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층간 파라노이아 #2
상당히 잘생긴 어딘가 냉랭한 인상을 가진 청년이었다.
체격은 작지 않지만 문신 떡대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그 혼자 있는 게 아닌가?
폭력배들이 득시글거리길 바라고 있었는데 젊은 청년 혼자라니?
이래서야 과연 이기찬 씨가 원하는 폭압적이고 불법적인 수단이 가능한지 의문이었다.
“아. 오셨습니까.”
“네?”
“장변호사님에게 대강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딱 봐도 층간소음에, 아니 정확히는 광인에게 시달리신 모습이로군요.”
“……”
“왜 그러십니까?”
“아니 정말 도움이 될 수 있는 겁니까? 제가 생각한 것과는 좀 다르군요.”
사실 이기찬 씨는 흥신소라고 해서 우락부락한 건달들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어야 효과적으로 광인을 처리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으로서는 그러면 안 되겠지만 차라리 죽여 없애고 싶다.’
사이다패스가 아니면 조직폭력배라도, 초법적 수단을 써서라도 상대를 지워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는 진짜 탐정 같아보였다.
“흐음. 많이 힘드셨나 보군요. 제가 여기 탐정 사무소의 소장, 시현입니다.”
시현이라고 스스로 소개한 탐정은 명함을 내밀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사이다패스가 개점 휴업상태라서 제게 오신 거로군요.”
시현이 그렇게 말하며 웃었지만 이기찬 씨는 웃을 수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죽이고 싶다.
아니 죽여야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쪽이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이 미칠 것 같은 대륙법의 세계는 이기찬 씨와 그 가족을 저 광인으로부터 지켜주지 않는다.
죽고 난 뒤에 미적지근한 복수는 해줄 수 있겠지.
강제로 정신병원에 처넣는 등의 미적지근한 복수 말이다.
이기찬 씨와 그 가족에게 자신의 목숨은 매우 소중하지만 이 사회에서 그들의 존재는 그저 규모의 경제를 견인하는 톱니바퀴 중 하나다.
톱니바퀴 몇 개에 위협이 온다고 해서 시스템 전체를 갈아엎을 리는 없다.
광인이나 범죄자의 표적이 되어도, 확실히 높은 확률로 범죄의 대상이 되어 위험한 상황이라 해도 경찰이나 공권력이 작동하는 시스템을 바꿔가면서 그들을 지켜주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스스로 자의적으로 자신들을 지키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 끔찍한 사회는 선량한 희생자들에게 너희들이 죽음으로서 선의의 희생자임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잘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탐정이 그렇게 말했다.
“…네?”
“그동안 힘드셨지요? 경찰은 일이 저질러지기 전까지 수수방관하고, 미치광이 정신병자에게 벌금이나 민사소송 배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네.”
“저희 시현 탐정 사무소는 언제나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반드시 고객님께 만족을 안겨드리겠습니다.”
말하는 걸 보니 적어도 그동안 상대하던 이들과 달리 진심으로 이기찬 씨의 고통에 공감해 주는 것 같았다.
문신한 폭력배들이나 떡대들을 원하던 이기찬 씨였지만 이 탐정의 말에 마음이 좀 누그러졌다.
게다가 장변호사의 추천도 마음에 걸렸다.
어지간하면 남들에게 추천하지 못할 텐데… 장변호사는 ‘이런 걸 해결할법한 사람’이라고 추천해주었었다.
“…그, 그렇다면. 비용은 얼마입니까?”
“비용 말이지요. 비용은….”
탐정은 계약서를 내밀었다.
“500만원에 수명 1년이요?”
이기찬 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여기 계약서에 수명 1년이라고 되어있는데… 진심입니까?”
“네. 진심입니다.”
“수명을 받는다고요? 진짜로? 아니 어떻게요?”
이기찬 씨는 당황했다.
미친놈을 피해서 왔는데 여기도 미친놈이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시현이라는 이 탐정은 설득력이 있었다.
우습게도 이 남자는 잘생겼다.
외모가 설득력이라고 해야 하나….
머리를 산발하고 광기를 흩뿌리는 광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신뢰감을 안겨주었다.
‘아니 신뢰하면 더 위험하지 않나….’
수명을 정말 빼앗아 갈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위험하다.
어떻게 빼앗는 다는 거지?
장기를 뽑아가나?
“대체 어떻게 수명을 빼앗아갑니까? 장기를 적출합니까? 아니면 뭐 바이러스라도 주입하나요?”
“수술이나 주사 같은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럼 대체 뭡니까? 어떻게 수명을 빼앗아가겠다는 겁니까?”
“수명을 1년 줘도 된다고 생각하면 되는 겁니다. 뭐 그게 싫으시면 어쩔 수 없습니다만.”
“아.”
현재 이기찬 씨는 지쳐있었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자서 신경이 날카롭다.
지금이라도 기절해버리고 싶은 심정인데 수명 1년이 대수인가.
이대로라면 며칠 더 못 살고 죽을 판인데….
수명을 가져갈 수 있다면 가져가보라지.
이 인간 어차피 500만원 달라고 계약서에 쓰여 있잖아?
돈을 받으면서 뭐 분쟁생기면 깽판치려고 넣은 내용인가 보지.
그거 아닌가? 그거. 베니스의 상인에서처럼 계약을 깼을 경우 엿 먹이려고 넣은 조항?
그러면야. 계약 깰 생각도 없으니 상관없지 않을까?
그런 자포자기한 마음이 앞서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500만원에 수명 1년, 이거면 되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기찬 씨는 그렇게 탐정과 계약을 맺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저희 탐정사무소의 우수한 고객서비스를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우선… 주무시지요.”
“네?”
“몰골을 보아하니 좀 쉬셔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간이침대를 내어드릴테니 주무시지요.”
“그게 무슨….”
이기찬 씨는 황당해했지만 시현이 정말 간이침대를 내어주자 별 생각 없이 드러누워버렸다.
그리고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든 것이었다.
* * *
“으음. 사이다패스가 사라져서 일이 나에게 많이 몰리는 군.”
시현은 타자기의 악마가 여유가 생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들어온 일은 열심히 한다. 그게 바로 프로의 자세이니까.
-타다다닥!
타자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본래 수명을 받을 땐 돈은 어지간하면 안 받지 않았습니까?]
“너무 돈을 안 받으면 사람들이 의심해서 계약서에 서명을 안 하려고 하더라고. 특히 돈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일수록, 내가 돈도 안 받고 수명만 받을 땐 의심하고 꺼려하는 게 심해져.”
너무 가난해서 정말 돈 낼 수 없는 사람들은 시현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정말 자신의 수명을 내줄 각오로 계약을 한다.
하지만 돈이 있는 사람들은 돈이 대가로 지불되지 않으면 무조건 의심하게 되는 게 인간의 심리다.
“설명하거나 설득하기도 귀찮고 해서. 돈도 받는다. 그리고 뭐 받아서 나쁠 것도 없잖아? 준비 작업이나 이것저것 할 때마다 돈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시현은 그리 말하고 타자기의 종이를 뽑아 구기고 새 종이를 세팅했다.
그런데 막 작업을 준비 중이던 때 휴대폰 문자로 연락이 왔다.
성신아였다.
[그래서. 미행하다 들킨 건 어떻게 되었어요? 류하리에게 완전히 변태로 낙인찍히고 끝장났나요? 아니면?]
‘별일 없이 끝났습니다.’
시현도 문자로 답했다.
[네? 무슨 소리에요?]
‘그날 그녀를 태워다 주고 왔죠.’
[와. 그게 가능해요? 음. 역시 류하리가 당신을 감시해야 하니까 스토킹을 하건 말건 이용하는 건가?]
‘이용이요?’
[네. 미인계인거죠. 당신이 자신에게 관심 있는 걸 알고 일부러 그걸 이용하면 당신을 감시하는 일이 편해지지 않겠어요?]
‘그건 참 대단히… 악의적인 시선이군요.’
[아하하. 제 입장에서는 좋게 볼 수 없는 처지라서… 그래서 별일 없이 둘 사이는 괜찮다 이거군요. 재미없는데.]
‘파탄이 나길 원하셨습니까?’
[조금은요. 아니 하지만 당신이랑 류하리랑 잘되면 그것도 제게는 좋으니까요. 응원하지요.]
‘최형림씨와는 그리 얽히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요.]
시현의 경고를 성신아는 집안문제나 가문문제, 재산 문제 때문에 하는 충고로 들었나보다. 톡으로 대화하는 데도 의기소침해진 게 보였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만… 길게 말해봐야 곡해만 하겠군요. 그럼 저는 일하러 갑니다.’
시현은 그리 문자를 보내고 혹시나 싶어서 확인을 해보았다.
그의 눈이 금색으로 빛나며 주위의 점들이 보인다.
성신아에게 박아 넣은 태그가 저 멀리서 빛난다. 그런데… 그 거리와 방향이 어째….
‘어라? 지금부터 가야 할 곳이네.’
이기찬 씨네 아파트가 있는 곳 근처에서 성신아의 태그가 반짝이고 있었다.
* * *
고객 만족 서비스의 핵심은 고객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다.
고객이 강도 피해자라면 피해자의 심정을 이해해야 하고, 강도라면 강도의 심정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호오를 앞세울 거라면 아예 의뢰를 받아선 안 된다.
그것이 시현이 탐정으로서 스스로에게 부여한 직업윤리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정신적인 면에서는 참으로 동기부여가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조용하군.’
24시간 우퍼를 틀어두고 망치로 천장을 때린다고 했는데 어째 조용하다.
시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까운 카페에서 성신아의 태그가 반짝이는 게 눈에 들어온다. 거리는 고작 300미터 남짓, 아파트 단지 밖에 걸어가면 바로 닿을 거리다.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뭔가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이건 일단 이야기를 들어봐야겠군.’
그리 생각한 시현은 현관 벨을 눌렀다.
벨을 눌러도 아무런 소리가 없다.
초인종 전기선이 끊어져 있나?
아니면 일부러 끊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거 영… 마음에 안 드는 데.’
시현은 문을 두들겨 보았다.
“계십니까?”
그러자 잠시 후, 비척비척 거리는 발걸음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수척한 얼굴의 남자가 졸린 눈을 하고 시현을 맞이했다.
“누구쇼?”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시현은 탐정 명함을 내밀었다.
“시현 탐정사무소?”
“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실례지만….”
하지만 시현이 말을 미처 끝마치기도 전에 남자가 손을 뻗어왔다.
물론 시현에게는 별 위협이 아니다.
그래도 시현은 뿌리치지 않고 남자의 손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걸 방치했다.
남자는 시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자, 잘 왔습니다. 어서 안으로!”
남자는 오히려 시현을 환영했다. 마치 기다리던 택배가 마침내 도착한 것처럼 열렬한 환영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시현은 그의 안내에 따라 집안에 들어섰다.
* * *
집안은 온통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남자는 생활 쓰레기들을 닥치는 대로 쓰레기봉투에 모아두다가 쓰레기봉투가 가득차면 묶어서 거실에 쌓아두는 것 같았다.
벌레가 들끓을 법도 한데 어지러울 정도로 소독약 냄새가 났다.
“자… 여기.”
남자는 소독약을 시현에게 내밀었다.
손 소독제와 뿌리는 소취 소독제, 알코올이다.
시현은 일단 그걸 받아서 손을 비비면서 물어보았다.
“집안이… 어지럽군요.”
“쉬잇….”
“네?”
“들리지요. 지금. 날 밟아 죽이려는 이 음파무기가!”
“….아.”
시현은 혀를 찼다.
이 남자. 완전히 맛이 갔다.
‘아니 대체 음파무기로 어떻게 사람을 밟아 죽인다는 거야? 말하는 게 뒤죽박죽이군.’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