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3화
악마의 숭배자 #2
아마도 이게 사이다패스 사건을 겪은 관료사회의 반응일 것이다.
여론은 관료사회의 무능을 질타하고 있지만 과학수사의 상식을 벗어난 초능력자를 어떻게 잡겠는가?
“그래도 그건 영전 아닙니까. 저는 엄연히 패장인데 문책도 아니라 오히려 영전이라니….”
“문책성 인사 후 바로 영전하는 관료나 공무원이 지금까지 없었던 것도 아닌데….”
“하지만 제가 집안이 좀 그래서 언론에 더 안 좋게 비칠 수 있을 겁니다.”
“…그런가.”
천용덕 검사는 최형림의 말에 내심 감탄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좋다고 달려들 것을 극구사양하다니. 이놈은 참 사람이 되었다. 할 수만 있다면 사위삼고 싶을 정도로군. 하지만 내 딸은 이제 초등학생인데….’
물론 최형림의 생각은 달랐다.
‘사이다패스가 자기 계약과 상관없이 성질머리를 죽이지 못하고 데드맨과 충돌했지만 아직 죽거나 소멸한 건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제 말을 잘 들을 테니 써먹기 더 좋은 패가 되었지요. 그런데 굳이 여기서 다른 곳으로 옮길 이유는 없지요. 지금 청와대로 영전해봤자 당장은 좋겠지만 그 정도로는 결국 제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아직 데드맨도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데….’
그때 천용덕 검사가 초대장을 하나 주었다.
“그럼 날 대신해서 이번 주말에 여기라도 좀 가주겠나?”
“예?”
“경기도 여주에 레반테스 리조트 클럽하우스에서 전 서울지검장을 역임했던 김인식 의원이 출간기념회를 한다는데 초대장이 와서 말이네.”
“네? 그런 자리에 제가 가도 되겠습니까?”
“아니 아마 젊은 검사들 상당수를 불렀을 거야. 자네 검사실에도 따로 초대장이 가 있을걸.”
“아 네.”
최형림은 어떻게 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미카엘이 최형림의 부탁대로 좀 티내게 다른 검사들을 접대하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최형림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시치미를 뚝 뗐다.
“그런데 자네 골프 좀 치나?좀 칠 것 같은데?”
“어린 시절에 약간 했습니다만 취미가 아니라서 금방 그만뒀습니다.”
“여하튼 자네가 가겠다면 업무량도 좀 배려해 줄 테니까 다녀오게. 이번에 수고 많이 했어.”
천용덕 검사는 최형림이 일하는 모습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여러모로 배려해주었다.
* * *
경기도 여주 시에 위치한 레반테스 리조트는 서울에 가까우면서 훌륭한 골프시설을 갖춘 클럽이라 인기가 높았다.
이런 곳의 클럽하우스에서 출간기념회를 가지다니 책을 무슨 100만부를 팔더라도 남는 게 없을 판이다.
물론 이 출간기념회는 레반테스 리조트의 오너 측의 배려가 있어서 사실상 거의 공짜에 가깝게 비용이 책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초대장을 가지고 온 손님들에게는 최신형 휴대폰과 스마트워치가 선물로 제공되었다.
“와….”
성신아는 으리으리한 레반테스 리조트의 모습에 놀라고 자신에게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최신예 휴대폰을 선물로 주는 주최 측의 통 큰 모습에 다시금 놀랐다.
“정말 이거 받아도 되는 건가요? 고, 법에 위배되는 게 아닌지?”
성신아는 당황하면서 최형림에게 물어보았다.
“마음에 안 드시나 보군요?”
“아뇨 그건 아닌데 뒤탈이 날까 봐 걱정 되어서요.”
“명분은 어디까지나 신제품의 컨슈머 테스트입니다. 정해진 기간 동안 사용해서 유저들의 반응을 알아본다는 거고 이후 원칙상으론 반납하게 되어있습니다.”
“아, 반납해야 하나요?”
“보통 반납하지 않지요. 이 기계를 뿌리는 대리점은 여기 리조트 그룹에서 만든 대리점입니다. 추후 반납한다고 되어있어서 뇌물이 아니라고 법을 피해가는 거지요.”
“…아.”
“아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게 수를 썼을 겁니다. 뭐 여기 골프 클럽을 유지할 정도의 그룹입니다. 휴대폰 약간 뿌리는 것 정도는 지출도 아니겠지요.”
최형림이 그리 말하자 성신아는 흠칫 놀랐다.
“그, 그럼 높으신 분들이 받는 거 보니까 괜찮겠죠? 아니 이 경우는 오히려 문제 삼으면 그게 더 탈이 나려나?”
성신아는 침을 꿀꺽 삼키고 휴대폰을 받았다.
못해도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최신기기를 무감각하게 뿌리고 있는데 판검사, 변호사 그런 인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는 걸 보니까 받지 않는 게 이상해보였다.
“어, 어쨌건 이런 자리에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선배님.”
‘초대장이 두 장이었으니까…. 그리고 당신을 여기 데려오면 틀림없이 류하리에게 자랑할 테고 그럼 시현의 귀에도 들어가겠지.’
최형림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미소를 지어보였다.
“같이 고생한 사이 아닙니까. 성 경위님. 그럼 경위님은 여기 계시지요. 저는 천용덕 검사님 대신으로 왔으니까 잠시 인사를 좀 하고 오겠습니다.”
최형림은 전 서울지검장이자 현재 국회의원인 김인식 의원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다른 검사들, 판사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다들 재벌가 자제이면서 검사를 하고 있는 최형림을 알아보고 노고를 치하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
국회의원, 시의원, 차관, 그런 사람들 앞에서도 최형림은 전혀 위축 들거나 주눅 드는 태도 없이 당당하게 인사를 나누고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있었다.
성신아는 그 화려한 모습을 보며 경탄했다.
‘와 역시, 재벌에 엘리트는 사는 세계가 다르구나. 뭐야 이거. 화려하고 엄청나네. 뷔페는 호텔 뷔페지? 이거?’
성신아가 주위를 둘러보니 그녀처럼 아직 이런 향응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사람들이 보였다.
‘평검사구나….’
일상 업무에 지쳐 있다가 높으신 분의 권유로 오긴 왔는데 오자마자 입구에서 기 백 만 원짜리 신형 휴대폰과 스마트워치를 거저 주고 안에는 높으신 분들이 잘 놀고 있으니 다들 벙 찐 채로 스마트 폰 봉투를 어정쩡한 자세로 들고 있었다.
‘아이돌 그룹 팬 사인회에 처음 온 덕후 같은 모습이다.’
성신아는 평검사들의 모습을 보고 솔직한 감상을 떠올렸다.
‘다들 나처럼 이거 받아도 되는 건가 반신반의하고 있구나.’
그때 왠지 양아치 같아 보이는 젊은 청년이 딱 봐도 높으신 분으로 보이는 나이든 분에게 귓속말을 하더니 아직 얼어있는 평검사들에게 다가갔다.
“아하하. 자네들 이번 기수지?”
“아 부, 부장님.”
“이 부장님….”
“아, 안녕하십니까.”
“딱딱하게 굴지 말고. 다들 골프는 칠 줄 아나?”
“네?”
“언제 한 번 골프나 좀 치자고. 평검사라고 너무 일만하면 제명에 못살아. 건강도 챙겨야지?”
“레슨이라면 저희 골프 클럽에서 마침 레슨도 진행하고 있는데 말이죠.”
젊은 청년은 사람들에게 10회 무료 레슨권을 제공했다.
물론 이것도 말도 안 되는 향응제공이다.
프로 골퍼가 직접 해주는 레슨을 10회나 무료로 제공한다는 건 현금으로는 몇 백 만원의 가치가 있다.
물론 특별프로모션이라는 명칭으로 공짜로 뿌리는 거니까 뇌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특별한 장소, 특별한 파티에 모인 특별한 직업의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공짜프로모션이라니….
‘와. 이게 로비구나.’
성신아는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평소에 골프에 관심이 없는 검사들이라 해도 이렇게 로비를 하면 꼴딱 넘어갈 수밖에 없다.
검사들은 어쨌건 선후배의식이 강한 집단인데 까마득한 선배가 앞으로 골프 좀 치면서 얼굴 좀 자주 보자고 하면 혹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러려면 골프를 칠 줄 알아야겠지?
그때 거기에 로비스트가 골프 레슨을 공짜로 제공한다?
다들 어버버 별 생각이 없어진다.
평소에 골프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프로골퍼가 하는 레슨이 그냥 무슨 동네 헬스클럽에서 무료 상담 받는 것 마냥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마 얼마인지 모르고 받았다가 나중에 그 비용을 알게 되고 나서 화들짝 놀라리라.
하지만 그때가 되면 이미 저질러버렸고 뒤탈도 없고 아무도 문제 삼지 않으며 오히려 문제 삼는 놈이 이상한 놈이 되는 분위기에 적응하게 되리라.
‘선배 눈치 많이 보는 조직에서는 이렇게 나오면 막연히 거절하기도 쉽지 않겠네.’
성신아는 검사들을 구워삶는 로비의 현장을 보고 이 분위기를 조성하는 솜씨와 거기에 들이는 밑 준비로 살포하는 자금력에 경악했다.
이렇게 야금야금 향응을 제공하면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향응에 젖어버리겠다.
‘여기 얽히면 별로 좋을 게 없겠다. 뭐 난 그냥 휴대폰이나 먹고 말아야지. 뷔페하고….’
성신아는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 * *
“흠. 어떤가?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가?”
연회장에서 미카엘은 최형림에게 물어보았다.
“준비 철저히 했군요. 돈 꽤나 썼겠어요?”
“뭐 이정도야 얼마 안 들었지. 게다가 이건 다 아버님의 수완이거든. 후후후. 기왕 돈을 쓸 거 확실하게 쓰고, 본성이 청렴결백한 사람들도 정신을 차려보면 향응에 젖어있게 만드는 거지. 이거 참 보통사람들은 힘들겠어.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옷이 비에 젖어있을 테니까.”
이 자리에 온 검사들은 다들 처음부터 부귀영화나 유흥, 접대, 향응을 받으려고 하는 인물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검사가 쥐고 있는 강한 권력에 비해 검사 자신들은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
그리고 고작 한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은 악마에게도, 그저 인간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아버님이라….”
최형림은 윤회장을 아버님이라 부르는 미카엘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데려온 아가씨가, 류하리 경위가 아니네? 그녀를 데려와야 데드맨 귀에 들어갈 텐데?”
“그녀의 경우 오자고 해도 올지 안 올지 자신이 없어서… 대신 저 아가씨도 충분히 데드맨 귀에 소식을 전해 줄 겁니다.”
최형림은 적어도 입이 가볍다는 점에선 성신아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신뢰의 아이콘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리라.
“흠. 뭘 모르는 군. 당신이 오자고 하면 류하리 경위도 분명히 왔을걸? 그녀도 당신을 의심할 거 아니야? 데드맨이 당신을 의심한다면 그녀에게도 넌지시 귀띔했을 테고. 그럼 그녀는 궁금해서라도 당신이랑 자주 보려고 할 텐데.”
“하긴 그렇겠군요. 아무래도 제가 좀 그녀에게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콤플렉스?”
“제가 가짜 재벌가 자식이라 서요?”
“당신은 어떤 의미에서는 진짜 재계 1위의 자식이잖아. SH그룹의….”
“거기까지.”
“흠. 듣기 싫은 이야기를 했나? 미안하군.”
“그리고 저런 아가씨도 싫지 않아요. 핸드폰 거저 생겼다고 좋아하고 음식 맛있어 하고 그런 소박한 모습이 마음에 든단 말이지요. 외모도 미인 아닙니까? 경찰대학 때 성적도 좋았으니 똑똑하고 유능하지요.”
최형림은 성신아를 그렇게 평했다.
“하지만 당신의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상대는 아니지? 배경이 별 볼일 없는 여자니까.”
“……….”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했나?”
“조금 그렇군요.”
“하하하.”
미카엘은 최형림이 거리낌 없이 자신에게 불만을 말하는 걸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