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37화 (137/269)

제137화

데드맨VS사이다패스 #7

“아 그것도 그렇지 않아도 섭외할 예정입니다.”

시현은 기다렸다는 듯 그렇게 대답했다.

“네? 김석영씨 연락처도 있어요?”

“예. 안면도 좀 터놓은 사이입니다. 말이 잘 통할 거예요.”

“어, 어떻게?”

“뭐 미리미리 준비해두는 성격이라서요. 사실 전에 법원에 갈 일이 있었는데 법원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어서 들어보니까 김석영씨더군요. 그래서 그냥 현장에서 영업해서….”

“영업해서 수명을 뜯었어요?”

“수명은 아니고 그냥 돈을 받아냈죠.”

“……….”

길가다 아무나 보면 영업해서 수임료를 뜯어낸단 말인가?

장사수완이 뛰어나다고 해야 하나?

‘이사람 옥장판이나 정수기, 보험 팔아도 잘 팔겠네.’

류하리는 시현의 영업력에 혀를 내둘렀다.

* * *

“음….”

김석영씨는 자신의 전화기에 찍힌 시현의 번호를 보며 잠시 망설였다.

이 탐정 놈이 왜 자신에게 전화를 거는 걸까?

솔직히 별로 받고 싶지 않았다.

너무 수완이 좋은 놈이라서 이놈이랑 말려들면 그대로 조종당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받지 않을 수도 없는 일, 김석영씨는 마지못해서 전화를 받았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석영씨.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제안이 있어서 그러는데요.]

“어떤 제안입니까?”

[혹시 박원일 판사를 만나보실 생각 있으십니까?]

“네? 박원일 판사요?”

[예. 당신을 재판했던 그 판사입니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네요.”

[그렇게 말하실 줄 알고 자택 앞에 와 있습니다.]

“네?! 아니 별로 만나고 싶지 않다니까요?”

[일단 이야기나 들어보시죠. 어차피 아직 재취직 못하고 마음도 못 잡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니 이 사람이….”

그런데 그때 현관의 벨이 울렸다.

깜짝 놀란 김석영씨가 도어카메라폰을 살펴보니 세상에, 시현과 젊은 여성 한 명이 와있는 게 아닌가?

“뭐, 뭡니까 당신들?!”

[아 실례합니다. 저는 마포경찰서 류하리 경위입니다.]

“…진짜요?”

그러자 여성 경찰이 한숨을 내쉬고 시현을 돌아보았다.

[아니 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경계를 해요? 이 사람에게 무슨 짓 했어요?]

[그냥 평소대로 시현 탐정사무소의 고객서비스를 진득하니 보여드렸을 뿐입니다. 제 진심이 그만… 아마 제가 너무 유능하다고 생각되니 경계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스위스 용병처럼 너무 유능한 용병을 전장에서 보면, 내가 고용주가 아닐 때는 오히려 싫어할 거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제 고객만족 정신이 너무 투철하다보니 저와 계약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은 오히려 두려워하는 거지요.]

[엄청난 자화자찬이네요.]

[스위스 용병들을 칭찬하는 겁니다. 시현 탐정사무소의 고객만족서비스에 비견되다니. 그들도 기뻐할 거예요.]

듣고 있던 김석영씨는 그들의 만담 같은 소리에 혀를 차고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오세요.”

시현과 류하리가 들어왔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제 와서 뭐라고 해도 저는 그만두지 않을 겁니다. 사이다패스가 사람들을 죽여 대는 시점에 이제 와서 사과한다고 한들 그게 진심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사이다패스에게 청원을 하셨나보군요. 음. 제게 부탁하지 그러셨습니까? 그러라고 말했더니만.”

시현은 김석영씨에게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때 당신은 합법적인 선 안에서 해결하겠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저도 강요하지 않았던 겁니다만 설마 사이다패스에게 청원할 줄이야.”

“아니 그건… 제가 청원한 거 아닙니다. 저는 그냥 제 억울함을 인터넷에 떠벌렸을 뿐이고 그 다음은 몰라요!”

물론 김석영씨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살인교사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본인도 이게 말이 안 되는 변명이라는 걸 알지만 판사나 검사, 그 외의 다른 이들이 편의주의 적 발상으로 그의 인생을 망가뜨린 걸 생각하면 이런 억지 정도는 우스운 수준이 아닌가 스스로 합리화하게 되는 것이다.

너희들이야 말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별 생각도 없이 무고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내가 너희들에게 복수하면 안 되지?

나뿐만 아니라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법관이나 검사들, 경찰들에게 불만이 있었다면….

자업자득이다!

김석영은 행여 시현이 자신을 설득하려고 할 까봐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사상무장을 확실히 했다.

시현이 뭐라고 해도 물러나지 않도록….

그때 시현이 물어보았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만족스러우십니까?”

“만족하냐고요? 음… 하. 솔직히 만족스럽네요.”

김석영씨는 부정하지 않았다.

“사람이 죽는데 그럴 수 있냐고 비난해도 좋아요. 하지만 전 감옥에 있을 때 매일매일 죽고 죽고 또 죽는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 때문에 갇혀있는 건 진짜 하루하루 미칠 것 같았다고요! 그나마 혀를 깨물고 죽지 않은 건 혹시나 나중에는 진범이 밝혀지고 언젠가는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 때문이지….”

김석영씨는 그렇게 분개했지만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하긴 사이다패스는 수명도 받지 않으니까요. 비용 대비 매우 만족스러운 솔루션일 수밖에 없군요. 이거 참. 이래서 덤핑은 곤란하다니까.”

“…네?”

“간혹 쓸데없이 재능기부 같은 걸 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바람직한 곳에 기부한다면 나쁘진 않지만… 동종업계 입장에서는 좋게 볼 수가 없어요.”

“동종업계….”

‘당신도 살인자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김석영씨는 묻지 않았다.

질문을 했다가 대답이 긍정이기라도 하면 무서울 것 같아서였다.

“사람들은 유형의 재화에는 후하게 지불하지만 무형의 서비스에는 박하게 군단 말이죠. 그런데 그 무형의 서비스를 공짜로 뿌려대면 동종업계 사람들은 대체 뭘 먹고 살라는 겁니까? 본인이야 기분 좋을지 모르지만 상도덕을 도외시한 아주 끔찍한 행위지요.”

“……….”

뭔가 말하는 포인트가 다르다.

김석영 씨는 당황했다.

이 탐정은 자신이 복수를 하건 말건 그거엔 전혀 관심이 없다.

사회에 물의를 빚건 결과적으로 사람을 죽이라고 선동한 게 되건 그런 것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상도덕을 따질 레벨인가? 사람이 죽었잖아? 그쪽의 도덕은 괜찮고 상도덕은 문제란 말인가?’

감옥에서 김석영씨는 마음속으로 몇 차례나 증오를 퍼부었다.

남들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검사, 판사, 그를 체포한 경찰들, 거짓 증언한 증인을… 마음속에서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몇 번이나 죽이면서 분을 삭이곤 했다.

그런 그가 오히려 도덕적인 면에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라니?

“아니 저, 저를 비난하러 오신 게 아닌가요?”

“왜요. 비난받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아니지만 비난받아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는 생각했지요.”

“비난은 사이다패스가 받아야지요. 상도덕도 없이 어딜 물을 흐리고….”

그러자 김석영이 당황해서 경찰인 류하리를 돌아보았다.

류하리는 표정을 구겼다.

“저야 물론 살인교사와 선동의 미묘한 울타리에 발이 걸쳐져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네요.”

“그, 그렇습니까?”

이 경찰도 이상하다.

김석영씨는 당혹스러워했다.

“그럼 뭐 하러 오셨습니까?”

“방송프로를 하나 제작하려고 하는 데 거기 참석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네?”

“테마는 박원일 판사와 함께 하는 급식 봉사활동입니다.”

“당신 미쳤어요?”

김석영씨는 기가 막혀서 물어보았다.

그러자 시현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지금 가장 핫한 사건이 바로 김석영씨 오심사건입니다. 그런데 김석영씨와 그 판사 박원일 씨가 함께 방송에 출연한다면 그 시청률은 음….”

“……….”

“싫으신가요?”

“싫지요! 당연히! 이제 와서 무슨… 제가 왜 그 판사랑 같이 방송에 출연해야 합니까? 이건 괴롭히는 놈이랑 괴롭힘 당한 놈을 어깨동무시키는 것 같다고요.”

“그런데 단언하건데 사이다패스는 박원일 판사를 못 죽입니다.”

“네?”

“제 고객님이 박원일 판사가 죽는 걸 원하지 않거든요. 즉 제가 있는 한 박원일 판사는 안 죽습니다.”

“……….”

참 광오한 말이다.

당신의 고객이 원했기 때문에 당신이 박원일 판사를 지키고, 그러면 사이다패스로서는 그를 죽일 수 없다고?

되도 않는 허풍이다.

말하는 게 그가 아니라면 말이지.

김석영씨는 이 탐정과 잠깐 지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가 유능하다는 말 정도로는 부족한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허풍처럼 들리지만 확실히 현실감이 있었다.

“그럼 어쩌라는 거예요?”

“일단 박원일 판사와 같이 다큐멘터리 찍는데 출연하셔서 이야기를 나눠 보시지요. 그래서 뭐 박원일 판사가 마음에 안 들면 그때 가서 사이다패스에게 죽여 달라고 해도 되는 거고.”

“네? 화해시키러 온 게 아니라요?”

“어차피 제가 있으면 박원일 판사는 못 죽인다니까요. 그런데 왜 화해를 굳이 종용해야 하죠? 억지로 화해시키는 거 애들 교육에 안 좋습니다.”

“……….”

뭐지?

엄청난 자신감이다.

너무 뻔뻔하게 말해서 정말 믿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남자, 정말로 사이다패스에게 다른 사람이 죽는 건 눈 하나 깜빡 안하는 구나.

자신의 고객만 최우선으로 챙기고 있음에 분명하다.

‘과연 고객만족이 최우선….’

김석영씨는 혀를 내둘렀다.

“그럼 왜 제게….”

“김석영씨에게는 음, 박원일 판사가 만약 사이다패스에게 죽으면 그걸로 끝이고, 사이다패스가 박원일 판사에 대한 공격을 포기해도 그걸로 끝,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 박원일 판사와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이때뿐이잖아요?”

“네?”

“판사라는 족속들은 야구 심판과 같아서 오심도 게임의 일부랍시고 자신들이 권위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족속들입니다. 그런 판사가 타인과 대등하게 말이나 섞을 기회가 흔하겠습니까?”

“………”

“당신을 4년간의 지옥에 던져 넣은 사람에게 인간적 관심이 전혀 없이 그냥 죽어 없어지라고 손을 떼버리는 거, 그거 아주 훌륭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게 쿨 하지 못하더군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증오하는 사람에게 집착한다.

바람피워서 헤어진 전 연인이라도 그의 SNS를 몰래 검색하는 것처럼, 증오도 사랑도 관심이라는 데는 일맥상통하는 게 있어서 쿨 하게 죽여 버리고 끝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 생각해보시겠습니까?”

“…….”

결국 김석영 씨는 좋건 싫건 이 방송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는 어쨌건 박원일 판사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할지 듣고 싶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신….”

“출연료 많이? 물론이지요.”

시현은 김석영씨가 말하지 않아도 뭘 이야기할지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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