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화
의리를 입에 달면 #3
“뭔가 황당하게 결성된 폭력조직이네요. 용산 도매업자들이 폭력배가 되었다고요?”
“황당할 게 뭐 있습니까? 이권이 있고 범죄와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그 이권을 먹고 싶어 하는 놈들이 조직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하면 그게 조직폭력배지.”
“아니 그래도 자기들끼리 건달이니 반달이니 양아치니 하면서 구분은 하잖아요? 그런 입장에서 보면 이런 신흥조직은… 아, 아니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가요?”
“전에도 말했지만 돈의 연결고리를 끊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요?”
류하리의 질문에 시현이 음흉한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뭐 우선 정보를 더 모으는 게 좋겠지요. 이 고필석이라는 분을 만나봐야겠어요.”
시현은 신용정보사이자 정보상인 정대식에게서 받은 전화번호로 연락해보았다.
곧 바로 답이 왔다.
[택시비만 주면 지금 당장 만나러 갈 테니 택시비로 3만원만 줘!]
그런 문자가 날아온 것이다.
“흐음?”
시현은 그걸 류하리에게 보여주었다.
“이 사람이 그 신세계 컴퓨터의 전 사장이라면서요?”
“심각하게 몰락한 것 같습니다. 제 정보원의 말에 의하면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더군요.”
“신용불량자요?”
“네.”
“그럼 3만원을 택시비로 부치면….”
“절대 안 되지요. 어디 써먹을 겁니다. 제가 직접 찾아가야 지요.”
그래서 시현은 문자를 보냈다.
[저희 쪽이 차가 있으니까 3만원은 직접 찾아가서 드리겠습니다. 어디십니까?]
[쳇. 깐깐하기는….]
고필석이라는 자는 자신의 위치를 알려왔다.
위치는 의정부시였다.
“도로가 안 막힐 시간이니 금방 갈 수 있겠군요.”
시현은 차 키를 손가락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고필석을 만난 곳은 의정부시의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샐러드 바가 무한 제공되는 좀 시끄러운 곳에서 만난 그는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음식을 입에 집어넣으며 류하리와 시현을 맞이했다.
“자자. 뭐든 물어봐. 내가 아는 건 다 답해주지.”
“그럼 말입니다.”
시현은 신세계 컴퓨터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 * *
신세계 컴퓨터 주식회사는 본래 용산구에 위치한 컴퓨터 유통 업체이자 소프트웨어 업체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구 상무라는 사람이 들어오면서 회사의 성격이 달라졌다.
구 상무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이 사람은 어느새 회사를 장악하고 다른 이사들을 차례차례 배제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회사를 빼앗겼다니까. 딱히 우리가 처음부터 조폭이었던 게 아니라 폭력배 놈들이 투자한다고 들어와서 얼마 되지도 않는 투자 금으로 회사를 야금야금 다 빼앗아버린 거라고!”
신세계 컴퓨터의 전 사장인 고필석은 그렇게 하소연을 했다.
“원래부터 조직폭력배가 만든 회사가 아니라 멀쩡한 회사를 탈취 당했다고요?”
“그래. 그런데 이게 아예 없었던 일이 아니야. 옛날에, 이 바닥에서 그래픽카드랑 메인보드 만들던 회사 하나도 그렇게 탈취되어서 조직폭력배들이 그걸로 부정대출을 엄청 받았지. 주가 조작도 하고. 용산의 컴퓨터 관련 회사들은 컴알못들에게는 IT주로 보이기 때문에 작전주로 사용하기도 좋고 탈취하기도 비교적 쉽다니까. 회사에 투자한다고 지분투자하면서 들어온 다음에 주주들을 협박해서 헐값에 장외주식 거래로 주식을 모으면 회사 탈취하는 거 순식간이지! 경찰에게 하소연해도 그냥 강압적으로 주식을 거래하려고 했다. 경영상의 문제다 하면 경찰들도 그냥 그러지 말라고 훈방 조치하고 만다고. 이런데 누가 안 당해?”
고필석은 절대로 자신이 무능해서 당한 게 아니라는 걸 전달하고 싶었는지 열을 올리며 변명했다.
“그래서 놈들은 당신의 회사를 탈취해서 무슨 사업을 하던가요?”
시현은 이미 조사해서 알고 있으면서 물어보았다.
“조직폭력배들이 회사를 탈취한 후 회사 내에 자신들의 사람들을 들여놓고 시작한 게 바로 온라인 카지노 시스템 개발이었지.”
“온라인 카지노 시스템 개발? 게임 말하는 거예요?”
“그것도 있지만… 알잖아. 옛날에 마늘밭에 현금 70억 묻었던 사건. 그때 그 돈이 바로 온라인 카지노였어. 그런데 그 온라인 카지노라는 게 더럽게 허접했거든.”
“압니다. 바카라 테이블을 캠으로 찍어서 그 플레이어에게 돈을 걸게 했지요. 실제로 카드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라 남이 카드 게임하는 걸 보면서 돈을 걸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게임 테이블 자리가 나지 않는 강원도의 내국인 카지노에서 하던 짓이다.
그걸 인터넷 카지노랍시고 하다니....
“그래. 그런 그런 허접한 것에도 돈을 당시 70억이나 벌 정도니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개발하면 얼마나 될지 알겠지? 엄청나게 벌수 있다고.”
기왕 회사를 탈취한 김에 구 상무는 직원들에게 제대로 된 온라인 카지노 시스템을 개발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용산 컴퓨터 부품 도매상 하던 사람들에게 그런 본격적인 게임개발을 요구할 수가 있나?
그래서 따로 개발자를 구인해서 추가로 인원을 뽑아서 카지노 게임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지만….
“개발자들이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이때에 누가 이런 딱 봐도 좆도 없는 좆소기업에 들어가겠냔 말이야. 스타트업이라면 최소한 비전은 있어야지.”
겜알못, 게임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는 놈이 묻지 마 식으로 끌고 가는 게 빤히 보이는 데 정상적인 게임 개발자들이 이런 곳에 올리가 없다.
“그나마 유능한 직원들은 깡패새끼들이 회사에 들어오니까 깜짝 놀라서 퇴사했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도망치러다 실패해 붙잡혔는데 때마침 정킷 라이센스를 사지 않겠냐는 제의가 온 거야. 그런데 알지? 마닐라면 모를까 솔직히 세부 카지노는 작아. 쥐콩만하다구.”
정킷 라이센스의 가치는 카지노 업장의 크기, 판돈 규모에 좌우된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가 그나마 카지노가 규모도 있지 세부는 카지노가 너무 작다.
“뭐 그러니까 이런 허접한 조직도 정킷을 꾸릴 수 있는 거지만 말야. 그래서 정킷 라이센스를 싸게 구할 수 있었던 거고. 솔직히 말해서 이쪽도 정킷으로 수익을 크게 내겠다기 보다는 온라인 카지노 시스템 중에 원시적인 건….”
“그냥 카지노를 캠으로 찍어서 거기에 돈을 걸게 했으니까?”
류하리는 그렇게 물어보고 혀를 찼다.
‘이 사람 본인은 회사를 빼앗긴 선량한 피해자인 양 말하고 있지만….’
이렇게 자세히 내막을 알고 있는 걸 보면 사실 처음에는 구 상무라는 자와 공모해서 사업을 시작했음에 틀림없다.
도중에 뒤통수 맞고 다 빼앗겨서 이러는 거지.
시현도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이 남자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는 게 참 가증스럽다.
‘아니, 웃으면서 들어주는 걸 보니까 알고 있구나.’
류하리는 시현이 웃을 때가 오히려 더 무섭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원래 무표정하던 놈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으면 그게 더 위험한 법이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고필석 전 사장은 여전히 하소연 해댔다.
* * *
“실물 도박장을 가지고 있으면 온라인 카지노 시스템 개발에 연동해서 돈이 되지 않겠냐, 그런 마음가짐으로 그냥 정킷 라이센스를 받은 거야. 그런데… 2000년대 초라면 모를까 요즘 사람들이 캠코더로 카지노 화면 찍어서 송출하면서 거기에 돈 걸라고 하면 걸겠냐고. 더 예쁘고 볼거리 많은 게 천지인데. 결국 필리핀 커넥션을 유지하고 있는데 돈은 실제로 안 벌리고 대신 들어가는 건 많으니까.”
“돈이 안 벌리고 들어가는 게 많아요? 불법도박 알선인데? 어느 정도 수입이 되니까 하는 일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수익 자체는 상당하지. 하지만 필리핀에 송금해줘야 할 거 아냐. 정킷 라이센스비에… 정킷 고객이 칩 산거 결재해줘야 하는데 고객이 한국에서 송금한 걸 그 돈을 필리핀 보내줘야 할 거 아냐? 그러면 돈을 세탁해서 보내야지. 필리핀에 그냥 미화 팍 쏴버리면 바로 들킬 거 아냐?”
“그건 그렇지요.”
“뭐 여기서 컴퓨터 부품을 손해 보면서 보내줘서 현지에서 수익을 맞추고 정킷 고객이 잃은 만큼 카지노에서 수수료 받지만 그 걸로는 필리핀 측 줘야 할 돈 채우기 암담하니까….”
범죄도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
불법도박 알선, 정킷 사업은 분명히 돈이 된다. 하지만 필리핀 세부의 카지노에서 정킷 사업은 본격적인 조직을 운영할 만한 수입까지는 아니다.
게다가….
“컴퓨터 부품 보내는 걸로는 수지타산이 도저히 안 맞으니까 컴퓨터 부품 뜯어서 안에 돈을 넣어서 보내야 해. 그런데 그러려면 세관 직원을 또 매수해야 한다고. 이게 엄청 많이 벌리면 모를까 고작 세부에서 깔짝깔짝 정킷 하는 걸로는 귀찮다고. 그래서… 구 상무 그 인간은 필리핀에서 마약을 받아오기로 했어.”
“이 조직이 마약도 거래한다 이거군요. 어떤 약이죠?”
“코카인하고 헤로인.”
“오….”
애더럴이나 엑스타시 같은 자잘한 마약들과 달리 확실히 경찰과 검찰에서 크게 문제시 하는 본격적인 마약이었다.
게다가 팔아먹기 위해서 들여오는 약이니 만큼 죄질도 아주 나쁘다.
“그거 참 탐이 나네요.”
경찰 입장에선 정말 실적 올리기 딱 좋다.
그렇게 생각한 류하리가 무심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고필석 사장이 당황했다.
“뭐? 이 아가씨 멀쩡하게 생겨서 큰일 날 소리 하네? 아가씨 약쟁이야?”
“아, 아니에요.”
류하리는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경찰이라는 사실을 알려줘서 좋을 게 없다.
지금 그녀는 어디까지나 시현의 조수로서 여기 와 있는 것이다.
다행히 류하리가 잠자코 있자 고필석 사장도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어쨌건 그래서 구 상무 그 인간이 필리핀에 줘야 할 대금이 더 늘어난 셈이지. 가끔씩 현금 운송책들을 구해서 돈을 싸들고 필리핀에 가서 주곤 하는데….”
“마약 대금에 정킷 대금… 필리핀에 송금하려면 꽤 힘들겠군요.”
“그래. 그래서 정킷은 정리하려던 차에 조명성이 걸린 거야.”
“그랬군요. 정킷을 정리하는 김에 마지막으로 조명성 같은 유명한 인물에게 돈을 뜯어내려고 했다? 그런데 꽤 최근의 일인데 용케 아시는 군요.”
“아 이거 작년 겨울 때 일이잖아? 그때까지는 회사에 있었거든.”
그 말을 들은 류하리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당신도 계속 한패이다가 마지막에 필요 없어서 잘렸다는 소리잖아.’
사실상 본인이 공범임을 시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자세하게 신세계 컴퓨터 파의 사업 내역을 알고 있으리라.
“흠 알겠습니다. 정보 제공 감사합니다.”
시현이 예를 표하자 고필석 사장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였다.
“그럼 여기 밥값도 내줘. 그리고 3만원만 빌려주고....”
아무래도 고필석 사장은 회사를 빼앗긴 후 단단히 망한 것 같았다. 이런 걸 하고 요구하는 게 고작 3만원이라니?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