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35화 (135/269)

제135화

데드맨VS사이다패스 #5

경찰들은 막연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아, 오늘 출석 체크해야지.”

“게임하냐?”

“그래.”

“아니 무슨 게임이 폰이 알아서 하고 넌 출석체크만 하냐. 배터리 부어터진다.”

“아 몰라. 이거라도 해야 좀 덜 심심한 느낌이야.”

경찰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주위를 둘러보다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 * *

-투투둑!

뭔가 뜯어지는 듯 한 소리와 함께 경찰서 뒤쪽 주차장 쪽에서 한 인영이 나타났다.

사이다패스가 벽을 기어올라 옥상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아?!”

“어?!”

놀란 경찰들이 총을 집어 들었지만 그들이 총을 겨누려 할 때 이미 사이다패스는 그들의 앞 손이 닿는 거리까지 접근해왔다.

“미안! 이정도면 안 죽겠지?!”

사이다패스는 옥상을 경계하고 있던 경찰들에게 뛰어들어 그들이 턱에 각각 중관절을 구부리고 손은 편 채로 일격을 날렸다.

그냥 주먹으로 때리면 죽을 수 있고 관수나 손가락으로 찍으면 찢어져 영구적인 상해가 남을 수 있기에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공격이었다.

경찰기동대원이 맥없이 풀썩 쓰러져버렸다.

“후우. 좋아.”

그녀는 기동대원의 허리띠에 붙어있는 자일을 발견하고 기뻐했다.

* * *

경찰 특공대는 한때 전경들의 숙소였던 곳을 개조해 만든 숙소에서 경호하고 있었다. 철근 콘크리트 골조에 벽을 벽돌로 나눠놓은 아주 옛날 건물이라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웠지만 벽체가 튼튼해서 김제철 변호사 때처럼 벽을 부수며 등장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그들은 숙소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창문 쪽으로도 적이 침입할 수 있겠지만 창문 쪽은 경찰서 앞 진입로가 보이는 곳이다.

긴 개활지가 늘어서 있고 옥상에는 경비가 배치되어 있으니 정상적으로는 창문에서 침입해 들어올 수 없다.

그렇지만 물론 보호대상인 경찰들에게는 창문에 접근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 * *

경찰서 정문에는 경찰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평소에는 간편한 근무복 차림이었지만 지금은 다들 방탄조끼에 K2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경비들이 흠칫 놀랐다.

“어?!”

“어어어어!”

그들은 당황했다.

건물 옥상에서 한 인영이 자일로프를 걸고 위에서 벽을 타고 내려와 숙소 창문 밖에 선 것이다.

“이런 젠장!”

“연락해!”

정문을 지키던 경찰들은 무전기를 통해 경고를 하고 소총을 집어 들었다.

발포하라고 상부에서 말하고는 있었지만 진짜로 쏘자니 손이 떨린다.

이 거리에서 맞출 수 있을까?

약 4~50미터 정도 거리, 훈련 때는 못 맞출 것도 없는 거리다.

하지만 만약 못 맞추면… 경찰서 건물을 향해 총질을 하는 거라 유탄이 엉뚱한 사람에게 맞을지도 모른다.

경찰들이 그렇게 망설일 때 자일로프에 매달린 인물은 창문 벽에 손을 댔다.

창문에는 쇠철망이 앵커로 결합되어 있었다.

인간의 손으로 뽑을 수는 없다. 밧줄을 걸고 차로 당긴다면 모를까.

그런데….

-콰직!

밧줄에 매달린 이는 벽에 양 발을 지탱하고 철망을 잡아당겨 뜯어버렸다.

“뭐?!”

“쏴!”

경찰들이 놀라서 발포했지만 탄창 위쪽에는 공포탄이 들어있었다.

-탕탕!

공포탄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저 인물, 사이다패스는 철망을 번쩍 들어서 창문 안쪽으로 집어던지고 창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 * *

-타타타탕!

안의 경찰특공대원들은 이전과 달리 방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당화하고 있는 다른 경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솜씨로 뛰어든 사이다패스를 향해 실탄을 쏘았다.

그러나 사이다패스는 집어던진 철망을 이용해 피하고 허리춤에 끼고 있던 고무망치를 뽑아 휘둘렀다.

-퍼억!

도망치려 하던 김운천 경감의 등에 망치가 적중되자 척추가 부러졌다.

“으악!”

“젠장!”

김운천 경감의 몸이 사격 사선을 방해한다.

-투콱!

사이다패스는 척추가 부러졌지만 아직 살아있는 김운천 경감을 붙잡고 발차기로 김상철 경장을 내밀어 차고 고무망치를 휘둘러 최병렬 경장도 즉사시켰다.

“………”

“미친….”

광분한 회색 곰이 난입해도 이렇게 빠르고 정확하게 사람들을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사이다패스의 무시무시한 힘과 살상력에 경찰 특공대는 기겁했다.

게다가 아직 김운천 경감이 산채로 사이다패스의 손에 잡혀있다.

“…….”

“으윽….”

척추가 부러진 고통으로 김운천 경감은 혼절해 있었다.

하지가 마비되어서 바지에서 소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으며 전신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긴 하지만 분명히 살아있다.

총을 쏠 수 없다.

[아무래도 꽤 열심히 준비한 모양인데.]

사이다패스의 목소리가 보이스체인저를 통해서 흘러나왔다.

[죽이지 않고 해결하려는 데 너무 하는 거 아냐?]

“…무기 버리고 엎드려!”

경찰특공대원들은 사이다패스와 말을 섞지 않고 총구를 겨누고 위협했다.

하지만 사이다패스는 김운천 경감을 잡고 창밖으로 튀어나갔다.

“뭐?!”

성인 남성을 붙잡고 밖으로 뛰다니?

옛날 호환이 심하던 조선시절에 호랑이가 송아지 물고 날아간다고 했는데… 그 말 그대로다.

다만 지금 사람을 물고 날아가는 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사이다패스,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이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인간의 신체능력을 아득히 상회하지 않는가?

경찰특공대원들이 뒤늦게 추격하려 했지만 그 순간 김운천 경감의 몸이 상층에서 떨어져 그들의 눈앞에 추락했다.

“………”

정문 쪽의 경찰들이 공포탄 대신 실탄을 장전하고 총을 쏘았지만 사이다패스는 이미 옥상으로 올라가 건물에서 건물로 이동해 자취를 감춘 뒤였다.

* * *

“아하하하하하!”

사이다패스는 박장대소하며 최형림의 집으로 왔다.

그녀는 보이스체인저와 방독면을 탁자위에 내려놓았다.

그녀의 방독면에는 구멍이 뚫려있었다.

고속으로 뭔가가 뚫고 지나가며 고무로 된 방독면을 녹인 흔적이 있다.

총탄이 방독면에 맞은 것이다.

하지만 사이다패스의 얼굴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다.

“………”

최형림은 TV를 틀고 사이다패스 쪽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화려하게 저질렀군요?”

TV에서는 뉴스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서울 구로 경찰서 인근에서 총성이 울리자 시민들이 촬영한 동영상이 TV에 방영되고 있었다.

사이다패스의 모습은 찍히지 않았지만 총성이 울리고 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불안해하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이야… 대단했어. 경찰특공대가 작정하고 막으니까 아무리 나라고 해도 안 죽이고 표적만 따기는 힘들겠더라고. 그래도 안 죽인 게 어디야. 그런데….”

그녀는 방독면의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보았다.

“총을 맞았어.”

“…괜찮습니까?”

“괜찮아. 괜찮아.”

사이다패스는 그리 말하고 최형림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무래도 나는 불사신인 모양이야.”

“불사신인 모양이다?”

“지금까지 시험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이다패스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제 딱 하나, 판사 남았군. 아마 이제는 경찰들이 더더욱 날뛰겠지. 좋아. 이번에는 가로막는 건 다 죽여주지.”

“…경찰 특공대는 대테러 훈련과 경비 임무, 경호임무만 맡는 쪽이라 당신이 미워하는 그런 일을 저지를 틈이 없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겁니까?”

“솔직히… 이 녀석들도 눈치 채는 것 같더라고. 내가 표적만 죽이고 싶어 하는 걸 알고 선을 넘던데. 시가지 안에서 총을 이렇게 발포하면 기분이 나빠.”

그녀는 그리 말하며 자신의 얼굴을 긁었다.

최형림은 방독면을 바라보았다.

볼따구 부분에 총탄을 맞은 흔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사이다패스는 자신의 볼이 있는 부분을 거의 찢어질 정도로 심하게 벅벅 긁고 있었다.

“피 떨어집니다. 청소하기 귀찮아요.”

소파위로 사이다패스의 피가 흐른다.

“어서 빨리…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싶어. 이 쓰레기 같은 놈들. 왜… 왜 나는 구해주지 않았지?”

사이다패스의 정신이 불안정해 보인다.

최형림은 그녀의 피가 흐르는 볼을, 그리고 그 피가 떨어지는 소파를 보았다.

소파가 피에 젖는다.

하지만 최형림이 눈을 가늘게 뜨자, 매끈한 소파의 모습이 보인다.

피로 오염된 흔적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

최형림은 무심코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렸다.

그런데….

“어?”

“응?”

사이다패스가 정신을 차렸다.

“왜 그래?”

“이런… 당했군요.”

“당해?”

“네.”

최형림은 쓴 웃음을 지으며 오피스텔 벽 쪽에 놓여있는 자신의 TV를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한 방송의 예고편이 나오고 있었다.

‘특별기획, 동반 3일… 김석영 씨 오심사건의 장본인 두 사람. 김석영씨와 박원일 판사의 3일간의 대화.’

그리고 커다란 대야 하나를 두고 김치를 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뭐야 이건?!”

“완전 당해버렸습니다. 데드맨의 소행이로군요.”

“데드맨?! 그 탐정 말이야?”

“네.”

“아니 그, 그렇지만. 이건….”

사이다패스는 TV에 들어갈 것처럼 아예 TV화면을 붙잡고 노려보았다.

-콰직….

화면의 표면 유리가 눌리며 액정 색이 변하고 있었다.

“대체 그 탐정 놈은 무슨 재주로 둘을… 그것도 TV프로그램에 나오게 했지!?”

* * *

따뜻한 한 끼 공동체의 자원봉사자들은 식당 시설에 붙어있는 가건물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서울 고등법원 판사인 박원일 판사도 이제 그 건물에서 아내와 함께 드러누워 있었다.

“으으….”

종잇장처럼 얇은 나무판대기로 나뉘어져 있는 방은 방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했다.

캡슐호텔이나 만화카페의 파티션도 이것보다는 두껍고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음소리, 두려움에 떠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곧 박원일 판사는 그 신음소리가 자신이 내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검사였던 김제철 변호사가 산채로 건물 밖으로 내던져지는 장면을 본 그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경찰특공대의 경호를 무시하고 돌진해 들어와 사람을 싫증난 장난감인형처럼 간단히 창밖으로 집어던지는 살인마.

그런 게 상대라면 어디라도 안전할 수 없다.

“젠장!”

잠을 이루지 못한 박원일 판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그의 귀에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셨습니까?”

어둠속에서 빛을 밝히고 노트북을 유심히 보고 있는 시현의 모습이 보였다.

“뭘 하는 겁니까?”

박원일 판사가 다가왔다. 시현은 커다란 대야를 뒤집어서 쌓아둔 곳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자료들을 보고 있었다.

“판사님의 재판기록입니다.”

“네?”

“판사님이 김길환 씨 때처럼 온정을 베푼 사람들을 찾아서 모을 겁니다. 판결문들을 보니까 초반엔 참 열정적이셨군요.”

“……….”

박원일 판사는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젊은 시절의 치기로 사람들에게 마음을 쓴 것을 이렇게 돌려받겠다는 사실이 민망해서 견딜 수 없고….

그 시절의 자신이 또한 부끄러웠다.

멋대로 범죄자였던 사람들을 동정하고 그들에게 뭔가 베풀면서 자신이 뭐라도 된 양 자아도취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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