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2화
데드맨VS사이다패스 #2
다들 지금 이 불편한 상황이 문외한 입장에서는 어딘가 멍청해 보인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관료사회를 조금만 알고 있다면 이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리라.
“만약 범인이 나타나서 격퇴했을 경우 보안관리대원분들보다는 아무래도 경찰 쪽이 범인의 신병을 인도받는 게 정석이겠지요? 일단 경호는 보안관리대 분들에게 일임하고 경찰 분들은 어디까지나 범인의 신병을 인도받으며 만약의 경우를 위해 경찰과의 연락망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잠깐만….”
보고 있던 경찰들이 딴죽을 걸고 나섰다.
“실례지만 탐정 씨는 경호나 보안에 대해서 뭘 알고 있는지?”
“그야 경호팀이 난립하면 안 된다는 정도는 알고 있지요.”
“…….”
시현의 말은 지금까지 지휘통제시스템을 제대로 확립시키지 않은 보안관리대원들과 경찰들을 질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기본도 모르는 것들 보다는 내가 낫다.’ 그렇게 대놓고 말하는 것이다.
‘아니 우리는….’
‘다른 조직에 있는 사람들끼리 부딪히기 싫어서 그런 것뿐인데….’
다들 복지부동이 일상인 행정 공무원들이라 주체적으로 나서지 못해서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시현은 의뢰인인 김지향 씨, 박원일 판사의 사모님의 배경을 등에 업고 경호팀의 역할을 정리했다.
“그리고 경호팀도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과중하게 경호하면 금세 지쳐버립니다. 앞으로는 박원일 판사님이 혼자 있는 상황을 방지하는 정도로만 동선을 짜도록 하지요.”
“네?”
“출퇴근 시에만 동행하는 정도로 경호를 축소하고 싶습니다. 아 물론 이건 경호 대상인 박원일 판사님과 김지향 사모님이 적극적으로 요구했다고 해야 받아들여지겠지요?”
“미, 미쳤나 당신?”
보고 있던 경찰들이 따지고 들었다.
“이 새끼! 이거 보자보자 하니까.”
강남경찰서 소속의 경찰들은 하나같이 시현에 대해서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놈이 와가지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경호원을 더 늘려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있는 경호원들도 출퇴근 시간 정도만 경호하라고 줄이는 게 아닌가?
“사이다패스의 살인사건을 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닥쳐! 이 돌팔이 탐정아!”
“제가 돌팔이면 권오상 전 총경님 사건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뭐?”
“누워서 침 뱉기 하지 마시지요. 의뢰인인 김지향 씨는 이미 제 능력을 여러 차례 확인하셨습니다. 그리고 합리적 판단 하에 믿고 저를 고용하셨는데 그런 저를 단지 전 총경님의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모욕하는 건 누워서 침 뱉기가 아니고 뭡니까? 강남경찰서의 전 서장님이 저라는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건 사실 아닙니까? 그런데 절 모욕하는 건 권오상 전 총경님은 물론 그 휘하에 있던 강남경찰 모두를 모욕하는 일입니다. 물론 ….”
시현은 그리 말하고 의뢰주인 김지향 씨를 바라보았다.
“제 의뢰인을 모욕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자 저는 어디까지나 제안할 뿐입니다. 결정하는 것은 당사자인 두 분 부부지요.”
“마, 말도 안 되네.”
박원일 판사는 공황상태를 일으키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데 더 경호원과 있는 시간을 줄이겠다니?
‘혹시 이놈은 날 죽이려고 파견된 사이코가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유흥업소 출입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고 있던 중이다.
‘어쩌면 아내가 자신을 죽여 버리기 위해 끌고 온 녀석일지도 모르겠군. 아니 이놈, 탐정이라기엔 생긴 게 반반하니 아내가 정작 이놈과 불륜을 벌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심까지 들었다.
그때 김지향 씨가 물어보았다.
“사이다패스의 살인사건에 어떤 특징이 있나요?”
“아…. 후후후.”
시현이 미소를 지었다.
“제가 지금 말하는 게 그럴싸하면 앞으로 경호, 보안 계획을 제게 맡겨주시겠습니까?”
“……”
“그건 좀.”
법원 보안관리대나 경찰들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민간 탐정이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간단한 조사나 의뢰 정도, 그것도 불법과 합법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거닐고 있는 선에서 일뿐, 이 남자에게는 어떤 법적인 권한도 없다.
그런데 이놈이 의뢰인을 현혹시켜서 그들의 명의로 지금 여기 모인 경호 인력들을 좌지우지하겠다는 게 아닌가?
그러나 궁금하다.
“그냥 말해보시오. 그걸 듣고 결정하지.”
박원일 판사도 공무원들 편이라 그런지 시현의 뜸들이기를 자르고 어서 빨리 말해줄 것을 요구했다.
“흠. 간단합니다. 사이다패스의 살해현장에 있던 이들은 전부 다, 그 선언문으로 비난할 수 있는 비난의 대상입니다.”
“…….”
“그게 무슨 뜻이지?”
“즉 무고한 다른 사람들을 섞어 놓으면 살해당할 확률이 극단적으로 줄어든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그 선언문을 마음대로 쓸 수 있지 않나?”
아무렇게나 의미를 부여해서 경호원이나 그런 사람들을 악의 부역자 같은 존재로 만들어 비난할 수도 있지 않은가?
박원일 판사는 그런 의미에서 물어보았다.
그런데 시현이 피식 웃는 게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는 미리 선언문을 써버렸잖습니까?”
“…….”
“그래서 말인데.”
시현은 의뢰인들을 바라보았다.
“숙소를 옮겨주셔야 하겠습니다. 한동안.”
“네?”
* * *
‘따뜻한 한 끼 공동체’의 컨테이너 하우스.
그곳은 아침 일찍 찾아오는 식료품 차량들에게서 물자를 받기 위해 당직을 서는 사람들이 살기 위한 숙소가 붙어있었다.
“여기입니다!”
시현은 그곳을 가리켰다.
“…….”
“제정신인가?”
따라온 경찰들은 기가 막혀했다.
성당 앞뜰에 위치한 가건물로 서울고등법원 형사부장 판사를 보낸단 말인가?
강남의 250평방미터가 넘는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있던 판사를 보고 이런 쪽방에서 살라니?
경호나 경비에도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아닌가?
“사실은 여기 말고 쉐어하우스도 생각해 봤습니다만 쉐어하우스는 좀….”
쉐어하우스는 주택을 개조해서 그럴싸하게 꾸미고 호스텔에 공동공간을 들여서 만든 신 주거 공간으로 사실상 장기투숙 호스텔에 가깝다.
사이다패스가 정말로 무고한 다른 사람이 있을 경우 살해를 저지르지 못한다면 확실히 쉐어하우스가 좋은 선택이리라.
“쉐어하우스가 차라리 이쪽보다 낫지 않나요? 숙소는 더 깔끔하고….”
류하리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러자 시현이 대답했다.
“쉐어하우스에는 젊은 여성이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유부남인 분을 그런데 모시자면 의뢰주인 김지향 사모님께서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서.”
“……….”
류하리는 고작 그런 이유로 이 허름한 자원봉사자용 숙소를 고른 시현의 선택에 질겁했다.
‘아니, 그게 아니구나.’
눈치가 빠른 류하리는 왜 시현이 이곳을 골랐는지 재빠르게 알아챘다.
사이다패스가 만약 주변 사람들이 말려드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를 경우, 쉐어하우스를 습격할 때와 ‘따뜻한 한 끼 공동체’를 습격할 때…. 어느 쪽이 도덕적으로 비난이 격렬할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압도적으로 후자 쪽이다.
하지만 그렇다는 건 ‘따뜻한 한 끼 공동체’의 자원봉사자들을 인질로 잡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는데….
‘제정신인가?’
류하리는 시현의 과격함에 경악했다.
시현의 속내를 알아채지 못한 경찰들도 반발했다.
“아니 잠깐만요. 판사님은 어쨌건 서울고등법원으로 출근하셔야 하는데….”
지금 이 따뜻한 한 끼 공동체의 숙소는 경기도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서울고등법원까지는 차가 막히지 않아도 한 시간, 출퇴근 시간에는 상당히 막힐 것 같다.
“광역버스를 타시면 됩니다. 사실 사이다패스의 성향을 보았을 때 대중교통을 이용 중에는 공격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일반 취객이나 정신이상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경호는 그때 해주시면 됩니다.”
“어….”
다들 시현의 말에 당황하고 있었다.
즉 숙소에서는 경호가 필요 없다?
‘그야 그렇겠지.’
사이다패스가 계약자임을 알고 있는 류하리는 공감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이들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이놈은 이쯤 되면 탐정이 아니라 무슨 사이비 점쟁이 같은데?’
‘무, 무속인인가. 왜 이렇게 자신만만하지?’
다들 시현이 직접 사이다패스와 격돌까지 해봤다는 걸 알 리가 없다.
그래서 보지도 않은 사이다패스의 패턴이나 원칙을 멋대로 떠벌이는 시현을 더더욱 믿기 힘들었다.
그러나 김지향 여사는 이미 시현을 믿고 지지하고 있었다.
‘장수를 쏘려면 말을 쏘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이미 장수를 잡고 있지.’
박원일 판사는 이미 불륜, 유흥업소 출입 등으로 아내에게 뭐라고 한마디 할 수 없는 입장이기에 김지향 여사의 뜻대로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 * *
“그리고 여기에 온데는 또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시현이 그리 말했을 때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잦은 노동에 익숙해 보이는 장년의 남자였다.
“…박 판사님?!”
“마침 연락하려고 했는데 잘되었군요.”
“무, 무슨 일입니까?”
“실은 박 판사님 내외를 한동안 여기서 맡아주실 수 있습니까?”
시현의 말을 들은 류하리가 관자놀이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렀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당사자에게 이야기도 없이 데려왔다는 거야?’
하지만 김길환 씨가 박원일 판사를 은인으로 여긴다니 이건 사실 물어보나 마나한 일이었다.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마는….”
“음 누구십니까. 절 아십니까?”
“아, 박 판사님. 저 김길환입니다. 그 15년 전에 아이를 방치해서 죽게 한 인간쓰레기 말입니다.”
“…아.”
박원일 판사는 그제야 기억의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던 파편을 떠올리고 당황했다.
* * *
김길환 씨는 박원일 판사를 무슨 완전무결한 초인이나 성자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박원일 판사는 이미 판사 임용 전에 사귀던 여자 친구를 차버리고 부잣집 따님과 결혼했을 만큼, 충분히 속물적인 사람이었다.
다만 판결문을 쓰다보면 판사는 자신의 판결문에 취하는 법이다.
사회의 통념, 관습, 법과 질서와 정의,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손가락 끝으로 결정하는 존재가 되었을 때 판사들은 종종 과하게 범죄자에 감응해 그들을 동정하고 용서해버리기도 한다.
피해자가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판결문 쓰다가 판결문을 쓰고 있는 자신에 취해서 죄인을 용서해서 새사람 만들어보겠다고 자뻑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사소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이런 끔찍한 악인을 세상에서 격리하겠다고 흥분하기도 한다.
결국 판사도 인간인 이상 공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때로는 흥분하고 때로는 동정하면서 그 판결이나 판단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생각해보면 혈기 넘치던 시절이었군.’
박원일 판사는 젊은 시절의 혈기가 일궈낸 예상치도 못한 결과에 부끄러워했다.
그를 보며 격한 감정에 몸을 떨고 있는 김길환 씨를 보니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