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56화 (156/269)

제156화

층간 파라노이아 #6

“놀랍군요. 또 그 탐정이란 말입니까? 경찰과도 척을 지더니 이번에는 이런 일에? 정말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군요. 그래서? 어쩌자는 겁니까?”

“그것까지 제가 말해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최 검사님은 방법을 알고 계실 겁니다.”

“…….”

“이 사건을 활용해서 끼어들면 자연히 저쪽에서 최 검사님을 포섭하러 올 겁니다. 이 거대한 사업에 당당히 한자리 끼게 되시는 거지요. 그럼 앞으로 이쪽 라인의 흐름을 타고 검사님의 앞날은 그야말로 탄탄대로가 되는 겁니다.”

뒤가 구린 고위직들의 약점을 잡게 되어 그들과 한 패거리가 되어 승승장구해라.

영사의 권유가 의미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확실히 보통 평검사에게는 너무나 달콤한 제안이다.

거절하려야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아닌가?

그러나….

“보아하니 당신도 이미 한 다리 걸치고 있는 것 같군요.”

최형림은 영사가 이미 이 카지노 사업에 한 다리 걸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후후. 예리하시군요.”

“아니 예리하고 뭐고 간에 당연한 일 아닙니까. 당신이 가져온 자료는 내부자가 아니면 손에 넣을 수 없는 자료 같은데?”

“그건 아닙니다. 제가 원하면 어디의 내부 자료도 꽤 쉽게 가져올 수 있거든요. 하지만….”

영사는 자신이 끼어들었음을 긍정했다.

“네, 이건 제 사업이기도 합니다. 뭐 그냥 근처의 농지 좀 사둔 것에 불과하지만요.”

“…의외로 고전적인 방법을 쓰시네요.”

“최 검사님이 처음에 지적하신 대로 카지노 관련 사업에는 저 같은 사람이 감히 발을 들이밀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강원도의 카지노도 사기업이 아니라 공기업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도 리조트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호텔을 짓고 호텔 숙박비 일부를 먹는 게 고작입니다. 대기업들도 그럴진대 저 같은 양아치 놈은 근처에 모텔이나 펜션, 좀 하면 전당포나 사채업 정도가 다겠지요.”

“그래도 카지노 근처의 전당포나 사채업은 상당히 돈이 되지 않습니까? 아 잠시.”

최형림은 전화가 온 것을 보고 전화기를 꺼내 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시현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아니 이 사람이 왜 내게 연락을 하는 거지? 지금 이 타이밍에?”

최형림은 불길한 예감에 몸이 떨려왔다.

최형림은 현재 공덕동의 오피스텔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서부지검에서 매우 가까워서 차를 탈 일 없이 걸어가도 그만인 거리다.

그런데 서부지검 앞에 찾아온 영사를 만나고 있는 와중에 시현이 뵙겠다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저번에 미카엘을 만나는 장면을 어이없이 들켰었지. 그런데 이제 영사를 만나는 장면 까지 들키면 곤란하다.’

시현은 이미 최형림을 의심하고 있다.

최형림 자신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미 들켰으니 막나가자고 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시현과의 약속시간은 좀 잡을 수 있었고 영사는 미카엘과 달리 시현의 눈을 신경써줬다.

“아마도 미카엘 그분은 일부러 들켰을 겁니다.”

“일부러 말입니까?”

“네. 재밌으라고 말이지요.”

“하하하. 퍽이나 재밌군요.”

“뭐 지루해하시는 거지요. 그럼 저는 여기서 물러나겠습니다.”

영사는 자취를 남기지 않고 조심스럽게 물러나서 최형림은 무사히 시현과 1대1로 만날 수 있었다.

* * *

“어쩐 일입니까? 갑자기?”

“다름이 아니라 여기 이 자료를 보시죠.”

시현은 대뜸 최형림에게 자료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도청 관련 자료들이었다.

윤영기 씨의 아파트에 어디어디에 도청기가 설치되었고 도청기 제조사는 어디이며, 어디에서 유통된 로트 번호인지. 그리고 어디로 녹음된 데이터가 전송되는지에 대한 자료가 세세히 정리되어 있었다.

“카지노 인가 사업의 타당성을 조사하고 있던 문화관광부 주무관 윤형기 씨의 집에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있더군요.”

“도청기 말입니까?”

최형림은 짐짓 처음 듣는 소리인양 놀라는 시늉을 했다.

“네. 유선형 도청기가 도청한 데이터를 특정 IP주소로 보내게 되어있는데 그 IP주소는 D대 사설 BBS고 여기서 다시 복호화를 해서 다크웹으로 송출되게 되어 있더군요. 다크웹에서는 특정 코드를 이용해서 복호화 해제를 해야 정확히 자료를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도저히 추적이 불가능했습니다.”

“D대 사설 BBS의 접속로그를 보면 되겠군요.”

“영장도 없는데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리고 이 복호화해서 다크웹에 쏘는 명령어는 아주 오래 전부터 활성화 되어 있었다더군요. 조사하려면 거의 D대학을 뒤집어엎는 본격 조사가 아니면 힘들 겁니다.”

영장을 청구해서 검사가 조사한다 해도 꼬리를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 없는, 아니 장담한다면 99% 아무것도 건질 수 없다고 할 만큼 복잡한 구조다.

“그럼 누가 도청을 했는지는 확정할 수 없군요.”

“네.”

“혹시 자작극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뭐 자작극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당사자인 주무관은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 주무관의 진단서와 처방 내역입니다.”

시현은 윤영기 씨의 치료내역도 자료로 증빙했다.

“하지만 저는 자작극보다는 실제 위협이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이렇게 된 거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실제 위협이 있었다?”

“네. 즉 윤영기 씨는 피해자인 거지요. 집에 도청기를 설치할 정도인데 사람 하나 미치게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도청한 이들을 고발하려는 겁니까? 이 자료를 제게 넘기는 건 수사를 청탁하기 위해서 입니까?”

“아니요. 그런 짓을 하면 윤영기 씨가 마티즈 안에서 연탄불 피운 채로 발견될 거 아닙니까?”

“………….”

타인에 의해서 살해당하고 자살로 위장된다.

그런 말을 검사 앞에서 당당히 하다니.

“수사를 요청하는 것도 청탁하는 것도 아니라면 왜 제게 이걸 넘겨주시는 겁니까?”

“시현 탐정사무소는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고객인 윤영기 씨는 그저 건강을 되찾고 복직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정의 구현하겠답시고 딱 봐도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적에게 맨몸으로 돌진할 수는 없잖습니까?”

“그러면….”

“최 검사님이 이걸 상부에 넌지시 찔러주시지요.”

“예?”

“평검사니까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첩보가 들어왔는데 상부의 수사지시를 받고 싶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자연히 상부에서 수사 방향을 잡고 지시가 내려오지 않겠습니까? 철저히 수사해서 엄벌하라고 하면 그렇게 하면 되고 그게 아니라 적당히 덮으라고 하면 그것도 좋습니다. 사실 저희 쪽에서는 후자가 좋지요.”

“후자라면, 상부에서 덮으라고 할 경우 말입니까?”

“예. 저희가 설득되어서, 최형림 검사님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고 해주시면 됩니다.”

“…….”

최형림은 진심인가 싶어서 시현을 바라보았다.

시현이 빨대를 입에 물고 커피를 마시며 최형림의 시선을 능글맞게도 받아냈다.

* * *

“지금 이거 진심이십니까?”

“충분히 진심입니다. 제 고객이 원하는 바는 안정과 복직이지 뭐 정의구현 하겠다고 굳이 자신을 도청하던 이들과 정면충돌하려 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참고로 보내드린 자료에는 안 나와 있지만… 도청기를 단 쪽은 이드엠 소프트라는 IT회사 주소로 되어 있더군요.”

“네?”

“동대문구에 위치한 IT회사인데 특이하게도 통신사의 통신설비 기사들을 파견하는 일을 하는 업체도 같은 주소를 공유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이드엠 소프트 본사 건물에 성신아 경위와 서울중앙경찰의 정보과 경찰들이 종종 가던데요?”

시현은 성신아에게 태그를 박아두었기 때문에 그녀가 이드엠 소프트에 종종 접근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이드엠 소프트라는 회사는 국정원이나 경찰 정보과의 방첩 팀으로 보이더군요. 위장 기업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런 위장기업들의 문제는 서울 부동산 가격이 워낙 비싸니까 위장기업들 주소를 한곳에 몰아넣는 경향이 있단 말이죠.”

시현은 성신아의 태그가 반짝이는 것을 이용해 이드엠 소프트라는 회사를 찾아냈고 그 회사의 주소에서 통신 설비기사를 파견해 윤영기 씨의 집에 도청장치를 달았다는 사실도 알아내었다.

“이드엠 소프트의 사장은 카이스트 출신의 해커 장인정, 과거 N코어 백화점 그룹의 고객데이터를 랜섬웨어로 탈취, 잠가버리고 대가로 200억을 요구한 랜섬웨어 범죄로 유명한 인물이지요.”

“네. 저도 압니다.”

“그걸로 인터폴에 수배까지 되었던 친구던데 전과 하나 없이 IT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더군요.”

“그게 바로 이드엠 소프트입니까?”

“예. 그런 걸 보면 사법거래를 조건으로 국정원 방첩 팀으로 스카우트된 것이겠지요?”

“…………”

시현이 최형림에게 넘겨준 보고서는 어디까지나 그가 알아낸 정보의 극히 일부들이다.

시현은 영특하게도 자신이 알아낸 정보들 중 극히 일부만을 보고서에 담아둔 것이다.

이것보다 더 담으면 경계당하고, 덜 담으면 하찮다고 무시당할 테니까.

“놀랍군요. 그냥 탐정인데 거기까지 알아냈단 말입니까?”

최형림은 솔직하게 시현에게 감탄했다.

역시 데드맨이라고 할까.

이 탐정의 능력은 예사롭지 않다.

“뭐 어디까지나 민간 조사원 신분으로서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이건 그냥 추측을 더해서 하는 말입니다. 근거 없는 말이에요.”

시현은 그렇게 겸손을 부렸지만 그가 하는 말은 이미 굉장히 위험한 영역에 들어선 발언이었다.

시현의 발언에 내포된 의미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내국인 용 카지노 인가 사업이 진행 중이다.

2. 카지노 인가 사업의 타당성 조사 직원들에게 전부 도청과 감시가 붙었다.

3. 그 감시 주체는 아마도 국정원인 것 같다.

4. 국정원이 카지노 사업에 참여해 비자금을 조성하려 하는가?

만약 시현이 예측한 대로 국정원이 개입되어 있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근거 없는 말이라… 하지만 만약 근거가 있다면 이거 보통 큰일이 아닙니다. 이란-콘트라 사건의 한국판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이란-콘트라 사건이란 CIA가 이란에 무기를 팔아 조성한 비자금으로 남미 콘트라 반군을 지원한 사건이었다.

정보조직이 독자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마음대로 공작활동을 벌인 것으로 크게 문제가 된 사건이다.

“하지만 파지 않을 생각입니다. 고객의 목숨이 위험해질 테니까요.”

“공명심에 제가 수사를 해서 일을 크게 만들 수도 있지 않습니까?”

최형림은 그렇게 물어보았다.

“제가 보는 한 최형림 검사님은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이 자료를 넘겨드리는 거지요.”

이미 최형림은 법무부 브리핑도 한 유명 검사다.

사이다패스 사건을 이용해서 명확한 적을 만들지 않고 얼굴과 이름을 세상에 알린 그가 국정원과 척을 지어가면서 공명심을 날릴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정치에 뜻을 두고 있다고 생각해서 하는 소리인가?’

최형림은 시현이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고 느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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