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데드맨VS사이다패스 #3
박원일 판사가 자신의 감성적인 젊은 시절을 부끄러워하건 말건 김길환 씨는 이들이 성당에 온 것을 반겼다.
“…이걸로 될까요?”
류하리는 당황해서 시현에게 물어보았다.
사이다패스가 일반인들을 해치지 않으려고 한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김석영 오심사건에서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인 박원일 판사를 이정도로 지킬 수 있을까?
“자 그럼 판사님은 이제부터 이곳, 공동체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직장에 다녀주십시오. 다만 일은 좀 줄이시고….”
“네?!”
“……”
경찰과 보안관리대원들은 기겁했다.
이 인간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일을 줄이라고?”
“네. 대신 남는 시간동안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겁니다.”
“그, 그런?!”
일반 판사보다 고등법원 판사는 재판 횟수가 더 적다. 그러나 그런 만큼 사건 하나하나가 크고 묵직한 것들뿐이다.
보통 그렇게 묵직한 일이 아니면 상고도 기각당하기 때문이다.
일반 판사들보다 업무량이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 여유가 넘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시현은 그런 일들을 가급적 줄이고 그 시간에 봉사활동을 하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럴 수는 없네!”
“그럴 수는 있습니다!”
“뭣?!”
“제가 판사님을 관찰했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지요? 판사님이 유흥업소 가고 각 로펌 사무장들에게 접대 골프 받는 시간을 줄이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뭣?!”
박원일 판사는 당혹스럽고 화가 났다.
자신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모두 이 남자가 알고 있고, 그걸 아내에게 알려서 자신이 이렇게 혹독하게 혼나게 만든 놈이라고 생각하니 화가 안날 수가 있나.
“미행은 불법이네.”
“판사님이 그렇게 흐리멍덩하게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 현행법상 미행은 형법상으로는 처벌하기 힘들고 사생활침해를 명목으로 고소하는 게 고작입니다. 그런데 저는 0촌인 배우자 분의 의뢰로 미행을 수행했으니 절 상대로 민사 소송을 한다고 해도 책임을 묻기 힘들다는 건 판사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
박원일 판사는 시현이 전혀 자신에게 주눅 들지 않고 술술 말이 나오는 걸 보며 혀를 찼다.
‘유능하긴 유능하군. 아니 지나치게 유능해. 뭐지 이 남자는?’
김지향 씨를 제외하고 박원일 판사나 법원 보안관리대, 그리고 경찰들은 시현을 믿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사이다패스가 사람을 살해하는 수법이 너무나 파격적이고 잔인하기 때문에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 이들은 다들 불안감을 안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현은 전혀 흔들림 없이 판사에게도 물러서지 않는다.
‘허무맹랑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시현의 확신이 전염된다.
불안한 이때, 확신을 가진 자가 주장한다면 그의 확신에 감화되어 어느새 설득당해 버리는 것이다.
시현은 자신의 확신이 남들에게 전파되는 것을 느끼고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 * *
결국 시현의 억지가 통과되었다.
법원 보안관리대원들과 경찰들은 아무리 박원일 판사와 그 배우자인 김지향 씨가 요구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경호를 그만둘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그런 이들에게 시현은 고무장갑을 내밀었다.
“그럼 여기 공동체에서 함께 봉사활동을 하시면 됩니다.”
“네?”
“하세요.”
시현은 마치 곧 일어날 일들을 다 아는 점술가라도 되는 양 확신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래서 정신을 차려보니 다들 자원봉사자들 사이에 섞여서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군대의 취사병 같은 일이다.
쌀을 씻고 채소를 다듬고, 양념을 섞고, 조리기를 청소하고….
시작부터 중노동이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서 배달도 하셔야 합니다.”
도시락 통에 음식을 담아서 도시락까지 싸야 한다.
도시락 통에 음식을 담아서 보내면 자원봉사자들이 집집마다 배송해주고 전에 주었던 도시락 통과 바꿔서 가져오는 건데 대부분 설거지를 해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설거지도 안하고 보내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또 그걸 일일이 다시 씻어야 한다.
경찰과 보안관리대원들이 그 중노동에 참여하면서 다들 안색이 파리해졌다.
“아니 이게… 왜?”
보안관리대원들이나 경찰들이나 다들 신체 건장한 사람들인데도 자원봉사자 아주머니만도 못한 체력을 보이고 있었다.
이 일에 익숙하지 않으니 익숙한 사람들 보다 훨씬 더 빨리 지치는 것이다.
정작 그들에게 일을 시킨 시현은 일을 하지 않고 여기저기 감시 카메라를 달고 있는 게 아닌가?
“당신은 뭐하는 겁니까?”
“보시다시피.”
“일 안 해요?”
“아 저는 이거 하면 오히려 안 됩니다.”
“네?”
“그런 게 있어요. 안심하고 저만 믿으시길….”
“……….”
고무장갑을 낀 보안관리대원들과 경찰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이심전심으로 하나의 마음을 공유했다.
‘이 새끼 이거 완전 개새끼네….’
‘쳐버리고 싶다.’
서로 다른 조직에 속한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 되니 참으로 보기에 좋았다.
* * *
김석영 사건 당시의 검사였던 김제철은 검사를 그만두고 로펌으로 자리를 옮겨 법무법인 신양의 대표이사가 되었다.
경찰은 당연히 그에게도 밀착 경호원을 붙여두었다.
검찰과 별개로 경찰청 내부에 조성된 사이다패스 특별수사반에서도 사이다패스의 특성에 대해서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이다.
‘사이다패스는 관계없는 사람들은 해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경찰청에서는 자신들이 담당하고 있는 김제철 변호사에 대해서 절대로 혼자 있지 말고 항상 언제 어느 때건 사람과 함께 있을 것을 촉구했다.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나 몸을 씻을 때도 경찰들이 대동해서 화장실 밖을 지키거나 샤워실 밖을 지킬 정도였다.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아서 지휘하는 다른 곳과 다르게 처음부터 경찰 특공대 중에서 차출한 경호부대를 편성했고 장비도 비살상탄이긴 하지만 실총을 소유하게 해서 만전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 * *
법무법인 선양이 위치한 곳은 서초구의 타워빌딩.
5명의 변호사들이 각각의 사무실을 합쳐 쓰고 있는 곳으로 명함 상으로는 다들 대표 변호사로 등재되어 있다.
하지만 회사 지분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건 전직 검사 출신인 김제철 변호사, 나머지 변호사들은 김제철 변호사가 이끄는 법무법인 선양의 이름과 사무원들, 사무실을 빌려서 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법무법인 선양이 위치한 타워빌딩의 7층에서 갑자기 소방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
김제철 변호사를 경호 중이던 경찰들은 흠칫 놀랐다.
“대낮부터라니….”
“대담하군.”
그들은 이게 화재가 아니라 사이다패스의 습격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대피하지 않고 사무실 입구를 바라보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세 명의 경찰특공대원이 건물 정 중앙에 모여 김제철 변호사를 감싸고 두 명은 사무실 입구, 다른 한 명은 창문과 얇은 벽을 감시하며 대치했다.
“으음! 하지만 만약 화재면 어쩌려고 그러나?”
김제철 변호사는 그들의 보호를 받으며 몸을 숙인 채 물어보았다.
“걱정 마십시오. 창문이 저기 있으니 화재라 해도 완강기로 충분히 탈출 가능합니다.”
“…우, 우리들은요!?”
법무법인 선양에 근무하는 사무원들이 기겁해서 물어보았다.
“여러분들은….”
“입구에서 비켜서서 창문 쪽 벽에 서세요.”
경찰 특공대원의 지휘관인 경사 한 명이 사무원들에게 창문 쪽을 가리켰다.
창문 쪽에 서서 입구로부터 습격을 피해 총을 쏠 수 있게 피해있으라는 뜻인데… 지휘관격인 대원이 그리 말하자 다른 대원들이 흠칫 놀랐다.
‘야 괜찮은 거야? 이거?’
‘몰라. VIP 경호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사고 나면 경을 치겠는데?’
대테러 훈련은 받은 그들은 사람을 창문가로 세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사실상의 총알받이다.
VIP를 위해서 그렇지 않은 이를 총알받이로 세우는 것으로 이는 대테러부대로서는 해선 안 될 짓이다.
그러나 적은 인원, 그리고 VIP를 엄호하고 범인을 체포해야 하는 현재 경찰특공대의 임무를 생각해보면 또 합리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끼익!
사무실의 입구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으로 소화기가 던져졌다.
-텅!
경찰특공대원들이 흠칫 놀랐지만… 소화기가 그냥 바닥에 구를 뿐이었다.
터지는 것도 아니고 폭탄이 장치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경찰특공대원들은 만의 하아를 생각해서 소화기를 피해 옆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들이 벽 쪽으로 다가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직!
놀랍게도 침입은 사무실 입구가 아니라 벽에서 시작되었다.
콘크리트가 아니라 얇은 석고보드로 이뤄진 벽이 부서지며 안으로 파편들이 폭풍처럼 쏟아져 내린 것이었다.
“윽!?”
갑작스러운 적의 난입에 놀란 경찰들이 태세를 정비하려 했지만 그들이 태세를 정비하기도 전에 뛰어든 인영이 손을 뻗었다.
[죽이고 싶진 않은데… 죽어도 팔자려니 해라!]
보이스체인저로 바꾼 기괴한 목소리가 들렸다.
“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경찰들은 그냥 경찰이 아니다.
전원 경찰특공대들로 경찰들 사이에서도 대테러작전을 전담하는 정예중의 정예다.
그러나….
-투콱!
뛰어든 인영은 가볍게 양쪽으로 주먹을 교차해 날렸다.
전술조끼를 입고 있는 두 경찰 특공대원이 그대로 튕겨나가 바닥에 쓰러졌다.
두꺼운 방탄판까지 넣어져 있는 전술조끼인데… 태권도 국가대표라던가 다른 격투기 선수가 차도 끄떡없을 정도의 방호력을 제공할 텐데도 쓰러진 두 경찰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머지 한 명은 즉시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쏘려고 했지만 뛰어든 인영은 김제철 변호사를 붙잡고 그로 권총 앞을 가로막았다.
“윽!?”
-퍽!
경찰 특공대원이 총을 쏘길 주저하는 사이 사이다패스의 발길질이 경찰특공대원의 팔을 걷어찼다.
그리 괜찮은 발차기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워낙 강력한 발차기여서일까.
-우득!
경찰 특공대원의 팔이 부러져버렸다.
“크악!”
단번에 경찰특공대원들을 무력화시킨 침입자, 사이다패스는 김제철 변호사를 붙잡고 주위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이….”
다들 겁에 질렸다.
인간이 아니다.
건장한 경찰특공대원들을 어린애 다루는 듯 한 이 괴물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다들 겁에 질려서 옴짝달싹도 못했다.
독사를 앞에 둔 개구리가 된 심정이었다.
그제야 안에 있던 이들은 침입자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침입자는 후드티를 눌러 쓰고 있고 얼굴에는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얼굴도 성별도, 신원을 파악할 요소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쏟아져 나오는 그 무시무시한 살기라니!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이 사람이 김제철 변호사 맞지?]
“…….”
[맞아 안 맞아?]
“…어. 으. 아, 아니오! 난 김제철 변호사가 아니야!”
침입자에게 잡혀있던 김제철 변호사는 자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사이다패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