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의리를 입에 달면 #2
“아마 정킷을 운영하던 놈들의 정킷 라이센스가 곧 만료인 것 같습니다.”
“라이센스가 만료된다고요?”
“네. 카지노와 계약해서 정킷 라이센스를 얻은 채로 영업하고 있을 텐데 그게 만료가 가까워지는데 갱신하자니 향후 수익률을 보장할 수 없으니까 사업 접는 김에 막판에 돈을 건지려고 조명성 씨를 협박하는 것 같습니다. 마침 조명성 씨의 상황이 협박하기 너무 좋거든요.”
“아 그러니까 장사 접는 김에 공갈협박 한다 이거군요.”
“네. 곧 FA계약을 앞두고 있는 조명성 씨가 도박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 FA계약에서 큰 타격을 받을 테니까요. 도박죄로 잡혀가고 싶지 않으면 돈 내놔라, 그렇게 공갈협박을 하고 있는 거지요.”
조명성의 경우는 발이 느리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걸 상회하는 엄청난 컨택과 파워를 가지고 있어서 해외에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FA대어였다.
그런데 만약 도박으로 구설수에 올라 FA계약에 차질이라도 빚어지면 과연 돈으로 얼마를 손해 보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걸 그냥 달라는 대로 주자니 이놈들이 얼마나 더 달라고 할 지 모르는 데 무작정 줄 수도 없다.
“뭐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지요.”
“아 저 그런데….”
조명성이 물어보았다.
“이건 별개의 질문이지만 그런데 정킷이 뭐지요?”
“…………”
정킷이 뭔지도 모르면서 정킷을 이용해 도박을 한 것에 대해서 시현은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카지노에 입점해서 영업 뛰는 대리점 같은 겁니다.”
“대리점?”
“보통은 외화 반출법 때문에 해외에 돈을 많이 들고 나갈 수 없지요. 그렇지만 해외원정 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판을 크게 놀고 싶을 것 아닙니까? 정킷은 그런 고객들에게 한국에서 입금 받은 걸로 카지노 칩을 내주는 놈들이지요.”
“그럼 수익은 어떻게 냅니까?”
“그 사이에서 환전 수수료를 먹고 카지노와 계약해서 자신의 고객들이 올리는 카지노 매출의 일부분을 수수료로 가져갑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고객유치를 위해서 돈을 예치하면 칩을 추가로 더 주곤하지요. 즉 정킷을 운영할 정도면 꽤 규모가 있는 폭력조직이란 뜻입니다. 해외에도 긴밀한 조직이 있어야 하고 카지노 사업자와도 입을 맞출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아무리 당신이 명탐정이래도 이거 해결할 수 있습니까?”
조명성은 그렇게 물어보았다.
해결사라고 해서 기대하고 왔는데 젊은 여자와 역시 젊은 남자 단 둘이 사무실에 있으니 믿음이 가지 않을 수밖에 없다.
“설령 저놈들이 돈 달라고 하는 걸 그만둬도… 제가 매스컴에 두들겨 맞으면 끝장이에요. 가급적 제가 도박했다는 사실은 안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어 이게 참 요구하면서도 제가 다 황당할 정도인데….”
조명성은 자신이 요구하는 게 어디 뭐 다른 거대한 폭력조직에게 요구해도 달성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눈치 채고 있었다.
폭력배들을 고용해봤자 어차피 이놈들도 깡패인 것은 마찬가지이니 같이 뜯어먹지 않겠는가?
게다가 해외에서 정킷을 운영할 정도의 조직은 상당히 크고 돈도 많은 조직이다.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될 놈들인 것이다.
“구단 프론트에는 이미 알리셨나요? 아니 FA 협상 때문에 알리지 않으셨을 수도 있겠군요.”
“아 네… 일단 구단 프론트에도 알렸습니다만 현재 뾰족한 수가 없다고 하네요.”
“후후. 그럼 우선 업무 보수부터 이야기하도록 할까요?”
시현은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데도 대뜸 업무 보수부터 이야기했다.
“…네?”
“꽤 크게 손을 대야 할 것 같으니까 보수를 좀 크게 잡아야 할 것 같군요. 우선 주당 500만원에 성공보수를 따로 책정하겠습니다. 협박범들을 처리해서 더 이상 협박을 못하도록 하면 수명 3년, 그리고 FA계약에 차질 없도록 성사하면 성공보수 5천만 원이 어떨까요?”
“그, 그런 게 가능합니까?”
조명성은 예상치 못한 시현의 태도에 당혹감마저 느꼈다.
이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닌데… 어째서 이 남자는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는 걸까?
‘그런데 잠깐? 보수 중에 뭔가 이상한 게 있는 것 같은데?’
조명성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수명이 뭡니까? 설마 3년 연봉을 달라는 건가요?”
“아니요. 그러면 차라리 협박범들이랑 합의하는 게 낫잖습니까? 제가 말하는 건 말 그대로의 수명입니다.”
“네?”
“원래 90세까지 살 수 있으면 87세에 사망하시게 됩니다.”
“아니… 진담이에요?”
조명성은 사무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몰래카메라?”
“뭐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만 이건 진담입니다. 거부하시면 그냥 돌아가셔서 계속 협박당하시고 FA계약을 망치시면 됩니다.”
시현은 계약서를 내밀었다.
“프로선수에게 노년의 10년보다 현역으로 보내는 1년이 더 소중하지 않습니까? 계약하시지요?”
“아니 대체 수명을 어떻게 걷겠다고….”
그러나 조명성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시현이 말한 대로다.
노년의 10년보다 현역의 1년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럴 거면 현역 때 유흥 같은 거 작작 하고 몸 관리 좀 더 하지?’
류하리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입 밖에 내진 않았다.
결국 조명성은 시현이 내미는 계약서에 서명해버리고 말았다.
* * *
“그래서. 어떻게 할 거에요? 이건? 상대가 조직폭력배들 일 테니 협박을 하지 말라고 해도 들어 처먹지 않을 텐데?”
류하리는 대체 시현이 어떻게 하려나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당신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일을 받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건 상대가 매우 안 좋지 않겠어요? 게다가 그냥 조직폭력배들을 수사하고 체포하는 것과 달리 그들이 저 야구선수를 협박하지 못하게, 도박했다는 사실을 덮어주면서 처리하기는 더 어려울 텐데요?”
“폭력조직을 상대할 때는 돈의 연결고리를 공격해야 합니다.”
“돈의 연결고리요?”
“네. 하지만 그러려면 상대를 조사해야겠지요.”
“아니 조사도 안하고 상대가 어떤 놈들인지도 모르면서 벌써 보수를 정했어요?”
류하리는 시현의 배짱 좋음에 당황했다.
“윤 회장 네 패거리가 아니면 조직폭력배들은 다 상대 할만 하거든요.”
시현은 거기서 한 술 더 떴다.
“대체 무슨 차이가 있죠?”
“윤 회장은 엄밀히 말하면 그냥 사업가입니다. 거기서 필요에 따라서 조직폭력배들을 고용하는 거니 조직의 사업 자체는 자신이 직접 경영해요. 즉 일반적인 조직폭력배들보다 훨씬 조직력이 좋고 금력 또한 좋은 편입니다. 이 차이가 어느 정도냐 하면 윤 회장은 아예 카지노를 지으려고 하지 정킷처럼 위법소지가 다분한 사업은 직접 하지 않아요. 그의 하부조직은 정킷을 따로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돈벌이보다는 고위 관료들이나 경찰, 정치가들을 구워삶기 위한 일종의 위락시설로 가지고 있는 거지요. 윤 회장 정도 거물이면 정킷은 먹을 거에 비해서 잃을게 더 많은 사업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즉 윤 회장의 자금력과 조직력, 우치는 감히 일반적인 조직폭력배들과 비할 바가 못 된다.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데 거기에 시비도 많이 걸었잖아요? 당신?”
윤 회장 네 조직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면서 거기에 시비를 많이 걸지 않았나?
류하리가 물어보자 시현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고객만족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지요. 애초에 강남경찰서장도 건드렸잖습니까?”
“그건 그러네요.”
“자 그럼 작업에 들어가 볼까요?”
* * *
시현은 조사에 착수하기 전 조명성에게 관련 자료를 받았다.
조명성이 한국에서 입금하는데 쓴 계좌, 한국에서 매니저가 만난 접속책, 협박을 해온 전화번호와 이름, 필리핀 현지에서의 정킷의 이름과 카지노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 등을 설문서로 보내 자세히 받아둔 것이었다.
그 자료를 기초로 탐문을 시작하기로 했다.
Kr신용정보사의 정대식을 만나자 이야기가 바로 나왔다.
“아, 이거는 그놈아들이네. 신세계 컴퓨터 놈들.”
정대식은 역삼역의 뒷골목, 흡연 장소에서 시현을 만나서 자료를 받아보고 대뜸 조직의 이름을 말했다.
“신세계 컴퓨터?”
대한민국에서 폭력조직 결성은 최대 사형까지 가능한 중죄이기에 어지간해서는 조직폭력배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폭력배들은 설사 조직을 만든다 해도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정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폭력조직의 이름은 수사기관이 편의를 위해서 지어 붙인 것인데… 그래서 우스꽝스러운 것들이 많다.
하지만 신세계 컴퓨터는 뭐냐?
“아니 용산에서 컴퓨터 팔던 놈들이 결성한 조직인데, 원래는 필리핀에 컴퓨터 중고부품이나 중고 스마트폰, 태블릿 같은 걸 팔다가… 그쪽 거래처와 연결되어서 마약을 들여오면서 폭력조직이 된 놈들이에요. 그러면서 돈이 좀 생기니까 카지노 사업에도 손대겠다고 인터넷 카지노 게임개발을 위해서 프로그래머도 고용하고 그랬을 거예요. 게임개발자 구직 사이트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을 텐데….”
“흠. 법인명이 신세계 컴퓨터인 건가?”
“네. 신세계 컴퓨터 주식회사입니다.”
“어디….”
시현이 조사해보니 과연 정말 그런 이름의 법인이 있었다.
게임 개발,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발을 뻗치고 있지만 게임 제작자들의 구인구직 사이트 등에서의 평가가 아주 안 좋다.
‘도저히 개발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회사.’
‘도망쳐.’
‘분명 개발자로 입사했는데 열풍기로 중고태블릿들 뜯고 있을 것, 사내 구타는 덤.’
이런 평가를 받고 있었다.
아마도 카지노 게임을 만들려다가 게임업계의 전반적인 인력관리 방법을 알지 못해서 실패한 곳 같았다.
“저기 그런데 제정신이 아닌 분께서는 이놈들에게 무슨 용건으로…?”
“의뢰가 들어와서지. 당연한 일 아닌가?”
“뭐 이미 권 총경도 들이받고 윤 회장도 들이받으신 분이니까 이제 와서 이놈들 들이받는 건 이상하진 않은데… 이놈들은 주의하는 게 좋아요. 수틀리면 무슨 짓 할지 모르는 놈들이니까.”
그렇게 말하던 정대식이 아차 했다.
“아, 아니. 여기서 걱정해야 할 건 당신이 아니라 그 친구들이지. 나 참… 이번엔 제발 좀 덜 죽게 하세요. 네?”
“흠. 뭔가 내부사정을 잘 알 만한 사람이 없을까?”
“아 그거라면… 여기 전 사장이 있어요.”
“전 사장?”
“회사에서 방출된 인물인데… 원래 창업주중 한 명이다가 빈손으로 쫓겨난 것 같아요. 연락처 드릴까?”
“주면 고맙지.”
“여기….”
“역시 유능하군.”
시현은 정대식의 빠른 정보력을 칭찬하고 그에게 정보료를 입금했다.
“매번 감사하긴 한데… 거 좀 가급적 안 찾아오시면 안 됩니까. 미치신 분아…. 당신이 사람들 건드릴 때마다 살이 떨리는 데요.”
“그런 게 무서우면 대체 정보상을 어떻게 해먹는다고?”
시현은 정대식에게 정보료를 입금해주고 자리를 떠났다.
* * *
“그렇다고 하는 군요.”
시현은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류하리와 공유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