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49화 (149/269)

제149화

장수를 잡으려면… #4

류하리는 갑자기 자신의 약점을 찔러오는 최형림에 당황했다.

경찰 상부에서는 류하리에게 시현을 전담마크 시키고 있지만 사실 류하리는 이제 시현과는 협력자 관계다.

그 사실을 최형림이 눈치 채고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 그게… 사이다패스 사건을 접수하는 데 그 남자가 공이 있다는 사실은 밝혀서 좋을 게 없잖아요.”

“본인이 원한 게 아니라요?”

“왜 본인이 익명을 원하겠어요? 잘한 일인데. 사이다패스를 응원하던 여론을 단번에 뒤집고 결과적으로 판사 분은 살린 게 아닌가요?”

“잘한 일이긴 하지요.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사이다패스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더 죽여 대었을 지, 그리고 사이다패스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많은 피를 요구했을지 모르니 말입니다. 하지만 경찰 입장에서는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경찰과 검찰이 해내지 못한 일을 일개 탐정이 막은데다가 그게 하필이면 경찰 비리를 밝혀서 경찰 조직의 체면에 먹칠을 한 인물이라니.”

강남경찰서장을 엿 먹인 시현이 사이다패스의 연쇄살인행각을 막았다.

그렇게 되면 경찰의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경찰입장에서는 시현이라는 사람이 더더욱 미워서 견딜 수 없게 되겠지요.”

공을 세웠다고 미웠던 놈이 예뻐 보이는 법은 없다.

공사를 말끔하게 구분하는 조직이었으면 애초에 시현을 감찰하지도 않았으리라.

게다가 시현의 공이라는 게 경찰입장에서는 화딱지 나는 것이다.

누가 뭐 둘 화해시키면 될 거 몰랐나.

경찰입장에서 화해를 종용할 수 없으니까 그랬지.

결국 이래저래 시현은 그렇지 않아도 미운 놈이 더 미운털 박히게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류하리 경위님은 그 남자가 마음에 드나 보군요. 경찰들에게서 그를 지켜주는 게 아닙니까?”

“네?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저는 단지….”

“뭐 이해합니다. 저도 관료사회에서 높으신 분들은 좀, 세대차이가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으니까요.”

나이든 사람들이 위에 그대로 박혀있으니 조직생활하기 힘들다. 최형림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다만 궁금하군요. 그 정도로 협력자가 되었다면 아무래도 개인적인 감정이 생겼는지 아닌지 말입니다.”

“네?”

“혹시 류하리 경위께서는 그 탐정분하고 사귀는 사이가 아닙니까?”

최형림이 시현과 류하리의 관계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예에? 아, 아니에요. 그런 건.”

류하리는 당황했다.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큰일 나겠잖아?’

정보 경찰인 류하리가 시현에게 온 것은 어디까지나 상부의 감찰 지시에 따라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만약 시현과 사귀기라도 하면 류하리는 조직사회에서 완전히 끝장난다.

미인계에 넘어간 꼴이 되어서 조직 내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냥 옷 벗어야 한다.

“그렇습니까? 다행이로군요.”

“네?”

“아직 저에게도 기회가 있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네? 그게 무슨….”

류하리는 자신에게 작업을 거는 최형림을 보며 당황했다.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최형림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류하리의 당혹스러워 하는 반응을 즐겼다.

* * *

류하리가 최형림과 식사를 하는 동안 시현과 성신아는 인근 카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최형림이 작은 골목안의 가게를 선택해서 거기까지 접근해서 미행 할 수는 없었다.

시현이 평소 사용하는 장비인 집음기나 레이저 파형 감청기도 쓸 수 없었다.

“식사 중에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요?”

“별건 아닐 겁니다. 그나저나 서울 중앙경찰서는 요새 어떻습니까? 분위기가?”

“뭐 서울이야 항상 바쁘죠. 사이다패스는 아예 흔적도 못 잡았고, 경찰특공대는 심리치료 받고요.”

“심리치료요?”

“네. 사이다패스와 격돌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억이 자세하지 않아서요. 게다가 다들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약물이나 세뇌를 겪지 않았나 싶어서 검사하는 거지요.”

“기억이 자세하지 않나 보군요.”

“네. 방독면을 썼어도 체형이나 키, 목소리나 호흡소리에 따른 나이 정도는 알아야 하는데, 게다가 말하는 걸 보면 사이다패스는 무슨 슈퍼빌런이에요. 경찰 특공대원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더라니 까요. 그래서 경찰 측에서는 심리치료를 하고 있고, 관련자인 저도 상담 받으라는데… 후… 정신과 상담 시킬 돈이 있으면 현찰로 주지.”

“하하하.”

아무래도 사이다패스의 비현실적인 신체능력 때문에 목격자들이 단체 히스테리나 환각을 경험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그런데 당신은 놀랍군요. 류하리와 최형림 선배가 걱정 안 돼요? 왜 주로 일 문제를 물어보세요? 뭐 나는 쿨하다. 일에 신경 쓴다 그런걸 어필하는 중?”

“…아닙니다.”

“역시 신경 쓰이죠?”

“뭐 아주 신경이 안 쓰인다면 그건 거짓말인데… 후후.”

시현은 쓴 웃음을 지었다.

“저는 류하리 경위의 취향을 너무너무 잘 알거든요.”

“…네?”

“최형림 씨가 꽤 인물이 괜찮고 전도유망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류하리 경위를 꼬시려면 작전을 좀 바꿔야 할 겁니다.”

“…….”

성신아는 당황했다.

시현이 뭘 안다고?

마치 류하리와 아주 오래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말하는 게 어이가 없다.

‘이 탐정, 허풍 엄청 잘 떨긴 하지? 그렇지만… 놀라운걸?’

도저히 허풍 같지 않다.

확고한 확신이 있지 않고서는 이렇게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허풍 같지 않다는 점에서 정말 허풍 잘 치네.’

어쨌건 성신아 입장에서는 이 탐정의 말을 긍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뭐라고 부정하지?’

성신아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식사가 끝났군요. 움직입니다.”

“어? 어떻게 알아요?”

“뭐 다 아는 수가 있지요. 자 움직이시죠.”

시현은 그리 말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최형림과 류하리는 식사 후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을 했다.

저녁 무렵의 인사동 길은 여전히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고 거리는 대낮처럼 밝았다.

“그 탐정은 참 재밌는 사람이더군요. 이래저래 탐정답지 않게 많은 일을 했더군요.”

놀랍게도 최형림은 시현이 한 일들 상당수를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정보원은 바로 영사다.

시현의 스승이라고 자처하는 이 남자는 시현이 작업한 일들을 꽤 소상하게 알고 있었지만 최형림은 시치미 뚝 떼고 마치 자신이 개인적으로 조사해서 알아낸 것처럼 시현이 마약사범 사건에서 류하리를 도와주었던 것이나 뒷심 사건에도 개입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최형림은 류하리에게 길 한 복판에서 물어보았다.

“그래서, 류 경위님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아 그게… 저.”

“뭐 지금 당장 결정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 기억해주시면 됩니다.”

“아 네. 알겠어요. 선배님.”

“그럼 여기서 작별하도록 하지요. 택시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아 저는 따로 알아서 가지요.”

“흠. 알겠습니다.”

최형림은 류하리의 뜻에 따라서 거기서 작별했다.

“후우….”

류하리는 최형림과 헤어지면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시현은… 저 사람이 사이다패스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했었지? 하지만 지금 본 바로는….’

최형림이 류하리를 부른 건 어디까지나 그녀에게 개인적 호의가 있어서이리라.

그리고 시현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은 류하리가 시현에게 업무 이상의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게 아니냐. 둘이 한 편일게 아니냐. 그런 걸 묻기 위해서였던 것일까?

현재로서는 대체 왜 시현이 굳이 최형림을 사이다패스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연애라….’

류하리라고 이성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단순히 부잣집에서 태어난 딸이 아니라 스스로도 능력이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애써온 그녀는 아직 연애에 에너지를 소모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또 생각해보면 앞으로 내 인생에 아무리 상대를 만난다 해도 최형림 선배 같은 사람을 만나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최형림처럼 외모도 괜찮고 실력도 좋고 집안도 좋은 그런 인물이 앞으로도 인연이 닿을 수 있을까?

하지만….

류하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의 머릿속에 또 다른 인물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 * *

“우연의 일치로군요.”

시현이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우연의 일치요?”

류하리는 쓴 웃음을 지었다.

“물론 당신이 돈도 안 되는 일인데 미행을 할 리는 없겠지요? 시현 탐정 사무소의 고객 서비스를 생각해보면 돈도 내지 않은 이를 위해서 미행같이 번거로운 일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 동네는 아무래도 불륜 커플들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오늘 데이트는 즐거우셨습니까?”

“………”

류하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모르겠네요. 정말 선배가 사이다패스와 관련된 사람인지.”

“아닐지도 모릅니다.”

“네?”

“최형림 씨가 사이다패스와 관련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제 말이 아무래도 마음에 남아서 그러시는 것 같은데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쩌면 제가 류 경위님을 꼬드기기 위해서 미리 라이벌이 될 만한 사람에게 마타도어를 건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하하하. 오, 오늘 저 완전히 공주된 기분인데. 혹시 제게 관심 있으세요?”

“예를 들어서 말입니다. 예를….”시현이 그리 말하고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 * *

성신아는 시현이 아이스크림을 두 개 사서 자신에게 건네주는 걸 받고 당황했다.

“뭘 하려고요?”

“이런 미행의 핵심은 뭔지 아십니까?”

“네?”

“적당히 들켜주는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미행을 왜 일부러 들켜줘요?”

성신아는 그게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야 그동안 별로 관심 없는 줄 알던 상대가 알고 보니 날 미행할 정도로 관심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게 좋지 않습니까?”

“보통은 미친놈이라고 볼 것 같은데요. 제정신 박힌 놈이 배우자도 아닌데 사람을 미행할 까요?”

“그 미친 짓을 하자고 하신 분이 누굽니까? 전 싫다고 했는데 미행하자고 억지를 부리신 분이 있는 것 같은데요.”

“안 들키면 괜찮잖아요. 들키면 문제라는 거지.”

“제 경우는 워낙 제 미행의 가치가 높기 때문에 이야기가 다를 겁니다.”

“네?”

“보통 전 누가 돈을 싸들고 와야 미행을 해주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류하리 경위 입장에서는 이 남자가 나에게 관심이 있어서 미행까지 해주는 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뭔가 정신병자나 할 법한 소리 같은데요.”

성신아는 시현의 말에 기겁했다.

그러니까 시현은 자신의 미행이 무슨 명품, 값비싼 서비스, 고가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미행당하면 상대가 오히려 감동할 거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제정신 박힌 사람이 할 소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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