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층간 파라노이아 #1
이기찬 씨는 층간소음문제로 고통 받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층간소음문제가 아니다.
층간소음이라고 주장하는 이에 의해서 고통 받는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제일 처음 문제가 된 것은 반년 전의 일이었다.
새벽 2시, 갑자기 누군가가 집의 문을 두들기고 벨을 연거푸 눌러대었다.
“시끄러워! 이 새끼야! 시끄럽다구우우!”
새벽 2시, 갑자기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들기는 남자의 목소리가 오히려 시끄럽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횡포에 그는 깜짝 놀랐다.
“여, 여보?”
“무슨 일이지?”
놀라서 나가본 이기찬 씨는 눈에 광기를 흩뿌리고 머리는 산발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나 아랫집 사는 사람인데 당신들 왜 이렇게 시끄러워?!”
“네?”
“그게 무슨 말인지…저흰 자고 있었는데요.”
“쿵쾅쿵쾅 시끄럽잖아! 날, 밟아 죽이려는 거야?”
“네?”
“비켜봐! 집안을 뒤져봐야겠어! 이렇게 몰상식한 놈들 같으니!”
그는 막무가내로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아, 안돼요!”
아직 아이도 있고 아내도 속옷차림이다. 놀란 이기찬 씨는 들어오려는 남자를 제지했다.
“이 자식이!”
“이러지 마시요. 경찰을 부를 테니까….”
“경찰? 오냐. 좋다. 내가 불러야지!”
그렇게 말한 남자는 놀랍게도 진짜 자신이 직접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게 아닌가?
잠시 후 그들의 집에 찾아온 경찰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하하하.”
“이거 큰일이네.”
경찰들은 오자마자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니 여기 이사하신지 얼마나 되었죠?”
“두 달이요.”
“……”
“두 달이면 전세로 들어오셨죠?”
“네. 무슨 소리입니까?”
“저기 그러니까….”
경찰들은 난처해하면서 말했다.
* * *
그러니까 밑의 집의 이 남자는 원래 고위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지금 이런 광인의 모습으로는 믿겨지지 않지만 원래는 문화관광부의 사무관, 꽤나 유능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고위관료였다.
하지만 어느 날 확 돌아버린 그는 피해망상에 시달려 직장에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층간 소음 분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네? 아니 그게… 사실입니까?”
이미 이전에도 층간 소음 분쟁을 일으켰다는 소리가 아닌가?
즉 전에 살던 사람들에게도 이런 행패를 부렸다?
“이미 녹음도 하고 조사도 해봤습니다만….”
“전에 살던 사람들에게 말이죠.”
“…….”
이기찬 씨는 자신이 지뢰를 밟았다는 걸 깨달았다.
어쩐지 전세가 좀 싸더라니.
집을 보여주던 세입자도 집주인도 어찌나 반기던지 마치 가출했다 돌아온 탕아를 반기는 아비 같았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만 이런 문제가 있었구나.
“어, 어떻게 할 수 없습니까?”
“계속 민원을 넣어 대서 저희도 문제에요.”
“일단 그, 구청의 층간소음 분쟁위원회에 상담하시는 게….”
경찰들은 그렇게 말하고 웃고 있었다.
난처해서 나온 웃음이었겠지만 그걸 본 이기찬 씨의 마음은 무너지는 것 같았다.
경찰들은 절대로 도움이 될 수 없다.
그 웃음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럼…. 어떻게 합니까?”
“말한 대로 구청의 층간소음 분쟁위원회에 물어보셔야죠.”
“저 사람이 우리 가족을 죽일 것 같다고요!”
“그, 그렇진 않을 겁니다. 아마도.”
경찰들은 난처해하기만 했다.
누가 누구를 죽일 것 같다.
그런 이유만으로 체포하고 구금할 수는 없는 법이다.
명백히 살의를 보이며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사람도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는 구속할 수 없다.
자의적으로 사람을 감금할 수 없기에 경찰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 사람이 광인에게 찔려 죽고 난 뒤에, 그 다음에 수습하는 게 고작이다.
“그 전의 사람들은 이사를 갔더군요.”
“우린 이제 막 전세를 들어왔다고요.”
이제 막 전세를 들어와서 아직도 계약이 1년 9개월이 남아있는 상태. 이런데 이사를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요새 전세가 더더욱 구하기 어려운 때인데….
그리고 전세를 나가면? 이기찬 씨도 전의 세입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모든 문제에 입을 싹 씻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웃으면서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에게 재앙을 떠넘겨야 한단 말인가?
“저 사람이 우리 가족을 해칠 수도 있으니 어떻게 접근 금지 같은 걸 해주십시오.”
“그게 곤란합니다.”
접근금지 명령은 한국처럼 아파트로 되어있는 주거환경에서는 내리기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남자의 집도 어차피 아랫집인데 접근 금지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정신과 약을 잘 먹으면 그래도 괜찮아질 겁니다.”
“그걸 안 먹으니까 저러는 거 아닙니까! 강제로 먹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경찰들의 무책임한 소리를 들으며 그는 당황했다.
그 약을 챙겨 먹이는 건 아마 저 남자의 가족도 못하고 있는 일일 텐데. 생판 남인 그가 저 남자가 약을 제 때 먹길 바라며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 * *
그 후로도 미친 남자는 계속 찾아왔다.
자신의 망상에서 비롯된 소리, 층간소음을 추궁하러 온 그는 격분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그는 온전히 피해자이며 윗집 사람들은 뻔뻔스럽게 층간소음을 내고도 모른 체하는 파렴치한 인간들이었다.
SNS나 인터넷 게시판 등에 글도 올리는 데 또 그런 글을 쓸 때는 어찌나 논리정연한지….
많은 사람들이 우퍼를 달아라, 고무망치로 위를 쳐라하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면 그게 실제로 진행되는 것이다.
새벽이건 심야건 생각 날 때마다 밑의 층에서 천장을 고무망치로 때려대고 커다란 우퍼가 귀신같은 소리를 24시간 내내 울리게 했다.
단 일주일 만에 아내의 머리카락이 빠지고 생리가 끊길 지경이 되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아이와 아내를 일단 부모님 댁으로 피신시켰다.
시댁살이를 반겨하는 며느리가 어디 있겠냐마는 아내와 아이들은 기꺼이 시댁살이를 자처했다.
* * *
이기찬 씨는 집에 홀로 남았다.
직장에도 나가야 하고 이사 가려면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집주인에게도 항의해보았다.
“이건 사기가 아닙니까! 이런 사람이 밑에 살고 있다는 건 집주인께서도 알고 계셨을 텐데요?!”
“아니 그게 최근 잠잠해져서…. 괜찮아진 줄 알았지요.”
“괜찮아지긴요! 더 심해진 것 같은데. 어쨌거나 아이도 있고 아내도 있고 그러니 저희 이사 가겠습니다.”
“아직 전세가 남아있는데 복비랑 주셔야….”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게… 아 알겠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복비 저희가 물테니까 전세금 당장 돌려주세요!”
“아니 전세가 나가야 빼주지.”
“지금 밑에서 저러는 데 전세가 나가겠습니까? 24시간 우퍼를 틀어놓고 있는데요?”
“경찰이나 구청에 중재를 요청해봤어요?”
“네 해봤습니다. 집주인 분도 알고 계실 것 아닙니까? 전의 세입자도 또 그랬다면서요?”
“아니 그게….”
집주인도 물론 알고 있었다.
중재 따위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걸.
이기찬 씨도, 그 전의 세입자도 당연히 중재를 요청해봤다.
그러나 도저히 먹히지 않는 것이었다.
경찰도 구청도 이 남자를 강제할 방법이 없었다.
벌금이나 경범죄 처분 등이 가능한 모든 것이었지만 애초에 광인에게는 그런 게 먹히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이 광인은 공무원과 경찰들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자 더더욱 피해망상이 심화되었다.
* * *
“네놈들! 다 짜고 날 미친놈 만드는 구나! 웃기지 마! 난 미치지 않았어!”
구청 복지과 직원들이 찾아왔지만 다들 내쫓겨났다.
저 광인의 행패가 갈수록 극심해져서 이제 이기찬 씨도 죽어가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소화를 못시켜서 먹으면 먹는 족족 토하고 위경련과 역류성 식도염에 시달려 시름시름 앓았다.
문제는 집을 보는 사람조차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결국 이기찬 씨는 어쩔 수 없이 변호사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일반적인 변호사들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상담료와 수임료만 노릴 뿐 전혀 심각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이기찬 씨는 회사 법무 팀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도 변리사 시험을 공부하다 그만둔 경력이 있어서 변호사들이 왜 이러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돈만 받으면 끝이라는 그들의 태도에 이기찬 씨는 진저리를 냈다.
그때 유일하게 진지한 태도를 보인 이가 있었으니 놀랍게도 그는 스트리머 변호사인 장변이었다.
“에… 흠. 그거 말입니까? 그거 정말 고역이겠군요.”
장 변호사는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수임료를 바라고 해결할 수 있다고 허장성세를 보이는 게 아니라 정말 꺼려하고 싫어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이 사람은 진솔하게 사건을 바라보고 있구나. 최소한 이기찬 씨가 처한 상황의 난처함을 이해하고는 있구나.
그런 진정성이 있는 태도였다.
“저 사실… 그런 일을 해결할법한 사람을 알고 있는데요.”
“뭐요? 사이다패스?”
“아하하하. 사이다패스면 좋겠지만 요새 사이다 패스는 사라졌잖아요?”
“젠장. 아깝군요. 너무나도….”
이기찬 씨는 진심이었다.
이 정신병자는 어느 날 갑자기 낫거나 하지 않는 한 주위 사람들을 해칠 것이다.
실제로 그의 차 손잡이에 인분을 바르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밑에 뿌려 두기도 했다.
그걸 색출해서 신고를 해도 벌금이나 손해배상이 전부일 뿐이고 그러면 이 남자의 광기는 더더욱 발작하는 것이다.
돈으로 때리는 민사 따위로는 소용이 없다.
오직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
“뭐 너무 그러지 마시고. 제가 소개해드릴 사람은 시현이라는 탐정인데.”
“탐정이요? 흥신소인가요?”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요….”
“알겠습니다. 찾아가보죠. 장변호사님이 소개해드렸다고 하면 됩니까?”
“아 그건 또 곤란한데요.”
장변이 난처해 했다.
그렇겠지.
폭력을 사주하는 일인데 변호사가 소개해줬다고 하면 자기도 덤터기 쓰게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알아서… 말해두지요.”
이기찬씨는 적당히 말하기로 하고 장변호사에게서 흥신소의 사무실 위치를 알아내었다.
* * *
이기찬 씨가 찾아간 곳은 시현탐정사무소라는 작고 허름한 탐정사무소였다.
아니 사실 건물 자체는 절대 작지 않다.
서울 마포구 주택가에 위치한 상가건물 근린생활시설에 마련된 이 건물은 땅값으로 따지면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이런데 있는 탐정사무실이라니, 믿음이 간다.
여기 사무실은 적어도 일반 사람들이 오고가면서 찾을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다.
큰길에서 일반 손님들에게 홍보하기 보다는 알 만한 사람들에게 은밀하게 일을 받아서 하는 곳이겠지.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문신한 떡대들이 사무실에 갖다 둔 치닝디핑이나 샌드백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가 이기찬 씨를 맞이해주지 않을까?
벽에는 테이프 감아둔 쇠파이프와 야구배트, 목도가 즐비하고?
그런 기대를 하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젊은 청년이 낡은 타자기 한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