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57화 (157/269)

제157화

층간 파라노이아 #7

네가 부패한 검사인지, 정의감에 차오른 검사인지 알아보겠다.

그렇게 작정하고 시험하는 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게다가 마침 영사도… 나에게 이걸 권했지.’

최형림은 영사가 자신에게 들고 온 제안과 시현의 제안이 겹치는 것에 불쾌감을 느꼈다.

둘 다 최형림에게 이걸 기회로 야심을 채우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유혹해 타락시키려 하는 악마처럼, 달콤한 미끼를 흔들며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불쾌하다. 날 뭐로 보는 거야?’

물론 최형림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남자다.

사이다패스도 이용했다.

영사나 시현이 자신을 하찮은 속물로 본다 해도 변명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불쾌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최 검사님께서 내키지 않을까봐 드리는 말씀인데.”

“네?”

“최 검사님의 높으신 도덕심에 비추어 볼 때 내국인 카지노를 진행하려는 세력에 영합해서 이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겠군요.”

“………”

“안심하세요. 이 카지노 사업은 절대로 성사되지 않습니다.”

“네?”

최형림은 순간 깜짝 놀랐다.

사업계획서나 컨소시엄 구성원의 면면을 보면 이 카지노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이들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국내 최고의 회계법인 삼경.

T시의 시장.

충청남도 도지사.

호텔 리조트 업계, 1위부터 5위까지….

이런 거물들이 달라붙어도 실패할 수 있는 게 카지노 인가 사업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실패한다고 장담할 수 있는 일인가?

고작 민간탐정 한 명이?

“어째서 그렇게 자신하십니까?”

“아 이건 비밀을 지켜주셨으면 하는 이야기인데…. 정말 비밀로 지켜주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말씀해보세요.”

“그게 말이죠.”

“네….”

“아, 아니 아닙니다. 일이 되고 나서 알려드리지요.”

“…….”

최형림은 시현이 사실 처음부터 말할 생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과연 뭔가 방법이 있어서 이러는 것인지 아니면 최형림을 엿 먹이기 위해서 괜히 허세를 부리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현이 이렇게 말하니 최형림의 마음이 자연히 보고 쪽으로 기운다는 것이었다.

‘어디 정말 네놈이 이 사업을 막을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자.’

최형림은 시현의 솜씨를 확인해보기로 하고 시현이 건네주는 자료를 받아들었다.

* * *

시현이 최형림에게 자료를 넘긴지 사흘 뒤, 윤영기 씨는 문화관광부 차관에게 호출을 받았다.

차관은 윤영기 씨의 건강 상태를 물어보고 업무에 복귀해줄 수 있느냐고 정중히 물어보았다.

‘용서해주겠다. 너희의 백기를 받아들이겠다.’

카지노 사업을 진행하고 윤영기 씨의 집을 도청하던 세력의 면죄부나 다름없었다.

이로서 일단 윤영기 씨의 안전을 확보한 셈이다.

* * *

“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집도 팔려서 새 거처를 구한 윤영기 씨는 다시금 시현에게 감사인사를 올렸다.

“약을 잘 챙겨 드시나 보군요.”

류하리는 안색이 핀 윤영기 씨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 네. 형님네 집에서 하숙하기로 했거든요. 형님이 약을 챙겨주기로 했습니다.”

“형님이요?”

“사촌 형님입니다. 기러기 아빠가 되어서 집이 비었다고 같이 사는 걸 적극 환영해주시더라고요.”

“잘됐군요. 으음. 하지만 제가 마음에 안 드는데요?”

류하리가 시현을 돌아보았다.

“뭐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들어요. 자기들이 불법 사찰을 저지르던 주제에 뻔뻔하게 뭐 용서라도 해주는 양 구는군요. 이런 놈들에게 백기를 들고 항복하다니. 아 물론 백기를 들고 항복해서 합의를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잘 알아요. 잘못하면 오히려 살해당할 수도 있는 판이었으니까 말이죠.”

류하리는 시현이 행한 일이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백기를 드는 것도 잘 들어야 상대가 받아주지 잘못 들면 오히려 상대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 이대로 끝인가?

이대로 저 카지노 만들려는 세력들이 승승장구하게 내버려 두나?

“내국인 카지노는 생기면 생길수록 사회에 해악만 끼치는 건데… 강원도도 워낙 세수가 적다. 도시가 얼어붙는다 해서 억지로 떠안겨 줬는데 강원도보다 훨씬 접근성 좋은 곳에 내국인용 카지노라니….”

“흠. 뭐 너무 그렇게 기분나빠하지 마세요. 이 사업은 절대로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괜히 열 올리고 초기 투자를 감행한 저 사업진행 측에게 한 방 먹였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사업이 절대로 안 된다고요?”

“네. 원래 카지노 인가 사업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닙니다. 게다가….”

시현이 어깨를 으쓱 해보였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네?”

그게 무슨 뜻인가?

자기가 이 사업을 통과 못하게 만들었다고 할 셈인가? 이 남자는?

류하리는 당황했다.

“그럼 윤영기 씨. 정산해주시겠습니까?”

“네. 정산 말이지요? 어떻게, 얼마나 드리면 됩니까?”

“여기 경비는 이 구좌로 입금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저희 시현 탐정사무소의 고객만족 서비스가 너무나 우수해서 이정도 서비스라면 수명을 넘겨줘도 상관없겠다는 진심어린 마음으로 ‘정산!’이라고 육성으로 외쳐주시면 됩니다.”

“유, 육성으로 말이지요? 뭔가 복잡하군요.”

“하지만 꼭 해주셔야 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음… 정산!”

“네, 감사합니다.”

시현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명함을 또 한 장 꺼냈다.

“앞으로도 뭔가 일이 생기면 주저 말고 저희 시현 탐정 사무소를 찾아주세요.”

“네, 그, 그러면 그간 감사했습니다.”

윤영기 씨는 많이 좋아진 모습으로 시현과 류하리에게서 떠나갔다.

* * *

시현이 최형림에게 부탁해 윤영기 씨의 사건을 처리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흐음.”

최형림은 명함들을 마치 트럼프 카드처럼 셔플하고 있었다.

“정말… 기분이 나쁘군.”

그는 자신이 악인임을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자. 사이다패스 마저 이용해서 사람들을 죽여대곤 했었으니 만약 그의 죄상이 밝혀진다면 살인교사로 종신형을 받아도 마땅하리라.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왠지 스스로 정해둔 선이 있었다.

그 자신이 살인교사를 일삼으면서도, 사리사욕을 위해서 공권력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이들을 보면 배알이 뒤틀렸다.

시현에게 받은 상사에게 자료를 건네주기만 했는데도 그 후 모든 게 시현의 말대로 흘러갔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서부지검의 상사들은 최형림에게 이렇게 말했다.

‘재미있는 정보원을 두고 있나 보군. 최 검사?’

다른 검사들은 최형림이 가지고 있는 정보원을 통해서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T시 카지노 사건에 최형림이 끼어들었다고 보는 듯 했다.

그런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 나는 아직 평검사란 말이지.”

대한민국의 관료사회의 뒤에 있는 어둠이 느껴진다.

도저히 어찌할 수도 없는 어둠.

과연 악마와 인간사회, 어느 쪽이 더 빡빡할 까?

최형림이 악마라는 존재들을 알게 되고도 별로 거부감 없이 그들을 받아들인 건 결국 그게 인간의 인생이기 때문이었다.

국가, 사회, 관료제, 재벌가….

일개 개인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너무나 손쉽게 한 인간의 운명과 미래를 좌지우지 하며 때로는 불합리한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런 놈들 사이에 악마라는 존재가 하나 더 끼어들었을 뿐이다.

아니 그나마 악마들은 인간에게 열망하고 있기에 다루기 쉬운 편이다.

인간 그 자체의 탐욕은 악마보다도 훨씬 더 사악하고 집요해서 도망칠 방도가 없었다.

‘역시 독사를 제압하려면 머리 쪽을 움켜쥐어야지. 사이다패스가 필요해. 대체 언제 복귀하는 거지? 그녀는?’

최형림이 상사들의 압력을 타개하기 위한 돌파책으로서 사이다패스의 부재를 아쉬워할 때였다.

갑자기 문 밖에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놀랍게도 영사가 직접 서부지검에 찾아온 것이었다.

“맙소사. 무슨 생각입니까? 검사실까지 직접 찾아오다니?”

“괜찮습니다. 기록에 남지 않을 겁니다. 남들에게 보이지도 않을 거고요.”

“…네?”

최형림이 의아해할 때 문을 열고 영사가 걸어 들어왔다.

“이번에는 데드맨에게 당하셨더군요.”

“당했다니요?”

“TV 안보셨습니까?”

“TV?”

“그냥 뉴스채널을 보시면 됩니다.”

“뉴스라고요?”

최형림은 컴퓨터를 이용해 뉴스채널로 가보았다.

최형림은 뉴스에서 나오는 걸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강원대, 경북대, 충북대 3개 사학과가 함께 손을 합쳐서 T시 인근 온천장 지대의 학술탐사를 시작했고 거기서 유적이 발굴되었다는 기사가 나온 것이다.

‘T시 온천장 학술조사, 세계 최초의 벼농사용 농기구 발견. 소로리 볍씨와 동일연대?!’

이런 헤드라인으로 나오는 기사를 보며 최형림은 혀를 찼다.

“당했군요. 이러면….”

“네. 카지노 사업이 무산될 가능성이 더더욱 커졌습니다.”

영사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이럴게 아니라 만나봐야 겠군요.”

최형림은 즉각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나보신다고요?”

“네.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군요. 대체 어떻게 이런 짓을 벌였는지 당사자에게 들어보고 싶어요.”

“…흐음.”

영사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 녀석을 가르친 건 저니까요. 아마도 브로커 짓 비슷하게 했을 겁니다.”

“브로커?”

“네. 아마도 대학에 먼저 접근해서 산학지원금 사업 등을 따내주겠다면서 대학의 관계자 연락처와 명함 등을 얻었을 겁니다. 그걸로 강원도 카지노 그룹에 미팅을 잡고 그쪽에서 연구 자금을 지원받아서 대학에게 전해주었겠지요.”

“하지만 그건 유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야 가능한 일 아닙니까?”

“후후. 유적은 당연히 있지요. 한반도에 인간들이 정주한 기간이 몇인데… 사람이 살만한 땅을 파보면 대부분 유물이 나옵니다. 다만 그 유물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슬쩍 파괴해버리는 게 대다수지요.”

“그럼 대학 3개를 조인트 한 것은 시현 그 사람도 유적이 어느 시대 것이 나올지는 몰랐다는 거군요.”

“네. 각 대학 사학과마다 연구 전공이 다르니까 국립대 세 개 쯤 조인트 시켜두면 뭐라도 발견해서 그 유물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겠습니까? 선사시대건 삼국시대건 고려시대건 조선시대건 간에 말입니다.”

“하하하… 꽤나 멋들어진 방식으로 일을 하는 군요. 그 사람. 당신도 그렇게 합니까? 시현의 스승이라고 자처할 정도니….”

“아니요. 저는 유감스럽게도 딱히 윤영기라는 사람의 안전을 지켜줘야 할 이유도, 카지노를 막아야 할 이유도 못 느껴서요. 그게 제 제자 놈과 저의 결정적인 차이지요. 아마도 그런 점 때문에 위대하신 분들이 제게 별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영사의 목소리에서 은근한 시기심과 질투가 느껴졌다.

인간들 사이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이 남자는 오직 저 존재들, 악마들에게 잘 보이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

시현을 시기하는 그 모습을 보며 최형림은 전신에 한기가 드는 걸 느꼈다.

‘이건 또 별격의 괴물이군. 사이다패스나 영사나 내게 꼬이는 작자들은 왜 이 모양이지?’

물론 최형림 본인도 그 이유는 알고 있었다.

초록은 동색, 그 자신도 이미 영사나 사이다패스 못지않은 괴물이 되어 있다는 것을….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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