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46화 (146/269)

제146화

장수를 잡으려면… #1

이리하여 최형림은 사이다패스에 이어 또 이상한 인물과 협력관계를 맺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엘리트 관료라 할 수 있는 검사가 연쇄살인마도 모자라서 이제는 이상한 악마 숭배자와 손을 잡게 되다니.

최형림은 스스로 생각해봐도 자신의 팔자가 기구함에 혀를 찼다.

‘게다가 이 영사라는 자, 각종 조직범죄에 가담한 정황이 있군. 이미 정보과 등에서 예의주시하는 인물이야.’

최형림은 영사에게 전화가 왔을 때부터 영사에 대해서 미리 조사를 해두었었다.

수사기관들의 자료에 의하면 이 영사라는 인물은 알아주는 폭력조직들이나 범죄자들에게 범죄수단이나 인적, 물적 자원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정황증거일 뿐 물적 자료가 없어서 기소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을 뿐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자는 픽서다.

시현이 탐정으로서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처럼 영사는 범죄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며 어둠의 세계에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살아가고 있었다.

“안심하십시오. 제가 딱히 검사님의 그늘을 이용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제가 인간들 대상으로 하는 일에서는 검사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영사는 그렇게 말했다.

범죄조직이나 범죄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최형림에게 뭔가 요청하지 않겠다.

최형림과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미카엘과의 가교로서, 저 초월적인 존재들과의 문제에만 협력을 요청하겠다는 게 영사의 말이었다.

“그렇다면 감사합니다만….”

최형림의 야심을 생각해보면 지금 평검사 단계에서 영사 같은 이와 엮이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 좋을 게 없다.

하지만 이 남자. 너무 눈치가 좋다.

입안의 혀처럼 매끄럽게 굴러가는 게 마음에 걸린다.

눈치가 너무 좋은 신하는 주군을 암군으로 만드는 법, 편리한 도구라고 자주 이용하다가는 어느새 중독되어버리는 게 편리함이다.

최형림은 영사를 경계하기로 하면서 물어보았다.

“그래서 류하리 경위가 데드맨이었다는 건 무슨 소리입니까?”

“위대한 자들은 우리들의 종말에서 왔습니다.”

“종말?”

“저들은 우리들과 다른 시공간의 존재로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의 세계는 시작부터 끝까지 이미 다 되어버린 세계지요.”

“다 되어버렸다니?”

“글쎄요. 저분들 입장에서 우리들은 이미 시작과 끝이 다 결정되어서 끝난 것입니다. 저들에겐 시간이 우리들처럼 선형적인 체험이 아닙니다. 시공을 초월한 존재들이니까요. 그래서 언제든지 우리들의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개입이 가능한 겁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이해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말이었으니까요. 말하자면 시현이나 저나 지금 이 세계를, 이 시간대를 처음 살아보는 게 아닙니다.”

“네?”

“몇 년을 되감기했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군요. 오래 살아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거든요. 게다가 되감기도 몇 차례 경험했었으니 하하하. 그렇다 보니까 세세한 디테일이 어긋나더라도 이해해주시길.”

“그럼….”

“네. 원래는 류하리 양이 데드맨이었습니다.”

“데드맨….”

“데드맨 계약의 당사자였다고 하는 게 더 이해하기 편하겠군요.”

“그럼 악마가 개입해서 지금의 현실로 바뀌었다?”

“예.”

“어째서….”

“왜냐면 류하리 양은 한계에 부딪혀서 자살했기 때문입니다.”

“자살?”

“데드맨 계약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그녀는 위대한 자들이 자신의 영혼을 빼앗기 전에 자살해버렸습니다. 물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존재들에게 자살로 도망친다는 건 의미 없는 행동입니다만… 이 위대한 분들에게는 자율적인 규제가 많거든요.”

“자율적인 규제라니 무슨 뜻에서 말입니까?”

“뭐 어린애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하얀 라인만 밟아야지~하고 결심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구속력밖에는 없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자기만족에서는 중요한 거지요.”

“그럼, 자살하면 영혼을 온전할 수 있는 겁니까?”

“글쎄요. 그건 또 아닙니다. 지금 류하리 양은 살아있지 않습니까?”

“……….”

“죽음으로 도망치면 영혼을 건질 수 있지만… 류하리 양을 사랑하던 제자 놈은 아마도 위대한 자들과 그녀를 살리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을 겁니다. 후후후. 멍청한 제자 놈. 그렇게 가르쳐놨는데도 역시 젊은 혈기에는 소용이 없단 말이죠.”

“악마들도 류하리 경위를 살리고 싶어 했겠군요. 하지만 자신들이 살리자니 스스로 세운 규제에 어긋나서 참고 있었지만 데드맨 계약자가 계약 조건으로 원하다면….”

“네. 죽음으로 도망쳤던 인물을 억지로 다시 불러들여서 가지고 놀 수 있게 되지요. 게다가 데드맨 계약도 다시 활성화 되니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거 참, 데드맨이라는 건 위대한 자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단 말이지요.”

“…….”

인기?

저런 존재들에게 주목받는 것 자체가 재앙인데 그걸 인기라고 표현하나?

“저는 제가 데드맨이 되기 위해서 류장천 사장님을 꽤 오래 보필해왔습니다. 류장천 사장님을 보필하면서 류하리 양도 많이 돕고 그랬지요. 그녀가 한계에 도달했을 때 전 제가 데드맨 계약을 받겠다고 자원했지만 위대한 분은 제가 아니라 제 제자 놈을 선택했지요.”

‘그야 저번 데드맨이 젊은 미녀로 인기를 끌었는데 그 후임으로 이미 한 번 단물 쓴물 다 빼먹은 영감탱이가 자원하면 누가 좋아하겠어…. 미카엘이 싫어할 만도 하군.’

최형림은 왜 미카엘이 영사를 싫어하는 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버리면 영사도 진심으로 상처를 받겠지?

최형림은 헛기침을 했다.

“그러니까 저 악마들은 시공간을 자유롭게 조작이 가능하고 우리는 류하리가 원래 데드맨이던 세계에서 한 번 되감기를 해서 시현이 데드맨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세계로 왔다?”

“네. 바로 그겁니다.”

“…….”

최형림은 그 말을 듣고 당혹감을 느꼈다.

악마들의 힘이 너무 엄청나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농락하는 존재.

‘이 남자가 신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정말… 신 같군. 아니 신화속의 신들이라도 지나간 시간을 그렇게 쉽게 되돌릴 수는 없잖아?’

신화 속의 신들도 이미 저지른 일을 쉽게 돌이키진 못한다.

즉 저 너머의 존재들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힘을 가지고 있다.

저들의 힘에 비하면 인간이 일구는 문명의 힘조차 하찮은 것이리라.

순간 최형림은 공포를 느꼈다.

자신의 육체나 영혼, 그 모든 것을 너무나 쉽게 농락할 수 있는 신이나 악마라 불릴 것이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게 부담스러워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영사, 이 남자는 태연할 수가 있지?

‘아니 오히려 기뻐하고 있는 것 같다…. 절대자에게 귀의하는 것을 갈망하는 건가?’

최형림은 이 미치광이의 망상 같은 소리를 떠들고 있는 영사를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악마들의 힘도 놀랍고, 그것에 매료된 영사라는 자의 광기도 역겹다.

왜 악마들이 이 남자를 아스팔트에 붙은 껌딱지 같은 존재로 여기는 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전능한 존재들에게 자신들에게 들러붙어서 충성하려는 피조물이란 역겹기 그지없는 존재일 뿐이리라.

“아아 부럽습니다. 데드맨이… 시현이 너무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군요. 그렇게나 그분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니. 제기랄. 나는 아무리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자리였는데.”

“……….”

중증이군.

최형림은 혀를 찼다.

“그래서 왜 시현을 신경 쓰십니까?”

“제가 하는 일에, 제 정체에 어느 정도 그가 감을 잡은 것 같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그를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음. 하지만 알다시피 제가 제 입으로 정확하게 그의 계약이나 능력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발언할 수는 없습니다. 아시지요?”

최형림이 시현과 류하리의 기록, 미처 악마들이 건드리지 못한 기록을 발견했을 때 악마들이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그런데 영사가 최형림에게 시현의 능력에 대해서 자세히, 직설적으로 설명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능력이나 계약의 세부내용은 어디까지나 추론하셔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조언을 할 수 있다는 겁니까?”

“뭐 일단 류하리 양이 데드맨이었다는 사실을 알려드린 것만으로 엄청난 조언이 아닙니까? 그 사실을 말한 것만으로도 여러 가지 방도가 생각나실 텐데요. 검사님은… 지모가 뛰어나신 분일 테니 말입니다.”

“류하리 경위를 공략해야겠군요.”

“바로 그겁니다. 후후후.”

영사는 최형림의 답에 기뻐하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게 제 배은망덕한 제자 놈에게 가장 아픈 손가락이니까요.”

“………”

아무리 봐도 이 남자, 시현을 시기 질투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 * *

사이다패스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사이다패스를 봤다는 목격자 정보나 사이다패스를 자처하며 범죄를 저지르는 놈들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범죄나 치안사고가 줄어든 건 아니다.

오히려 일선에서 고생한 경찰들에겐 이제 밀린 민생업무가 쏟아지고 있었으며….

높으신 분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정보 3팀의 류하리는 오늘도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야! 이 정보경찰아! 내 자식 죽이지 마라!”

“…그러니까 아니 제가 정보과인 건 맞지만… 자자 진정하고 일단 조서에 협력해주세요.”

마포경찰서 정보과에 쳐들어와 계란을 투척한 남자의 조서를 꾸미며 류하리는 난감해했다.

보통 남자 피의자의 조서는 남자 경찰이 꾸며야 하는데 사람이 없다.

때마침 대학가 인근에서 축제가 벌어져서 치안 유지를 위해서 경찰들이 총 출동되었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 정보경찰이 사람 죽인다.”

“………”

류하리는 피해망상에 시달려 발작을 일으키는 남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성신아 경위가 찾아온 것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아니. 뭐하나 싶어서. 왜 단톡방에서 대답이 없어?”

“…….”

경찰대학 동기들 단톡방이나 그런 데에서 류하리는 잘 연락을 받지 않게 되었다.

동기 남자들이나 선배, 심지어는 후배들도 가끔 거북하게 작업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일단 조서를 꾸미고 나서 이야기 하자.”

“아 이사람. 그냥 환자야. 조서는 무슨. 입건하게? 어차피 환자라서 입건도 안될 테니까 그냥 가족들 불러서 돌려보내.”

“…아.”

류하리는 성신아의 말에 당황해서 그대로 시행했다.

‘너도 가끔은 도움이 되는 구나.’

류하리는 성신아의 도움에 경탄하면서 물어보았다.

“어째서 그렇게 잘 알아?”

“아 저사람 경찰들 사이에서 유명해. 단톡방을 제대로 안보니까 너만 모르지.”

“그래?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으흠.”

성신아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서 과시하듯 보여주었다.

최신형 플래그쉽 제품이다.

‘음? 와 반짝반짝 완전 새 거로구나. 하지만 성신아는 집안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돈도 생활비 제외하면 나중에 동생 뒷바라지 스스로 하겠다고 다 모으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최신형 휴대폰을? 간만에 무리 좀 했나? 아니 그런데 왜 이걸 내게 자랑하지?’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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