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44화 (144/269)

제144화

악마의 숭배자 #3

주말에 미카엘은 직접 다른 검사들을 접대하는 자리를 만들어 최형림이 미카엘을 만난 자리에 대한 변명거리를 만들어주었다.

어차피 미카엘은 모든 검사들을 접대한다.

그러니 최형림을 따로 만났다 해서 최형림이 뭔가 특수한 존재인 건 아니고 그저 검사들에 대한 로비활동의 일환이다.

그런 변명거리 말이다.

물론 시현에게는 절대로 통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렇긴 해도 귀중한 주말이었는데….’

최형림은 피로감을 느꼈다.

일이 너무 많은데 휴식시간은 부족하다.

평검사의 업무라는 것 자체가 생명을 갉아먹는 것처럼 일이 많은데다가 거기에 본인 스스로 이런저런 일들을 꾸미고 있으니 건강하고 체력 좋던 최형림도 기절할 것 같다.

나쁜 짓 하는데도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야 하다니 뭔가 잘못된 것 같다.

‘데드맨도 바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 성신아 경위가 말을 잘 전해주었으려나?’

최형림은 그런 의문을 품고 시현의 파일을 열고 열심히 읽어보았다

최형림은 데드맨이 자신을 잘 알고 있는데 비해 자신은 데드맨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게 불안해졌다.

일개 탐정과 장래가 촉망받는 검사.

둘 중 어느 쪽이 상대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가 하면 보통은 후자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최형림은 시현에 대해서는 절대로 방심하지 않았다.

저 천방지축의 연쇄살인마 사이다패스도 결국 데드맨에게 몰려서 명분과 여론, 시민들의 지지를 잃고 심지어 직접 붙은 상황에서도 패해서 위험해지지 않았는가?

미카엘도 데드맨에 대한 탐욕을 보이는 것을 보면 그가 악마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존재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사이다패스를 이다지도 쉽게 꺾고 악마의 화신인 미카엘도 매혹하는 존재라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모든 자료가 이상하게도 지워져있군. 그래도 부동산 등기를 볼까. 음?’

최형림은 시현이 가지고 있는 탐정사무소의 등기를 보며 당황했다.

전 주인이 류하리로 되어있는게 아닌가?

‘아니 이게 무슨?’

그것뿐만이 아니다.

시현의 금융 기록을 뒤져보니 어린 시절 고아였던 그는 어떤 자선가에게 후원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선가는 바로 류하리의 아버지, 류장천이었다.

류장천이 절세를 위해서 만든 장학회가 시현에게 장학금을 지불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이건? 류 경위와 데드맨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였어? 그런데 어째서….’

최형림이 본 바, 류하리와 시현은 최근에 만난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이들은 초면일 리가 없다.

장학기금이야 그렇다 쳐도 부동산 등기를 보면 류하리가 시현에게 건물을 양도한 걸로 되어있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아니 어린 시절에 부모가 자식 명의로 건물을 해주고 그걸 처분했을 수는 있지.’

최형림은 류장천이라는 인물이 위험하고 독단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거는 좀 더 자세히 조사해볼 필요가… 음?’

최형림은 그때 문득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이런 감각을 전에 느낀 적이 있었는데….

바로 미카엘이 그를 시공간을 잘라낸 단면으로 초대했을 때 느낀 느낌이었다.

-타닥… 타다다닥….

그리고 어디선가 타자기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최형림은 타자기의 소리에 기겁했다.

마치 자신의 영혼을 노려보는 듯한, 어떤 시선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 이상한 느낌은 사라졌다.

그런데….

“어?!”

분명히 그는 무려 종이로 출력한 부동산등기부등본을 가지고 있었다.

시현탐정사무소가 있는 건물의 원래 주인이 류하리였다는 증거.

그런데 그 기록이 사라져 있었다.

자신이 손에 계속 서류를 들고 있었는데?

그사이에 누가 들고 교체하기라도 했나?

최형림은 당혹감을 느꼈다.

“내가 미치기라도 했나?”

시현의 금융기록을 살펴보았다.

이것도 역시 싹 고쳐져 있었다.

시현이 류장천의 사회복지재단에서 돈을 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외에 주어지던 돈들 기록 일부가 증발해있다.

분명히 전엔 1년에 26회 이상 있던 입금기록이 왜 13회로 줄어있지?

최형림은 자신이 보고 있던 자료들이 보란 듯이 바뀌어 있는 것에 경악했다.

이건 악마의 소행이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능욕하는 초월자지만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는 초월자.

그렇지만 실제로 조작당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나사가 빠져서 웃긴다거나 만만해 보인다거나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이런 식이라면 결국 아무리 조사해도 그는 진실에 도달할 수 없지 않은가?

‘이게, 데드맨에게 붙어있는 악마의 소행인가? 이건 경고로군 그래.’

최형림이 전율한 그때였다.

갑자기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최형림은 모르는 번호가 찍혀있는 전화기를 보면서 당황했다.

그때 전화가 끊어지고 문자가 왔다.

‘혹시 데드맨에 대해서 조사하셨습니까? 방금?’

최형림은 그 문자를 본 순간 이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 * *

[안녕하십니까. 최형림 검사님 되시지요? 저는 영사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전화기 너머 남자의 목소리는 마치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는 것 같았다.

위협적이고 스산한 목소리다.

최형림은 담력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골에 식은땀이 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이 번호는 어떻게 알았지요?”

[금융자료를 검사님 보좌관에게 전해드린 게 접니다. 시현의 자료를 조사하시기에 어쩌려나 해서 궁금했었는데 설마 바로 건드리실 줄이야. 데드맨이라고 부르는 것에 반응하는 걸 보니까 역시, 계약자라고 봐도 될까요?]

“…….”

최형림은 혀를 찼다.

이 남자. 대체 뭔가?

“당신은 계약자입니까?”

[아 저는 잘린 계약자입니다.]

“네?”

[구단에서 방출된 퇴물 야구선수였다. 그래서 지금은 업계 관련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서 프리에이전트로 일하고 있는 중이다. 뭐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프리에이전트요?”

[네. 그래서 말인데 검사님 언제 시간되시면 직접 뵐까 하는데요.]

“직접 말입니까?”

[네. 전화로 말하긴 좀 그래서요. 도청당할 수도 있고 말이지요. 아무래도 직접 만나지 않으면 이야기하기 어려운 게 많이 있지 않겠습니까?]

“…….”

최형림은 일부러 뜸을 들였지만 이 남자를 만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 *

풍채 좋은 중년 남성이 최형림을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최검사님. 제가 바로 연락드렸던 영사라고 합니다.”

“네. 제가 최형림입니다.”

“후후후. 이거 참. 설마 서부지검 앞에서 뵐 줄이야.”

“정확히는 그 근처 카페이지요. 그래서 어제 그건 뭡니까?”

“노골적인 개입이 있었지요? 사실 저도 개입이 있었다는 것만 알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저 느낌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마침 시현의 자료를 넘겨주었던 게 기억나서 혹시나 해서 연락해보았는데 제대로 미끼를 물어주시더군요.”

영사는 최형림을 떠보았다고 솔직히 시인했다.

하지만 최형림은 설사 자기가 시치미를 뗐다고 하더라도 영사의 의심이 사라졌을 리는 없다는 걸 알았다.

영사가 지금 물어보는 건 그저,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는 것이지, 일의 개요, 맥락은 이미 다 알면서 물어보는 것이다.

‘거짓말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겠군.’

최형림은 솔직히 말했다.

“서류 몇 개를 보았는데 갑자기 타자기 소리가 들리더니 바뀌어 있었습니다. 혹시 인쇄물만 그런 건가 싶어서 원본 파일들을 살펴보았는데 원본 파일들도 다 바뀌어 있더군요.”

“그렇군요. 시현을 뒷조사 하셨습니까? 왜 조사하셨습니까?”

“그건…. 지금 제가 말씀드리기는 좀 애매하군요. 그저 뭔가 마음에 걸리는 인물이라 알기 위해서 조사했다고 해두지요.”

“아 그렇지요. 조사는 당연히 알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요. 하하하하.”

뻔한 소리를 해서 대답을 회피하느냐고 핀잔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내가 사이다패스와 한 패여서 사건을 일으키고 다녔다고 자백할 이유는 없겠지.’

최형림은 영사의 빈정거림을 무시하고 이번엔 자신이 물어보았다.

“그럼 물어보지요. 당신은 시현 씨와 어떤 관계입니까?”

“제가 스승 같은 존재입니다. 아직 그녀석이 철부지이던 시절에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지요.”

“이것저것 말입니까? 구체적으로는?”

“미행하는 법, 조사하는 법, 협박하는 법, 사람을 때리고 고문하는 법, 해치는 법, 심문하는 법, 거짓 속에 진실을 섞는 법, 진실과 거짓을 알아채는 법, 총 쏘는 법, 단도와 손도끼 투척, 함정 설치, 고기 80킬로그램을 적당히 처분하는 법 등등…. 뭐 잔재주들이긴 하지만 상당히 충실히 가르쳤습니다.”

“……….”

아무래도 시현이 보통 탐정들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 영사라는 사람이 시현을 꽤나 혹독하게 가르친 모양이었다.

“왜 가르쳤습니까?”

“제 부하로 쓰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독립해서 탐정을 하고 있는 것 같군요. 당신이 그와 공모해서 뭔가 따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실례지만 그렇게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최형림이 보기에 영사와 시현은 절대로 같은 편이 아니다.

시현에게도 꺼림칙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영사 이 남자는 비교할 수가 없다.

불길하고 스산한 느낌이 나는 남자였다.

“뭐 제가 제자를 도제로 부리고 그럴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싫다는 녀석 붙잡아두고 강제로 부려먹고 그러면 노동법 위반 아니겠습니까?”

영사는 뻔뻔하게도 그렇게 말했다.

마치 시현이 원해서 그를 그냥 놔줬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럴 인물은 절대 아닌 것 같은데?’

최형림이 빈정거렸다.

“준법정신이 투철하신 분이신가 보군요.”

“물론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여기 이렇게 서부지검 앞에서 검사님이랑 당당히 대면하겠습니까? 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떳떳하게 살았다고 하기 보다는 뻔뻔하게 살아서 부끄럼이 없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프리 에이전트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한때 계약자였었다는 말인가요?”

“네.”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계약자가 아니신 겁니까?”

“예 그렇지요.”

“어떻게 계약을 물렸습니까? 아니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합니까?”

최형림은 영사의 말에서 의아함을 느꼈다.

한때 계약자였다가 아니게 되었다고?

그런 게 가당키나 한가?

악마와의 계약이야기는 많은 우화에서 나온다. 그 이야기에서는 계약자가 파멸하던가, 아니면 천사나 성인, 신의 도움을 받고 악마가 영혼을 토해내곤 한다.

하지만 최형림은 잘 알고 있었다.

저 악마들을 통제할 수 있는 건 다른 악마들이지 결코 신이 아니라는 걸.

대체 어떤 수를 써서 이 남자는 악마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던 거지?

“제 자신의 인간성이 다 타버렸기 때문입니다.”

영사의 대답은 최형림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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