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자칭 살인예술가 #4
“뭐야? 그러니까 계약자를 모으겠다 이거야? 나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흐음.”
최형림은 미소를 지었다.
“당신 하나면 충분하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습니까? 제게? 당신이?”
“…아.”
사이다패스가 당황했다.
“아니 그, 뭐랄까. 딱히 그런 의미가 아니야. 그냥 내 능력이 부족하다고 무시하는 것 같아서 그렇지.”
“실제로 부족하잖나. 데드맨에게 당했을 테니.”
영사가 그렇게 말하자 사이다패스가 영사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저는 찬성입니다. 만약 이 자가 계약자가 아니라면 최 검사님이 잡아서 실적을 올리면 될 거고 계약자라면 굳이 경찰에 넘기느니 우리가 잡아서 유용하게 써먹는 게 좋겠지요.”
영사는 최형림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럼 대충 의견이 정리된 것 같군요. 당신은 어때요?”
“나? 나는… 쳇. 뭐야? 이 다수결 분위기?”
사이다패스는 분위기에 휩쓸리고 말았다.
* * *
“으으….”
지은재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편의점 카운터에 유니폼을 입은 채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가 보고 있는 휴대폰 화면은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해’ 페이지였다.
암호화되어서 경찰도 추적하지 못하는 이 웹페이지에는 게시판뿐만이 아니라 어느새 채팅방도 만들어져 있어서 억울한 일이 있어서 사이다패스에게 청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보며 조롱하기 위해 모인 이들로 가득했다.
사이다패스가 한동안 잠잠해져서 사이트가 침체되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대화방에 남아있어서 지금도 대화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지은재가 채팅방에서 운을 떼 보았다.
[그런데 살인예술가는 어떤가요?]
[살인예술가?]
[어휴… 병신이지 병신이야.]
[사이다패스처럼 직접 죽여주지도 않는데 결국 걸렸잖아?]
[일단 그러면 누가 그놈을 쓰겠어? 가뜩이나 사이다패스처럼 살인도 자기가 해주는 게 아닌데… 했다가 걸렸잖아? 그럼 오히려 계획살인으로 형량만 더 세지지.]
[형량은 오히려 낮지 않냐? 대체 얼마나 병신으로 보였으면 판사가 정상참작을 해주냐.]
[이름부터 병신 같잖아. 사이다패스도 좀 구리지만 살인예술가는 진짜 센스가 폭망이지….]
다들 살인예술가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하지 않았다.
시작하자마자 걸려버렸으니 당연한 결과다.
“아니 이 새끼들이….”
지은재는 살인예술가를 폄하하는 사람들을 보며 분개했다.
[아니 그런 소리 하지 마쇼. 사이다패스님 들으면 어쩌려고?]
[와 청원충이네. 사람 좀 죽여 달라고 아주 노예근성이 쩌네. 사이다패스가 대라고 하면 똥꼬도 대주겠다?]
사이대패스에게 청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사이다패스의 눈치를 살핀다. 하지만 여기에는 청원하려는 사람만 모인 게 아니다.
그저 남들을 놀리거나 사이다패스에게 청원하려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이들도 있었다.
사이다패스에게 청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다들 절박하기 때문에 그런 이들을 비웃고 조롱하는 것은 타인의 반응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참을 수 없이 즐거운 일인 것 같았다.
“이런 쓰레기 새끼들. 절박한 사람들 놀리는 재미로 사는 개새끼들….”
지은재는 분탕을 치며 노는 이들에게 분노하면서 열심히 채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 * *
차임벨 소리와 함께 가게의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 아니? 점장님?”
“야! 운재야! 휴대폰 보지 마라! 아무리 손님이 없어도 그렇지….”
“방금 전까지 음료들 정리했어요. 이 땀 보세요. 이게 편의점인지 택배상하차인지 모르겠다니까요.”
지은재는 흠뻑 젖은 자신의 셔츠 겨드랑이 부분을 보여주었다.
군부대가 집결해있는 주말 전후, 대량의 물건을 발주하는 시간에만 남자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는 이 편의점의 업무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트럭에서 한주 치 음료수를 잔뜩 내려서 냉장창고에 정리하는 일인데 장사가 잘되는 주에는 음료수만 거의 한 트럭 내려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이렇게 고강도의 작업인데도 점주는 아르바이트 시급 주는 것도 아까워서 잠시나마 쉬는 꼴을 못 본다.
근로기준법상 휴식시간을 보장해줘야 하는데 그 잠깐의 휴식시간도 참지 못하는 것이다.
“이게 어디서 말대꾸야? 운재 너 집에서 노는 꼴 보다 못해서 일 시켜주는데 고마워 할 줄 알아야지! 응? 옛날 같으면 넌 머슴이고 나는 주인인데 어디 말대꾸를 하고 있어?”
“………”
지은재는 머슴이니 뭐니 하는 말을 대놓고 해버리는 점주에게 질려버렸다.
하지만 이 편의점 점주는 여기 편의점만이 아니라 PC방, 당구장등 많은 업장들을 가지고 있는 지역 유지였다.
군부대 상대하거나 여름철에 간간히 들리는 행락객 외엔 농사 밖에 일이 없는 이곳에서 지역유지인 이 남자에게 거스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농사 일이 있을 때는 농사일을 도우면서 먹고 살 수 있지만 농한기 때는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계절을 타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일자리는 지은재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걸 알기에 점주도 지은재가 뭐라고 하건 무시하기 일상다반사였다.
“우리 시절엔 일하고 싶어도 죄 힘들고 더러운 일 밖에 없었어. 하지만 요샌 어떠냐? 이런 깔끔한 곳에서 근사한 유니폼 입고….”
“편의점 아르바이트 유니폼이 뭐가 근사해요? 게다가 이거 세탁도 제가 해야 하는데.”
“마 빤쓰 바람보다는 낫지.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옛날에는 환경이 안 좋았다~ 그 말이야!”
“아니 야근수당도 안주잖아요. 게다가 업무강도는 충분히 힘들고 더러운데….”
“상시 5인 이상 영업장이 아니라서 괜찮다.”
“그렇지만 점장님 이 가게 말고 PC방이랑 당구장, 모텔 가지고 계시죠? 저 거기 물건 내릴 때마다 일했는데 각자 다른 업장에 순환 근무시키면 불법이라고요.”
지은재는 억울해했다.
이 편의점 점장은 편의점 외에도 다른 여러 사업장들을 가지고 있고 그곳에 물건을 상하차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예를 들어서 PC방에 물품 납품할 때마다 지은재를 불러서 PC방에 물건을 나르게 한다.
모텔에 음료수가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다.
힘든 일 할 때만 지은재를 부르면서 최저시급만 주고 있는데 한 사람을 여러 업장에 돌려 쓰면 이 업장들 전부 한 사업체로 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럼 상시 5인이상 영업장이 되고 당연히 야근 수당도 줘야 한다.
그러나 이런 법대로, 원칙대로가 이 막무가내 점장에게 통할 리 없다.
“하여튼 요새 것들 나약해가지고 어딜 야근 수당 같은 못 돼먹은 걸 요구해? 너 임마, 그러니까 남들에게 애비 없는 놈이란 소리 듣는 거야.”
“네? 지금 뭐라고요?”
순간 지은재는 그 말을 듣고 울컥했다.
지은재의 부친은 그가 어릴 적에 살인을 저질러 15년 형을 받았다.
남들은 도중에 감형을 받거나 특사로 나오거나 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교도소에 있다.
그걸 가지고 편의점 점주는 애비 없는 놈이라고 욕을 한 것이다.
“뭐냐. 화났냐? 다 임마 널 생각해서 하는 거야. 쯧. 야. 이거이거, 가져가서 어머니도 챙겨드리고 해.”
편의점 점주는 지은재가 화가 나 있자 폐기된 도시락과 샌드위치를 선심 쓰듯 챙겨줬다.
원래 지은재가 가져갈 것이었는데 굳이 자신이 챙겨주는 양 그러는 게 가증스럽지만….
지은재에게 이 아르바이트가 얼마나 그의 집안 생계에 도움이 되는가를 다시 상기시켜주는 것이었다.
지은재는 화를 삭였다.
가증스러운 이 화해의 제스처가 통한 게 아니다.
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아가는 그의 처지가, 생계가 목을 졸라오니 화를 내고 싶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너도 손님이 없을 때는 가게 앞이라도 좀 쓸고 저기 테이블이라도 닦아둘 것이지. 어휴. 주인의식이 없다니까.”
지은재가 화를 삭이는 걸 보자마자 또 잔소리를 하는 게 정말 말이 안 통한다.
이미 이 지역사회에서 왕 노릇 하고 있는 편의점 점주에게 말을 해봐야 들을 리가 없다.
자신이 갑인 이상 을의 말은 아무리 이치에 맞는다 해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인 것이다.
“알겠어요. 나 참….”
지은재는 투덜거리면서 편의점 물건들을 정리하는 척을 했다.
정작 지은재가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일을 하는 동안 점주는 가게 테이블에 앉아서 노인네용 효도 라디오를 틀고 노닥거리는 게 아닌가?
[전국을 들끓게 했던 연쇄살인마, 사이다패스 사건의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은 가운데 이번에는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벌어져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나운서는 살인사건에 대한 개요를 읊어주었다.
김 모 씨 살인사건. 본래라면 김학수 씨 살인사건이라 불러야겠지만 인권보호를 위해서 실명은 밝히지 않는 듯 했다.
[그런데 이 살인 사건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서요?]
[네. 자칭 살인예술가라는 인물이 살인을 코치해준다고 하던데요.]
[그 결과로 붙잡히게 되었으니… 참 자칭 살인예술가라는 것 치고는 좀… 어설프지 않을까요?]
[자칭이니까요. 하지만 사이다패스도 그렇고 살인예술가도 그렇고 이상한 이름을 쓰는군요. 요새 범죄자들은….]
[자의식이 너무 과잉한 게 아닐까요?]
라디오에서는 살인예술가라는 이름을 가지고 약간 조롱과 멸시를 담아서 말하고 있었다.
“거 참. 요즘 세상 흉흉하기도 하지. 별 이상한 놈들이 다 설치니 말이야.”
“그만큼 억울한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는 거 아닐까요?”
“뭐? 운재 너 살인자 범죄자 놈들 옹호하는 거냐? 하여튼 요새 애들 성질머리하고는. 사람의 도리를 몰라요. 몰라. 너 임마, 너도 그러다가 네 아버지처럼 된다?”
“………”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사람의 도리를 지켜야지 말이야. 요즘 애들이 너무 나약해! 야근수당이나 원하고 말이야. 아… 거 퇴근해도 된다.”
지은재가 성질을 낼 것 같자 점주는 또 아주 사소한 당근을 휘둘렀다.
사람의 도리를 논하기에는 이 편의점주는 너무나 속물이었다.
‘아니 각 업장들 각각 사업자 따로 내서 애들 야근 수당도 안줘. 나는 계속 이 업장 저 업장 순환 근무시키면서 상하차처럼 고된 일만 시키고 최저 시급만 주는 주제에 본인은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올바른 사람이라고 믿고 있네? 그리고 왜 사사건건 시비를 걸다가 내가 성질낼 것 같으면 한 걸음씩 물러서는 데?’
더 화가 나는 점은 지은재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하찮고 속물스러운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하찮은 인간에게 계속 당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이 남자의 하찮음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좁은 지방 사회에서는 서울로 상경하지 않는 한 지역 유지격인 남자를 거슬러서 좋을 게 없다.
그나마 이 점주는 지금 지은재를 자기 아들의 친구쯤으로 생각해서 우호적으로 대해줘서 이정도인 것이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