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73화 (173/269)

제173화

의리를 입에 달면 #8

“............”

조명성은 말문이 막혀있었다.

시현이 그의 눈앞에서 조직폭력배들에게서 회수한 차명계좌를 보여주었다.

“며, 명탐정이라고는 들었지만....”

조명성은 자신의 휴대폰을 살펴보았다.

그가 시현을 찾아온 지 딱 사흘 째 되는 날이었다.

새벽시간이니까 시간으로는 2일 하고 한나절 정도가 된다.

“그럼 이제 끝난 겁니까?”

“아직 안심하셔선 안 됩니다. 증거는 여기 있지만 걔들이 어느 은행, 어디 계좌로 입금받았었다고 주장하면 수사하는 쪽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놈들이 들고 있던 계좌가 우리 손에 들어온 거지 아직 모든 증거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요?”

“이제는 그놈들이 증언하지 못할 상황으로 만들어줘야겠지요. 뭐 아마 슬슬 지금쯤 시작할 겁니다.”

“시작이라면… 정말 그놈들이 갈라져서 자기들 끼리 싸운다고요?”

“네.”

“.......”

조명성은 거구의 야구선수다.

사실 그는 조직폭력배들도 별로 무섭지 않았다.

그의 학창시절 친구들 중 운동하다가 삐끗해서 조직폭력배의 길로 빠진 이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시현을 찾아온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명탐정이라는 소문 때문에, 그 소문을 믿고 찾아와본 것인데 설마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줄은 몰랐다.

혼자서 폭력조직들을 반반 갈라지게 해서 자기들끼리 동족상잔을 일으키고 모든 자료를 회수해오다니?

이런 게 가능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정말 내분을 일으키게 하다니....”

“원래 폭력배들이 입에 의리를 달고 사는 건 사실 그들이 사소한 계기만 있으면 서로 갈라서기 때문이지요. 돈을 벌기 위해 폭력을 함부로 행사하는 이들에게 폭력이란 언제나 손에 쥘 수 있는 옵션이란 뜻입니다.”

시현은 자신의 공작을 ‘사소한 계기’라고 말했다.

겸양치곤 너무 지나치다.

‘이거 그냥 명탐정이라고 하기 보다는 무서운 인간이네?’

조명성은 시현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아군이니까 망정이지 이런 놈이 적으로 돌아서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럼 우선 수명 3년과 이 폭력배를 매수해서 자료를 가져오는데 쓴 필요경비 2천을 정산해주시지요. 그리고 만약 저놈들이 잡혀가서 신세계 컴퓨터파가 궤멸되었고 경찰이 수사하는데도 도박 이야기가 안나오면 그때 또 성공보수 5천을 주시면됩니다.”

“아 7천만 원이나…. 나가는 건 좀, 협박당하는 거랑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 금액인데요.”

놀랍게도 조명성은 일이 다 끝나자 좀 할인을 할수 있지 않냐고 넌지시 운을 떼보았다.

시현의 능력에 감탄하고 그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과 별개로 금액 조정을 원하는 모양이다.

‘...수명은 신경 안 쓰나? 그리고 슈퍼스타라면서 왜 이리 꽁해?’

듣고 있던 류하리가 실소했다.

시현에게 돈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수명인데 역시, 돈을 거니까 조명성도 수명부분은 농담이라고 생각하는지 돈 쪽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7천만 원을 저 폭력배들에게 줬으면 정말 끝이 났을 것 같습니까? 아니라는 거 아시잖습니까?”

FA계약을 훼방 받게 되면 조명성이 잃는 금액은 7천만 원 정도가 아니다.

저 조직폭력배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7천만 원정도로 해먹고 그만둘 생각이 아니었으리라.

“음. 5천만 원은 성공보수죠? 확실히? 내가 FA계약 마무리 짓고 나서 줘도 되는?”

“네.”

“그런데 대체 수명은 어떻게 가져가겠다는 겁니까? 너무 황당해서 이해가 안 되는데?”

“그냥 저희 시현탐정사무소의 고객서비스에 만족했다. 수명을 넘겨줘도 괜찮겠다. 그렇게 생각하시면서 입으로 정산이라고 외쳐주시면 됩니다.”

“정산?”

“네. 다시 외쳐주세요.”

“아니 좀 부끄러운데.”

“괜찮아요. 마음을 열고, 부드럽게 심호흡하면서, 천천히….”

“정산!”

조명성이 쑥스러워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시현 탐정사무소 안이 잠잠해졌다.

조명성의 외침, 그 선언의 여운이 빈 공간을 오랫동안 메우고 있었다.

부끄럽다.

뭔가 폭죽이라도 터지거나 빛이 반짝반짝 거려서 뭔가가 이뤄졌다는 걸 알려주면 좋겠는데 그런 연출도 전혀 없다.

“이거 뭐 끝났습니까? 홈런 치고 나서의 내 시그니처 세레머니라도 해야 하나?”

“네.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응? 아니 그게 끝?”

“네. 그럼 나머지 성공보수는 올해 리그 끝나고 스토브리그 때 성공보수를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결판이 나겠군요. 그럼 그때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고 조명성과의 계약을 1차적으로 정산했다.

* * *

“자 그럼 이제 고객 한 분의 문제는 해결했고, 다른 고객 분의 고객 만족을 위해 힘써볼까요?”

“아.... 그쪽 말이죠?”

류하리는 신세계 컴퓨터의 원래 사장 고필석을 떠올렸다.

분명히 시현은 고필석에게 신세계 컴퓨터를 되찾아 주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게 가당키나 할까?

‘폭력배들이 회사를 빼앗은 시점에서 이미 법인 자산은 다 조각조각 뜯어먹었을 텐데?’

여기서 구 상무와 그 일파 폭력배들을 일소한다고 해도 이미 신세계 컴퓨터는 만신창이가 되어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하려는 걸까?

* * *

류하리의 궁금증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 * *

폭력배들의 분쟁은 생각보다 금방 끝이 났다.

경찰대학 수석 졸업의 우수한 성적에 빛나는 마포경찰서 정보과 류하리 경위가 입수한 첩보(?) 덕분에 폭력배들이 격돌하는 순간 경찰 기동대가 돌입해 전부 다 현행범으로 연행한 것이었다.

외환관리법 위반, 마약류 관리법 위반, 밀수, 횡령, 폭력, 공갈, 협박, 폭력교사, 불법 도박 등등의 혐의로 신세계 컴퓨터에 잠입했던 폭력조직은 일소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법인 계좌를 사유화해서 탈탈 털어먹었기에 법인의 재산은 거덜 난 상태.

이대로는 회사 경영이 정상화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 *

폭력배들이 치고받고 싸우느라 난장판이 된 사무실 꼴을 본 직원들은 황망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치워야 하는데….”

누군가 그렇게 말했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이건 망했지?”

“어휴 차라리 속이 후련하기는 하네.”

“그렇지만 경찰이 계속 조사받으라고 하는데….”

“어쩌지?”

풍비박산이 난 사무실에서 직원들은 모두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앞날을 두려워했다.

폭력배들이 경찰에 잡혀간 건 좋지만 여기서 불었다가 그놈들이 나중에 보복하는 건 아닌가.

게다가 무역 파트에 종사하던 이들은 마약 거래에 가담한 걸로 되어서 같이 처벌받지 않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나는 그래도 일단 증언할 건 다 했어.”

무역파트에서 가장 고생했던 직원은 그렇게 말했다.

보복이 두렵긴 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증언을 안 해서 저들의 죄가 가벼워지면 더 빨리 감옥에서 나올 게 아닌가?

그게 더 두려웠다.

“...그, 그럼….”

“뭐 그리고 어차피 여긴 망했어. 이제 다른데 알아봐야지.”

“아 그, 그래.”

그런데 그때 직원들 중 한 명이 전화가 울리는 게 아닌가?

“어. 고 사장님? 아 네. 네….”

“뭐야 뭐?”

“고필석 사장님이야?”

“살아계시대?”

“아니 이제 와서 뭘?”

다들 고필석 사장의 전화에 궁금해 했다.

“투자자를 구했다고, 다들 걱정 말고 경찰조사에 성실히 임하라는 데?”

“투자자?”

“......”

다들 의아해했다.

“아니 뭐 우리가 무슨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서 투자자가?”

“그러게?”

“애초에 고필석 사장 양아치 끼 있어가지고 괜히 깡패들이랑 아는 체하다가 이꼴난 거 아냐?”

“그러니까 말야. 애초에 그 구 상무가 투자자랍시고 들어온 거 아냐? 이거 또 다른 깡패 붙는 거 아냐?”

다들 고필석 사장을 별로 믿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이 이런 환란을 겪게 된 게 바로 고필석 사장의 경솔함 때문이 아닌가?

그게 아니더라도 고필석 사장은 그렇게 좋은 고용주가 아니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재취직이 힘드니까 마지못해서 회사에 붙어있던 거지.

하지만 다들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일말의 기대는 있었다.

혹시, 그래도 정말 굉장히 유능한 거물 투자자가 붙어서 직장을 정상화시켜주지 않을까?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대가 되는 것이었다.

입으로는 다들 아니라고 말했지만…. 어쨌건 일단 조사에 성실히 응하고 그 다음에 보기로 했다.

* * *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폭력배들이 단 번에 일소되고, 그에 따른 경찰 조사에 끌려 다니던 한 주가 지나고, 이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출근한 월요일 아침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신세계 컴퓨터에 출근한 사람들은 벌레 씹은 표정의 고필석 사장과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코트 차림의 젊은 청년이 자신들을 마주하고 있는 걸 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신세계 컴퓨터 임직원 여러분. 제가 새로운 오너 시현입니다.”

“........”

“어…. 다, 당신은?”

비록 모습이 다르긴 하지만 그가 바로 요 전번에 신용장을 들고 온 영업사원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후후후. 직원여러분들, 그간 고생이 많으셨지요?”

“......”

“여러분들이 이상한 폭력배들 밑에서 고생하면서도 자리를 지켜준 점을 저는 높게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이상한 바람이 든 사장 때문에 무모한 사업에 끌려 다니며 고생한 것도 잘 압니다.”

시현은 신세계 컴퓨터의 임직원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옆의 테이블에 놓인 서류가방을 열었다.

안에는 봉투가 들어있었다.

“우선 여러분들의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는 뜻에서 특별 상여금을 지급하겠습니다. 호명하는 순서대로 나오셔서 받아 가시면 됩니다.”

“네?”

“.......”

직원들은 다들 반신반의하면서 시현에게 가서 봉투를 받았다.

생각보다 묵직한 봉투의 무게에 놀랐고 안을 열어보니 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얼추 봐도 500에서 1천만 정도가 들어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유능한 팀원들에 대한 승진도 진행하겠습니다. 물론 명색만 승진이 아니라 그에 적합한 임금 인상도 단행하겠습니다.”

시현은 무역 팀들에 대해서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회사의 조직도 개편했다.

사장은 여전히 고필석이지만 성장을 크게 기대하기 힘든 국내 중고부품 매입과 유통 부분에만 고필석 사장에게 맡기고 해외 부분은 직원들에게 재량을 상당히 많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프로젝트 제안이 있으면 적극 환영합니다.”

시현은 직원들에게 그리 말하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 * *

신세계 컴퓨터의 사장실, 이곳은 책상이 마련되어 있고 벽에는 창고용 랙이 짜여 있었다.

그 창고용 랙에는 주로 고가의 최신그래픽 카드들과 가상화폐 채굴기 등등, 중고 컴퓨터 부품 중에서 가장 환금성 좋은 물건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시현은 사장, 고필석을 돌아보았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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