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층간 파라노이아 #3
“윗집 놈은 정보경찰의 하수인입니다. 절 미친놈으로 만들려고 계속 음파병기를 틀어두고 있지요.”
“녹음은 해두셨습니까?”
“녹음기에 걸리지 않는 저주파라서 녹음되지 않아요! 하지만 보세요. 이 심장 떨리는 소리를!”
“…….”
시현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고 있지만 이 남자에게는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럼 왜 이렇게 방안에 쓰레기를 가득 채웠지요?”
“정보경찰들이 날 감시하고 있어요. 쓰레기도 함부로 버리러 나갈 수 없지 뭡니까. 게다가 이 쓰레기들에는 내 정보가 담겨있으니까! 함부로 내놓을 수 없지요.”
“…….”
전형적인 피해망상 상태였다.
“약으로 엄청 절여놨군요. 이건 어떻게….”
“살충제와 업소용 락스를 사서 뿌려두고 있습니다. 쓰레기 때문에 바퀴벌레나 벌레가 꼬이면 공동생활에 피해를 주니까.”
“공동생활에 피해를 주니 말입니까?”
“네! 그렇지요. 아파트에서 벌레나 쥐가 들끓으면 얼마나 골치 아프겠습니까? 함께 사는 공간이니 남들에게 폐는 끼치지 말아야지요!”
공동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이러고 있다는 건데 의외로 흔한 유형이다.
자신은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으니까 윗집에서 층간 소음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분노하는 거겠지.
“나는 이렇게나 공동생활을 신경 쓰고 있는데 저 윗집 사람들은! 아무리 정보경찰의 끄나풀이라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소리가 들릴 텐데… 다들 두려워서 입을 다물고 있지만 전 압니다. 다들 윗집 사람들을 싫어하고 두려워 한다는 걸 말이죠.”
“그래도 일단 쓰레기를 치워보죠. 벽이 좀 드러나야 도청을 하는 지 안하는 지 알 수 있지요.”
“아 도청! 맞아!”
남자는 시현의 말에 옳다구나 하고 박수를 치다가 흠칫 놀랐다.
“하지만 정보경찰 놈들이 제 쓰레기를 뒤져서 제 정보를 알아낼 텐데요.”
“특수한 업자를 통해 한 번에 처리할 거니까 괜찮습니다. 게다가 영수증이나 생활 쓰레기에 있는 것보다 지금 제가 방문했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한 정보이지 않습니까. 정보 유출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우선순위를 가지고 자잘한 정보는 오히려 흘려보내는 게 이득입니다. 일종의 역정보 전략이지요.”
“역정보 전략….”
“네. 가치가 낮은 정보를 많이 흘려보내서 그 안에 진짜 정보를 숨기는 겁니다. 그리고 도청을 제거한다면 그게 더 이득 아니겠습니까?”
“아. 그렇군요. 역시 당신은 탐정이군요.”
“믿으십시오. 저는 보안전문가 입니다.”
시현은 남자에게 그리 말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을 불러도 되겠습니까?”
“네.”
* * *
청소 업체 사람을 불러서 쓰레기를 치우게 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시현은 남자의 정보를 알아냈었다.
남자의 이름은 윤영기.
문화관광부 6급 주무관.
‘듣기론 사무관이라고 들었는데 허세였나.’
사무관은 5급 주무관은 6급이다.
뭐 하지만 남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사무관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편하니까.
이정도 허세는 허용범위다.
원래대로라면 곧 사무관이 될 사람이었을지도 모르니까.
“제 쓰레기를 열고 제 정보를 훔쳐가지 않을까요?”
다만 지금은 이렇게 한심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쓰레기 안에 있는 정보래 봤자 신용카드 결제정보나 주소, 이름 같은 게 전부일 텐데 그런 건 이미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래도 시현은 이 남자를 책망하지 않았다.
피해망상증 환자에게 책망해봐야 합리적인 사고가 될 리가 없으니까.
“안심하십시오. 저들은 각자 다른 곳에 쓰레기를 처리해주는 업자입니다. 숙달된 방식으로 쓰레기에서 개인정보가 빠져나가지 않게 잘 처리 해 줄 겁니다.”
시현이 그렇게 말하자 쓰레기 처리 업자가 깜짝 놀랐다.
“시현씨 무슨….”
“쉬잇.”
시현은 업자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다.
고참 업자가 신참 업자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저 친구 일에 간섭하지 마.’
고참 업자가 눈치를 주었다.
그 사이에 시현은 윤영기에게 물어보았다.
* * *
“그래서. 어째서 정보경찰이 당신을 노리기 시작했습니까?”
“그야 당연히 제가 높으신 분들의 비밀을 알아챘기 때문이지요.”
“어떤…. 일입니까?”
“혹시 T시를 아십니까?”
“T시가 왜요?”
“그 T시에서 온천개발 사업 인가가 났습니다. 그런데 그 T시의 근처에는… 모 유명 종교 교단의 시조의 생가가 있지요.”
“………”
시현도 익히 알고 있는 종교단체다.
놀랍게도 이 종교단체는 한국에서 시작했으면서도 일본이나 미국에도 독실한 신자들이 있다.
“그래서 외국인들, 외국 신도들이 많이 찾아올 것을 염두에 두고 문화관광부에서는 카지노 인가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카지노 사업은 엄청난 돈이 되지요.”
“카지노 사업이라고요?”
시현은 주무관 윤영기의 말에 당황했다.
원래 그는 주무관 윤영기가 단순한 정신이상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황이 다르다.
물론 층간소음 문제에 대해서는 윤영기는 그저 해괴한 정신병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층간소음 문제가 아닌 영역에서는?
그가 느끼는 피해망상이 아예 근거 없는 거짓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만약 이 남자가 말하는 게 사실이라면?
‘문광부 소속이라고 해서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카지노 사업이라면… 음. 문광부에서 인가할 수 있는 사업 중에 가장 이권이 많이 개입되는 사업 아냐? 사실이라면….’
시현은 혹시나 해서 남자를 돌아보았다.
“괜찮으시다면 도청기를 찾아보겠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네.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음. 그게 말이지요. 그러려면 고용을 해주셔야 하는데.”
“고용이요?”
“네. 저는 프로니까 무상으로 일을 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 그야 그렇지요. 제가 부탁드립니다. 고용이 되어야 믿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일이 이상하게 되었다.
원래 시현은 이 남자를 표적으로서 처리하려고 했는데 졸지에 이 남자도 고객이 되어버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동의하신 걸로 알고 검출기를 가져오겠습니다.”
* * *
냉전시대가 끝나고 반도체 산업이 규모의 경제가 되면서 첩보활동에 쓰기 위해 특수 목적의 칩을 따로 주문생산 한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중에는 도청기가 만들어지고 팔리고 있지만….
시판되고 있는 도청기들은 이미 그 스펙이 다 노출되어 있는 상태다.
게다가 도청기를 파는 회사들이 도청기를 잡는 검출기를 팔고 있으니….
탐정들이라면 누구나 도청 검출기를 가지고 있다.
시현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간단히 도청 탐색기를 돌려보니 나오는 게 없다.
‘전파로 송수신하는 도청기는 없는 것 같군. 뭐 그렇겠지.’
옛날 냉전시절에는 전화기나 육성이 중대한 정보를 담고 있었지만 요새는 컴퓨터가 대중화 되어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훨씬 더 중요한 정보를 대량으로 주고받을 수 있다.
현대에서 도청의 가치라는 건 불륜 커플 잡기 정도에나 쓸모가 있지 굳이 이런 독신 공무원 남자를 도청해가면서 감시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지.’
시현은 호들갑을 떨었다.
“뭔가 있군요!”
“네? 역시 그렇지요!”
“네. 도청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케이블 단자함을 열어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네 그럼….”
시현은 이 윤영기라는 사람에게서 적당히 탐정 수임료를 받고 도청기를 찾아낸 척 하려고 했다.
일단 도청기라는 실체가 있으면 윗집 사람들은 도청기를 깔아둔 세력과 별개라고 설득이 가능해지고….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차라리 망상이 아닌 실제적 위협을 보여주는 게 오히려 더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재앙보다는 차라리 확실히 터져버린 재앙에 오히려 안심하는 경향이 있다.
일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재앙, 그 자체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
그리고 그것이 바로 피해망상증 환자가 쉽게 피폐해지는 이유기도 했다.
실질적인 고통보다 언제 고통이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게 피해망상증 환자이기 때문에…
그러니 미리 가져온 도청기를 발견한 척 하면서 보여 주면 이 남자를 조종하는 거야 누워서 떡먹기다.
그런데….
“어?”
벽의 케이블 단자함을 열어본 시현은 깜짝 놀랐다.
유선식 도청기가 들어있었다.
“이게 왜 여기에 있어?!”
시현은 정말 도청기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 * *
“뭡니까?”
“도, 도청기입니다. 잠시 배전반을 열어보지요.”
시현은 배전반을 열어보았다.
일반적인 통신회사의 고속인터넷 선 설비 외에는 딱히 없다.
‘그럼 도청 장치를 설치한 인간은 인터넷 기사라는 소린데….’
시현은 윤영기 씨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최근 인터넷 설치 기사를 부르신 적 있나요?”
“아뇨.”
“언제 인터넷 선을 설치했습니까?”
“이사 오고 나서 바로요. 한 2년 전?”
“카지노 사업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역시 2년 전입니다.”
“……”
사람의 음성을 인식해 작동해서 녹음한 데이터를 디지털 방식으로 쏘아내는 유선형 도청기, 이것은 일반적인 무선형 도청기나 시현이 사용하는 집음기보다도 훨씬 더 커다란 조직이 운용할 수 있는 물건이다.
일단 이걸 설치한 놈, 그리고 관리하고 유지 보수하는 놈도 그렇지만 이 정보를 받아서 관리하는 전문 IT팀도 있음에 분명하다.
윤영기 씨가 말하는 대규모의 비리라는 게 어쩌면 사실일 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거 뒤에는 꽤 큰 조직이 있나보군요.”
“역시! 그렇다니까요! 아하하하하.”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던 윤영기 씨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피해망상이 단순한 망상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위협임이 입증되었는데… 그가 느끼는 건 오히려 허탈감과 해방감이었다.
“하아.”
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위층의 사람들은 범인이 아니겠군요.”
“네?”
“여기 장착된 도청기는 단자 너머로 집음 하는 장비라서 그다지 성능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굳이 노이즈를 끼게 해서 녹음 품질을 더 저하시킬 이유가 없지요.”
사실은 인간의 음성은 중역대고 쿵쾅거리는 소음은 저음이라서 간단하게 걸러낼 수 있다만… 시현은 그 점은 감추고 윤영기 씨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 그렇습니까?”
“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가 도청되고 있는 이상 이곳은 안전한 장소가 아닙니다. 그렇지요.”
“그, 그렇지요!”
“그런데 왜 굳이 층간 소음 문제로 윗집과 싸우십니까?”
지금까지는 윗집의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기 위한 비리집단의 끄나풀이라고 믿던 윤영기 씨였지만 도청 장비라는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자 이제는 태도를 바꾸어 윗집 사람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걸 믿기 시작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