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데드맨VS사이다패스 #11
“윽!?”
류하리는 시현이 맨손으로 사람의 목을 찢고, 그걸로도 모자라 아예 수도로 참수를 해버리는 걸 보며 기겁했다.
시현이 계약자라서 보통 인간을 넘는 괴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니 그 전에 사람을 참수해버리다니! 사, 살인이잖아? 대체 어쩌려고?’
류하리는 시현이 사이다패스를 죽여 버리는 걸 보며 당황했다.
경찰로서 체포해야 하나? 하지만 시현이 아니라면 또 누가 저렇게 사이다패스를 막을 수 있을까?
그녀가 망설이다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피가 없어?’
시현은 상처에서 피를 흘리지만 사이다패스는 피를 흘리지 않는다.
게다가 잘려져서 날아갔어야 할 머리가 없다.
분명히 머리가 잘려서 날아가는 걸 봤는데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사라져 있었다.
“시현! 위험해요!”
류하리가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시현에게 경고했다.
그러나 시현은 망가진 몸을 추스르는데 정신이 팔린 것처럼 보였다.
* * *
시현은 고무망치에 맞아서 박살나다시피 한 왼팔을 맞추고 있었다.
뼈가 부러지면서 날카로운 단면이 옷을 찢고 튀어나와 있었다.
그는 그 팔뼈를 억지로 안으로 쑤셔 넣고 오른 손을 보았다.
그의 오른 손도 상태가 좋지 않다. 관수로 사이다패스의 목뼈를 부러뜨리고 인후와 혈관을 완전히 찢어발긴 대가로 중지와 무명지가 부러져서 기이하게 뒤틀려 있었다.
시현은 입을 벌려서 손가락을 물고 한 번 우두둑 당겨서 부러진 손가락을 뺐다가 주먹을 쥐어서 억지로 손가락을 맞췄다.
“크으….”
몸이 무서운 속도로 재생되고 있지만 사이다패스의 공격은 맞았다 하면 기본이 개방골절이라 치유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여기저기 망가진 곳이 많으니 특히 재생이 더욱 더뎌진 것 같다.
그때 시현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픈가? 데드맨?”
사이다패스는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시현과 달리 멀쩡한 몸이었다.
“네. 통증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거 참 안됐군.”
사이다패스가 음습한 웃음을 지었다.
“당신의 몸통과 머리를 분리해서 머리는 어디 다른 데 버리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졌는데?”
“충고하지만… 그만두는 게 좋을 겁니다.”
“흥. 당신도 그 남자와 똑같은 말을 하는 군.”
사이다패스는 시현에게 달려들어 망치를 휘둘렀다.
시현이 그녀의 공격을 피했지만 아직 몸이 온전히 수복되지 못한 그는 휘청거리면서 피했고 균형 회복이 늦어졌다.
휘청거리는 시현을 향해서 사이다패스의 킥이 꽂혔다.
-텅!
시현의 몸이 붕 떠서 뒤로 나가떨어졌다.
“크악!”
시현이 통증으로 몸을 비틀었다.
늑골이 여섯 대는 부러졌을 것이다.
“아무래도 당신도 나도 불사신인 것 같지만 우리 둘의 불사의 성격은 좀 다른 것 같아. 그렇지?”
시현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며 사이다패스는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으윽.”
시현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지금 그만두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될 겁니다.”
“음. 미안하지만 그런 허풍에 속을 만큼 멍청이는 아닌걸? 누가 보더라도 지금 당신이 다 죽어가고 있잖아? 안 그래?”
사이다패스는 그리 말하고 또 한걸음 내딛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어?”
사이다패스는 자신의 코를 만져보았다.
그녀의 코에서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뭐….”
“아무래도 본체에 영향이 가기 시작한 모양이군요.”
“뭐라고? 본체라니….”
“당신은 악마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나보군요. 설마 제게 직접 육탄전을 걸어오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대체? 어?”
사이다패스는 갑자기 밀려드는 오한에 몸을 떨었다.
그녀가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떠는데 윗니와 아랫니가 충돌해 딱딱 거린다.
마치 냉동 창고 안에 들어간 것 같다.
“추, 추워….”
“…….”
시현은 한숨을 내쉬고 손을 들었다.
“류 경위님. 타자기를….”
“네?”
“타자기를 던져요!”
“그, 그래도 돼요?”
“네.”
시현이 말하자 류하리가 타자기를 들었다.
타자기가 타다닥 글씨를 쳐댔다.
[서, 설마? 제정신인가? 데드맨!?]
“으 조심해서 받아요!”
류하리는 타자기를 시현에게 던져주었다.
시현이 타자기를 받아들었다.
“으윽….”
코피를 흘리며 주저앉아있는 사이다패스가 눈을 치켜뜨며 시현을 바라보았다.
처음의 적개심은 간 데 없고 지금 여기에 있는 건 고통스러워하는 한 소녀였다.
뭐 그러다가도 몸이 괜찮아지면 언제든지 사람들을 찢어죽일 수 있는 흉악한 존재긴 하지만.
“오해할 까봐 하는 말인데… 도와주는 겁니다. 지금 이건.”
시현은 그리 말하고 타자기를 양손으로 고쳐 잡고 밑바닥이 앞으로 오게 했다.
“으….”
“그럼!”
시현은 타자기를 크게 휘둘러 사이다패스의 머리통을 쳐버렸다.
사이다패스와 타자기가 충돌하는 순간 사이다패스는 사라져 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텅 빈 허공에서 시현이 타자기를 크게 붕 휘두르다가 휘청거렸다.
-타다다닥!
타자기가 그 순간에도 글자를 쳐댔다.
[아, 안 돼!]
시현은 타자기를 머리 위로 치켜들어 타자기가 땅에 긁히지 않게 조심하면서 균형을 잡았다.
“괘, 괜찮아요?”
류하리가 계단으로 뛰어내려와 시현을 맞이했다.
“으음. 간만에 격통을 단시간에 여러 번 겪으니 저도 정신이 혼미해지는 군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타자기를 든 채로 걸어갔다.
“어떻게 된 거에요?”
“뭐, 사이다패스는 영체였습니다.”
“영체요?”
“네. 본체가 아니라 영체….”
“…네?”
황당한 이야기지만 류하리는 이미 시현과 함께 과거의 화천도 다녀온 몸이다.
“그럼 본체가 따로 있다는 이야기군요.”
“네. 그래서 그녀는 불사신인 거지요. 저와 달리.”
“당신은….”
“수명이 남아있는 한 죽지는 않습니다. 다만 수명이 깎이긴 하죠.”
시현은 그리 말하고 부러졌던 팔다리를 주물렀다.
“으음… 뼛 속이 간지러운 이 느낌… 매번 겪지만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군요.”
“그래서 왜 타자기로 후려쳤나요?”
“악마의 매개체인 타자기는 어지간한 영체쯤은 가볍게 없애버릴 수 있거든요.”
“그럼 당신이 타자기 옆에 붙어있으라고 한 건….”
“만약의 경우 타자기 곁에 있으면 계약자의 영체가 건드리진 못할 테니까요. 하지만 저도 설마 이렇게 타자기를 둔기로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부서지진 않았겠죠?”
-타다다닥.
타자기가 글자를 쳐댔다.
[부서지진 않았음. 다만 종이 비틀어졌음.]
‘평소랑 말투가 다르네.’
류하리는 악마도 당황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긴 그 커다란 타자기를 들어서 후려갈길 줄이야.
“사이다패스는 어떻게 된 건가요? 죽었나요?”
“아니요. 죽을 것 같기에 해제시켜 준 겁니다. 온라인게임에서 버그로 어디 끼여 있는 사람을 GM이 리셋시켜줬다. 뭐 그렇게 생각하셔도 되고요.”
“네? 죽을 것 같았다고요?”
“예. 그냥 내버려뒀으면 본체가 죽었을 겁니다. 왜요? 죽게 내버려둘 걸 그랬나요?”
“아니 그, 그런 걸 원한 건 아니지만 그럼 사이다패스 이거 또 그런 짓을 벌일지도 모르잖아요?”
“뭐 한동안은 쉬겠지요. 아, 저도 좀 쉬어야 겠는데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류하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류하리가 생각난 듯이 시현의 손에 사탕을 올려놓았다.
시현이 그 사탕을 입에 까 넣으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아까 전 차에 뭐 넣었습니까? 침 뱉었습니까?”
“아 아뇨. 손으로 좀 티백을….”
“흠.”
“괜찮아요?”
“뭐 독약 넣은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다음부터 그런 장난은 하지 마세요.”
“원래는 유정미 작가 그 사람에게 먹이려고 한 건데.”
“그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만.”
“아하하하.”
“그래도 하지 말고 반성하세요.”
“네.”
* * *
최형림은 녹초가 되어서 법정을 걸어 나왔다.
검찰 수사관 두 명이 감동한 표정으로 그를 뒤따르고 있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최검사님!?”
“오, 오늘 재판이 너무 많이 밀렸었는데… 수고 하셨습니다.”
“아뇨 뭘요. 제가 했어야 할 일인걸요. 수사관님들이 오히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뇨.”
“검사님 덕분에 그나마 체면치레 했습니다.”
“최검사님 수사 지휘 없었으면 그르칠 뻔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하하하. 아닙니다. 뭐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최형림은 자신에게 감격한 검찰 수사관들에게 손 사레를 치며 걸어가다 벤치에 앉았다.
“후우… 아 혹시 죄송합니다만 커피를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커피 말입니까?”
“예. 물론 업무비로.”
최형림은 업무비용 카드를 내밀었다.
검찰 수사관들이 기꺼이 그의 카드를 받아들고 사라졌다.
최형림은 벤치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었다.
“으흑…흑흑….”
그런 최형림의 곁에는 어느새 와있었는지 사이다패스가 와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을 듣지 않더니만… 어땠습니까? 보아하니 역시 재미를 보지 못한 모양이로군요.”
“뭐야 이건…. 그놈은 대체 뭐냐고? 분명히 내가 이기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악마에게 버림받을 뻔 했습니까?”
최형림이 그리 물어보자 사이다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말했잖습니까. 당신은 악마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알려줘. 어째서 이런 거지?”
“악마들은 인간성을 사랑합니다. 그게 문제지요.”
“그게 왜?”
“한 인간의 인간성은 오직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니까요. 배부르고 안전할 때의 인간성이란…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바닥을 드러내는 하찮은 인간들이 있지만 평소에는 가장 선량한 사람도 한계에 몰렸을 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저들이 인간성을 사랑한다는 건 인간에겐 더할 나위없이 끔찍한 재앙인 것입니다.”
“……….”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는 건 그런 겁니다. 당신은 그 위험성을 전혀 모르고 크리스마스 선물 받은 어린아이처럼 그저 받은 힘에 취해서 좋아죽더군요?”
“…….”
“왜 제가 당신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지 이제 좀 알겠지요? 당신은 자신이 처한 상황도 이해못하면서 당신보다 훨씬 더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고, 그래서 악마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계약자인 데드맨에게 무모하게 도전한 겁니다.”
“그가 악마들에게 인기가 많아?”
“네. 미카엘이 그를 볼 때마다 갖고 싶어서 안달하는 걸 보면 잘 알지요.”
“………”
“반면 당신은… 어째서 1차 계약자인지 모를 정도지요. 누군가를 증오하고 죽이고 싶다. 그런 욕망은 발에 치일 정도로 흔한 욕망입니다. 뭐 흔한 만큼 강렬한 욕망이라서 다들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데드맨과 당신, 악마들 입장에서 둘의 가치는 비교할 것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데드맨을 제거하려면 오직 당신의 계약 안에서, 당신의 원칙 안에서 그를 제거해야 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런 걸 알지? 당신은 계약자도 아니잖아?”
“저는 계약자는 아니지만….”
최형림은 쓴웃음을 지었다.
“계약의 산물이지요.”
“산물?”
“복잡한 집안 사정입니다. 이건 별로 말하고 싶지 않군요.”
“그런 식으로 말을 안 하니까 내가… 으윽….”
사이다패스는 갑자기 몰려오는 고통과 피로에 신음했다.
“저, 정신을 못 차리겠어.”
“한동안 쉬세요. 어차피 지금은 여론도 좋지 않습니다. 사이다패스로서의 활동은 잠시 쉬고 시간과 여론이 다시 우리 편이 될 때까지 잠들어 계시길. 그동안 저는 인간의 영역에서 싸울 테니까 말이지요.”
“으으….”
사이다패스는 최형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