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화
악마의 숭배자 #4
“예?”
순간 최형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 인간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인간성이 다 타버렸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최형림이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내자 영사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몇 살로 보입니까?”
“글쎄요?”
“전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꽤 오래 살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 자신은 별다른 갈망도 야심도 뭐 그런 것도 없어졌습니다. 인간이라기보다는 그저 죽지 못해 살아있는 것 같은 놈이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제게 연락을 취하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최형림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해온 것은 영사였다.
그런데 열망이 없다니 거짓말이다.
최형림은 그런 취지에서 말한 것이지만 영사는 쓴 웃음을 지었다.
“어쨌건 저 위대한 분들에게 저는 너무나 재미없어서 매력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왜 그런 거 있잖습니까? 고문할 가치도 없는 녀석.”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계약자로서 오래오래 살다 보면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절 계약했던 분은 제게 흥미를 잃고 떠났는데 이 빌어먹을 눈은 보인단 말이죠. 계약자들이나 이상한 것들이.”
“…….”
최형림은 영사가 그것들을 위대한 분이라 부르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이 남자. 지금 저 악마들을 칭송하는 건가? 적어도 제정신은 아니라는 걸 알겠다.’
게다가 영사의 시선은 어딘가 부담스럽다.
뭐랄까.
마치 질투하는 것 같다.
최형림도 가끔 미카엘이 시현에게 열망하는 걸 볼 때 화가 살짝 난다.
지금까지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인물이면 인물, 어디서 남들보다 처진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는 엘리트중의 엘리트가 그였기 때문이다.
미카엘이 최형림보다 시현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게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그게 딱히 미카엘의 마음에 들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다는 건 아니었는데…. 이 남자는 다르다.
정말로 질투하는 게 느껴졌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 영사의 눈에서 어두운 그림자 같은 게 그의 눈 밖으로 순간적으로 퍼져 나오는 게 아닌가?
‘이 인간… 날 보고 있군. 육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깊이….’
최형림은 영사가 뭔가 특별한 힘으로 자신을 훑어보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 * *
“그래서 그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만 이거 놀랍군요. 검사님. 검사님은 계약자가 아니군요. 놀랍게도 인간입니다.”
“…….”
“계약자도 아닌데, 그런데도 가호를 받고 있군요. 매우매우 강력한 가호를 받고 계십니다.”
“가호 말입니까? 저주가 아니라?”
“저주라고 바꿔 불러도 뭐 일맥상통하지요. 그 위대한 분들에게 관심을 받으면 재수 없으면 영겁의 감옥에 갇히게 되고, 그게 아니라 살아남고 계약에서 해방되더라도 저처럼 되니 말이지요.”
“원하는 게 뭡니까 그래서?”
“검사님께 조언을 해드리고 조력을 해드리지요. 저와 손을 잡읍시다. 대신… 제가 원하는 건 검사님께 축복을 주는 그 존재에게 절 잘 보여주시지요.”
뭔가 취업 알선 요청 같은 말이 나와서 최형림은 또다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 인간이 말하는 걸 이해하려면 최형림조차 시간이 필요했다.
“설마 다시 계약자가 되고 싶은 겁니까?”
“예.”
“이해가 가질 않는 군요. 어째서입니까?”
“왜냐면 제게 있어서 현실이란 그 위대한 분들이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는 부질없는 바람 같은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여긴 망망대해에요. 심야의 바다 같은 겁니다. 바다에는 상어가 들끓고 있고 거품처럼 이는 물살은 언제든지 날 집어삼키려 하지요. 제 입장에서는 저 콘크리트 바닥도, 아스팔트도 밟으면 언제 꺼져서 무한히 날 집어삼킬지 모르는 무저갱 같은 겁니다.”
“……”
“확실한 건 오직 신앙입니다. 네 그래요. 신에 대한 열망만이 나에게는 확실한 것입니다. 마치 저 하늘의 북극성처럼. 유일하고 확실하고 변하지 않는 것. 뱃사람이 북극성을 바라보듯 저는 저 위대한 분들을 갈망하는 겁니다.”
“북극성도 시간이 지나면 변합니다. 몇 만 년 이상이 걸리겠지만.”
“아 낭만이 없으시군요. 뭐 몇 만 년을 실제로 살게 될지도 모르니까 새겨는 듣겠습니다만.”
“몇 만 년을 살게 된다고요?”
“네. 이 눈을 가지고 말이지요. 검사님. 그건 후후 남에게 권할만한 인생은 아닙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것들을 신이라고 부르는 군요.”
“지금까지 본 그 어떤 것들 중에 그것만큼 신의 정의에 걸맞은 것들이 없습니다.”
“악마가 아니라?”
“저들은, 저 위대한 분들은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악마보다는 신이 더 어울리지요.”
“하지만 놀랍군요. 보통 저것들은 인간을 너무 좋아해서 걱정인데 그들이 꺼려하는 자가 있다니.”
“제가 이미 한물이 가서 말이죠. 그래서 말인데 검사님. 당신이 하는 일에 저를 끼워주십시오. 그래서 당신을 통해서 부디 다시금 저 신들의 사랑이, 저들의 가호가 제게 임하게 해주십시오.”
“…진심입니까?”
“물론입니다.”
영사는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이런 미친놈도 다 있군.’
최형림은 영사가 보여주는 광기에 질겁해버렸다.
지금까지 악마 숭배자들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들 대다수는 본질적으로 공포 때문에 숭배하는 것이다.
좀비 영화 등에서 가혹한 생존환경에 지친 피해자가 스스로 좀비 떼에 몸을 던져서 생존 스트레스로부터 도망치듯, 악마의 존재에 차라리 자신을 던짐으로서 공포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아니면 신앙이나 도덕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서 역으로 악마 숭배에 빠지거나….
즉 대부분의 악마숭배는 공포심 때문에 변절한 것이거나 관심과 분노를 끌어내기 위한 관심종자이기 마련.
그런데 영사는 그야말로 순수하게 악마를 찬미하고 있었다.
* * *
“그럼 그 전에 우선 데드맨에 대해서 물어보지요. 당신이 시현 탐정의 스승이었다면 그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알고 있겠지요?”
“네. 물론입니다. 저만큼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무엇이든 물어보시지요.”
“데드맨은, 시현 탐정의 사무실은 왜 원래 류하리 경위의 소유였죠?”
“왜냐면 원래 탐정은 류하리 양이었으니까요.”
“네?”
최형림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립니까 그건 또?”
“원래 데드맨은 류하리 양이었습니다. 시현은 그녀의 조수였지요.”
“?!”
“류하리 양이 셜록 홈즈였습니다. 시현이 바로 왓슨이었구요.”
“아니 그렇게 비유해도 일단 말하는 바는 알겠습니다만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데요? 죄송합니다. 제가 오성(悟性)이 떨어져서….”
최형림이 겸양하자 영사가 씨익 웃었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인 검사님이 오성이 떨어진다면 이 세상에 누가 있어 감히 잘난 체를 하겠습니까?”
“그럼 좀 더 부연 설명을 해주시지요. 류하리 양이 탐정이었다는 게 무슨 소리입니까?”
“데드맨 계약에서 류하리 양이 죽고 시현이 데드맨을 계속해나간다는 걸 조건으로 데드맨을 계승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게 무슨….”
“후후후. 궁금하십니까? 하지만 설명은 여기까지입니다. 이거면 일단 제가 성의는 보인 것 같은데요. 자 검사님! 당신도 성의를 보여주시지요.”
“확실히 궁금하게 만드는 재주는 있으시군요. 그럼 잠시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최형림은 영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 * *
[뭐? 제정신인가? 그 쓰레기를?]
미카엘의 반응은 신랄했다.
“놀랍군요. 당신은 그런 인간에게 흥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천만에. 생각해봐. 그는 이미 단물 쓴물 다 빠진 껌이야. 그것도 아스팔트에 들러붙어 새카매진! 그런데 그걸 내 입에 넣고 다시 씹으라고?]
“…….”
최형림은 미카엘의 비유를 듣고 몸을 떨었다.
지금은 미카엘이 최형림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만약 관심을 잃게 된다면?
이렇게나 냉혹한 취급을 당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그도 꽤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어떤 열정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이는 데요. 당신들은 열정을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건 우리들에 대한 갈망이자 광신이지. 생각해봐. 우리들은 인간성을 사랑하고 참지 못해서 개입을 해. 하지만 우리들의 개입은 곧 인간성을 말살시킨다. 맛있다고 너도 나도 원칙 없이 한 입 씩 먹어버리면 황폐화되고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난다는 걸 우리는 잘 이해하고 있지.]
“공유지의 비극 말입니까?”
[그래. 그런데 저건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에게 자신을 제발 먹고 관리해달라고 홀딱 벗고 달려드는 변태라고. 이미 먹을 거 다 빨아먹어서 이제 역겨운 껍질만 남아있는데 본인이 계속 달라붙고 있어. 저런 열정은 전혀 달갑지 않아.]
“동정심으로라도 받아줄 수는 없는 겁니까?”
[저걸 받으면 다른 계약자를 못 받게 되는 걸? 이미 볼 장 다 본 놈을 굳이 받아서 달리 즐길 수 있는 여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지.]
“……”
[왜?]
“아니 그런 소리를 들으니 당신도 인간이 다 되었군요.”
최형림이 그리 말하자 전화기 너머에서 가쁜 숨소리가 들렸다.
미카엘이 기뻐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나? 이야 이거 부끄러운데.]
“…….”
확실히 이 녀석은 진성 변태다.
인간이 되었다고 하니 기뻐하다니.
최형림은 그리 생각하며 몸서리를 쳤다.
“그럼 거부할까요?”
[그러진 마. 그 자체는 껄끄러운 존재지만 데드맨과 관련이 있으니….]
‘대체 데드맨을 얼마나 좋아하는 건가? 아스팔트에 떨어져 검게 변한 껌딱지조차 어쨌건 데드맨과 관련되어 있다면 관심을 보이고 허용할 수 있단 말인가?’
최형림은 미카엘이 데드맨에 대해서 보이는 관심에 혀를 찼다.
“알겠습니다. 그럼 긍정적인 대답을 한 걸로 알고.”
최형림은 미카엘과의 통화를 끝내고 영사에게 돌아갔다.
* * *
“뭐라고 하시던가요? 미카엘 윤은?”
영사는 그렇게 물어보았다.
“…듣고 계셨습니까?”
전화 통화를 들었나? 최형림이 그렇게 물어보자 영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런 무례를 범할 리가요. 그저 전화로 통화할 수 있는 상대인 걸 보니까 미카엘 씨인가 싶어서요. 후후. 그분이랑 함께 일하고 싶었는데.”
“…….”
최형림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카엘을 잘 알고 있나보군요.”
“예. 저도 원래 계약자였던 지라, 위대한 분의 화신은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하는 걸 봐서라는 조건입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제게는 오히려 영광이지요.”
영사는 그리 말하고 손을 내밀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최검사님.”
“……….”
최형림은 자신에게 내밀어진 영사의 손을 보고 말없이 악수를 나누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