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자칭 살인예술가 #2
윗집 사람 김학수 씨는 갑자기 찾아온 경찰들에 당황해서 문을 열어주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영장을 받아오니 거부할 수가 없었다.
결국 영장을 내밀고 들어온 경찰들은 그의 집을 수색해 베란다 난간이 강한 힘을 받아 휘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고 운동용 케틀벨을 증거물품으로 가져가 조사해보았다.
케틀벨은 염소계 소독제로 깨끗하게 닦여 있었지만 주철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그 주름에 피해자의 DNA가 나왔다.
결국 김학수 씨는 자신이 살인범이라고 자백했다.
“네, 밧줄에 케틀벨을 묶고 던졌습니다. 반대쪽엔 가구랑 밧줄을 연결하고 혹시 몰라서 무게를 더하기 위해 제가 밟고 있어서 케틀벨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충격을 막았지요. 베란다 난간에도 흔적이 발생할까봐 이불을 깔아두고 했는데 그래도 던졌더니만 충격이 장난 아니더군요.”
“으음. 대체 그런 트릭은 어디서 생각하셨어요? 소설? 만화? 이제 와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대부분의 탐정 소설들이 트릭으로 사용하는 기술은 아직 법의학이 제대로 발달하기 전에나 통용되는 것이에요. 차라리 경찰에 상담이라도 하시지.”
“…하. 경찰이요?”
김학수 씨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경찰들이 이런 일에 도움이 되는 꼴은 본적이 없는데요.”
경찰들이 이런 일에 출동할 리가 없으며 출동하더라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경찰에 대한 불신이 모든 사람들에게 팽배해 있었다.
하긴 류하리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잘 알고 있었다.
경찰이 정말 사전에 신고를 받았다 해도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는 걸.
아래층에서 담배 핀다고 벌금을 먹이거나 하면 신고한데 앙심을 품고 윗집 사람을 오히려 살해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배관 문제는 조사해보면 알 수 있었을 거예요. 천장 장식재를 뜯어내고 배관을 직접 자른 흔적이 발견되었거든요. 사기로 입건시킬 수 있었다고요.”
“이제 와서 무슨… 제가 그냥 신고했다면 사기로 그렇게 자세히 조사했겠습니까? 죽이고 나니까 조사를 열심히 하는 거지. 경찰에 가서 이 사람이 우리 집 배관이 터져서 침수피해 입었다고 하는데 사기 같습니다. 배관을 조사하게 해주십시오 라고 하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경찰들 입장에선 귀찮다고 헛소리 하지 말라고, 그냥 물어주라고 할 거 아닙니까? 살인 사건이나 나니까 그다음에 조사한 거지 그 전엔 다들 신경도 안 써요.”
“그, 그건 그러네요.”
류하리는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집주인이 살아서 조사에 불응하고 민원을 넣어대면 대부분의 경찰들은 그냥 적당히 사건을 접는데 치중할 것이었다.
“그렇지만 진짜 이 트릭은 어쩌다 생각하셨어요?”
“인터넷에서….”
“인터넷이요?”
“인터넷에 살인예술가라는 닉을 쓰는 사람이 조언해주었습니다.”
“살인예술가?”
류하리는 당황했다.
* * *
인터넷에서 하소연을 하다 보면 살인 방법을 조언해주는 살인예술가라는 인물과 만나게 된다.
이 살인예술가는 사람들이 고통 받을 때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법에 걸리지 않고 상대를 죽일 수 있을까에 대해서 조언해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좀 낡았다.
현대의 수사기법은 과학수사 장비에 의해서 놀랍도록 발달해 있어서 옛날 추리 소설에 써먹을 법한 것들로는 수사팀을 속여 넘길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사이다패스가 사라진 이후, 이 자칭 살인예술가라는 자가 사이다패스에게 청원하던 사람들에게 접근해 그들에게 살인 방법을 디자인해주었다는 점.
그리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이 살인에술가란 작자의 요청을 들어주어서 실제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상한데?’
류하리는 김학수 씨 사건을 조사하면서 의아함을 느꼈다.
김학수 씨는 살인을 할 만한 인물이 아니다.
사람들이 분쟁을 일으키면 벌레 하나 죽이지 못할 것 같은 사람도 종종 살인을 하는 법이지만 이런 계획살인을 할 만한 인물상이 아닌 것이다.
인터넷에서 누가 살인수법을 알려줬다고 그걸 실행에 옮긴다고?
‘어째… 이 일이 여기서 끝이 아닐 것 같은데?’
류하리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 * *
“혹시 이 살인예술가라는 놈도 계약자인 게 아닐까요?”
류하리는 시현 탐정사무소에 찾아와 시현에게 물어보았다.
“모르지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니 살인수법을 알려줬다고 사람이 시행해버리는 게 이상해서요. 이번 사건의 실행범은 살인을 할 것 같은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살인을 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도 때로는 너무나 쉽게 사람을 죽여 버립니다.”
“그런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상해요. 살인 수법을 가르쳐주었고 그게 허점이 없어 보인다 해도 실행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트릭을 준비하고 시행하는 건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닌데 보통 사람은 귀찮아서라도 잘 안할 거란 말이에요.”
류하리가 그렇게 열변을 토했지만 정작 시현은 시큰둥했다.
“뭐 나중에 제 고객님에게 뭔가 관련된 문제가 생기면 그때 조사해도 늦지 않을 것 같군요.”
“또 그렇게… 정말 당신은 사회정의 실현에 관심이 없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카지노 사업을 엎어버린 것만 봐도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사회정의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그럼 엄한 사람들에게 살인을 권하는 사람을 잡는 데는….”
“그런데는 별로 관심이 없군요.”
“왜죠? 차이가 뭐에요?”
“저는 사적 원한을 어느 정도는 긍정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애초에 그러니까 탐정 일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경찰과 법이 관리하지 못하는 회색영역에서 고객의 도움이 되는 게 탐정의 본분이 아닙니까?”
“아….”
“그리고 무상으로 서비스 하지 않는 게 제 원칙이기도 하고요.”
“음 그건 할 말이 없군요.”
류하리도 이제는 시현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시현이 자신의 행동에 값비싼 가격을 먹이고 그것을 지키려 하는 걸 인정해버린 것이다.
‘뭐 그간 내 눈앞에서 워낙 별의별 일을 다 했으니까 말이지.’
그간 봐온 게 얼마인데 시현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면 정신병에 걸려야 하지 않을까?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이라면 혼자 몸으로 카지노 사업도 뒤엎어버리는 시현의 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알겠어요. 하여튼 비싸게 굴기는….”
류하리가 투덜거릴 때였다.
그녀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경찰대학시절의 은사이자 검시의인 권형일 박사의 전화였다.
“네. 박사님. 무슨 일이시죠?”
[아 류하리 양. 또 그 살인예술가인지 뭔지가 나왔네!]
“네? 살인예술가라고요?”
류하리는 깜짝 놀랐다.
* * *
이번의 살인 사건은 자식이 당뇨병에 걸린 아버지에게 인슐린을 과다 투여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었다.
군인 출신인 아버지, 김경협 원사는 군인다운 강경한 태도로 자식들에게 그리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특히 장남인 김양수는 아버지의 말도 안 되는 높은 기대 때문에 완전히 망가져서 대학생 때도 아버지에게 골프채로 맞아서 다리에 피멍이 들 정도였다.
결국 제대로 사회생활을 못하게 된 아들, 김양수는 아버지를 원망하다가 살인예술가라는 자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살인에 대한 여러 가지 트릭과 수법에 대한 조언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김양수는 정말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기 위해 우선 외출을 시작했다.
근처 PC방과 편의점에 얼굴을 비춰 자신이 밤에 나간다는 인상을 주어 알리바이를 만든 다음에 아버지의 인슐린 주사기의 다이얼을 고쳐 일부러 아버지가 더 많은 양의 인슐린을 주사하도록 조작했다.
자가 투약용 인슐린 주사기는 펜 형태에 뒤에는 다이얼이 붙어있어 양을 조절할 수 있는데 이 다이얼을 조작해 아버지가 스스로 인슐린을 과다 투약해 저혈당 쇼크에 빠지도록 조작해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냥 잠들어있을 뿐이었다.
이에 당황한 그는 직접 주사기를 들어 추가 투약을 해버리는 바람에 아버지의 몸에 자가 주사와 달리 새로운 주사 자국이 남게 되었고 그게 덜미를 잡혀서 체포당하게 된 것이었다.
* * *
“어라?”
듣고 있던 류하리는 당황했다.
“이번 건 트릭이 꽤 그럴싸하네요?”
[그렇지? 만약 본인이 스스로 주사하는 짓을 하지 않았다면 모른 채로 넘어갔을 거야.]
권형일 박사는 흥분해서 그렇게 말했다.
미국 재향군인회 보훈병원의 간호사가 환자들에게 인슐린을 과다투여해서 사망시키는 연쇄살인 사건이 있었는데 무려 7명 이상이 사망할 때까지 사망원인을 특정 짓지 못했을 정도다.
저혈당 쇼크에 의한 사망은 급성다발성 신부전, 각종 쇠약현상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유를 특정 짓기 힘든 것이다.
[아무래도 이 살인예술가라는 작자의 소행이 하나 둘이 아닌 것 같으니 류하리 양. 경찰에서 이걸 좀 어떻게 자세히 수사해야 할 것 같은데….]
검시의인 권형일 박사 입장에서는 완전범죄를 노리며 어설프게 살인트릭을 남발해대는 살인예술가의 존재가 거슬릴 것이다.
지금이야 어설프지만 점점 발달해서 만약 경찰이나 검시의를 속여 넘기기라도 하면?
그때가 되면 욕먹는 건 그들이다.
100번에서 99번 다 막아도 한 번 뚫리면 욕먹는 게 경찰과 검시의, 그 반면 상대는 아쉬울 게 없다.
아마추어가 프로를 상대로 장난질을 치는데 단 한 번만 제대로 속여 넘겨도 프로는 망신이고 아마추어는 신나는 법.
권형일 박사는 신경이 거슬려서 류하리에게 경고하려고 전화한 것이다.
* * *
“흠.”
듣고 있던 시현이 혀를 찼다.
“아니. 여전히 어설픈데요.”
“네?”
“우선 인슐린은 치사량이 사람 몸 상태에 따라, 지금 혈당치에 따라 제각각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카트리지 형 주사기의 모든 주사액을 다 쏟아 부어도 안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런 무기로 살인을 하겠다는 건 4분의 1 확률로 나가는 총을 가지고 전쟁에 나가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신뢰성이 너무 낮아요.”
“그야 그, 그렇죠?”
결과적으로 첫 번째 주사로는 사망하지 않아서 다급해진 가해자는 두 번째 주사를 놔버려서 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가족인데 굳이 외출 안하던 사람이 갑자기 나간 것부터가 어설픈 짓이었지요. 안하던 짓 하니까 수상하잖아요? 저라면 차라리 술을 먹여서 인사불성으로 만들 겁니다. 알코올로 혈당이 떨어진 상태면 카트리지 한 개 분의 인슐린으로도 충분히 위험할 수 있고 사용하고 폐기한 다른 카트리지에 있던 인슐린을 빼내서 합치면 굳이 다이얼 조작같은 거 할 필요 없이 치명상에 이르게 할 수 있겠지요.”
“…….”
류하리는 시현의 말에 당황했다.
확실히 시현이 하는 방식이 더 쉽고 간결할 것 같았다.
당뇨병 환자가 술 먹고 인슐린 주사해서 죽는 경우는 워낙 흔한 사고 유형이기도 하니까.
“뭐 그래도 인슐린을 이용한 저혈당쇼크로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는 건 위험한 트릭이군요. 그건 실제로 현대적인 과학수사에서는 잡기 힘드니까요. 살인예술가라는 작자의 실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되네요.”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