진 경찰들은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이에 경찰청은 발칵 뒤집어졌다.

사이다패스는 구경도 못했는데 그의 자취만 뒤쫓다가 순직자를 내고 만 것이다.

일이 이리되자 언론들은 즉시 태도를 바꿨다.

그 전까지는 사이다패스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경찰을 비난하는데 바빴던 언론들이 이제는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으로 경찰들을 학대하는 경찰 상층부를 비난했다.

경찰들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아무런 경호 없이 사이다패스에게 살해당하게 방치하면 방치했다고 비난할 테고 그렇다고 경호팀을 계속 운영하자니 경찰들의 업무부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게 된다.

경찰청에서는 부랴부랴 인력을 재편성해서 경호팀이 도는 곳에 인력을 중점적으로 보강하고 사람들의 제보는 무시하거나 우선순위를 낮추기 시작했다.

* * *

“마음이 좀 아프군요.”

최형림은 쓴 웃음을 지었다.

현장을 뛰는 경찰들의 노고를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업무부하를 늘리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 일을 벌였을 때 좀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설마 과로로 인한 사고사가 발생할 줄이야.

“그래서? 그만둘 건가?”

사이다패스가 물어보았다.

“그럴 수는 없지요. 이미 제 손은 더럽혀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작한 이상 끝장을 봐야지요.”

“그래 좋아. 그래야지. 나도 당신이 없으면 힘들어.”

전 법무부장관이 어디에 살며 누구와 사는지, 김석영 사건과 어떻게 연관 지어져 있는지 사이다패스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인터넷 검색만 하면 모든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고위층들은 자신들의 정보를 소중히 감추고 있으니 검사인 최형림의 협조가 그녀에게는 절실했던 것이다.

“그럼 다음 표적은….”

* * *

올림픽대로와 경인고속도로가 맞닥뜨리는 지점, 그곳에는 한강을 바라보며 최고급 주거용 빌라, 아파트먼트가 즐비한 곳이다.

그곳의 테라스에 시체가 걸려있어 아침 출근 중인 차량들 모두의 눈에 선명하게 보이게 되었다.

시체의 신원은 모 유명 일간지 사주의 아들이며 성취의 성상납&매춘 리스트에 있던 반주혁 ILD홀딩스 사장.

아침 출근의 러시아워 때 시체가 걸려있었으니 적어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시체가 매달려있는 걸 보게 되었다.

* * *

이미 검찰청장과 법무부 장관, 청와대에서 질책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천용덕 검사는 기절할 지경이었다.

사람들 보는 앞에서 시체가 걸려있다니.

그것도 하필이면 언론 재벌인 반 씨 일가의 아들이 아닌가?

언론이나 인터넷 여론도 완전히 난리가 났다.

“이번엔 또 뭐야?! 왜 이번엔 이 사람을 죽인거야?”

“성취 리스트에 있는 사람입니다.”

최형림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이번엔 갑자기 성취 리스트로 옮겨갔다고? 살인을 뭐 주사위 굴려서 하나? 젠장!”

“그런데 이게 또… 김석영 사건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아니 뭔 소리야?”

“그러니까 이 반주혁 사장은… ILD홀딩스 전에는 XX일보 케이블 방송의 수석편집자였습니다.”

“뭐?”

반주혁은 언론재벌인 반 씨 가문의 자식들이 다 그러하듯 개망나니였다.

검은머리 외국인이 되어서 국방의 의무를 피하고 외국인 특례입학으로 편하게 한국의 명문대에 입학해 실력에 걸맞지 않는 학벌도 챙겼다.

학점도 온갖 특례와 편법으로 가득가득 채워서 쉽게 졸업하고 자신의 가문에서 운영하는 언론사에 들어가 땅 짚고 헤엄치면서 엄청난 보수를 받고 있다가 바로 얼마 전 최근에 ILD홀딩스의 사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이게 왜 김석영 사건과 관련되어 있나?”

“김석영 사건 당시 연쇄 강간사건의 해결을 촉구하며 비난의 칼럼을 썼지요. 그리고 김석영의 남은 가족들을 강제로 인터뷰하겠다고 쳐들어가서 그들이 이사 가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역시 성취 리스트에 기재되어있는 인물이지요.”

“맙소사. 정말 광범위하게 죽여 대는 군. 원한을 살 만은 하지만 이런 식이면 대체 얼마나 많이 죽일 셈인가? 미친….”

검사 생활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천용덕 검사조차 사이다패스의 광기에는 혀를 내둘렀다.

어느 날은 전직 법무부 장관을 죽이다가 이제는 그 사건에 관여한 언론인을 죽였다.

그런데 그들이 또 성취 리스트로 묶여있다니?

“이번에도 선언문이 있습니다.”

“줘보게!”

최형림은 이번에도 천용덕에게 선언문을 넘겨주었다.

* * *

사법에 종사하는 자들은 정의를 찬탈해 시민들을 조롱한다.

언론에 종사하는 이들은 진실을 찬탈해 시민들을 우롱한다.

작금의 현대 사회는 복잡하여 만인은 제각각의 전문가이면서 또한 제각각의 문외한이다.

법을 아는 자는 기계를 알지 못하고.

기계를 아는 자는 장사를 알지 못하고.

이러한 전문화의 시대, 인간이 지성을 갖추더라도 알지 못하는 것들을 쉽게 풀어주어 사람의 판단을 도와야 하는 것이 언론 본연의 자세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 언론인들은 인간들이무지, 시민들과의 정보격차를 이용해 자신들이 배를 불리고 타인을 우롱하고 진실을 호도했다.

그 오만과 교만이 지나쳐 스스로 사회지도층이라고 믿으며 실제로 정치가와 야합하여 정치에 진출하기도 하니 정치와 경제에 자정작용은 없으며 시민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고 진실을 우롱하니 이들의 죄는 백 만 번 죽고 고쳐 죽어도 가볍다 하리라.

하물며 이자는 무고한 이의 가족을 들이쳐 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남들에게는 준엄한 필설을 휘두르면서 정작 그 자신은 성취의 접대를 받아 호기심에 클럽에 방문한 미성년자들에게 술과 데이트 강간 약물을 먹이고 강간하였으니….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준엄한 필설은 가장 오만한 악업이다.

정의를 참칭하고 진실을 참칭한 이러한 이들에게 현생 한 번의 죽음 밖에 주지 못하니 심히 애석하다.

하여 그 시신을 만인이 보는 앞에 놔두니 정의와 진실의 참칭자들에게 일벌백계하여 그 오만함을 질타하고자 한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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