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42화 (142/269)

제142화

악마의 숭배자 #1

사이다패스가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특히 김석영 오심사건의 가장 큰 책임자인 박원일 판사를 살해하지 않고 사라진 것에 대해서는 인터넷의 여론에서도 많은 설왕설래가 있었다.

* * *

‘당사자가 용서해버렸으니 남인 사이다패스가 뭐 함부로 손을 대겠냐? 손대면 더 이상 사이다가 아니라고.’

‘아니 그런데 그럴 거면 다른 경찰이랑 검사는 왜 죽였냐? 그들도 당사자를 만나면 사과했을 수도 있는데? 물어보지도 않고 죽였잖아?’

‘그런 식이면 애당초 인간이 지 멋대로 남들을 심판하고 죽여 대는 게 문제다. 다른 사람들도 당사자랑 화해하면 안 죽이고 남겨뒀을 거 아냐?’

‘쳇! 죽이겠다고 칼 뽑고 있으면 누구라도 사과하지. 그런데 진심이 있겠냐?’

‘역으로 말해서 사이다패스가 있으면 다들 사과하겠네. 그건 좋다.’

‘모든 대한민국 사람 다 커버 가능하다면 말이지.’

‘여하튼 사이다패스도 실수를 한다. 이러니까 사적제제는 안된다니까.’

‘아무리 세상이 엿 같아도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거지. 법은 지키고 살아야 해.’

‘위엣 놈은 퍽이나 규칙을 잘 지키고 살았겠네? IP부터 VPN인데 이거 불법이거든요?’

‘잘 지키고 살았거든? 불법 아냐. 이거.’

‘어쨌건 사이다패스가 경솔했다. 사람이 업무 중 실수한 건지 작정하고 누명 씌운 건지 잘 알아보지도 않고 판검사 걸렸다니까 그냥 신나서 가차 없이 죽인 거 아니냐?’

‘죽은 사람만 억울하지.’

‘사이다패스는 혹시 고시 공부하다가 사법고시 없어져서 열폭하는 장수생이 아닐까? 난 장수생인데 이 새끼들은 판검사다 이거지. 빡 돈다. 뭐 그런 거 아냐?’

‘정말 그러네. 판검사에 열등감 보이는 게 딱이다.’

* * *

이렇게 과거에는 온통 사이다패스를 지지하던 여론이 대세였다면 이제는 사이다패스의 경솔함을 지적하는 이들, 사이다패스의 근본부터 잘못되었다고 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일단 사이다패스가 한 번 물러나서 스스로 잘못했음을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사이다패스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목소리에 이견을 내는 이들이 적은 건 당연하다.

여론이 이리 반전되니 사이다패스에게 청원하는 사람도 없어졌고….

그게 아니더라도 사이다패스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으니 휴식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최형림이나 아는 사실이지 검찰과 경찰은 사이다패스가 잠잠해질 때까지 2주간을 계속 경계태세를 유지하다 그제야 겨우겨우 경계를 풀고 일상 업무에 복귀했다.

마침내 찾아온 일상, 하지만 검찰과 경찰에겐 이제부터가 격무의 시작일 뿐이었다.

사이다패스가 검찰과 경찰을 공격하면서 그동안 내팽개쳤던 일들이 이제 막혀있던 둑이 터진 것처럼 쏟아져 내렸다.

* * *

최형림은 법원의 카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 혼자서 거의 10건의 기소를 맡았다.

재판 하나하나는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걸렸지만 검찰 수사관들이 준비한 자료를 보고 사건을 파악하고 미비한 서류들이나 조사들에는 수사 지시를 내리고 관리해야 하는 게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 사건 한 사건에 누군가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인생이 걸려있는 것이다.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최형림은 한숨을 내쉬며 커피를 마셨다.

“조금이라도 좀 쉬었으면 좋겠군. 시간이 너무 부족해.”

“그런가?”

그때 갑자기 그의 맞은편에서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주위의 모든 시간이 멈췄다.

최형림은 혼자 멍하니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법원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마네킹처럼 굳어있다. 서류봉투를 떨어뜨린 사람의 손에서 떨어지는 서류봉투가 공중에 멈춰서 있는 걸 보니 확실히 시간이나 사물들이 멈춘 것 같았다.

“이상하군요. 정말 시간이 멈췄다면 빛이 제 시신경에 닿지는 않을 텐데 사물들이 그대로 보이다니 말입니다. 광자는 그대로 전진하고 있는 겁니까?”

최형림이 그렇게 말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법원 1층 카페의 의자에는 미카엘이 앉아있었다.

“시간을 멈춘 게 아니야. 시공간의 한 단면에 갇혀있는 거지. 빛은 시신경에 전달되는 게 아니라 당신의 머릿속에서 오작동해서 보이는 거야. 하지만 우스운 일이군. 자신의 야욕을 위해서 불법적인 살인을 종용하는 자가 또한 이다지도 사명감에 불타고 있다니 말이야. 너무 검사 일에 열심인 거 아냐?”

미카엘은 그리 말하고 미소를 지었다.

“검사로서의 제 사명감과, 야욕은 또 별개의 문제니까요. 사람들은 종종 직업윤리가 투철한 사람이 인간성이나 다른 모든 면에서 훌륭할 거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인간성이란 정말 다양한 방향에서, 다양한 차원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게 당신들을 매료시키는 부분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이거 참.”

“그런데 저, 잠깐 한숨 좀 붙이고 나서 이야기해도 됩니까? 시공간을 잘라 내다니 여기서 푹 자고 업무에 복귀하면 좋겠군요.”

“아무리 내가 호의를 보인다지만 그렇게 무임승차를 하면 안 되지. 너무 바쁜 것 같아서 잠깐 숨 돌리게 하려고 해줬을 뿐인데 이 이상 날 호구로 보진 말자고. 계약자도 아니잖아?”

“제가 당신이랑 계약했으면 벌써 옛날에 데드맨에게 들켰겠죠. 그는 눈으로 상대를 파악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엔 데드맨에게 한 방 크게 먹었군.”

“제가 먹은 게 아니라 사이다패스가 먹은 거지요. 저는 오히려 기쁩니다. 이제 그 야생마 같은 사이다패스가 제 말을 좀 더 잘 들을 테니까 말이지요.”

최형림이 그리 말하자 미카엘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최형림의 말이나 태도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데드맨이 당신과 만나는 장면을 목격한 덕분에 절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걸 좀 벌충해주시지요.”

“알겠어. 다른 검사들도 접대하면 되겠지? 당신만 만났다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도록 말이야. 그런데 다른 검사들은 이미 접대하고 있는데? 그걸 데드맨에게 보이도록 과시해야 하나?”

“네, 너무 티내지 않게 자연스럽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효과는 별로 없겠지만 말이지요.”

최형림은 미카엘이 그런 연막작전을 쓰더라도 시현이 자신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는 저와 비슷한 인간이니까요? 그래도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서 나쁠 건 없겠지요.”

“흠… 역시 당신도 재밌어. 어쩌면 데드맨 이상의 대박이 될 수도 있겠군.”

“기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뭐 응원하고 있으니까 힘내라고.”

미카엘은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잠시 후 모든 세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변태 녀석.”

최형림은 미카엘이 있던 자리에 그리 말하고 눈을 감았다.

* * *

검찰 수사관들이 커피를 들고 왔다.

“최검사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아 예. 앉아있었더니 좀 낫군요. 후후. 그보다 부탁한 건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확인해보시면 가 있을 겁니다.”

“그랬군요.”

최형림은 쓴 웃음을 지으며 휴대폰을 조작해 메일에 첨부된 시현의 정보파일을 열었다.

시현의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 초본, 계좌정보, 자격증 일람, 학력 밑 특이사항 일람 등이 자세히 담겨있는 파일이었다.

“금융정보 추적 영장은 신청하지 않았는데요….”

“아~하하하. 아시면서. 없는 파일입니다. 그거.”

공식적으로는 준 적 없으니 보기만 해라.

수사관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최형림은 쓴 웃음을 지으며 파일을 열어보았다.

‘애초에 지금 하는 행동 자체가 영장 없이 해서는 안 될 일인데 금융계좌정보 있다고 놀라는 것 자체가 헛소리 아닌가. 나도 참 성격이 나쁘군. 응?’

최형림은 파일을 훑어보고 당황했다.

‘돈이 엄청… 세금을 많이 내네? 이 정도면 우수 납세자 랭킹에 오르겠는데? 아니 놀라운 건 이게 아니라.’

최형림은 시현의 가족 정보가 불상으로 되어있는 것에 당황했다.

시 씨는 희귀 성씨로 대한민국에 다해서 2500명 정도 밖에 없다.

그런데 가족 정보가 불상이라니?

부모가 10대 초반에 둘 다 실종처리 되었는데 둘 다 무슨 국정원 요원이라도 되는지 기록에서 아예 삭제가 되어 있었다.

‘검찰에서 못 열어보게 지워져 있다니. 어떻게 된 거야? 이거? 정말 국정원 요원이라도 되나? 게다가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과정을 수료하고 바로 S대 탐정학과 학사라니?’

시현의 능력이 탐정학과에서 배운 것이라니 말도 안 된다.

탐정학과에서 가르쳐 주는 것만으로는 어디까지나 초보적인 실무입문뿐.

시현의 능력은 탐정학과에서 가르쳐줄 수 있는 걸 한참 뛰어넘어있었다.

‘좀 더 조사해봐야겠군. 적은 나를 아는데 나는 적을 모르니 말이야.’

최형림은 혀를 차고 검찰 수사관들을 돌아보았다.

“내일은 재판이 몇 건 있지요?”

“…11건입니다.”

“하아.”

“이야. 최형림 검사님은 정말 검찰의 귀감입니다.”

“진짜 검사지요. 진짜. 아 혹시 제 여동생 만나보시겠습니까?”

“…사양하겠습니다.”

최형림은 자신에게 농을 걸어오는 검찰 수사관들에게 그리 말하고 일어났다.

* * *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 속에서 최형림은 재판에도 출석하는 한 편으로 사이다패스의 김석영 오심사건 개입에 대한 보고서를 써야 했다.

합동수사본부의 실무 팀을 맡으면서 서부지검의 업무도 소홀히 하지 않다니 그것만으로도 정말 최형림의 평가는 수직으로 급상승, 아니 이미 동기들 중에서는 최우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이다패스 합동수사본부의 본부장, 천용덕 검사는 최형림을 불렀다.

“요새 건강은 좀 괜찮나? 쉬엄쉬엄하게. 어차피 이 사이다패스 사건에 대해서 보고서로 쓸 만한 게 그리 많지도 않으니 말이네.”

사이다패스 사건을 접하면 접할수록 관련자들은 자신들의 무능함, 무기력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은 사이다패스의 털끝도 입수하지 못했다.

어떻게 밀실에서 사람을 죽이는 지도 검증하지 못했고 다만 사이다패스가 사람들의 민심이나 여론에 민감해서 당사자가 화해하고 용서하면 더 이상 살인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낸 게 유일한 소득이었다.

“그래도 법무부 장관님께 보고해야 할 만큼은 문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 열의는 알겠네. 하지만 좀 쉬게. 그리고… 원한다면 특수부나 청와대 쪽으로 빼줄 수도 있네. 그렇지 않아도 그쪽에서 추천이 좀 들어와서 말이지.”

특수부는 검찰 권력의 핵심중의 핵심이고 청와대는 정치적 기반을 쌓는데 매우 중요한 커리어다.

형사부 검사에게 이런 제안이 온다면 다들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승낙할 것이다.

그러나 최형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데드맨3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