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자칭 살인예술가 #6
지은재는 자신의 삶에 아무런 탈출구가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살인을 저지른 이후, 그는 어머니와 단 둘이서 농사일을 돕고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왔다.
아무리 뼈 빠지게 일을 해서 간만에 좀 저축을 한다 하더라도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바로 병원비로 돈이 나가버렸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제자리에서 굴러갈 뿐, 생계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살고 있던 지역 공동체의 사람들은 지은재와 그 모친에게 동정심을 보이긴 했지만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굴레 또한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놈의 동정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장 지은재를 고용한 지역유지를 보라.
야근수당도 안주는 최저시급에 여기저기 순환근무를 시키면서 정작 자신은 지은재를 동정하고 가엽게 여겨서 일을 준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상에서 탈출할 수만 있다면 뭐라도 좋다.
게다가 눈앞의 여자, 이 조직에 속한 것으로 보이는 여자가 또 미인이지 않는가?
그리고 이 남자도 목소리가 매끄러운 게 정말 신뢰가 가는 목소리다.
다만 저 차를 모는 남자가 되게 무섭게 생겼는데….
“하지만 그 전에 저… 경제적으로 그렇게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닙니다. 어머니랑 단 둘이 살고 있는데 어머님 몸이 그렇게 좋지 않거든요.”
“그건 안심하시지요.”
차를 운전하던 이가 말했다.
“일자리는 제가 마련해드리겠습니다. 후후후.”
“……….”
웃고 있는 게 더 무섭다.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지금 지은재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것이었다.
“일단 하겠습니다만 저 여기 올라오는 데 차비도 다 썼거든요. 차비라도 좀….”
“이거 사기꾼 아냐?”
듣고 있던 여성이 대놓고 투덜거렸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차비 달라고 하는 건 아주 오래전부터 유행하던 대표적인 사기꾼들의 수법이 아닌가?
“아니 이 사람은 계약자가 맞습니다.”
운전수는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어 지은재에게 건네주었다.
“우선 계약금을 드리도록 하지요.”
“계, 계약금이요?”
“네. 신변을 정리하는데 있어서 이런저런 비용이 들지 않겠습니까? 이사비용이라던가.”
“…….”
지은재는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어서 안을 살펴보았다.
5만 원권 돈다발이 들어있었다.
‘500만원? 진짜야?’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농사일 보조 등으로 근근이 먹고 사는 지은재로서는 쉽게 만질 수 없는 거금이었다.
“신변을 정리하라고요?”
“네.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시면 제가 운영하는 합법적인 회사에서 일하시면 됩니다. 무려 기숙사도 제공하고 있지요.”
굳이 ‘합법적인’이란 사족을 붙인 걸 보면 비합법적인 일을 하는 곳일 테지만… 지은재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 * *
지은재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주차해둔 자신의 스쿠터로 향했다.
털털거리는 낡은 스쿠터에 올라탄 그는 집으로 향하려 했는데 터미널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는 청소부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지은재의 어머니였다.
“아니 운재야. 서울 다녀왔니?”
“네. 엄마.”
“…표정이 왜 그래? 뭐 안 좋은 일 있었니?”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엄마. 저 취직했어요!”
“취직?! 지, 진짜니?”
“네. 여기 보세요.”
지은재는 회사 명함을 보여주었다.
‘(주)한강건재 영업이사 양원일’
“무, 무슨 일 하는 회사니?”
“건설자재회사에요.”
“자재회사? 서울에?”
“네. 기숙사도 제공해준데요. 엄마도 같이 서울 가실래요?”
지은재가 기쁜 마음에 그렇게 물어보았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직 잘 모르잖니. 그리고 나는 평생 여기서 살아와서 이제는 잘 모르겠다. 네 아버지도 집으로 편지를 보내는 데 이사 갈 순 없잖니.”
“…….”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지은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감옥에 들어간 지 벌써 10년,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아버지다.
하지만 그 그늘은 언제나 지은재를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게 했다.
“그럼 저 혼자라도 가야죠. 이건… 엄마 쓰세요.”
지은재는 영사에게 받은 500만원을 어머니에게 주었다.
“어, 어디서 이런 큰돈이 났니?”
“계약금으로 받았어요.”
“계약금? 아니 세상 어떤 회사가 사원이 입사한다고 계약금을 주니?”
지은재의 어머니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 그건 다른 계약금이에요. 그 왜. 원래 엄마랑 같이 가면 방을 구하려고 그간 모아둔 돈인데… 방 계약금이에요.”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은 지은재는 즉시 둘러댔다.
“모아둔 돈이 있었어?”
“이, 있었어요.”
지은재가 둘러대고 돈을 넘겨주었다.
어머니는 지은재의 말을 반신반의하는 듯 했지만 그녀에게도 이 500만원이라는 돈은 매우 크고 귀중한 것이어서 돈의 출처보다는 기쁜 마음이 앞섰다.
* * *
지은재는 서울로 이사 가기 위해 자신의 짐을 챙겼다.
옷가지 몇 개와 노트북 컴퓨터, 그리고 탁자위에 놓인 액자 몇 개가 전부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은 탁자위에 아무렇게나 덮여있었고 그 앞에는 지은재가 유명 추리소설가 정성봉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아버지의 사진보다 정성봉과 함께 찍은 사진이 더 앞서있는 것은 살인자인 아버지를 수치스러워 하고 그보다 더 정성봉을 자신의 이상적인 멘토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10년간 감옥에 있었으니 지은재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게 11살.
이미 기억에도 흐릿할 지경이니 아버지 말고 다른 이를 멘토로 삼는다 해서 불효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 원 참. 짐이 정말 적구나.”
지은재는 아버지의 사진은 내버려두고 추리작가 정성봉과 함께 찍은 사진만을 챙겨서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저녁에도 일이 있어서 자리에 없다.
지은재는 어머니의 전화기에 문자로 잠시 작별을 고하고 집을 나섰다.
서울로 가기 전, 그동안 일하던 편의점에 들러서 점주에게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니 점주가 발끈했다.
“뭐? 그만두겠다고? 아니 이놈아! 네가 그냥 그만두면 어떻게 하냐? 대체근무자는 뽑고 그만둬야지! 인수인계는 해야 하는 거 몰라? 인수인계 될 때까지 못 간다!”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해요? 정규직 채용되는 일을 편의점 인수인계 하자고 포기하라는 게 말이나 돼요?”
“그럼 이번 달 월급은 못준다!”
‘아, 이게 목적이었군.’
지은재는 편의점 점주의 너무나 속물스러운 태도에 기가 막혔지만 이런 소인배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지방이라 그가 서울에 가면 월급 밀린 거 달라고 입씨름할 여유도 없을 것이다.
“알았어요! 맘대로 하시죠!”
지은재는 편의점 점주에게 그리 말하고 서둘러 스쿠터에 탔다.
아까 전 낮에는 스쿠터론 탈수 없는 고속도로를 이용하기 위해 시외버스를 탔었지만 이제는 국도를 이용해서 직접 스쿠터로 서울까지 상경할 셈이었다.
* * *
그날 밤, 최형림은 서부지검 인근의 카페에서 영사를 만나고 있었다.
“의외로군요.”
업무를 보느라 지은재를 직접 만나지 못했던 최형림은 영사에게 보고를 듣고 의아해했다.
“뭐가 말입니까?”
“아니, 꽤 호의를 베푸셔서.”
“흠? 돈과 일자리를 내준 것 말입니까? 별거 아닙니다. 제가 픽서로서 나름 명성이 좀 있거든요. 그런 일을 하려면 조직이 필요하기 마련이라 그렇지 않아도 사람은 많이 씁니다.”
“한강건재 영업이사 양원일?”
“아 그건 제 속세의 이름중 하나입니다.”
“한강건재라면 류하리 양의 아버지가 하시는 업체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
최형림은 류하리와 시현, 그리고 영사 이들이 예사롭지 않은 인연으로 얽혀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새로 영입한 살인예술가의 프로필을 확인해야 할 때였다.
“흠… 지은재, 올해로 21살에 아버님이 청부살인사건으로 10년째 수감 중이군요.”
“네. 누군가에게 살인교사를 받고 건재사 사장 일가를 살해한 사건이지요. 아마도 그 사건이 이 자의 뇌리에 깊게 남아서 누군가에게 살인을 교사하는 힘을 계약으로 받아낸 것 같습니다.”
“살인교사를 당한 자의 아들이 살인교사의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게 바로 위대한 분들이 좋아하는 일처리 방식이지요. 하지만… 보아하니 그에게는 그리 큰 흥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에게 계약을 제안한 자는 그를 사랑해서 계약을 제안한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계약의 도구로서 선택한 것이지요.”
최형림은 그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
바꿔 말하면 다른 계약자들은 저 악마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존재라는 소리가 아닌가?
데드맨이나 사이다패스 같은 존재는 계약의 주체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살인을 하고, 타인의 소망을 들어주면서 그들의 수명을 빼앗는 존재가 되는 것이 사랑의 결과라면 이 얼마나 비뚤어진 사랑인가?
“왜 그렇게 생각하지요?”
“보통 계약자들은 인간을 뛰어넘는 신체능력을 갖게 됩니다. 저 위대한 존재는 시간과 공간마저 초월한 신적인 존재로 그분들께서 손대면 인간은 더 이상 부모 몸에서 난 존재가 아니게 되지요. 예를 들어서 이제 더는 계약자가 아닌 이 몸도…”
영사는 가볍게 카페의 스푼을 손으로 잡고 마치 종이 냅킨을 찢듯 찢어버렸다.
졸지에 스푼이 포크가 되어버렸다.
“사이다패스도 엄청나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요. 고무망치로 사람을 쳤는데… 검시의의 반응은 곰이나 호랑이가 앞발로 후려친 것 같다고 할 정도니 말이지요. 그런데 지은재 씨는 어떻습니까?”
지은재라는 이 청년도 그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통제하기 힘들지 모르겠다.
사이다패스는 정신이 이상하지만 그런 만큼 오히려 다루기 쉬운 부분이 있었다.
돈이나 육욕 같은 사사로운 것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그녀 자신의 목적, 원한이 있는 이들을 죽이는 데만 집착하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해서 그녀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반면 돈이나 육욕 같은 1차적인 욕구에 집착하는 일반인은 아무리 관리해도 아차 하면 엇나가기 마련이다.
길거리에 시비가 붙기만 해도 사람을 때려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계약자이지만 신체능력은 별로 대수로울 게 없더군요. 일반인입니다.”
“그런 게 가능한가요?”
“네. 계약자 본인보다 계약 자체를 중시하는 경우에 종종 그런 일이 있곤 하지요. 아마도 위대한 분들은 저 지은재라는 청년이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고통 받기를 원했을 겁니다.”
“고통 받기를 원했다?”
최형림은 영사의 설명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