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40화 (140/269)

제140화

데드맨VS사이다패스 #10

시현탐정 사무소에서 류하리는 차를 타면서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방송작가 유정미가 찾아와서 씩씩 화를 내고 있었다.

“숙부가 내 공을 가로챘어!”

시현이 들고 간 기획, 김석영씨와 박원일 판사를 화해시킨 3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만든 것은 결국 유석정 PD이었다.

유석정 PD의 조카이자 초짜 방송작가인 유정미는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움직일 힘이 없었다.

그래서 시현의 기획을 그녀가 들고 갔을 때 실제로 제작에 나선 것은 예능국의 간판PD인 유석정 PD이었다.

그런데 유정미는 그걸 자신의 공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말인데 탐정! 숙부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

“…복수 말입니까?”

“그래! 숙부가 죽거나 다쳐서 실권을 잃어버리면 내가 피 보니까 그건 싫은데 어쨌건 숙부에게 조카의 공을 빼앗은 죄는 물어야겠지?!”

‘조카의 공이라.’

듣고 있던 류하리가 실소했다.

사실 기획과 섭외를 다 끝낸 건 시현인데?

게다가 유석정 PD는 어쨌건 조카인 유정미에게 몇몇 각본을 맡겼다.

메인 각본가가 아니라 서브 각본가로서 데려온 것이고 유정미의 취향이 워낙 괴팍하기 때문에 실제로 기여도는 전체의 약 5%도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에 이름을 올려주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특혜를 준 것이지 조카라고 뜯어먹었다고 할 수는 없다.

‘본인도 숙부 없어지면 개털될 걸 알면서 저러네. 진짜 싸가지가 없다.’

류하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타고 있는 차에서 티백을 건졌다가 그걸 손으로 잡고 꾸욱 짜서 잔에 엑기스(?)를 더해주었다.

‘침을 뱉거나 하는 것보다는 뭐… 약간의 소금기를 더해서 차의 풍미를 끌어올려줬다고 하자.’

류하리가 차를 내려 할 때 시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인이나 납치, 폭력 청부 같은 건 받지 않습니다만?”

“아니 당신도 내 덕분에 그 프로그램 만들 수 있었잖아? 이렇게 미녀에 재지가 넘치는 아가씨가 못된 숙부에게 재능을 갈취당하고 있는데 불쌍하지도 않아?”

“흠.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유석정PD의 연락처를 죄다 알려주시지요.”

“뭐? 음. 왜? 업무상 연락처는 당신도 알 거 아냐? 이번 프로그램 제작할 때 섭외는 당신이 한 걸로 되어있으니까.”

당신이 한 걸로 되어있는 게 아니라 시현이 섭외한 거 맞다.

시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 다른 방법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업무상 전화번호 말고 다른 번호도 갖고 계실 텐데 그쪽으로 연락해야 제 연락을 받으실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야.”

유정미는 시현에게 유석정 PD의 연락처와 주소를 알려주었다.

“이게 업무 휴대폰이고 이건 가족휴대폰. 그리고 이건 오피스 내에서만 쓰는 워크인 폰 번호야.”

“네 감사합니다.”

“좋아. 탐정 당신 수완을 믿어! 숙부에게 뭐라고 해주라고!”

“네네.”

유정미는 신나서 나갔다.

“와 잠깐만요.”

류하리는 엑기스(?)를 더한 차를 마시지도 않고 떠나버리는 유정미에게 당황했다.

“차까지 타주시고 번거롭게 했군요. 류 경위님.”

시현은 그리 말하고 류하리가 엑기스(?)를 더한 차를 집어 들었다.

“아, 아니!”

류하리가 말리려 했지만 시현은 한 모금 차를 마셨다.

“음. 화장품 냄새가 약간 나는 군요.”

“아…하하하.”

류하리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경찰은 어떻습니까?”

“일단 소강상태에요. 사이다패스는 과연 그, 더 안 움직이는 것 같은데.”

“여론은 어떻죠?”

“뭐 사람들이 사이다패스에게서 좀 많이 떠났어요. 하지만 대중들이라는 게 언제나 그렇듯 일시적인 거겠지요.”

“흠.”

시현은 다시 차를 마셨다.

“그런데 유정미 저건 어쩔 거예요? 정말 저 철딱서니 없는 애를 위해서 일할 거예요?”

“그럴 리가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녹음기능이 켜져 있었다.

“음성대화를 좀 정리해서 숙부인 유석정 PD에게 보내줄 생각입니다.”

“아하.”

“뭐 숙부와 조카사이니까 이정도로 큰일 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앞으로 조카라고 너무 많은 혜택을 주는 건 좀 자제하게 되겠지요.”

“그렇겠네요.”

류하리는 저 건방진 유정미가 세상의 쓴맛을 조금이라도 맛보게 될 거라는 생각에 기뻐했다.

“그런데 혹시 최형림 검사와는 그 후 만났습니까?”

“아, 아뇨?”

류하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 선배님도 아마 바쁠거에요. 사이다패스 사건 때문에 검찰이 완전히 거덜 나서….”

검찰도 경찰들과 마찬가지로 사이다패스 사건 때문에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서 밀린 업무도 많고, 몇몇 검사들은 사이다패스를 피해서 일찍 그만두기까지 했으니….

이래저래 이번 사이다패스 사건은 경찰과 검찰, 심지어 법원에 종사하는 이들 모두에게 막대한 타격을 준 셈이다.

“뭐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만 최형림 씨에게 제가 의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말하거나 너무 티내거나 하진 마시고 평소처럼 행동하시면 됩니다.”

“평소처럼 말이군요.”

“네.”

“안심하세요. 그런 거 매우 잘하니까.”

“…그렇게 말하니까 불안해지는 군요.”

시현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타자기가 갑자기 종이를 쳐대기 시작했다.

‘온다!’

“어?!”

“…흠. 손님이 오나 보군요. 집기를 부수기 싫으니 나가서 마중해야겠군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온다는 거예요?”

“사이다패스겠지요.”

“네?”

류하리는 그 말을 듣고 당황했다.

사이다패스는 끝난 거 아니었나?

그런데 직접 찾아오다니?

“제가 부를 때까지 절대 나오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저 타자기 옆에 서 계세요.”

“네?”

“명심하세요. 절대입니다. 아 혹시 싸우는 게 보고 싶으면 창문 근처에서 보시면 됩니다. 타자기를 창문 옆에 두고 보시면 됩니다.”

“….”

그 전까지 시현은 류하리가 타자기 근처에 서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오히려 타자기 옆에 서라니?

* * *

사무실 건물 앞 골목에는 이상하게 인기척이 없었다.

시현은 그 앞에 서서 주머니를 뒤적거려 젤리 봉투를 하나 꺼내서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젤리를 입에 털어 넣고 고개를 내리자 어느새 그의 시야 안에는 사이다패스가 들어와 있었다.

방독면을 쓰지 않고 맨얼굴을 드러낸 소녀가 광기가 감도는 눈으로 시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 탐정 씨. 데드맨이라고 불러야 하나?”

“편하신 대로 부르시길.”

시현은 빈 젤리봉투를 구겨서 주머니 안에 쑤셔 넣었다.

“성취 사건 이후로 직접 보는 건 간만이로군요.”

“그래, 데드맨. 이번에는 좀 심하지 않았어? 이따위로 내 일을 방해하다니 말이야.”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저는 당신을 오히려 응원하는 쪽입니다.”

“아?”

“당신이 저와 계약할 이들을 미리 치워놓으면 치워놓을수록 제가 해방될 확률이 높아지지요. 이건 진심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있으면 당신이 좋다 이거네? 그런데 왜 내 일을 방해했어?”

“시현 탐정사무소는 언제나 고객만족이 최우선이기 때문이지요. 고객이 원하면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아 그래?”

사이다패스는 몸을 웅크리고 고무망치를 빼들었다.

“아무래도 날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은데?”

“…하아. 육탄전은 그렇게 현명한 선택이 아닐 텐데요?”

시현이 그렇게 말했을 때 사이다패스가 뛰어들었다.

그녀는 무서운 기세로 시현을 향해 뛰어들어 고무망치를 휘둘렀지만 시현은 가볍게 몸을 옆으로 틀어 그녀의 공격을 피해버렸다.

지금까지 초탄이 전부 빗나간 적 없는 사이다패스는 자신의 공격을 피해낸 시현에게 깜짝 놀랐다.

“윽!?”

시현은 그녀의 머리로 발차기를 넣었다. 놀란 사이다패스가 양팔을 교차시켜 머리를 막았지만 시현의 하이킥은 페인트였다.

사이다패스의 몸통에 시현의 킥이 꽂혔다.

“크악!”

사이다패스가 그대로 튕겨나가 저 멀리 골목 담벼락에 충돌했다가 쓰러졌다.

“아 이런.”

시현은 발차기의 결과를 보고 쓴 웃음을 지었다.

“저도 본격적인 육탄전은 간만이라, 보통 사람은 죽을 정도로 쳐버렸군요. 하지만 당신은 괜찮겠죠?”

“….”

사이다패스가 벌떡 일어났다.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어떻습니까?”

“날 너무 우습게 보는데?”

사이다패스는 바닥에서 맨홀 뚜껑을 뜯어내어 빙글 한 바퀴 돌더니 시현에게 집어던졌다.

“아 이런.”

시현이 맨홀 뚜껑을 피하자 맨홀 뚜껑이 콘크리트 블록으로 만들어진 담벼락에 박힌다.

그 파편들이 튀는 가운데 사이다패스는 시현에게 돌진해 망치를 휘둘렀다.

시현이 이번에도 그 망치 공격을 피하고 발차기를 날렸지만 사이다패스 또한 발을 찼다.

둘의 다리가 허공에서 교차하고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

-퉁!

시현이 뒤로 날아가 담벼락에 충돌하고 사이다패스도 절뚝거리며 지면위로 쓰러졌다 굴러서 일어났다.

둘 다 다리가 부러졌다.

하지만 시현이 날아간 거리가 명실상부하게 더 멀다.

체중이라면 오히려 남성인 시현이 더 나갈 텐데도 시현 쪽이 튕겨나간 것이다.

“으음….”

시현이 신음하며 다리를 붙잡았다.

“하하하하하.”

사이다패스는 부러진 다리로 땅을 디뎠다.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부러져있던 다리가 흐릿해지더니 어느새 멀쩡한 다리로 돌아와 있었다.

반면 시현은 뼈가 튀어나온 개방골절 상태에서 다리뼈를 억지로 피부 안쪽으로 쑤셔 넣고 있었다.

명실상부, 시현 쪽이 수복이 느리다.

“당신보다 내가 더 강하다니까.”

“그런 것 같군요. 하지만….”

시현은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충고하는 데 계약자끼리 이렇게 싸우는 건 그렇게 현명한 짓이 아닙니다.”

“알게 뭐야. 사사건건 방해하는 데 당신을 치워버리고 내 선언대로 이 땅에서 쓰레기들을 지워버릴 거야!”

사이다패스는 다시 시현에게 뛰어들어 시현의 머리를 고무망치로 후려갈겼다.

그러나 시현은 그 순간 왼팔을 아래에서 위로 무슨 채찍처럼 휘둘렀다.

-텅!

고무망치가 시현의 전완을 찍어 부러뜨리고 또 개방골절을 일으켰다.

하지만 시현은 팔에 체중을 싣지 않고 채찍처럼 휘둘렀기에 팔이 찢어져 개방골절을 일으키건 말건 상관없이 다음 동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푸악!

왼팔을 망치에 던져 버린 시현이 오른팔로 관수(貫手)공격을 펼쳤다.

시현의 관수가 사이다패스의 목덜미를 찍고 뒤까지 관통했다.

-우드드득!

시현은 손을 비틀며 손가락으로 목덜미의 살점을 한 움큼 집어파고 뜯어냈다.

사이다패스의 목을 절반 이상 뜯어낸 무시무시한 일격이었다.

“큭?!”

사이다패스의 무릎이 꺾인다.

그녀가 시현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데, 데드맨….”

“신체능력이나 재생력 면에서는 당신이 더 강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이런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군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주저앉은 사이다패스의 반쯤 뜯어진 목덜미를 향해 손날을 도끼처럼 휘둘렀다.

-투확!

사이다패스의 머리가 잘려나가 아스팔트 위를 굴렀다.

경악의 눈을 크게 뜬 사이다패스의 머리가 지면을 구르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멈춰 섰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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