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64화 (164/269)

제164화

자칭 살인예술가 #7

“그의 능력은 그러니까 타인에게 살인을 교사하는 능력입니다.”

“살인을 교사하는 능력이라. 그렇군요. 왜 벌레도 못 죽일 것 같은 사람들이 트릭 좀 전해줬다고 바로 살인을 저지르는 지 의아했는데 사람들에 상관없이 살인을 저지르게 할 수 있는 능력입니까?”

최형림은 지은재의 능력에 대한 설명을 듣고 눈을 빛냈다. 검사인 그로서는 지은재가 가진 능력의 가치를 단박에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적대적인 정치조직이나 명망 높은 사회 인사를 살인범으로 만들 수 있다면 당장 한 사람을 제거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어마어마한 파장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TV에 광고하고, 언론사에 뒷돈을 찌르고, 뭔가 대대적인 광고 캠페인을 해도 얻지 못할 효과를 한 번에 얻을 수 있으니 그 효과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무슨 올림픽이나 엑스포 같은 대형 행사에 준할 것이다.

야심이 가득한 최형림으로서는 정말 탐이 나지 않을 수 없는 능력이다.

“물론 그렇게 막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선행조건이 필요합니다.”

“선행조건이라면?”

“누군가가 그에게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고 상담하는 게 첫 번째 조건이고 이쪽이 살인 수단이나 방법을 세세히 가르쳐 주는 게 두 번째 조건입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이 갖춰지면 상대는 살인을 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혀 실제로 살인을 하게 된다는 거지요.”

“음… 조건이 까다롭군요. 하지만 그래도 써먹자고 궁리하면 활용법이 무궁무진 한데요.”

최형림은 원래 생각한 것보다는 효과가 적지만 그래도 이 능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설마 그걸 지은재라는 그 청년이 말했습니까? 자기 입으로?”

“예. 고향에서 살인자의 아들이라고 꽤 괄시를 받으면서 살아온 모양입니다. 돈을 주고 직업을 준다고 하니 술술 말하더군요. 물론 전부 다 말하진 않았습니다만….”

지은재도 아주 바보는 아니라서 자신의 능력을 100%다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산이 워낙 적고 직업도 없어서 생계의 위협을 겪고 있으니 어떻게든 자신이 쓸모 있다는 어필 또한 해야 했다.

자신의 실력을 감추면서 또한 가치는 어필해야 한다니 이 얼마나 까다로운 조건인가?

그래도 지은재는 그 안에서 최대한 자신의 능력을 감추며 자신의 쓸모를 어필했다.

지은재는 정확히는 ‘청원자들에게 살인트릭을 가르쳐주면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증폭되는 능력’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영사는 악마들의 취향이나 개입하는 방식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에 지은재가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 꿰뚫어보고 있었다.

“상당히 좋은 능력 같습니다만 이게 왜 고통 받기를 원했다는 게 되는 겁니까?”

“이런 능력으로는 자기 주변의 일은 해결할 수 없지 않습니까? 운 좋게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을 같이 미워하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고, 그를 조종해서 살인을 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을 테니까요.”

“자신이 필요할 때는 써먹지 못할 능력이라… 그래서 계약이 계약자보다 우선한다. 고통 받기를 원했다는 소리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는 자기 고향에서 아버지가 살인을 저질러 살인자의 아들이라고 괄시받고 살았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기에 남들에게 대놓고 괄시를 받았으니 필시 고통스러웠겠지요. 그렇게 살면 죽이고 싶은 사람이 하나 둘이겠습니까? 하지만 사람을 죽이게 하는 능력으로 자신의 주위사람을 죽일 수는 없지요.”

“아버지가 살인을 저질러 고통 받던 사람이, 남에게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다니 악마들은 참 취향이 악랄하군요. 그런데 그에게 돈과 직업을 줘서 그의 고통을 덜어낸다면 당신이 좋아하는 그 위대한 분들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을까요?”

영사가 그에게 돈과 번듯한 직업을 준다면 악마들이 영사의 행동을 싫어하지 않겠는가?

최형림이 그렇게 물어보자 영사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아 그건 염려 안하셔도 됩니다.”

“어째서입니까?”

“네. 사실 그의 아버지에게 살인을 교사한 사람은… 저니까요.”

“네?”

최형림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 * *

10여 년 전, 영사는 류하리의 아버지, 류장천의 사업체를 돕고 있었다.

류장천의 회사, 한강건재는 건설경기에 따라 부침을 겪는 사업체로 당시에는 신도시 건설이 한창인데 환경파괴 문제 또한 심각해서 모래 채굴에 대한 규제가 강력했다.

결국 건재 채굴 면허를 가지고 있는 지방 건재사들을 합병하기 위해 류장천과 영사가 움직였는데 몇 몇 건재사들은 어르고 달래보아도 절대로 자기네 채굴 면허를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이에 영사는 류장천의 명을 받들어 사람들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고 채굴 면허를 가진 회사를 인수하게 하는 데 성공했으니 그때 실행 범이 바로 지은재의 아버지, 지경호였다.

* * *

“그 말인즉….”

“네. 제가 지은재라는 청년의 원수입니다.”

영사는 담담하게 그 사실을 밝혔다.

“………”

최형림은 검사인 자신의 앞에서 뻔뻔하게 살인교사를 자백하는 영사를 보며 어이없어했다.

아니 그렇다면 지은재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살인을 강요한 영사의 부하로 들어가게 된 게 아닌가? 그 사실을 정작 본인은 모르면서?

“위대한 분들은 이런 역설을 좋아한다니까요. 인간들의 원한과 욕망이 기괴하게 엉켜있는 걸 매우 보기 좋아하시지요.”

“당신도 좋아하는 것 같군요.”

자기가 저질러 놓고서 악마들 탓을 하다니.

지은재의 부친을 이용해 사람들일 죽이고 지은재의 집안을 풍비박산을 내놓고 나 몰라라 한 사람은 바로 영사 본인이다.

그런데 그런 짓을 저질러 놓고 이리도 뻔뻔하다니.

‘하지만 나도 똑같은 인간이지.’

지은재가 가진 능력을 어떻게 써먹을까 궁리하고 있는 최형림 입장에서는 영사를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사가 하는 짓이 참을 수 없이 역겹게 느껴지는 건 어째서일까?

* * *

지은재는 낡은 빌라로 된 사택에 들어왔다.

낡은 빌라라고 해도 24평형 빌라를 오롯이 혼자 쓰게 되니까 기분이 좋다.

냉장고나 에어컨도 기본적으로 달려있고 간단한 책상도 마련되어 있어서 좋기만 하다.

게다가 좋은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직장에 가보니 그가 살인자의 아들이라고 멸시하는 이들도 없고 오히려 무시무시한 ‘영업이사’님의 라인이라고 다들 잘 대해주는 것이었다.

거기에 법인 차량까지 내주는 게 아닌 가?

약간 낡은 화물밴 차량이긴 하지만 그래도 회사 법인차를 주는 게 어딘가?

낡은 스쿠터를 타고 다니던 때와 비하면 천지차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밤에 무리해서 스쿠터 타고 오지 말고 스쿠터는 동네에서 팔고 올걸 그랬네….”

오래 되어서 잔고장이 많은 스쿠터를 굳이 서울까지 타고 오느라 엄청나게 힘들게 올라왔는데 그게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우받고 여유가 생기게 되자 이제 두려움이 생겼다.

그동안 인터넷에서 울분을 토하며 얻은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살인을 교사할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건 그만큼 자신에게 여유가 없기 때문에 생각을 길게 할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괴로워서 그냥 손에 쥐이는 대로 일을 벌이던 지은재가 이제 여유가 생기니 과연 자신에게 이런 걸 해주는 저들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대체 뭘 하려는 걸까?

그때 그런 그에게 문자가 왔다.

스스로 영사라 하는, ‘영업이사 양원일’의 연락이었다.

* * *

지은재는 영사의 호출에 응해 영사의 개인 사무실에 당도했다.

영업이사라는 영사는 한강건재 본사 건물이 아니라 그 외에 있는 분점의 사무실에 두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최형림이라고 합니다.”

“아….”

지은재는 목소리가 선명한 남자를 보며 당황했다.

이 남자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최근 인터넷에서 꽤 인기 있던 젊은 검사였다.

인터넷 웹페이지나 커뮤니티 등에서 죽돌이처럼 지내왔기 때문에 지은재는 잘 알 수 있었다.

“거, 거, 거….”

검사라고?

지은재는 지은 죄가 있다 보니 심장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

이거 함정 수사였나?

하지만 최형림이 미소를 지으며 지은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제가 누군지 아시나 보군요. 설명하는 데 시간을 아낄 수 있겠군요.”

“자, 잠깐만요. 저, 저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지은재는 변명부터 시작했다.

“아 괜찮습니다. 당신을 잡으려는 게 아닙니다. 그렇지요?”

“네. 당신을 잡으려고 한다면 굳이 취직도 시키고 이사도 시킬 리 없지 않습니까?”

영사도 지은재를 안심시켰다.

“자, 잠깐만요. 그럼….”

지은재는 최형림이 사이다패스 수사본부에 속한 대변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이다패스에 대한 청원 사이트에서 최형림은 나름 잘 알려진 인물이었으니까.

젊고 잘생긴 재벌집안 검사가 매스컴 앞에 나왔으니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건 당연하다.

돈도 없이 인터넷 커뮤니티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지은재가 그 얼굴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그 사람이 사이다패스에게 청원하는 사이트의 운영진이란 말인가?

‘어… 이거 생각한 것보다 훨씬 위험한 거 아냐?’

지은재는 겁이 더럭 났다.

최형림이 자신에게 얼굴과 신분을 드러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가?

이들의 힘이 너무나 막강해서 얼굴 좀 보여줘도 비밀 유지쯤은 어렵지 않다는 뜻 아니겠는가?

‘자칫하면 죽겠군… 아니 뭐 배가 고플 때는 사실 곧 죽건 말건 상관없었지만… 일단 들어오고 나니 무섭네. 하지만 검사가 가담해 있을 줄이야. 추리소설로서는 완전 사기 아닌가? 수사 측에 범인이나 범인의 협력자가 있으면 너무 하잖아? 아니 따지고 들자면 애초에 초능력을 쓰는 시점에서 추리는 물 건너갔지만….’

지은재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그럼 지은재 씨. 어디 실력을 볼까요?”

“실력이요? 지금요? 자, 잠시 만요. 다음에는 반드시 안 걸리게….”

지은재는 이미 두 번 살인 교사를 펼쳤고 그 두 번 다 걸리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인터넷에서는 지은재를, 아니 정확히는 자칭 살인 예술가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추리소설가 지망생이던 지은재로서는 얼굴에 먹칠을 한 기분이었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깔끔한 트릭으로 맛깔나게, 들키지 않게 범죄를 저지르리라.

지은재는 그런 마음으로 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최형림이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아무래도 지은재 씨는 자신의 능력이 가진 잠재력을 잘 모르고 있던 것 같더군요.”

“자, 잠재력이요?”

“네. 당신의 능력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이다패스보다 훨씬 유용하고 좋은 능력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은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 남자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사이다패스보다 좋은 능력이라고?

사이다패스의 능력은 뭔데?

지은재는 최형림을 반신반의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의 능력은 철저히 경찰의 수사에 걸려야 의미가 있는 능력입니다.”

“…네?”

지은재는 최형림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걸려야 의미가 있다고?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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