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자칭 살인예술가 #1
결국 T시의 내국인용 카지노 인가 사업은 백지로 돌아갔다.
유적지 발굴 지역을 빼고 나머지 부분에서라도 개장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그렇게 되자 자신의 부지가 줄어드는 L호텔 측에서 컨소시엄 탈퇴 의사를 밝혔다.
그놈의 유적지 대부분이 L호텔의 부지에서 나와서 L호텔은 부득이하게 혼자 손해를 보게 된 것이었다.
가뜩이나 국민 여론도 별로 안 좋은데 혼자서 손해를 보게 될 사업에 굳이 L호텔이 함께 힘을 써가며 사업을 진행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다양한 대기업들이 힘을 합쳐 컨소시엄을 결성한 게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악재로 작용한 것이다.
시민단체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원래 물밑에서 조용히 진행하던 카지노 인가 사업이었는데 이 유적 발굴 작업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면서 반대여론이 더더욱 거세졌다.
결국 컨소시엄 내에서 내분이 일어나고 여론도 나빠지면서 사업은 백지로 돌아갔다.
* * *
“대단하군요.”
시현 탐정사무실에서 류하리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뭐가요?”
“아니 혼자서 이렇게 쉽게 대기업의 사업들을 박살낼 줄은 몰랐어요.”
“혼자가 아니지요. 원래부터 내국인 카지노 사업은 좀 무리가 있는 사업인 데다가 강원도의 공기업 입장에서는 괜히 자신들의 라이벌이 생겨봤자 좋을 거 없지 않겠습니까? 일은 그분들이 다해주셨고 저는 뭐 기금 타 먹는 브로커 역할을 좀 했을 뿐이지요.”
“돈은 받았나요?”
“물론이죠. 이게 돈을 안 받으면 사람들이 의도를 의심해요. 그러니 적당히 예의를 갖출 정도는 받았습니다.”
“그럼 실례가 아니라면 뭐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사주시죠?”
시현에게 너스레를 떨던 류하리는 갑자기 전화 호출에 놀랐다.
박진감 경위의 전화였다.
“아, 네. 박 팀장님? 아, 알겠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아, 살인사건이래요. 그런데 일종의 밀실살인? 그런 거라고.”
“흠? 밀실살인이요?”
“네. 그래서 확인 차 좀 와달라는 데요?”
류하리는 그리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김학수 씨는 코에 닿는 매캐한 연기에 깜짝 놀랐다.
그가 놀라서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 베란다로 다가가니 맙소사, 아파트 베란다 밑에서 누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게 아닌가?
아랫집 사람이 담배를 뻑뻑 태우고 있었다.
“뭐, 뭐하는 겁니까? 지금?”
“……….”
“이봐요?! 아랫집 분!”
“어? 뭐야? 아니 이 사람이 미쳤나? 왜 소리를 질러요? 공동주택에서 매너 없게.”
그는 태연히 담배를 피우면서도 설마 윗집 사람이 자길 부르고 있다는 건 상상하지 못한 듯 했다.
“매너 말 잘했습니다. 저희 아파트 금연아파트거든요.”
“그래서 실외에서 피는데?”
“실외라니 베란다 아닙니까!”
“……”
“이봐요!?”
보다 못한 김학수 씨는 직접 아랫집으로 내려가 벨을 눌렀다.
잠시 후 집 주인이 나왔다.
“아 왜?”
김학수 씨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몸에 문신이 보이는 남자였다.
“아니 저기 금연아파트인데….”
“하 이 새끼, 이거이거… 야.”
그는 김학수 씨의 턱에 손을 가져가 집게 그립으로 턱을 움켜쥐었다.
“뒈지고 싶냐? 응?”
“아니… 겨, 경찰에 신고할….”
그는 김학수 씨를 때리려는 듯 손을 치켜들었다가 멈췄다.
경찰을 언급하자 손이 멈춘 모양이다.
“아. 거 쓸데없이 개처럼 짖지 말고. 좋은 말 할 때 꺼져라. 응?”
그는 그리 말하고 문을 쾅 닫았다.
김학수 씨는 난감해서 문 앞을 얼쩡거릴 뿐이었다.
* * *
그리고 담배 연기는 그 후 계속해서 아랫집에서 위로 올라왔다.
답답한 마음에 김학수 씨는 아파트 관리팀에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저 그분이 동대표인데요.”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그런 깡패 같은 놈이?”
“그, 동 대표 선거에 아무도 출마하지 않아서….”
“아니 그런, 어떻게 안 됩니까?”
“그게….”
아파트 관리팀도 난처해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졸지에 동대표가 된 그 남자는 차도 여러 대를 주차시켜놓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관리팀에서 골머리를 앓는 모양이었다.
* * *
그 후로도 아랫집 사람은 계속 매일같이 담배를 피며 담배연기를 올려 보냈고 그럼에도 김학수 씨는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상해하면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 때….
이번엔 그 남자가 경비를 대동하고 와 있었다.
퇴근하던 김학수 씨는 갑자기 찾아온 그를 보며 당황했다.
“무슨 일입니까?”
“아 이 새끼가 진짜.”
“아 저 폭언은 자제해 주세요.”
“폭언 안했어. 새끼 정도는 귀엽지.”
그 남자는 그리 말하고 대뜸 퇴근 중이던 김학수 씨에게 다가와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보이지 이거?”
“네?”
“너희 집 배관이 터져서 우리 집 천장으로 샜어. 우리 집 책이랑 가구들 다 물먹어서 못쓰게 되었으니까 배상해줘야겠다.”
“아니 그, 그런. 금시초문인데요.”
“어허. 이 무식한 새끼 이거 법도 모르나보네. 윗집 배관 터져서 밑에 집 침수시키면 다 배상해줘야 돼 임마. 알아?”
“…아니 거 왜 자꾸 욕설입니까?”
“시발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가구 다 썩게 되었는데 말이 좀 거칠어 질 수도 있지. 너 임마 이거 1억은 나가. 알아?”
“이, 일 억이라고요?”
예상치 못한 높은 배상금에 김학수 씨는 깜짝 놀랐다.
“워낙 고급가구니까 그만큼 나오지.”
“말도 안돼요. 그런 돈을 어떻게….”
“그건 모르겠고 법대로 청구할 테니까 법대로 해결 봅시다. 응?”
남자는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돌아섰다.
* * *
김학수 씨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아파트는 보험에 들어있었다.
배관이 터지거나 해서 분쟁이 생기면 손해배상보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리되자 김학수 씨는 아랫집 사람이 의심스러웠다.
갑자기 이사 와서 단번에 동 대표 자리를 차지하고 이런 손해배상을 청구하다니.
아무리 봐도 사기꾼 같다.
실제로 그는 동 대표에 출마할 때 직업을 자영업자라고 써서 제출했고 영업장 주소를 검색해보니 학동역 인근의 고급 수입가구상이었다.
‘즉 이 새끼 이거, 자기네 안 팔리는 재고를 겁나 비싸게 가격책정을 해서 일부러 침수시킨 거 아닌가?’
그가 동대표인 이상 손해보험사와의 협상도 유리한 위치에서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신의 악성재고를 손쉽게 털고 돈으로 바꾸기 위한 사기가 아닌가?
김학수 씨는 그런 의심을 했다.
하지만 의심은 의심일 뿐, 확증이 없었다.
‘사이다패스에게 청원이라도 하고 싶은데 하필 사이다패스는 이런 때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김학수 씨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직접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사기꾼 깡패 놈이 자기 멋대로 설치게 놔둘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었다.
다행히 그는 아랫집 놈이 언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자신에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만난 자, 스스로를 살인예술가라 주장하는 사람이 살인수법을 알려준 것이었다.
* * *
류하리는 자신의 사수인 박진감 경위와 함께 살인사건현장에 나와 있었다.
본래 살인사건이라면 강력계나 형사과가 담당해야 할 일이지만 살인현장이 워낙 이상해서, 사이다패스의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있어서 정보과까지 출동하게 된 것이었다.
살인현장은 마포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였는데 안에는 꽤 오래되어 부패된 시체가 한 구 있었다.
“음… 냄새가 심하군요.”
“괜찮은가? 류 경위님?”
박진감 경위는 류하리를 보며 의문을 품었다.
“네. 악취가 좀 심하기는 하지만 괜찮습니다.”
류하리는 코를 손으로 막고 그렇게 말했다.
“시체를 보는 것에 크게 부담은 없어서요. 보아하니까 죽은 지 한 나흘은 된 것 같군요. 사인은 둔기에 의한 타박 및 두개골 골절, 두부 열상… 넘어져서 다칠 만한 부상이 아닌 걸 보니 확실히 살인사건이네요.”
“그렇지. 문은 완전히 잠겨 있었고 여긴 12층이니까 용의자는 문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도어락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되겠지. 그런데 아파트 CCTV나 방문자들을 살펴보니까 그때 여기 방문한 사람이 없어. 즉 밀실살인인 거지.”
“그렇진 않을 걸요.”
류하리는 시체가 쓰러진 위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응?”
“우선 피해자가 건장하잖아요? 건장하다기 보단 이 정도면 스테로이드까지 쓰는 것 같은데.”
“흠?”
“집안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피해자의 머리를 깨부수는 공격을 가하려면 상당히 크고 강한 무기를 써야 할 거에요. 슬렛지해머 같은 무기를 엄청 잘 휘둘러야 이런 피해를 입힐 수 있을 텐데 그걸로 이런 거구의 남자를 일격에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니지.”
“둔기를 휘두르는 사람들은 그래서 보통 여러 번 공격하게 되어있어요. 하지만 이건 한 방인 것 같은데요.”
류하리는 시체의 상태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한 방에, 사람의 힘을 넘어선 강력한 둔기 공격이라는 건 보통 사람들의 살인 방법이 아니지요. 이런 살인수법은….”
“역시 사이다패스의 소행일까?”
상대가 건장했건 무장했건 아랑곳 하지 않고 단 일격에 상대를 살해하는 살인자.
그건 사이다패스의 특징이 아닌가?
하지만 사이다패스의 소행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는 박진감 경위에게 확신은 없었다.
어딘가 현장이 사이다패스의 소행이라기엔 묘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으음. 글쎄요. 사이다패스는 성명문 같은 거 보낼 텐데.”
게다가 류하리는 사이다패스가 시현에게 당해서 사라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게 심하게 당했는데 벌써 돌아왔을까?’
물론 류하리는 사이다패스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른다.
돌아왔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돌아왔다면 더더욱 자신인 걸 티내지 않겠는가?
그때 마스크를 쓴 검시의가 시체 이송을 시키며 류하리에게 다가왔다.
“류하리 양인가?”
“아 네. 안녕하세요. 권 박사님. 죄송해요. 몰라 뵈었네요. 마스크 쓰고 계셔서….”
검시의 권형일 박사는 권위 있는 검시의로 경찰대학에 강의도 나오는 사람이었다.
즉 류하리에게 있어서는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아니. 류하리 양. 나도 듣고 있었네. 정말 가르친 보람이 있구만. 이건 윗집에서 공격한 것 같아.”
“윗집이요?”
“머리에 강한 타격을 받고 집안으로 넘어져서 바닥에 머리가 충돌하면서 2차 타격을 받았어. 정확한 건 검시를 해봐야 알겠지만 타격방향을 보면….”
“흠. 아마 뭔가 무거운 걸 밧줄에 매달고 던진 것 같군요. 그게 진자운동을 하면서 돌아와서 베란다에 있던 사람의 머리를 타격하고 그 힘으로 그를 집안으로 쓰러뜨린 것 같아요.”
류하리는 검시의 권형일 박사가 보여주는 상해의 각도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
“그렇다면 윗집 베란다 난간에 흔적이 남았겠네요. 어쩌면 흉기도 그대로 있을지도? 한 번 윗집에 수사협조를 부탁해보죠.”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