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72화 (172/269)

제172화

의리를 입에 달면 #7

게다가 오토바이에 치일 때 다리를 접질려서 몸이 성하지도 않다.

그런 몸으로 쇳덩이를 걷어찼으니 성할 리가.

제성질을 이기지 못한 그는 쌍욕을 내뱉으며 발을 감싸 쥐었다가 사무실로 올라갔다.

“야! 이 새끼야!”

“어? 상무님!? 비행기 안타셨습니까?”

사무실에 남아있던 부하 직원들이 당황했다.

“뭐? 임마? 비행기를 안탔냐고? 아 그래. 야. 그 애새끼들 네 후배지?”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상무님?”

“오토바이 탄 애새끼들! 그놈들이 날 털었다고! 공항 주차장에서!”

“네?”

듣고 있던 부하 직원, 박형우는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돈도 유가증권도 전부 강탈당했다고요?”

큰일 났다.

대금을 제때 주지 않으면 필리핀에 있는 이들이 위험해진다.

물론 마약 조직은 애초에 외상거래가 없이 그때그때 현찰 박치기로 거래를 해왔으니 상관없지만 문제는 카지노였다.

카지노 칩 대금을 외상으로 처리 해둔 게 있는데 제때제때 지급하지 않으면 현지 조직이 곱게 보지 않을 것이다.

자칫하면 신용은 물론 필리핀에 있는 이들의 목숨이 위험해지는 것이다.

마약상들보다는 훨씬 더 인내심이 있는 놈들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기는 놈들인 건 매 한가지라서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그, 그럼 급한 대로 일단 거기 필리핀 쪽 애들에게 직접 송금을 좀 하죠.”

부하 직원들은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타협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흥분해 있는 구 상무에게는 그야말로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었다.

“뭐 임마?! 너 지금 장난 하냐?! 네놈 새끼지?”

“네?”

부하 직원들 중에서 박형우가 지목 당했다.

“네놈 새끼가 날 턴 거 아니냐고!”

“아, 아닙니다. 상무님. 지금 그럴 때가 아니잖습니까?”

직원은 놀라서 구 상무를 말리려 했지만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구 상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구 상무가 닥치는 대로 집어던진 사무실의 서류철 박스가 박형우의 머리에 충돌했다.

“닥치고! 새꺄! 너 당장 찾아내! 어! 임마 이게 야쿠자 같으면 손가락 자를 일이야! 알아?”

처 맞은 박형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뭘 잘했다고 한숨을 내쉬어! 너 이거 당장 찾아와! 당장!”

그러자 박형우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이마를 붙잡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 * *

조직의 돈을 잃어버려 당장 쓸 현금이 없는 구 상무는 급한 돈을 융통하기 위해 야구선수 조명성을 쥐어뜯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조명성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는데….

[뭐? 아니 줬잖아? 1억.]

“엑?”

[아 줬다고. 분명히 입금했어. 아무리 깡패래도 좀 너무 한 거 아냐? 시발 뜯어먹으려 해도 좀 텀을 주고 뜯어먹어야지 어떻게 며칠도 안 되어서 다시 달라고 하냐?]

“잠깐만… 누구에게 입금했다고?”

[그 부하 직원이라던데?]

“...뭐요? 거 입금증, 뭐 입금내역 있으면 보내주쇼.”

[하이고 별걸 다 요구하네. 알겠어. 기다려. 여기 문자로 보내면 되나?]

잠시 후 구 상무가 협박용으로 쓴 전화기에 문자로 송금증이 날아왔다.

전혀 못 보던 계좌로 1억이 입금되었다는 입금확인증이었다.

“아~놔 이런… 미친 새끼가 돌았나? 날 완전히 호구로 보는 구나. 이 새끼가!”

구 상무는 노발대발하며 책상을 후려갈겼다.

* * *

관악구의 돼지껍데기 집.

박형우는 친구를 만나면서 어딘가로 전화하고 있었다.

“그래. 저번에 그 신용장 털어왔던 꼬맹이들, 그 새끼들 지금 어디에 있지?”

박형우의 이마에는 커다란 붕대가 감겨있어서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박형우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소주잔을 들어서 단 번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 애들이요? 안 보이는데요. 잡혀간 것 같던데.]

“뭐? 누가 잡아가?”

[그게 잘은….]

“.....”

박형우는 한숨을 내쉬고 전화를 끊었다.

“큰일 났군.”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구 상무 입장에선 완전히 그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데 이쪽은 이쪽의 무죄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이렇게나 흥분한 구 상무가 그를 살려둘 리가 없다.

결국 살기 위해서는 도망치거나 제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되었어?”

박형우의 친구가 물어본다.

“좆됐어.”

“그래?”

“야. 내가 구 상무를 제끼자고 하면 도와줄 놈들 몇이나 모을 수 있냐?”

“뭐 네가 평판이 나쁘지는 않지? 그래도 돈이 쫌 있어야 할 텐데?”

“내가 무슨 돈이 있어.”

“정말 네가 그 조직 돈 꿀꺽한 거 아냐?”

“아냐. 미친놈아.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어.”

“아니 뭐 이미 구 상무가 널 의심하고 살기 위해서 네가 제껴야 하는 시점에서 그건 문제가 아니지.”

“그렇네.”

하극상을 계획하고 있는 놈 입장에서 조직의 돈을 훔쳤네 마네 하는 건 이미 사소한 문제다.

“돈이 필요하단 말이지?”

“그치. 어쨌건 이거 하극상 아니냐. 선금을 좀 두둑이 찔러줘야 일을 하지 누가 그냥 네 평판만 보고 뛰어들겠냐?”

“그건 그렇네. 아 젠장. 그 돼지새끼 진짜 구두쇠라 뭐 주는 것도 얼마 없는데.”

자칭 정통 건달이라는 놈들일 수록 밑에 놈을 쥐어짜기 마련이다.

“전세보증금 빼서 써야겠네?”

“미친, 그거 오래 걸리잖아. 그리고 시발 집 팔아서 깡패짓 하라고? 그렇게 고지식하게 장사할 거면 건달을 왜 하는데?”

구 상무를 따르면서도 이래저래 싫어하던 박형우였지만 자기 돈으로 고지식하게 사는 것은 건달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점에서는 둘이 그렇게 닮을 수가 없었다.

초록은 동색이라던가?

그렇게 생각하던 박형우가 손뼉을 쳤다.

“아 맞다… 야구선수.”

“응?”

“라쿤즈의 조명성에게 돈을 뜯어내봐야겠다.”

박형우는 라쿤즈의 조명성을 떠올리고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 * *

[응? 돈 줬잖아? 뭐야 당신.]

“네?”

[구 상무인지 뭔지 그 사람에게 줬어. 아니면 뭐야? 지금 너희들 날 연속으로 뜯어먹으려고 그래?]

“.......”

[아무리 깡패 새끼래도 좀 시간을 주고 뜯어먹어야지? 이렇게 연속으로 뜯어먹으려고 하면 임마 ATM도 마음이 상하겠다. 마음이 상해서 OS가 나가버린다고!]

조명성이 너스레를 떨어댔다.

하지만 박형우로서는 웃어넘길 일이 아니었다.

“구 상무님이 돈을 받아갔다고요?”

[그래. 넌 또 뭔데? 혹시 동네방네 다 알리고 지금 그거가지고 나 협박하려는 거야? 임마, 나 세명 중학교 야구부 때 나가서 건달 하는 친구들도 천지야. 적당히 해라 좀? 어?]

“아… 네. 알겠습니다.”

박형우는 전화를 끊었다.

통화내용을 듣고 있던 친구가 혀를 찼다.

“...큰일 났네 너.”

“이 돼지새끼가… 왜 조명성에게 돈 받은 걸 입 다물고 있지?”

“왜겠어? 이번에 자작극해서 6억도 챙겼다면서? 그거 그런거 아니냐? 직원들 월급 체불하면서 회사가 어렵다면서 자기는 벤츠 끌고 다니는 사장?”

“아, 안되겠다. 전세 보증금이라도 빼야겠구만.”

보다 못한 박형우는 구 상무를 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다시 전화가 오는 게 아닌가?

전화기를 들어서 확인해보니 발신자는 조명성이었다.

“무슨 일이지?”

박형우가 의아애하며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가 조명성이 아니다.

[안녕하십니까.]

“...누구신지?”

[조명성 씨의 대리인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조명성 씨에게 계속 이렇게 돈을 요구하시니까 저희도 굉장히 난감하군요. 좋게 합의를 보았으면 합니다.]

“합의라니요?”

[조명성 씨가 도박대금을 입금했던 계좌, 그 자체를 사고 싶습니다.]

“...아.”

그러니까 조명성의 대리인이라는 자는 조명성이 도박자금을 입금했다는 증거, 그 자체를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절대 안 준다.

정킷 자금을 세탁하는 이 차명계좌는 범죄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그들이 마련한 계좌중 하나로...비교적 깨끗한 계좌다.

물론 조명성이 입금한 이후, 협박용으로 쓸 때 증거로 제시하기 위해서 계좌잔고는 비워둔 상태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넘길 수는 없다.

평소라면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평소가 아니다.

박형우 입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아쉬운 때다. 전세보증금을 빼서 군자금 삼아야 할 판인데 만기도 아닌데 전세가 그렇게 쉽게 빠지나.

당장 오늘에라도 구 상무가 그를 썰어버릴 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다행히 이건 내가 가지고 있는 거로군.’

신세계 컴퓨터의 사업 전반을 다 총괄하고 있는 박형우가 통장과 조명성 관련 자료 등을 가지고 있었다.

구 상무는 실무에서는 손을 떼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고 턱 끝으로 지시만 하는 작자라서 그 리더십을 의심받고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잘된 것이다.

‘당장 현금이 급하니까 팔 수 있는 건 팔아서 마련해야지.’

그리 생각한 박형우가 조명성의 대리인에게 물어보았다.

“얼마에 사시겠습니까?”

[2천만 원 어떻습니까? 도박자금 2억에 붙는 부가세10%라고 생각하지요.]

“2천만 원이요?”

[통장과 도장, 그리고 조명성 씨가 도박에 관여했다는 관련 자료들 전부 넘겨주시면 바로 오늘에라도 드릴 수 있습니다. 현찰로요. 그 이상은 협상이 길어질 것 같군요. 2천만 원에서 10원한장이라도 올리면 지불일은 다음 달 이후로 잡아야 할 겁니다.]

“.........”

마치 이쪽이 당장 돈이 궁하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듯 한 말투였다.

수상하다는 생각이 좀 들었지만 상대가 교섭전문가라서 시간을 끌고 주도권을 가져가려는 것 같기도 하다.

부가세 운운하는 것도 2천만 원 절대로 교섭의 여지가 없다고 못을 박는 것 같다.

‘어떻게 할까?’

원래대로라면 조명성은 FA가 성사될 때까지 계속 뜯어먹을 수 있는 호구다.

2천만 원이라는 푼돈으로 모든 걸 정산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뜯어먹는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형우가 적당히 뜯어먹으려 해도 구 상무가 뜯어먹으면?

고스란히 적의 군자금이 되는 것이다.

즉 박형우 입장에서는 모든 자료를 싹 쓸어다 주어서 구 상무가 더 이상 야구선수를 협박하지 못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의 2천만 원도 박형우에게는 매우 소중하다.

‘2천만 원에 합의하는 건 손해지만 구 상무를 제껴버리려면 당장 2천만 원도 필요해. 게다가 다행스럽게도 그 자료는 전부 내게 있다. 칼자루가 내게 있는 상황이야. 이걸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알겠습니다. 조명성 씨 관련 증거를 모두 넘겨드리겠습니다만... 2천만 원으로는 드릴 수 없습니다.”

[아닙니다. 2천만 원으로 가능할 겁니다. 말씀드렸다 시피 여기서 10원 한 장이라도 더 올리면 다음 달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2천만 원에 합의보지요. 그럼.”

[네. 현명하신 선택이십니다. 그럼 접선장소를 정하지요.]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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