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29화 (129/269)

제129화

참칭의 대가 #9

“어, 어떻게 그걸 알고 있어요?”

“뭐? 그게 진짜야?”

류하리도 그 말에 기겁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경찰이 범죄 피해가 예상되는 사람을 보호하지 않고 그냥 방치하다니! 그러면 그 사람이 범죄 피해를 입을 것 아냐! 그렇게 될 경우….”

“세간에선 경찰을 비난하겠지요. 그런데 스스로 말하면서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시현이 빈정거리자 류하리가 민망해했다.

“그러게요. 많이 들어본 이야기인데?”

류하리도 말해놓고 보니 이건 경찰의 치부가 아닌가?

* * *

대한민국의 경찰이 범죄피해가 예상되는 사람을 제대로 지켜준 적이 있었던가?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언론에는 사전에 미리 예방되어 일어나지 않은 범죄보다는 막지 못해서 벌어진 범죄가 더 많이 실리기 때문이다.

예방된 일보다 벌어진 일에 초점이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대한민국 경찰이 가진 권한과 인력구성, 사회구조가 지닌 근본적인 문제도 있었다.

대한민국 경찰들에게는 범죄를 저지르기 전의 사람을 구속할 권한이 없다.

전 남친이 관계의 복구를 요구하며 집 근처를 배회해도….

정신이상자가 가족들을 위협하며 집 앞을 서성거려도….

실제로 범죄로 이어지지 않으면 경찰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저 사람이 날 해칠 것 같아요!’라고 경찰에 신고해도 경찰이 본격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실제로 피해가 발생하고 난 뒤라는 이야기다.

설령 운 좋게 이야기가 통해서 순찰중인 경찰이 주기적으로 관리해준다고 해도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넓고 인구밀도가 낮은 곳에서나 의미가 있다.

땅덩어리가 넓으면 가해자가 피해자를 찾아서 이동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순찰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다른 곳에 가는 중이라고 변명할 수도 없고 길도 한가지 길 뿐이라 쉽게 길목에서 만나게 된다.

그러나 한국처럼 인구밀도가 높고 건물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곳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당도할 수 있는 루트가 무한에 가깝게 많이 분화한다.

설령 도중에 경찰이 잡게 되더라도 다른 곳에 가는 중이었다고 거짓말 하면 된다.

경찰로서는 가해자의 진의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경호를 해주자니 경찰 인력이 부족하다.

지금 사이다패스의 연쇄살인에 끌려 다니며 경찰들이 골머리를 썩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 * *

“우선 박원일 서울 고법판사를 호위대상에서 일부러 배제하는 것은 꽤 괜찮은 선택입니다.”

“괜찮다고요?”

류하리는 의외의 발언에 깜짝 놀랐다.

“네. 현재 사이다패스는 김석영 사건에 관련된 자들을 비난하며 살인사건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다는 것이지요.”

김석영 사건의 핵심은 오심이다. 수사를 진행한 경찰과 검찰, 그리고 재판을 내려야 할 법원 모두가 졸속으로 사건을 처리해버린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연쇄 강간사건으로 여론이 나빠지자 졸속으로 빠르게 처리하느라 제대로 증언의 진위를 확인하지도 않고 사람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다.

“이런 오심사건인데 판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죽여 대는 건…. 사이다패스도 함정수사를 경계하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함정수사를 경계한다?”

“네. 자기가 생각해봐도 이번 사건에서 박원일 서울 고법 판사를 이용해서 함정수사를 펼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걸 겁니다. 그래서 수사 측을 지치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광범위하게 사람을 죽여서 경찰과 검찰을 지치게 만드는 거지요. 이건 장기전이 될 겁니다.”

“그, 그거 놀랍군요.”

성신아는 시현의 말을 듣고 당황했다.

시현이 말하는 게 합동수사본부의 회의에서 나온 말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이 사람은 뭐지? 탐정이라는 거 흥신소 아니었어? 불륜 조사나 하는?’

성신아 경위는 시현이 예사인물이 아니라는 걸 눈치 채며 사탕을 하나 또 뜯어서 입에 넣었다.

“사이다패스가 함정수사를 경계하고 있다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박원일 판사를 호위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아마도… 사이다패스는 경찰과 검찰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수단이 있을 겁니다.”

“네?”

류하리는 시현의 눈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안다.

뭔가 먼 거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디로 오가는지 아는 능력.

그런 게 사이다패스에게도 있다면 확실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성신아가 있는데 뭐라고 납득시킬 거지? 사이다패스가 계약자라는 걸 설명할 건가?’

류하리가 그런 의문을 품었을 때 성신아가 물어보았다.

“그럼 당신의 말은… 경찰과 검찰 중에 사이다패스의 협력자가 있다고요?”

“어쩌면 사이다패스 본인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놀랍군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가 있는 거죠?”

“제가 그렇게 생각한 건 성신아 경위님이 놀랄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지요. 보통 합동수사본부 회의에서 나와서 남을 놀래게 할 만한 일이라면 그런 것 밖에 없거든요.”

“단지 그것 만으로요?”

성신아는 놀랐지만 류하리는 익숙했다.

“당신이 평소에 잘하던 콜드 리딩이군요.”

시현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넘겨짚는 걸 잘했다.

‘콜드 리딩인 척 하면서 핫 리딩을 하는 것도 잘했지.’

물론 시현은 미리 조사해놓고 마치 현장에서 추리하는 것처럼 해서 상대를 자기 페이스에 끌어들이는 것도 잘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콜드 리딩이 맞을 것이다.

이런 상황의 경우 서부지검이나 법무부에 도청장치 같은 걸 박아 넣지 않고서는 핫 리딩을 할 방법이 없을 테니까.

‘아무리 미친 사람이래도 설마 서부지검이나 법무부에 도청장치를 심지는 않겠지?’

류하리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시현이라면 정말 그런 짓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럼 판사를 경호에서 뺀다는 건….”

“어이쿠. 이 이상은 곤란합니다. 뭐 지금 말한 건 성신아 경위님이 수사본부의 정보를 말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해두지요.”

“아 되게 비싸게 구는 군요.”

류하리가 그렇게 말할 때였다.

-타다다다닥….

타자기가 울기 시작했다.

“응?”

성신아가 깜짝 놀랐다.

“뭐에요 이 소리는?”

“…팩스입니다.”

시현이 그렇게 대답했다.

“요즘 세상에 팩스를 써요? 그리고 무슨 팩스 소리가 이래요?”

“좀 장난감 같은 물건이라.”

시현은 그리 말하고 타자기에 다가갔다.

“으음. 전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두 분도 슬슬 나가시지요?”

“아 네.”

성신아는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 위의 사탕바구니에 다시 손을 쓱 집어넣어 사탕을 꺼냈다.

“………”

* * *

“내쫓는 것 같아서 죄송하군요. 하지만 탐정일이란 워낙 바쁜 거라서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시현은 성신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무실의 문을 닫았다.

“아뇨. 저도 경찰인데 뭐 남의 사업장에 무작정 쳐들어오는 건 안 좋겠지요. 하아. 그럼 또 4시간 정도 쉬었다가 다시 경찰청에 가야 하나.”

성신아는 그리 말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잘 가.”

“그래.”

성신아는 류하리의 작별인사에 고개를 끄덕이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과로군요.”

시현은 넋을 잃고 걸어가는 성신아의 뒷모습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사이다패스가 수사진들에게 노동을 강요하고 있는 거지요. 어서 잡거나 잠재우지 않으면….”

“잠재우지 않으면 이라… 체포하지 않고 죽이는 경우도 생각하고 계시나 보군요.”

시현이 그 점을 꼬집었다.

“그,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는 계약자지요? 체포해도 죄를 입증시키기 힘든?”

류하리는 성취 사건에서 직접 사이다패스를 봤었다.

거의 절벽에 가까운, 진입로를 통해서 고급 빌라 지역에 쉽게 침입해오던 사이다패스의 모습을 볼 때 일반적인 수사력으로는 사이다패스를 체포하는 것도, 그 범죄혐의를 입증하는 것도 불가능해보였다.

“네.”

“그리고 당신도 이제 곧 타자기가 알선해준 계약자를 찾으러 나갈 거고요? 이 계약자에는 무슨 차이가 있나요?”

“저나 사이다패스처럼 미지의 존재, 편하게 악마라고 부르는 놈과 직접 계약한 자는 1차 계약자, 그리고 제가 계약해서 수명을 받고 일을 처리해주는 자는 2차 계약자입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고 한 바퀴 돌더니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엥?”

류하리가 시현을 뒤따랐다.

“아무래도 계약자가 찾아올 텐데 경찰이 있으면 곤란하니까요.”

“그, 그렇군요.”

류하리는 난감해했다.

‘나도 경찰인데.’

그러나 이제 와서 경찰이라고 하기에는 저지른 일이 너무 많았다.

* * *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시현 탐정 사무소의 유리창 밖에 빗물이 흐른다.

시현은 한숨을 내쉬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계약자가 오길 기다리면서 그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고아면 좋다라….”

류하리는 잠들어있었다.

사이다패스의 전략은 일종의 연환전술이다.

상대에게 피로를 누적시키기 위한 전법에 경찰들은 낚일 수밖에 없었다.

단 한명의 범죄자에 의해서 경찰조직 전체에 피로가 가중되고 있었고 류하리 역시 과로에 시달리고 있으니 계약자가 오길 기다리는 그 잠깐 사이에 잠들어버린 것이다.

-타다다닥.

타자기가 울렸다.

[기분이 어떻습니까? 당신이 분명히 고아였지요?]

“좀 조용히 할 수 없나? 깨겠어?”

시현은 그리 말하고 타자기에 다가가 종이를 읽어보았다.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텐데 굳이 내게 말을 걸어오나?”

시현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에 흠뻑 젖은 중년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저 여기가 시현 탐정 사무소….”

그렇게 말하던 남자는 시현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맙소사. 당신입니까?”

“저를 아십니까?”

“당신 그거 아닙니까. 젊은 애들에게 돈을 미끼로 노숙자들 신원 불게 하는 사람.”

“아.”

시현은 상대가 왜 자신을 알아보는지 이해했다.

이 사람은 아마도 노숙자나 오갈 데 없는 사람을 보살피는 봉사단체에 속하는 사람일 것이다.

“봉사 단체 소속이시군요.”

“그렇소. ‘따뜻한 한 끼 공동체’에서 일하고 있는 김길환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지요? 설마 절 규탄하기 위해 이 먼 길을 오신 건 아닐 테고.”

“으음….”

* * *

시현은 주거지가 불안정한 채 숨어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찾기 위해 노숙자나 행려들을 돌보는 곳에 자신의 정보원을 깔아두었다.

정보원으로 사람을 포섭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정보를 대가로 현상금 지급.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들이 고작 푼돈 때문에 노숙자나 채무자의 신원을 파는 건 이상하게 여겨지겠지만 자원봉사자들 중에는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나 학점을 위해서, 진학을 위해서 온 미성년자들도 많다.

그런 이들은 너무나 쉽게 푼돈의 유혹에 넘어가 정보를 팔아넘긴다.

그리고 그렇게 정보가 팔린 후에도 딱히 죽임을 당하거나 원양어선에 팔려가는 것도 아니니까 건실한 사람들도 시현의 꾐에 넘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김길환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현을 믿지 못하는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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