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31화 (131/269)

제131화

데드맨VS사이다패스 #1

성신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이게.”

사이다패스가 활발히 활동을 재개하니 합동수사본부도 연일 회의가 이어지고 있다.

성신아는 거기서 회의를 준비하고 서류를 작성하고 높으신 분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정리하는 등 바쁘지만 보람 없는 일들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가끔씩 여기저기 경찰서에 불려가서 합동수사본부의 동향에 대해 보고하거나 하는 게 그녀의 일이었다.

‘전혀 보람차지 않잖아. 젠장. 이래서야 내 주가는….’

물론 성신아의 주가는 나쁘지 않다.

사이다패스에게 고생하는 건 전국의 모든 경찰들이 다 그러니까 그녀가 사표 안 쓰고 이 격무를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평가가 좋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 그녀가 생각했던 것과는 양상이 달라졌다.

사이다패스 합동수사본부에 들어왔을 때는 곧 그 사이코 살인마를 잡아서 빠르게 승진하고 승승장구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격무의 늪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실질적인 실무를 지휘하는 서부지검의 최형림 검사가 그녀와 함께 고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 선배님.”

“네? 무슨 일입니까 성 경위님?”

“혹시 사이다패스 관련자가 우리 수사 팀 내에 있는 게 아닐까요?”

“…네? 왜 그런 생각을 하시죠?”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에 박원일 판사에게 대자보를 붙였다가 갑자기 선회해서 다른 사람들을 죽여대는게…. 경찰들에게 부담을 주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고 생각되어서요.”

“수사팀 내부 분위기를 아는 사람의 소행 같다 이겁니까?”

“네. 하하. 아 황당한 생각이지요? 이건 제가 생각한 게 아니라 이상한 탐정이 한말인데….”

성신아는 급히 책임을 회피했다. 내부에 있는 동료들을 의심하는 이 발언은 미운털이 박힐 수 있기 때문에

“시현 씨 말이군요.”

“어? 아세요?”

“아 네. 약간.”

최형림은 그리 말하고 미소 지었다.

“통성명 정도는 해놓은 사이지요. 참 재미있는 사람 아닙니까?”

“그럼….”

“뭐 저도 그건 생각해봤습니다만 현재로서는 쓸데없는 의문일 뿐입니다. 굳이 수사팀의 내막을 알지 못하더라도 수사 인원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 아닙니까?”

“그,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미 다들 힘들어하고 있는데 여기서 괜히 감사를 더해서 행정력을 소모할 필요는 없지요.”

“네. 의심은 합리적이지만 그 의심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노력이 적지 않군요. 현재로서는 그것보다 사이다패스의 침입방법, 어째서 밀실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가? 어떻게 혐의를 입증할 것인가? 그것부터 신경 써야지 벌써 내부자 색출까지 생각하는 건 좀….”

“아 역시….”

성신아는 최형림의 의견에 감탄했다.

“역시 이상한 탐정이 좀 머리 좀 돌아가는 것 같아도 선배님에는 미치지 못하는 군요.”

최형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그도 우수한 탐정이지요. 그런데 그 탐정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단 말이지요? 역시….”

최형림은 작게 중얼거렸다.

“데드맨답군요.”

* * *

시현은 김길환 씨의 의뢰를 받았다.

의뢰를 받으면 고객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그의 모토.

하지만 그는 또한 환경주의자였다.

“고객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제 모토지만 또한 적은 에너지로 보다 많은 분께 만족을 드리는 것도 제 모토지요.”

류하리는 그 말을 듣고 혀를 찼다.

“택시가 불법 합승 영업을 하면서 변명하는 것 같군요?”

“카풀이라고 생각하면 친환경적이고 좋지 않습니까?”

시현은 그리 말하며 박원일 판사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 여보세요?]

“시현 탐정사무소의 시현입니다. 사모님.”

[탐정님? 무슨 일이시죠?]

“예 사모님. 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럼….]

“박 판사님의 신변을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박원일 판사의 아내는 기뻐했다.

시현은 만날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좋아. 이렇게 해서 경비도 해결할 수 있겠군요.”

수명은 김길환 씨에게 청구하고 경비는 박원일 판사의 아내 김지향 씨에게 청구하면서 동시에 일을 처리하겠다.

그 모습을 보며 류하리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 * *

박 판사의 부인은 마음이 급한지 지금 당장 만날 것을 요청했다.

하긴 언제 사이다패스에게 살해당할지 모르는 상황이니 몸이 달아오르는 것도 당연하다.

“사이다패스는 수명을 보는 제 능력을 초월해 있습니다. 그녀가 죽이려고 해도 사람의 수명이 변하지 않다가 죽을 때가 될 때 급격하게 변화하니… 그동안 눈에 의지하던 습관을 버리고 좀 더 전통적인 방법을 써야겠군요.”

시현은 차를 몰며 그렇게 말했다.

퇴근시간이 약간 지났는데도 날씨가 흐려서인지 길이 막히고 있었다.

“전통적인 방법이라니? 어떤 방법인가요?”

“발로 뛰는 거지요.”

“아…. 하지만 안 오면요? 사이다패스가 언제 올지 모르는 데 영원히 끌려 다니면 어쩔 거예요?”

“의뢰인이 계속 주간 경비는 줄 거니까 저야 상관없지요. 경찰인 류 경위님은 난처하겠습니다만.”

“…….”

그렇다. 경찰이 경호임무를 맡을 수 없는 건 월급은 박봉인데 추가로 근무해서 나오는 수당도 노력에 비해서는 워낙 부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류하리는 명색이 시현의 조수이긴 하지만 실제로 급료는 받는 게 없지 않은가?

‘아니 뭐 내가 급료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류하리는 왠지 얄미워져서 시현을 바라보았다.

“계획이 그게 전부인가요?”

“아뇨. 사실은 손을 좀 써둔 게 있는데… 과연 낚일지는 잘 모르겠군요.”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현재 단계로서는 말할 수가 없군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쓴 웃음을 지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적어도 한 몇 달 정도는 사이다패스가 박원일 판사를 못 죽이게 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라는 겁니다.”

“네?”

류하리는 단언하는 시현을 보며 당황했다.

대체 이 남자는 또 뭘 꾸미고 있는 건가?

* * *

박원일 판사는 패닉에 빠져있었다.

그의 생애에 남들과 폭력으로 직접 다툰 적은 전무하다.

학창시절부터 공부를 잘해서 일진이니 학교폭력에서 교사, 경찰, 학부형 등 그 모든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지켜주었다.

전교1등의 우수한 인적자원을 건드렸다가는 자신들도 남아나지 못한다는 걸 아는 불량학생들은 그의 근처에도 오지 않았으니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는 단 한 번도 폭력의 대상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를 노리고 최악의 연쇄살인자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상황에서 경찰들이 밀착 경호를 포기했다.

“겨, 경찰들이 내 경호를 포기한다고?! 그런 게 어디 있나?”

“그런데 그게… 지금 경찰들의 업무가 과중합니다. 그리고 그렇다고 경찰을 아예 다 빼진 않을 겁니다.”

박원일 판사의 집이 위치한 곳, 강남 경찰서의 경찰들이 와 있었다.

하지만 딱 봐도 그냥 일반 순경들이다.

박원일 판사는 그 모습을 보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지금까지 꼬리조차 안 잡힌 범죄자가 나를 노리고 있는데 이건 그냥 버리겠다는 거 아닌가?”

“아닙니다.”

“일단 진정하시지요. 판사님.”

강남경찰서에서 온 순경들은 자신들을 보고도 못 미더워 하는 판사에게 당황했다.

사이다패스를 못 잡고 있으니 그렇게 나오는 게 이해는 가지만 강남 경찰서라고 해서 인력이 넘쳐나는게 아니다.

그래도 순경 둘을 차출해서 보내준 것인데 이런 반응이라니, 자신들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울 고법 판사를 뭐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나저나 이거 현장 어수선한데.’

현장에는 강남 경찰서에서 온 순경들 말고도 법원 보안관리대의 대원들이 와서 경호를 맡고 있었다.

법원 보안관리대원들도 격무에 시달리는 건 마찬가지라 판사를 밀착 경호하는 일에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이러면 현장 지휘는 누가 하는 거지?’

‘따로따로 해야 하나? 큰일인데? 일이 잘 못될 것 같은 예감이….’

경찰들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저기… 여보.”

박원일 판사의 아내, 김지향 씨가 불안한 눈빛으로 남편에게 다가왔다.

박원일 판사의 잦은 유흥업소 출입으로 둘의 부부사이는 최악이었다.

남들이 보건 말건 물건을 던지고 깨트리고 부수던 김지향 씨였지만 남편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겪게 되자 놀랍게도 성질을 죽였다.

“아. 괘, 괜찮소. 부인.”

박원일 판사는 아내에게 잘못한 게 많고 또 아내 집안의 배경이 무시 못 할 것이기에 항상 아내에게 존댓말을 했다.

“허세 부리지 말아요. 겁이 나서 잠도 못자잖아요.”

“……”

둘은 각방을 쓰고 있지만 김지향 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박원일 판사는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면서 밀착 경호를 받고 있었지만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잠을 자지 못하고 음식도 먹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는 게 이대로 기한이 좀 지나면 알아서 쇠약사 할 판이다.

“제가 그, 탐정을 불렀으니 어떻게 될 거에요.”

“아니 타, 탐정 말이오? 부인?”

박원일 판사는 기겁했다.

“탐정 따위가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거요? 날고 기는 수사요원들도 죽을 쑤는 판인데?”

아내에게 지은 죄가 많고 아내의 가문의 눈치를 보느라 항상 말조심하는 박원일 판사였지만 그날은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유능한 사람이에요. 당신의 미행을 아주 잘해냈을 정도로….”

“아니 차라리 경호원을 고용하지….”

박원일 판사가 그렇게 말할 때 아파트의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량 한 대가 당도한 것이었다.

“네.”

[실례합니다. 시현 탐정사무소에서 나왔습니다. 김지향 씨 댁이지요?]

“아 네. 어서 오세요.”

그 말을 듣던 경찰들이 당황했다.

“어….”

“시현 탐정사무소?”

* * *

“안녕하십니까. 시현 탐정사무소 소장 시현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인턴직인 제 조수, 류하리 양입니다.”

시현은 들어오자마자 우선 인사를 했다.

류하리를 소개하자 류하리는 어색하게 목례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다.

“우선 현재 경호팀을 보면 법원 보안관리대원 분이 4분, 그리고 강남경찰서에서 2분이 오셨군요. 흠. 현장지휘는 누가 하고 있습니까?”

시현이 그렇게 물어보자 다들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법원보안관리대나 경찰들이나 서로서로 이걸 건드리면 난리가 날 걸 알기에 지휘권 문제는 아예 물어보지도 않고 각자도생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시현이 그 점을 물고 들어온 것이다.

“일단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습니다.”

보안관리대원들이 그렇게 말하자 시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 안 되지요. 경호팀이 그렇게 중구난방이면….”

“……”

다들 짜증이 났다.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러냐.’

‘서로서로 지휘권이 없는 별개 조직들이 어쨌건 자기 입장이 있으니까 이러는 거지.’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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