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39화 (139/269)

제139화

데드맨VS사이다패스 #9

‘서울이 모가디슈도 아니고 도심에서 총격전이라니 말이 되냐?’

‘경찰 잘못 아니냐. 총질을 하고도 범인 하나를 못 잡아?’

‘야 그런데 경찰특공대면 SDT 출신일 텐데….’

‘대한민국 경찰특공대가 작정하고 쏘면 총을 못 맞출 리가 없는데? 실탄이 아니라 공포탄 아냐?’

‘공포탄이겠지?’

‘어휴 그런 흉악 범죄자 실총으로 쏴 죽여야 하는데 대한민국 치안 너무 약한 거 아니냐? 미국에서 같으면 44매그넘으로 뻥뻥….’

‘하여튼 사람들 민심 손바닥 뒤집듯 뒤집히는 거 봐라. 위에 댓글 단 놈 바로 1주일 전까지는 사이다패스 응원하면서 다 죽이라면서?’

사이다패스를 옹호하던 여론이 싹 들어가고 대신

‘너무 과하다.’

‘불안해서 못살겠다.’

‘굳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다 죽여야 하냐?’

그런 의견들이 대세를 이루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석영 씨에게도 당연히 압력이 더해졌다.

‘따지고 보면 이 사람이 모든 문제의 원흉 아니냐?’

‘결과적으로 판사 빼고 다 죽인 셈인데.’

‘에이 판사 남았잖아. 판사가 제일 문제 아니냐?’

‘하 이 새끼 법알못이네. 판사는 임마 올라온 거 보고 그냥 그 자리에서 판단하는 역할이지. 수사가 잘못되어서 왔는데 어쩌겠어? 판사가 뭐 초능력자야? 명탐정이야? 보자마자 범인인지 아닌지 알게? 그냥 선고기계야 선고기계.’

‘하여튼 사람 죽여 달라고 하고 진짜 죽였는데 두 다리 쭉 펴고 산다 이거지? 감옥 다녀오면 인성이 다 이렇게 씹창나나? 완전 혐성이네.’

‘살인마랑 공범이다! 살인교사야 이건.’

* * *

이렇게 졸지에 사이다패스에게 청원한 셈이 된 김석영씨에게도 여론의 질타가 쏟아져 내렸다.

게다가 박원일 판사가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예능감이 넘쳐흘렀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뭐 엎고 자빠지고 구르고 다치고 전신으로 슬랩스틱 코미디를 하고 있는데 서울 고법판사라는 슈퍼엘리트의 모습이 전혀 빠릿빠릿하지 않다.

‘와. 군에서 만났으면 슈퍼고문관이었겠는데. 저 정도면 존재 자체가 군 부조리 유발자… 주먹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겠다.’

김석영씨는 너무나 머저리 같은 박원일 판사의 모습에 짜증이 났다.

일을 나중에 배운 김석영씨가 훨씬 손질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고 배식도 잘한다.

반면 몸으로 하는 일에는 죄 둔한 박원일 판사는 짜증은 나는데… 왠지 죽일 만큼 밉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3일간의 촬영이지만 한 솥밥 먹고 한 지붕에서 같이 고생하다 보니 박원일 판사는 김석영 씨에게 자신의 오심을 사죄하고 말았다.

그리고 김석영씨는 그 사죄를 받아들이면서 방송은 끝이 났다.

* * *

박원일 판사는 결국 판사직에 사표를 냈다.

아무리 사이다패스에게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이라 해도 판사가 공중파에서, 오심을 인정하고 오심의 피해자에게 사죄한 것은 너무나도 판사들의 권위를 해치는 중대한 행위였다.

“이제부터는 변호사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박원일 판사, 아니 이제는 박원일 변호사는 그렇게 말하며 시현에게 그간의 경호비를 입금해주었다.

“감사합니다. 입금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많은 이용 말입니까….”

박원일 변호사는 쓴 웃음을 지었다.

“변호사 일을 하시면 이래저래 저 같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실 겁니다. 의뢰인들에게 소개를 해야 할 경우도 있고요. 의뢰로 온 사람들을 소개해주시면 소개료로 5%를 드립니다만.”

“그럼… 생각해볼만 하군요.”

“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업무상 변호사가 필요한 일이 많으니 그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시현은 박원일 변호사와 업무상 제휴를 맺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종종 이 봉사활동은 계속하셔야 할 겁니다. 여론이 나빠지면, 또 그게 아니더라도 분풀이 때문에라도 사이다패스가 다시 나타날지 모르니 말입니다.”

“그, 그렇습니까? 이거 참 고역인데요. 변호사 일을 하면서 이런 것 까지 하게 되면….”

“그래도 하셔야 합니다. 주에 1회 정도는 꼭 하셔야 할 겁니다.”

시현은 박원일 판사, 아니 변호사에게 그렇게 봉사활동의 굴레를 씌웠다.

* * *

김길환 씨는 군말 없이 시현에게 수명을 정산해주었다.

-타다다닥….

타자기는 불만이 많아보였다.

[사이다패스와 격돌할 줄 알았더니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처리해버렸군요. 그것도 훨씬 빠르게.]

“당신들이 아직 인간을 잘 모른다는 증거지. 고객인 김길환 씨를 만족시키면 되는 거지 굳이 사이다패스랑 정면으로 들이받을 필요는 없었잖아?”

[……]

“그나저나 이번에 꽤 무리해서 계약자를 구해왔던데 그런 짓을 하다니 사이다패스랑 내가 격돌하는 걸 꽤 기대했었나봐? 아무리 당신이래도 사람 꿈을 건드리고 속삭이고 그런 짓을 했으면 다음 계약자는 구하기 힘들지 않겠어? 연속으로 그런 짓을 하긴 힘들 텐데?”

[계약 대상자를 곧 구해놓겠습니다.]

타자기는 그리 말하고 반응이 사라졌다.

* * *

김석영씨는 부모님과 함께 장사를 시작했다.

공중파 TV를 탄 덕분에 이제 그가 죄인이 아니라 억울한 피해자라는 걸 대중들에게 인식시키게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가족들을 도외시하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가게도 싸게 빌릴 수 있었고 손님들도 첫 개시라 그런지 흥미 때문인지 꽤 많이들 찾아와주었다.

앞으로 계속 장사가 잘되어야겠지만 일단 개점 첫 달은 너무 장사가 잘되어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남는 음식이나 식재료는 푸드 뱅크를 통해서 기증하려고요. 그게 회계로 절세하기에도 좋고 또 뭐 정말 아쉬운 사람들에게 음식이 가면 좋으니까요.”

김석영씨는 그리 말하고 음식을 준비했다.

“원하던 형태의 취업은 아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니 탐정씨도 앞으로 좀 많이 팔아주시지요.”

“하하. 저는 입이 하나라서 많이 팔아드리기가…. 뭐 이 일대에서 사업을 하시면 종종 도움 필요한 일이 있으실 텐데 도와드리겠습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고 자신의 명함을 다시금 한 장 뽑아서 건네주었다.

“연락처는 있어요.”

“그게 아니라 나중에 여기 사업장에 이상한 애들 오면 그때 보여주시면 됩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고 명함에 자기 서명을 해주었다.

“……….”

그걸 본 김석영씨는 얼어버렸다.

‘이상한 애들이라니. 건달들 말인가? 깡패? 아니 그런데 그런 놈들에게 명함에 사인한 걸 보여주라니 이 작자는 대체 뭐야?’

잘은 모르겠지만 이 탐정의 기분을 거슬리게 하면 안 좋겠다는 예감이 물씬 들었다.

“장사가 잘 안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또 언제든지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시현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김석영씨와 작별을 고했다.

“자아. 그럼 이제….”

* * *

“완전히 당해버렸군요.”

최형림은 맥이 탁 풀려있었다.

아마도 시현의 의뢰인은 박원일 판사, 혹은 박원일 판사와 관련된 자가 시현에게 의뢰해서 그를 지켜달라고 했겠지.

하지만 설마 이런 방식으로 박원일 판사를 지키려 할 줄이야.

더 놀라운 것은 박원일 판사였다.

서울고등법원 판사가 오심에 대해서 사죄한다니? 그것도 공중파에 방송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공개사죄를 했으니 판사로서의 커리어는 끝장이다.

뭐 사이다패스에게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이렇게 되면 사이다패스가 그간 쌓아올린 명성, 인기는 완전히 엉망이 된다.

“제길. 이제 와서 무슨 화해야! 웃기지 마! 결국 이놈은 판사라고! 아무것도 잃지 않았잖아!”

사이다패스는 방송을 보고서도 박원일 판사에 대한 분노를 꺼트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최형림은 쓴 웃음을 지으며 다시 노트북에 시선을 돌렸다.

“…뭐하는 거야?”

“재판 준비입니다.”

“재판 준비?”

“네. 누구 덕분에 검찰도 지금 인재가 동나고 있거든요. 그래서 내일 제가 재판에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서부지검에서도 어지간하면 사이다패스 수사본부에 들어간 최형림에게 서부지검 일을 줄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형사부의 검사는 항상 부족하다.

최형림은 수사 파일들을 보고 사건을 파악하고 몇몇 사건들은 검찰 수사관들에게 새로 수사지휘를 내리고 수사관들이 짠 공소장의 초고를 편집해 좀 더 정확하게 법률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일 하루에 처리해야 하는 재판만 8건이군요.”

“많은 건가?”

“8개의 사건 케이스를 조사해서 머릿속에 넣어둬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대학생으로 치자면 8과목의 리포트 발표가 한 날에 겹쳐졌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

“대학을 안 갔나보군요? 선언문은 꽤 조리가 있던데?”

“아니, 나를 떠보지 말라고. 그보다… 박원일 판사는 그럼 어쩔 거야?”

“지금 죽이면 사람들은 더더욱 반대로 돌아설 겁니다. 오심의 당사자가 용서했는데 당신이 나서서 그를 죽여 버리면 사람들은 월권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뭐?”

“잘 됐네요. 한동안은 쉽시다. 사이다패스 활동을 한동안 좀 쉬면 사람들의 청원이 쌓이고 요구가 늘어날 테니까… 그때 다시 하도록 하지요. 이번 일은 저도 너무 성급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경찰과 검찰의 진을 더 빼놓고 갔어야 했는데 경찰 특공대와 정면충돌하는 건 어리석었습니다.”

경찰과 검찰을 더 진을 빼놓고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내가 못 참아서 어리석었다는 거야? 처음부터 판사부터 죽이고 그랬으면 이렇게 당하진 않았을 텐데!”

“…표적을 잘못 고른 것은 제 실수가 맞습니다. 사과드리지요.”

최형림은 그리 말하면서도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내일 재판이 많이 잡혀있어서 지금 이순간도 노트북을 통해서 검찰 수사관들의 리포트를 읽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다.

“이 데드맨인지 뭔지 하는 녀석은 어쩔 거야?”

“어쩌냐니요?”

“날 엿 먹이잖아? 이 녀석 방해된다고!”

“방해된다는 이유로 죽일 겁니까? 그건 당신의 원칙에서 벗어날 텐데요?”

사이다패스는 오직 죽여서 속 시원해질 인물만 죽이겠다고 이름도 그렇게 정한 게 아니었나?

그런데 시현이 자신을 방해한다고 죽이겠다면 처음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가?

최형림은 그렇게 묻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물론 안 죽이지. 하지만 이 녀석은 계약자야. 그렇지? 계속 내버려두면 앞으로도 계속 날 방해할 테고.”

“아마 그러진 않을 겁니다.”

“뭐?”

“그는 당신의 사명에 딱히 호오가 없을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야? 그가 내편이라는 거야?”

“그렇다기 보다는 관심이 없을 겁니다.”

“흥?”

사이다패스는 혀를 찼다.

“뭔가 당신 되게 그 작자를 감싸고도네?”

“경고하지만….”

최형림이 쓴 웃음을 지었다.

“절대로 데드맨을 직접 공격하지 마세요. 후회할 겁니다.”

최형림이 그리 말하고 옆을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사이다패스는 사라진 뒤였다.

“하여튼 이 천방지축 망아지 같으니… 말을 하면 듣는 시늉도 안하는 군.”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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