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71화 (171/269)

제171화

의리를 입에 달면 #6

그냥 어린 애들이 각목만 들고 있으면 모르겠는데 언더본 바이크를 타고 있으니 어른도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 사이에 그들은 영업사원을 털어버리고 다시 언더본 바이크에 올라타서 잽싸게 도주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일반적인 날치기가 아니라 언더본 바이크 2대, 4명이 팀을 짜고 온 것은 이렇게 일을 저지르기 위해서였으니... 이런 짓을 해보는 게 처음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저, 저 자식들!”

몇몇 정의감 넘치는 행인들이 도망치는 애들을 잡으려고 했지만 다들 실패하고 말았다.

* * *

피를 흘리며 쓰러진 영업사원을 보던 행인들은 전화기로 112와 119에 신고하고 쓰러진 영업사원에게 다가갔다.

“괘, 괜찮습니까? 당신?”

“오 맙소사! 여기요! 112죠? 사람이 지나가는 양아치들에게 맞고 쓰러졌는데요....”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면서 쓰러진 영업사원에게 다가갈 때였다.

“끄응... 아파라 젠장.”

영업사원이 벌떡 일어났다.

“이거 원. 요즘 애들 정말 무섭네.”

“어... 괘, 괜찮습니까?”

“일어나면 위험한 거 아니에요?”

“누, 누워있으세요. 119 올 건데.”

“그 새끼들 아주 나쁜 새끼들이구만. 요즘 애새끼들 흉포하기가 아주 악귀 같아! 경찰에도 신고했으니까 가만히 있어요. 지금은 아픈 줄 몰라도 그러다 죽어.”

다들 그 영업사원을 걱정해주었다.

하지만 이 영업사원은 방금 각목을 머리통에 맞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화사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게 아닌가?

“아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하군요. 괜찮습니다.”

“괜찮다니요. 머리가 깨졌는데....”

“안 깨졌습니다.”

그는 머리칼을 쓸어 올려 멀쩡한 머리를 보여주었다.

분명히 피가 콸콸 나는 듯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상처 하나 없다.

그 뿐인가? 멀쩡하게 걷는 게 아닌가?

“거, 걷지 마요. 그러다 죽어요.”

“원 세상에....”

사람들이 말렸지만 그는 깨진 뿔테안경을 주워들고 씨익 웃어 보인 후 골목길로 걸어갔다.

“안심하세요. 괜찮습니다. 그리고 경찰도 부를 필요 없습니다. 제가 다 알아서 하지요. 후후후.”

그런 말을 남기고 그는 도망치듯 자취를 감추었다.

* * *

“좋았어! 이야. 설마 당일 바로 이렇게 잘 풀릴 줄은....”

구 상무의 명으로 영업사원 습격을 지시했던 폭력배, 박형우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는 후배들이 약탈해온 서류가방안의 유가증권들을 꺼내와 부하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신세계 컴퓨터에서 필리핀 선적을 담당하고 있던 직원이 그 유가증권을 다시 확인해보았다.

“네. 진짜로 보입니다.”

“그래?”

박형우는 신이 나서 서류가방을 가져온 이들을 돌아보았다.

중학생 될까말까 한 어린아이들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자 이거, 가져가서 용돈해라.”

박형우는 40만 달러의 유가증권을 강탈해온 애들에게 돈을 주었다.

“어... 저 한 명당 20만원이라고 하셨는데.”

“응? 아, 너희들 이놈 지갑이랑 핸드폰 털었을 거 아냐? 그건 빼야지.”

“아니... 저...”

“됐고 가봐.”

박형우는 인당 20만원씩 주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절반인 40만원만 주었다.

애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박형우에게 따질 수는 없었는지 군말 없이 그 돈을 받아 나갔다.

* * *

한강공원으로 이어지는 굴다리 근처 한적한 곳에 오토바이를 세워둔 아이들이 돈을 나누고 있었다.

박형우가 고용해 영업사원을 습격했던 가출소년들이었다.

그들은 예상보다 적은 금액에 치를 떨었다.

“아 진짜 해도 너무하네.”

“그러게. 이걸로 누구 코에 붙이라고.”

“그러게 말이야.”

“뭐 그놈 지갑이란 핸드폰을 털긴 했는데 그렇게 좋은 핸드폰이 아니지?”

“중저가 폰이야. 뭐 새 거니까 팔면 10만원은 받지 않을까?”

“원래 주기로 약속한 거에 턱없이 부족하잖아?”

“이놈 신용카드 있던데 이거 긁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털었던 영업사원의 지갑을 살펴보면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 아이들의 옆으로 SUV 차량 한 대가 달라붙었다.

그리고....

-벌컥!

문이 열리고 안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어?”

어린이 프로의 인형 가면을 쓴 남자가 튀어나와 대뜸 스턴 건으로 소년을 한 명 감전 시켰다.

깜짝 놀란 이들이 각목을 들었지만 가면의 남자가 휙 몸을 돌려 발차기를 하자 깔끔하게 각목이 부러졌다.

그리고 각목을 쥐고 있던 손목을 잡더니 손바닥에 스턴건을 꽂았다.

“끄악!”

스턴건을 맞은 아이들이 파르르 떨며 쓰러져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둘....

둘 다 놀라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들보다 가면의 남자가 압도적으로 빠르다.

그는 한 명의 뒷덜미를 잡고 다른 한 놈은 다리를 걸어서 쓰러뜨리고 뒷덜미 잡은 놈에게 스턴건, 다리가 걸려서 쓰러진 녀석에게도 가차 없이 스턴건을 꽂아 넣었다.

네 명의 아이들이 순식간에 감전되어 쓰러지자 그는 SUV차량으로 아이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애들 상대로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운전석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던 가면 쓴 또 다른 일행이 그렇게 말했다.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변장한 류하리였다.

‘운전만 하라고 해서 왔는데 이거 납치하는데 가담한 게 되잖아?!’

류하리로서는 빽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러다가 정말 누가 보기라도 하면 큰일 나기 때문에 숨을 죽여서 말했다.

애초에 남들에게 들켜선 안 되는 떳떳하지 못한 일을 했다는 자각이 있는 것이다.

“음, 이 아이들이 절 습격했을 때의 장면을 보신다면 이건 굉장히 부드럽고 담백하고 깔끔한 일처리라는 걸 아실 겁니다. 저는 일할 때 가급적 개인감정을 배제하거든요.”

“아니 대체 얘들이 어쨌기에?”

류하리는 반신반의했다.

“그래서 어쩔 건가요? 얘들을 데려가서?”

“이 아이들이 잘하는 걸 시킬 셈입니다.”

“오 맙소사. 정상적인 경찰의 길에서 계속 멀어지고 있어....”

류하리는 시현의 말에 불안을 느꼈다.

그러자 시현이 정정해주었다.

“죄송합니다만 류 경위님은 오히려 지금, 경찰의 본질에 좀 더 접근하고 있습니다.”

“설마 지금 다른 경찰들도 다들 이정도 불법은 저지른다. 뭐 그런 소리에요?”

“굳이 경찰만이 아니라, 국정원이나 기밀보안부대등 정보와 방첩을 담당해야 하는 곳이라면 다들 어느 정도는 법의 선을 넘나들고 있지요. 원활한 정보 업무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나 혼자만 타락했다고 좌절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위로인지 조롱인지 모를 소리였다.

* * *

신세계 컴퓨터 주식회사를 장악한 폭력조직은 영업 사원에게 빼앗은 유가증권을 현금운송책에 들려서 필리핀으로 보내기로 했다.

이런 현금운송책은 당연히 조직 내에서도 신뢰가 있는 인물이 하기 마련이다.

본인이 직접 거금을 옮기기 때문에 조직의 돈을 들고 날라버릴만한 인물에게는 맡기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에 나르는 돈은 유가증권 40만 달러에 현금 10만 달러. 금붙이 5만 달러로 대략 한화 6억 가량 하는 거금이었다.

그래서 구 상무 본인이 직접 움직이기를 택했다.

“그럼 상무님… 잘 다녀오십시오.”

“그래. 새끼들아.”

구 상무는 부하들의 배웅을 받으며 자신의 차에 탔다.

그는 차를 몰아서 인천 공항의 주차장까지 가서 거기에 차를 세우고 캐리어를 든 채 공항 여객터미널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아아아앙.

머플러를 뚫어서 개조한 언더본 바이크의 얄팍한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응? 뭐야?”

인천공항은 공항고속도로로 연결되어서 어지간하면 오토바이가 들어올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런데 오토바이가 나타나?

이런 경우도 있나?

구 상무가 의아해 할 때였다.

두 대의 오토바이가 정확하게 구 상무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뭐지?”

구 상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언더본 바이크를 보면서 아직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었다.

“어?”

오토바이 위에 타고 있는 건 한 대당 각각 두 명씩의 미성년자들이었다.

그들은 청테이프를 두껍게 감은 각목을 들고 구상무를 에워쌌다.

“뭐, 뭐야? 이 새끼들?”

당황한 구상무가 방어태세를 취하자 그들은 대뜸 오토바이로 구 상무를 받아버렸다.

“으악! 이, 미친 새끼들!”

구 상무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당황한 그가 일어나려고 했지만 오토바이에 치여서 넘어졌는데 바로 일어날 수 있을 리가 없다. 넘어지면서 다리가 접질렸는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 사이에 이번에는 각목이 날아들었다.

행여 단 번에 크게 다칠까봐 청테이프를 두껍게 감은 각목이었다.

“아! 야! 이 새끼들아!”

사방에서 청테이프를 감은 각목이 날아들어 그를 찜질하기 시작했다.

“으악!?”

폭력배를 하고 있으니 나름 완력에 자신이 있던 구 상무지만 오토바이를 탄 현대적인 기병들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설마 공항 주차장 인근에서 습격당할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사방에서 각목으로 몽둥이찜질을 시작하니 구 상무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야! 털어.”

“그래.”

구 상무를 각목으로 시원하게 찜질한 아이들이 오토바이에서 내려서 구상무의 짐을 털기 시작했다.

* * *

구 상무가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깔끔하게 강탈당한 뒤였다.

이놈들은 구 상무의 휴대폰, 지갑, 캐리어를 털어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금목걸이, 시계, 구두 까지 알뜰하게 털어갔다.

그나마 옷에 차 키는 남아 있다.

“아… 씨발, 쪽팔리게….”

핏덩이만한 아이들에게 몽둥이찜질을 당해 가진 걸 죄 강탈당하니 분노도 분노지만 허탈함이 앞선다.

“개새끼들. 이거 어떤 새끼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누군가가 정확하게 자신을 노린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오토바이 보기 힘든 인천공항 인근에서 이렇게 정확하게 그만 털 수는 없다.

누군가가 그를 정확하게 노렸다. 그것도 그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놈이….

만약 자동차를 선택하지 않고 공항버스를 이용했다면 바로 터미널에 내려서 비행기를 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작정하고 강탈하려고 했다 해도 설마 터미널에서 강도짓을 하진 못했을 테니까.

그러나 장기 주차장에서 오토바이를 이용해서 습격을 한 것은, 아무리 보아도 이상한 일 아닌가?

“개~씨바라아아라라알!”

구 상무가 분노해서 맨발로 뛰기 시작했다.

* * *

신세계 컴퓨터 본사건물에 구 상무의 검은색 벤츠가 들어왔다.

피투성이가 된 구 상무가 씩씩거리며 차에서 내려서다가 옆의 차를 심하게 긁었다.

문콕 정도가 아니다.

“아 나 씨발. 이건 또 왜 이러고 지랄이래?”

그는 쌍욕을 내뱉으며 옆의 차, 신세계 컴퓨터의 영업용 트럭을 발로 걷어차다가 비명을 질렀다.

“아…..”

구두도 강탈당해서 맨발인 그였다.

데드맨3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