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60화 (160/269)

제160화

자칭 살인예술가 #3

흔히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고 하는데 정말 그 자잘한 정보들을 모으고 모으면 엄청난 일을 벌일 수 있다.

살인예술가라 자처하는 이 자도 그런 정보들을 모으고 모은다면 점점 발전해 나갈 것이다.

‘…확실히.’

류하리도 그 점은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은 어설픈 트릭으로 사람들을 충동질하기 때문에 경찰이나 검시의들은 그를 우습게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자의 진짜 두려운 점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다.

사람에게 사람을 죽이게 할 수 있는 능력에 비하면 트릭이 좀 시시한 건 아무런 흠집도 못된다.

여기에 만약 트릭마저 점점 좋아진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얼굴도 대면하지 않은 상황에서 말 몇 마디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 수 있는 놈이 점점 실력이 좋아진다면 사건이 엄청 커질 것 같군요. 수사하는 경찰들이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해주길 바랍니다만….”

시현이 말꼬리를 흐렸다.

‘음? 뭔가 선택을 잘못하면 일이 커지나?’

류하리가 궁금해 할 때였다.

“자 불륜남녀가 나오니까 사진 찍어야겠어요. 비켜주시죠. 조수님.”

아무래도 모텔 안에서 사람이 나오는 것 같아서 더 이상 자세히 물어볼 상황이 못 되었다.

류하리는 시현이 일하는 걸 방해하지 않게 물러나주었다.

* * *

사이다패스가 갑자기 잠적해버려서 사이다패스 전담 수사본부는 붕 떠버렸다.

물론 사이다패스를 잡지도 못했고 잠적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수사를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거 사이다패스는 아니지만 신경 쓰이는 군.”

법무부 형사부 부장인 천용덕 검사도 자칭 살인예술가 사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최 검사는?”

“저 말입니까?”

“의견을 들어보고 싶군.”

“확실히 이 범죄자는 사이다패스는 아닙니다. 하지만 걱정되는 군요.”

“걱정?”

“예. 이 살인예술가라는 자는 프라이드가 강한 타입일 겁니다. 수사팀이나 언론에서 그를 건드린다면 더 날뛰게 될 소지가 있습니다.”

“사이다패스처럼 말인가.”

사이다패스도 그 선언문을 언론이 공개해버림으로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 살인예술가라는 놈도 언론이나 수사에서 실수하게 되면 오히려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미 언론이 물었는데?”

천용덕 검사는 난처해하고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워낙 충격적이라서 언론사들이 달려들어서

엠바고를 걸어서 언론들에게 좀 조용히 해달라고 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럼 최소한 언론이 자극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좋겠는데. 기자들을 믿느니 차라리 사기 전과 15범을 믿지?”

천용덕 검사는 언론을 불신하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점에서는 최형림도 공감하고 있었다.

“어디 그러고 보니 오늘이 공판일 이었지. 같이 보겠나?”

천용덕 검사가 리모컨을 잡고 물어보았다.

“네.”

최형림이 그리 말하자 천용덕 검사가 TV를 켰다.

뉴스 채널에서는 과연 아래층 남자를 케틀벨로 살해한 김학수 씨의 재판이 진행되었다.

초범이긴 하지만 트릭을 이용해 아랫집 사람을 살해한 계획살인이라서 그런지 현장에는 많은 기자들이 몰려가 있었다.

화면 밑의 자막에는 ‘징역 5년 판결 구형!’이라는 자막이 나오고 있었다.

“의외로군요. 초범이긴 하지만 트릭을 이용한 계획살인이었기에 중형을 면치 못할 줄 알았는데. 게다가 이번 변호사는 국선이 아닙니까?”

최형림은 예상보다 훨씬 낮은 형벌에 의아해했다.

“그러게? 판결문을 좀 볼까?”

천용덕 검사도 호기심을 느꼈다.

뉴스 채널에서도 이런 상황을 상정했는지 법무관련 전문가를 데려와서 상황을 설명하게 해주었다.

놀랍게도 방송에 나온 인물은 박원일이었다.

전 서울지방법원 고법 판사이면서 이제는 변호사로 개업한 인물이었다.

[아. 형량이 이례적으로 적은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변호사님?]

[아 네. 판결문을 보면 변호인 측은 김학수 씨가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 있어서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걸 적극적으로 밀어붙였습니다. 우선 살해당한 사람이 조직폭력배 출신의 폭력, 공갈, 사기 전과 도합 5범이라는 점. 폭력적인 행동으로 위협해왔으며 아파트 주민들 공동체 전체를 위협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고요 특히 인터넷 상에서 누가 가르쳐 준 수법을 그대로 실행해 범행에 옮겼다는 행동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서 살인수법을 익혀서 사용한다고 정상이 아니라는 건, 오히려 반대 아닐까요? 계획살인의 증거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자칭 ‘살인예술가’ 라고 칭하는 사람의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인 점에서 심신상실이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사, 살인예술가요?]

[네. 아무래도 이전 ‘사이다패스’도 그렇고… 별칭이 좀… 그렇지요?]

[그럼 별칭이 너무 유치해서 정상인은 받아들이기 힘든 걸 받아들였다. 그런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겁니까?]

[예. 검시의도 이 트릭이 굉장히 유치했다고 증언했고요. 아무래도 커다란 쇳덩이를 투척해서 사람을 죽이는 걸 예술이라고 할 순 없지 않습니까?]

[확실히 예술이라기엔 좀 많이 조잡하군요.]

방송에서는 자칭 살인예술가의 트릭이 얼마나 부실했으며 그래서 김학수 씨가 심신상실에 가까운 상태였음이 인정받아 감형 받을 수 있었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그걸 본 최형림은 혀를 찼다.

“이거 언론이 자극하지 않길 바랐는데… 곤란하게 되었군요.”

“그러게. 하지만 사람들이 판결에 의문을 품을 테니까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변호사는 변호사대로 김학수 씨의 형량을 조금이라도 더 가볍게 하기 위해서 수를 쓴 것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변호사가 ‘살인예술가’의 트릭을 제정신인 사람은 받아들일 수 없는 저속한 제안이라고 폄하했고 그걸 판사가 합리적인 주장이라고 받아들인 게 되었다.

자극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대놓고 눈앞에서 모욕을 준 셈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놈도 계약자인데….’

최형림은 ‘살인예술가’가 너무 쉽게 사람들을 유혹해대는 것에서 그가 계약자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계약자를 언론이나 수사팀이 모욕하게 되었으니 무슨 사건이 일어날지 모른다.

‘빨리 찾아서 확보할 수 있으면 확보해둬야겠군. 영사를 불러야 하나… 영사 그 작자는 영 내키지 않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군.’

최형림은 영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 * *

최형림은 영사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로 향하기 전 우선 자신의 집에 들렀다.

그런데….

“안녕. 나 보고 싶었어?”

놀랍게도 사이다패스가 그의 집에 와 있는 게 아닌가?

“놀랍군요. 몸은 좀 괜찮아졌습니까?”

“아니 별로… 지금도 사실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아. 하지만 가만히 있자니 좀이 쑤셔서 말이지.”

사이다패스는 그렇게 말하는데 확실히 평소보다 힘이 없어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데드맨을 죽이려고 했는데 실패했어. 확실히 그는 나로서는 죽일 수 없겠더라고.”

“…그런가.”

최형림은 전화기를 들었다.

“뭐하는 거야?”

“그 데드맨을 가르쳤다고 하는 사람에게 연락하려고 합니다만.”

“뭐?”

“혹시 만나보겠습니까?”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믿을 수 있는 사람?”

최형림은 그 말을 듣고 쓴 웃음을 지었다.

“적어도 경찰에 당신이나 날 신고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점은 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는 좀… 애초에 당신도 나도 서로서로를 믿지 않기로 했잖습니까.”

“그, 그렇지. 거 참. 말실수일 뿐이야. 말꼬리 잡지 마.”

“네. 그래서 대답은?”

“만나보자.”

이전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불던 사이다패스였지만 데드맨에게 패배한 후에는 그 콧대가 꺾인 모양이었다.

상처 입은 자존심 때문에 여전히 신경질적이지만 그래도 영사를 만나보겠다니 정말 장족의 발전이었다.

* * *

최형림의 집에 영사와 사이다패스가 함께 모였다.

“이거 참, 화목한 분위기로군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최형림이 그리 묻자 사이다패스가 손에서 망치를 꺼냈다.

“이 영감탱이가 정말 그 데드맨의 스승이라고? 일단 망치질을 해서 대가리가 터지나 안 터지나 구경해볼까?”

“잠자코 있으시지요. 계약자… 몸도 성치 않은 것 같은데.”

“하. 웃기시네. 내가 몸이 성하지 않아도 당신 같은 늙은 영감탱이 하나는….”

“우선 말해두자면 저는 계약자를 끔찍하게도 싫어합니다. 대체 왜 당신 같은 천둥벌거숭이를 그분들이 어여삐 여기는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죠.”

영사는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을 파멸시켜서 당신에게 가는 그분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끌 수 있다면 기꺼이 죽여 드리겠는데. 그럴 리 없다는 게 슬프군요.”

“뭐… 뭐야? 이 자식은?”

사이다패스는 웃으며 말하는 영사의 초점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에 놀랐다.

그러니까 악마의 관심을 끌고 싶다는 소리인가?

그때 사이다패스와 영사의 사이에 최형림이 서서 가로막았다.

“아무래도 기선제압을 하려고 그러는 것 같은데 그만두시지요. 둘 다. 집도 좁은데.”

“네. 그리고 계약자 당신과 달리 이 몸은 실체라서, 날 여기서 때리면 이 좁은 집에 피가 튈 겁니다.”

영사가 그리 말하자 사이다패스는 흠칫 놀랐다.

“실체…? 무슨 소리야?”

“오 이런. 모르고 있나 보군요. 아 실례. 후후. 아무것도 아닙니다.”

“……”

최형림도 눈치를 챘다.

사이다패스는 자신이 실체가 아니라는 걸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 영사라는 작자로군. 어떻게 알아챈 거지?’

역시 예사로운 인물이 아니다.

“자 그럼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일단 앞으로의 방향을 잡기 전에… 이 자료를 봐주시죠.”

최형림은 영사에게 태블릿 PC를 건네주었다.

“흠. 자칭 살인예술가 말입니까?”

“아무리 봐도 이 남자, 단순한 살인교사범이 아니라 계약자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가능성은 상당히 높은 것 같군요. 하지만 의외로군요.”

“의외?”

“네. 그분들이 그렇게 좋아할만한 계약대상이 아닌데요. 뭐 개인사에 뭔가 매력적인 내용이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행동하는 걸로 봐서는 매력적인 계약대상이 아닙니다. 하아. 이런 허접한 놈까지 계약하다니. 대체 왜 나는 버리고….”

영사는 정말 악마들에게 매료되어 있는지 자신을 무시하고 이런 허접한 놈이 계약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시기와 질투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자도 절대 제정신이 아니로군. 하지만 여기서 가장 제정신이 아닌 놈은 이런 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나인가….’

최형림은 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그를 영입할까 하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영입?”

사이다패스가 그 말을 듣고 놀랐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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