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65화 (165/269)

제165화

자칭 살인예술가 #8

서울 S대 소재공학과 교수인 김응용은 한국에서 노벨상을 받는 다면 그가 받을 거라는 이야기까지 듣는 업계의 유명인이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모두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소재공학의 랩은 그야말로 노가다 판이라서 연구비는 엄청나게 많이 들고, 인력도 많이 갈아 넣어야 하지만 성과가 언제 날지 모른다.

그래서 많은 연구원들을 고용해야 했는데 김응용 교수가 운영하는 랩의 연구원들의 처우는 안 좋기로 유명했다.

김응용 교수가 연구비를 횡령하고 있다.

모두들 그걸 알고는 있지만 김응용 교수 정도의 유명인이 아니면 이만한 연구비를 타낼 수 없기 때문에 다들 쉬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김응용 교수는 TV쇼에 얼굴을 내비치기도 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이미지를 팔아서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인들에게도 장차 과기부 장관 자리를 노린다고 당당하게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바로 그 김응용 교수가 자택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의문의 침입자가 자택에 침입해 김응용 교수를 살해하고 자택의 금품을 훔쳐간 것이었다.

‘여자 친구도 교수의 피해자였을 텐데 증언해주면 됐잖아?’

‘그래봤자 공범 되는 거지 뭐.’

‘아니 그런데 애초에 그 조교는 이 사실이 밝혀지길 원한 것 같아. 그렇잖아. 교수의 악행이 세상에 밝혀지길 원한 거지 그냥 죽으면 살인강도가 노벨상 수상자가 될지도 모르는 인재를 죽인 이야기가 되어버리잖아? 조교가 교수를 죽였으니까 사람들이 아 교수가 뭔가 뒤가 구리구나. 그렇게 알아듣는 거지.’

‘교수가 무고한 희생양이 아니라는 걸 밝히기 위해서 일부러 걸린다고?’

‘음. 어쨌건 이 번 건 아깝다. 잘하면 안 걸릴 수 있었을 텐데.’

‘살인할 만큼 몰렸으면 걸리길 바라고 한 걸지도?’

‘살인예술가라는 놈은 여전히 닉네임은 웃기지만 그래도 이번엔 꽤 진지하게 했네. 참고할 만은 하겠어?’

사람들이 살인예술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토론하고 있었다.

“으와… 반향이 엄청나잖아? 반응 많다. 좋은데?”

지은재는 사람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는 것을 보며 흥분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지금까지 지은재가 이렇게 누군가의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어떻습니까?”

그런 지은재에게 마치 악마의 속삭임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형림이었다.

그도 영사의 사무실에 와 있었다.

“뭔가 반응이 전혀 다르네요?”

“이전까지 당신은 인터넷에서 푸념하던 이들의 푸념을 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철저히 권력자를 대상으로 했지요.”

“차이가 있…나요?”

“있습니다. 물론. 권력자나 강자가 죽으면 사람들은 동정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죽을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믿게 되지요. 당신의 행위가 긍정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걸리지 않았으면….”

“걸리지 않으면 당신이 위험해집니다.”

“네? 보통 반대 아닌가요?”

“아니죠.”

최형림은 지은재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당신은 계약자잖아요. 당신에게는 항상 악마들의 시선이 따라다닙니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성이 불타오르는 순간을 즐기죠.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

“그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최형림은 그리 말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저는 또 이만…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군요. 요즘.”

“아 네. 수고하십시오.”

지은재는 신이 나서 최형림을 배웅했다.

새 직장, 새 사명, 새로운 동료들, 그 모든 것이 지은재에게는 그저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살인 교사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신이 나 있는 지은재를 보며 최형림은 쓴 웃음을 지었지만 그 웃음을 지은재에게 보이게 하진 않았다.

* * *

“휴우…. 이거 참.”

최형림은 주차장에서 기지개를 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안 되네….”

장수를 치기 위해선 먼저 말부터 치라고 했던가?

데드맨의 심리를 흐트러뜨리기 위해서는 그의 유일한 약점, 류하리를 공략하라는 게 영사의 조언이었다.

문제는 최형림이 그걸 실행할 기회가 얼마 없다는 것이다.

평검사는 바쁘다.

특히 최형림처럼 유능한 검사가 되려면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 와중에 최형림은 신체단련을 빼먹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관리, 평판 관리, 근무 평점 관리 등등 관리할 게 너무 많으니까 언감생심 다른 일을 할 틈이 없다.

그런데….

“잠깐 이야기 좀 할까?”

그의 앞에 미카엘이 서 있었다.

“미카엘.”

“꽤 팀을 불리고 있는 것 같던데.”

“불만입니까?”

“아니. 좋아. 좋은 일이지. 하지만 말이야. 영사야 그렇다 치고 그 지은재라는 친구는 조심하는 게 좋아.”

“의외로군요. 영사 쪽을 더 경계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런 변태 같은 놈은 경계하지 말라고 해도 경계할 테니까. 굳이 말해봐야 사족이지.”

“그런 변태 같은 사람일지라도 당신이 말 한마디만 걸어주면 아주 좋아라 할 것 같던데요.”

어차피 유유상종 아니냐.

그런 변태가 변태인 이유는 당신들을 좋아하기 때문인데?

최형림은 그런 의미로 빈정거렸다.

“끔찍한 소리 하지 마. 그렇기 때문에 싫은 거니까.”

“싫다?”

최형림은 놀라워했다.

영사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싫다고 한다고?

“우리는 인간성에 매료되어 개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를 좋다고 쫓아다니는 놈은 이야기가 달라. 인간성이 없으니까.”

“절대자에 대한 신앙에 빠지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라고 보는데… 그게 마음에 안드나 보군요.”

“그렇다기 보다는 그 이전의 문제지.”

“그 이전의 문제?”

“그래. 지나치게 나를 숭배하고 좋아하는 놈은 재미가 없을 뿐더러 자칫 잘못하면 극을 망치니까. 말하자면 그놈은 지나친 PPL같은 거야. 그런 놈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극에 몰입감이 떨어지거든. 어때? 참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지?”

“그럼 만약 데드맨이나 사이다패스 같은 계약자가 영사처럼 당신들을 좋아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다면 그들은 계약에서 버림받겠지. 어떤 의미로는 해방이지만 글쎄?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란 쉽지 않거든. 당장 당신부터 정말 날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겠어?”

“…….”

“어렵지? 내가 또 사람 마음을 잘 알지. 이거 참 나도 이제 인간 다 됐다니까. 우리 아버지는 늘 나보고 사람구실 못한다고 하는데 그건 정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지.”

“그래서 왜 지은재를 경계하라는 겁니까?”

“아 정확히는 그의 뒤에 존재하는 것 때문이지.”

“그의 뒤에 존재하는 것… 계약의 대상 말입니까?”

“그래.”

“흠. 무슨 의미입니까?”

“만약 지은재를 죽여서 그에게서 계약을 빼앗을 수 있다면 어때?”

“계약을 빼앗는 다고요?”

“그래. 데드맨 계약이 승계되어 지금 시현이 데드맨인 것처럼…. 계약은 승계할 수 있어. 그리고 승계 대상에 따라 그 능력은 조금씩 바뀐다.”

“음….”

“우리들 입장에서 말하자면 계약자가 바뀌는 건 꿈을 꾸는 시점의 변화 같은 거야. 그 사람의 눈, 그 사람의 감성, 그 사람의 상황과 영혼으로 이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니 계약자를 자주 바꾸고자 하는 이들이 종종 있지.”

“안심하시지요. 저는 제 손을 직접 더럽힐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래서 그걸 경고하려고 절 찾아오셨습니까?”

“뭐 그 외에도 이걸 주려고. 아무래도 돈이 많이 필요하겠지? 팀원을 새로 모집했으니 말이야.”

“비용문제는 영사가 책임지고 있습니다만 주시면 사양하지 않고 받지요. 다만 영사의 사무실 주차장에서 당신에게 돈 봉투를 받는 것도 보기 안 좋을 것 같군요.”

“알잖아. 내가 이런 거 흔적 안 남긴다는 거.”

미카엘은 그리 말하고 작은 가방을 내밀었다.

최형림이 받아서 열어보니 안에는 5만 원권 돈다발 10묶음과 37.5그램의 소형 금괴들이 50개가 들어있었다.

용돈이라기엔 지나치게 많은 돈이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많이?”

“내후년에 선거가 있지?”

“…….”

“그때까지 정계의 러브콜을 받거나, 아니면 특수부에 들어가.”

“특수부?”

“선거철이 되면 정치계의 공세가 거세질 거 아냐? 그 정치가를 수사하는 위치에 서던가 정치가가 되라는 거야. 할 수 있겠어?”

“전 고작 평검사에 불과합니다. 그런 평검사에게 2년 안에 그런 엄청난 일을 해내란 말인가요?”

최형림은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그러고 싶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한영건설 그룹 회장을 좌우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건 현재로서는 어디까지나 아련한 계획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악마는 지금 돈을 눈앞에서 흔들면서 2년 안에 그만한 성과를 내라고 그를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2년 안에 특수부, 혹은 아예 정계의 러브콜을 받을 것….

어렵다.

하지만 여기서 못하겠다고 하면 미카엘의 흥미를 잃을 테고 이런 지원을 더 이상 못 받게 될 지도 모른다.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라 최형림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최형림은 미카엘이 넘겨주는 가방을 받아서 차량의 조수석에 던져 넣었다.

“모순된 소리를 하는 군요. 계약자가 되지 말라면서 인간에겐 거의 불가능한 일을 주문하다니.”

“그래야 의미가 있지.”

“그건 그렇군요.”

최형림은 미카엘의 말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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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자택에는 방범업체의 CCTV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범인은 초고출력 그린레이저로 CCTV카메라를 조사해 센서를 망가뜨린 뒤 자택에 침입했다.

게다가 얼굴에 방진마스크를 쓰고 고글을 써서 이목도 드러나지 않았고 지문도, 섬유조각도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방범시설의 위치를 잘 알고 있고, 용의주도하게 사전준비가 되어있던 점, 그리고 집안 내부에서 헤매는 법 없이 단시간에 살인과 패물 약탈을 끝낸 그 솜씨를 볼 때 경찰은 이것이 지인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보았다.

즉 강도 살인은 어디까지나 위장, 진짜는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이 아닌가?

그렇게 본 것이었다.

결국 경찰은 주위를 탐문해 조교인 정용하를 구속했다.

단서는 그가 구매한 고출력 그린레이저.

그동안 구매내역을 뒤져본 결과 해외 사이트에서 고출력 레이저를 구매한 기록이 남아서 덜미가 잡힌 것이었다.

조교 정용하는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레이저 구매기록이 표출되자 범행을 인정했다.

조교 정용하는 평소에 김응용 교수가 제자들의 논문을 약탈했으며 여학생들에게 성희롱, 성상납을 요구하고 자신이 만든 논문을 약탈해 정치가와 권력자, 지인의 자식들을 공동 연구자로 올리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그의 여자 친구에게도 성상납을 요구해서 참을 수 없게 되어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니 비록 살인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동정했다.

일단 김응용 교수가 죽자 평소 그에게 피해를 입었어도 입을 다물고 있던 다른 피해자들도 함께 입을 열고 살인범인 정용하의 처벌을 가볍게 해달라고 탄원을 하였으니 언론이 연일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 * *

지은재는 신이 나서 영사의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살펴보고 있었다.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해’ 청원사이트의 반응이 뜨겁다.

이전까지 살인예술가에 대해서는 조롱 일색이었다면 지금에는 꽤 우호적인 반응들이 많았다.

‘이번에도 걸렸네.’

‘하지만 그건 조교가 좀 멍청한 거 아니냐. 자기 신용카드로 구매해버리면 당연히 들키지.’

‘아니 애초에 경찰이 조교를 의심했구먼. 그러니까 신용카드 사용내역 같은 걸 뒤져보지.’

‘그 시간대에 알리바이가 있으면 될 거 아냐? 알리바이를 위조했으면 될 걸.’

‘아니 딱 보니까 경찰이 감으로 찍었구만. 경찰이 일단 감으로 찍으면 진짜 무고한 사람도 꼼짝없이 잡혀 들어가는 데 정말 범죄 저지른 놈은 얄짤없지. 이 세상이 추리소설 같은 줄 아냐? 경찰들이 감으로 찍어버리는데?’

‘그런 식이면 그럼 살인 트릭 따위는 쓸모없지 않냐? 알리바이를 조작하는 게 진짜 트릭일 텐데.’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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