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62화 (162/269)

제162화

자칭 살인예술가 #5

‘꼬우면 내가 서울로 가야지. 하지만 취직이 된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살인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간 이후 지은재의 집안은 기울대로 기울었다.

이렇게 종종 자신의 집안을 모욕하고 얕잡아보는 편의점주의 하잘 것 없는 도움조차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될 정도니 서울로 상경해 자신의 뜻을 펼친다는 건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젠장. 기껏… 힘을 얻었다 싶었는데 이런 시골에서는 써먹을 수가 없잖아.”

지은재는 땀에 젖은 유니폼을 갈아입고 스쿠터에 올라탔다.

* * *

집으로 돌아간 그는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서 낡은 랩탑의 전원을 켜고 샤워를 시작했다.

샤워를 끝마치고 랩탑 컴퓨터 앞에 앉은 그는 다크웹 접속을 위한 브라우저를 열고 사이다패스 청원 사이트,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해’를 돌아보았다.

‘원래는 소설가가 되려고 취재차 들어왔는데 어느새 여기서 노가리 까는데 중독되어버렸지 뭐야. 어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편의점 일을 하느라 신경 쓰지 못한 사이의 대화로그도 일일이 확인해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아, 지금 게시판에 살인예술가 찾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데 자기가 운영진이래.]

[뭐? 어디 운영진? 설마 이 청원 사이트 운영진?]

[웃기고 있네. 지금까지 자기가 운영진이라는 놈들 엄청 많았다.]

운영진이 살인예술가를 찾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다들 반신반의하며 조롱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는 다크웹이다 보니 다들 그 상황을 조롱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다른 것 같은데?]

[다르다니 뭐가?]

[증거로 청원 사이트 디자인 잠깐 바꾼대.]

[뭐? 그게 가능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려 했던 청원사이트의 운영진이 직접 나서서 살인예술가를 찾고 있다는 사실에 다들 경악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해’ 이 웹사이트는 당연히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꼬리를 잡히지 않고 있었다.

강도 높은 암호 보안 기술도 기술이지만 운영진이 절대로 일반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숨어서 지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살인예술가라는 놈 하나 때문에 그렇게 은밀하던 운영진이 움직이다니?

과연 잠시 후 청원사이트의 디자인이 바뀌었다.

정말 사이다패스 청원 사이트의 운영진이 살인예술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어? 진짜인가?’

당황한 지은재는 청원 사이트 운영진이 만든 게시물을 읽어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해의 운영진입니다. 살인예술가 분을 찾고 있습니다. 만약 정말 살인예술가라면 사이다패스의 정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겠지요? 제 아이디에 1:1대화로 그걸 말해주시면 됩니다. 저희와 함께 당신의 능력을 효율적으로 쓰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런 내용의 게시물이었다.

[뭐야 이거?]

[사이다패스의 정체에 대해서 감을 잡았다고? 그야 당연히 CIA아니냐. CIA?]

[그런데 CIA가 뭐의 약자지?]

[The Cuisinary Institude of America!]

[그건 요리학교고….]

대화방 안에 있는 이들은 다들 운영진의 말을 별로 진지하게 듣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은재는 이들이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지은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답을 1:1 대화창을 열고 제출했다.

그러자 잠시 후…

청원 사이트의 운영진 게시물이 지워졌다.

그리고….

[실례합니다. 살인예술가 님. 언제 한 번 직접 뵐 수 있을까요?]

운영진이 그에게 직접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그가 제출한 답이 정답이었던 것 같았다.

* * *

‘이거 경찰 아냐?’

지은재는 겁과 의심이 더럭 들었다.

만약 경찰에 잡힌다면 어떻게 될까?

살인예술가의 죄는 적어도 살인방조, 심하면 살인교사이며 살인교사죄는 살인과 형량이 같을 정도로 중한 죄다.

게다가 지은재의 경우 살인공범의 증언이 있으면 범죄가 입증되기 때문에… 입건하기도 쉽다.

문제는 다크웹과 보안 채팅을 사용해서 활동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수사로는 잡을 수 없다는 것, 하지만 함정수사라면 잡을 수 있다.

만약 이게 경찰의 함정수사라면?

‘아니 그럴 리가 없어. 그도 그럴게 내가 적어낸 답은….’

지은재가 적어낸 답은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비웃어 넘길만한 헛소리였다.

경찰과 같은 공기관은 절대로 물지 않을 떡밥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정확하게 지은재가 진짜 살인예술가라고 알아본다는 것은….

‘역시 사이다패스도 그거였구나!’

지은재는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꼈다.

뭔가 자신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에, 그것도 사이다패스처럼 은근 동경하던 존재가 자신과 유사한 점이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버리고 만다.

게다가 이 웹페이지나 대화방은 결국 경찰들에 의해서 감시당하고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운영진이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까지 자신과 접선하려고 하는 행동에서 지은재는 자신이 존중받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필요한 거구나.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위험을 무릅쓸 리가 없지.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야지.’

만나서 좋을 게 없다.

지은재 역시 현 사회에 대해서 불만이 많다.

그래서 사이다패스를 재미있어 하고 뒤에서 응원하고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이다패스를 옹호하는 명백한 범죄자들과 만날 생각은 없다.

만나서 또 뭘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성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지은재는 어느새 운영진이라고 주장하는 이에게 물어보았다.

[직접 보자니 무슨 뜻입니까?]

[저희와 같이 일해보실 생각은 없습니까?]

[일?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건지?]

[당신이 정말 계약자라면 지금 얻게 된 능력과 계약에의 제약, 그리고 그 외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조언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저희는 당신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대가로 뭘 원하는 거지요?]

[물론 당신의 협력을 원하지요. 우리들이 서로서로 힘을 합치면서 각자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서로서로 돕고 보호하면 보다 더 많은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신들이 절 일방적으로 부려먹으려는 게 아니라요?]

[저희 쪽은 이미 사이다패스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살인예술가라고 자처하고 있긴 하지만 실적 면에서 보자면 사이다패스에 비할 바 못된다.

우리는 이미 사이다패스를 확보했으니 네가 가진 알량한 능력으로 너무 수비적인 태도로 나오지 말아라.

그런 뜻에서 하는 말인가?

그런데… 지은재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 말은 당신들이 이미 사이다패스를 포섭했다는 뜻입니까?]

[네.]

[어, 어떻게 만나지요? 아니 바로 만나겠다는 뜻은 아니라….]

이성은 계속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지은재는 이렇게 다가온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일상, 그것도 전혀 행복하지 않고 고통스럽기만 한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사람들은 설령 아무리 위험하더라도 탈출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설령 그걸로 내 지금의 일상이 파괴된다고 해도, 어차피 뭐 대수롭지도 않은 일상이잖아?’

현재의 삶에 만족을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변화의 기회가 찾아왔다면 그게 아무리 위험하고 무모한 도박이라 하더라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지은재는 충동적으로 이 운영진과 약속을 잡고 말았다.

* * *

부슬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지은재는 동서울터미널에 내려서 우산도 없이 부슬비를 버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번화한 곳을 보면서 지은재는 당황하고 있었다.

“정말 괜찮은 걸까? 인터넷 낚시 아냐?”

지은재 입장에서 최악이라면 역시 경찰의 함정수사였을 경우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그저 인터넷에서 누가 장난을 쳐서 불러낸 거라고 해도 심각하다.

오늘 하루 억지로 시간을 내서 그들을 만나러 왔다.

시외버스비, 시간, 그 모든 것이 가난한 지은재에게는 턱없이 비싼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커피 값도 부담스럽다.

이렇게 애써서 나왔는데 아무 성과 없이 놀림감이 된다면 자존심도 크게 상하겠지만 경제적인 타격도 심각하다.

‘만약 만나서 커피 점을 가거나 아니면 뭐 밥이라도 먹자고 하면 어쩌지?’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컵라면이나 사서 끼니를 때우려고 생각했는데 어찌해야 하나.

지은재가 그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앞에 커다란 SUV 차량 하나가 멈춰 섰다.

차의 창문이 열리자 중절모를 쓴 남자가 운전대를 잡고 있고 화려한 염색 머리를 넣은 젊은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이 그 예술가야? 생긴 건 영락없이 촌닭인데?”

젊은 여자의 발언이 도발적이다.

하지만 지은재는 깜짝 놀랐다.

‘와… 예쁘다.’

시골에서 살던 지은재는 눈앞의 여성의 미모에 감탄했다.

잡티 하나 없는 맑은 피부에 약간 컬러풀한 긴 머리칼을 늘어뜨린 여성이었다.

뭔가 정신 나간 것 같은 색들이 들어가 있는 염색 머리칼이지만… 시골에서 밋밋한 삶을 살던 지은재에게는 그게 오히려 더 좋았다.

마치 아이돌 가수나 코스튬 플레이어 같은 느낌을 주는 게 화려한 도시를 꿈꾸던 지은재의 취향에 제대로 직격했다.

“타시지요.”

운전하는 장년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지만 그에게서는 한기가 느껴졌다.

마치 잘 다듬어진 칼날처럼 서늘한 한기를 뿜어내는 걸 보니 무슨 칼잡이, 킬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신들이 그럼 운영진?”

“그럼 뭐 인신매매 범이겠어? 타라니까.”

여성은 반말로 뒷좌석을 가리켰다.

“……”

지은재가 뒷좌석에 탔다.

“당신들은….”

“우리들이 운영진 맞습니다.”

운전수가 그리 말하며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블루투스로 차량의 오디오 시스템과 연결되어 통화내용이 그대로 들렸다.

“태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살인예술가 씨. 이렇게 직접 뵙지 못하고 전화로 뵙게 되어서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아직 손에 놓을 수 없는 일이 있어서 그만….]

젊고 매력적인 남성의 목소리였다.

무슨 성우나 아나운서인가 싶을 정도로 매끄러운 목소리에 일차적으로 놀랐다.

“왜 절 보자고 하셨죠?”

지은재가 물어보자 목소리가 반문했다.

[혹시 저희 팀에 합류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팀에 합류하라고요?”

[네. 당신의 능력을 사용하는 데 조언을 해드리고 당신을 수사망으로부터 지켜드리겠습니다.]

“대체 뭘 위해서? 이 팀이라는 건 뭘 하려고 모인 겁니까?”

[그야 물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지요.]

“세상을 바꾼다고요?”

[네. 그러면서 각자 팀원들의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하도록 서로서로 돕는 수평적인 조직입니다. 아, 조직 리더로 보이는 제가 수평적이라고 말하니 좀 이상한가요?]

“믿을 수 없긴 하네요.”

지은재는 그렇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벌써 마음이 넘어가는 게 느껴졌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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