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75화 (175/269)

제175화

파격 약혼? #1

최형림은 검사로서의 격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서부 지검에서 형사부장이 사망하고, 사퇴하는 일이 연거푸 일어났기 때문에 업무가 과중해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최형림이 스스로 저지른 일이니 자업자득이긴 하다.

그래도 이러한 격무속에서 최형림의 능력이 빛을 발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격무를 하고 주위 사람들의 평판을 좋게 한다 하더라도 최형림에게 준비된 목표를 달성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2년 안이라….”

격무에 시달리던 최형림은 미카엘과 나눈 약속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미카엘은 최형림에게 2년 안에 정계에 진출하거나 공안이나 특수부에 들어가서 보다 더 압도적인 권력을 손에 넣으라고 요구했다.

최형림은 검사 치고는 굉장히 젊고 인물도 좋고, 실제로 유능하다. 그러나 그것이 관료사회와 정치계에 쌓여있는 폐단을 극복할 정도는 아니다.

하물며 정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관료사회에 선배들이 드글거려서 승진이 적체 되어 있는 것 이상으로 정계에도 젊은 얼굴이 없다.

젊은 국회의원이라는 게 얼마나 특수부가 되는 게 더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뭔가 고민이 있으신 것 같군요.”

영사가 최형림의 모습을 보며 물어보았다.

“아니요. 격무에 시달리다보니….”

“말씀해보시지요. 제가 이래보여도 다방면으로 재주가 좀 많습니다. 제 재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시는 것도 용인술입니다.”

영사는 최형림이 자신을 완전히 믿지 않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믿음을 주지 않는 자라도 이용해서 성과를 내는 것이 용인술 아니겠느냐?

이렇게 말하니 최형림으로서도 설득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영사는 범죄를 구성하고 팀을 모아 일을 벌이는 픽서로 알려져 있었다.

범죄자들이나 권력자들과 촘촘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데드맨, 시현도 그의 제자같은 존재라고 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도 그는 미카엘 조차 꺼려하는 존재다.

‘믿어선 안될 인물이지만 그의 지혜를 얻어서 나쁠 게 없겠지.’

그리 생각한 최형림은 미카엘이 그에게 2년안에 성과를 내보라고 요구했던 사실을 전했다.

“아 2년안에…. 정계에 진출하거나 특수부가 되어라? 어느것도 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군요.”

영사도 왜 최형림이 곤란해하는지 이해했다.

최형림은 검사 조직 내에서 이례적으로 빠르게 자신의 위치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파릇파릇한 젊은 평검사라는 한계는 분명하다.

이제 검사가 된지 1년차인 그가 갑자기 권력자들을 사찰하고 고위공무원의 비리를 수사하는 특수부 검사가 된다던가, 뜬금없이 정계에 진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최형림은 사이다패스를 이용해 자신의 상사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하고 있지만 그런 식으로는 끝이 없다.

아예 검사들이 뭐 한 곳에 모여있을 때, 무슨 검사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행사라도 할 때 입구를 처막고 화염방사기로 쓸어버리면 모를까….

사이다패스로 한 명씩 죽여서 어느 세월에 결판을 본단 말인가?

정치권에서 임명하는 특검은 더더욱 어렵다. 보통 특검은 검사나 판사 경력이 있는 민간 변호사를 위촉해서 임명하므로 이제 겨우 평검사인 최형림으로서는 넘볼수 없는 일이다.

차라리 정치라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정치판에서 2030 국회의원이 몇이나 있던가?

그런데 영사가 물어보았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류장천 회장님을 패트론으로 삼으면 어떻습니까?”

“패트론?”

최형림은 그 말을 듣고 거부감을 느꼈다.

패트론, 후원자라는 뜻이지만… 이것이 정치경제, 그리고 암흑가에서는 주로 마피아들의 끈끈한 어떤 유대관계를 의미하는 단어가 된다.

물론 최형림이 이제와서 마피아와 비견되었다고 억울해할 처지는 아니다.

그는 이미 많은 사람들을 해쳤다.

자신이 직접 실행하진 않았으되 충분히 남들의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내가 직접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고 해서 손이 깨끗하다 할 수는 없으리라.

“류장천 회장이라면… 류하리 경위의 아버님인가?”

“예. 이미 최 검사님이 미카엘을 패트론으로 두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분께서도 꽤 관심이 있을 겁니다.”

“……….”

최형림은 SH그룹 회장 영애와 한영건설 회장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재벌가로 치자면 그야말로 순혈중의 순혈, 한국전쟁 이후 이전 세계의 질서가 몰락하고 대한민국의 헤게모니를 거머쥔 재벌가들 사이에서도 군계일학이라 할 수 있었다.

별 문제없이 정통성 있는 적자라면 말이다.

그러나 최형림은 한영 건설 회장의 진짜 자식이 아니며… 그 사실은 SH그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은 알음알음 어둠속에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최형림이 재벌가의 자제이면서 검사가 될 정도의 인재임에도 재벌가 사람들과 거리를 벌리는 건 그의 출생에 그런 오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최형림으로서는 류장천 회장을 패트론으로 삼는다는 것에 거부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생각이 좀 있군요. 아니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영사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 * *

서울 W호텔 로비에서 최형림과 영사, 그리고 지은재는 류장천 회장을 만나기로 했다.

“왜 지은재씨도?”

“…아마 식사는 류 회장님이 사실 겁니다. 이 친구도 호텔 밥을 얻어 먹고 싶다고 해서요. 게다가 어쨌건 이 친구도 한강건재 직원 아닙니까? 오너인 회장님을 만나뵈어서 나쁠게 없지요. 인사도 드려야 하고요.”

영사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지은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군부대가 전부인 시골 출신인 그에게 이런 곳은 그야말로 신기한 별천지였다.

게다가 만나는 사람이 바로 자기네 회장이라니.

“와, 회장님을 만나서 밥을 얻어먹는다니…. 저 실수하면 어쩌지요?”

지은재는 구직활동을 위해 샀던 싸구려 양복을 매만지며 걱정했다.

“괜찮다네. 걱정하지 말게나. 류 회장님은 어지간해서는 누군가에게 기대를 걸지 않으시니….”

“네?”

“흠. 저기 오시는 것 같군요.”

최형림이 지목하자 한 장년 남자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게 보였다.

경호원 중 한 명이 일행에서 홀로 떨어져 나와 로비에서 대기중이던 영사에게 다가왔다.

“영업 이사님. 회장님 오셨습니다.”

“어디서 뵐까요?”

“스카이라운지에서 뵙자고 하십니다. 저희가 먼저 올라가고 난 뒤에 올라오시지요.”

경호원은 그리 말했다.

“….에? 지금 저기 계시잖아요?”

지은재가 당황해서 물어보았다.

“경호절차상 그렇습니다.”

경호원이 살짝 짜증을 내려다가 영사를 보고 참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영사가 데리고 있는 사람이니까 성질을 내지 못하지만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지은재는 다시 물어보았다.

“경호절차라니요?”

영사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류 회장님은, 절대로 1차 약속장소에서 모든 걸 행하지 않으신다네. 반드시 1차 약속장소에서 2차 장소로 이동하셔서 그곳에서 사람을 보지.”

영사가 설명해주었다.

“…도청 때문입니까?”

최형림이 의아해하며 물어보았다.

“도청일 수도 있고 저격일 수도 있고….”

“저격?”

총기소유가 금지된 대한민국에서?

“그분이 좀 경계심이 많으신 편이지요.”

영사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 * *

류장천 회장은 위스키를 잔에 따르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왔는가. 영사. 그리고… 최형림 검사님.”

“처음 뵙겠습니다. 최형림입니다.”

최형림은 꾸벅 류장천 회장에게 인사했다.

류장천 회장은 최형림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영사. 혹시 이 최 검사님은… 진인이신가?”

“아닙니다.”

“그런가.”

류장천 회장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진인이라시면?”

“아, 아닙니다. 최검사님의 외조부 님이신 SH그룹 김회장님을 따라다닐때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이지요.”

“…….”

뭔가 말하는 게 이상하다.

류장천 회장이 SH그룹 김회장과 인연이 있다고? 그 사이에 진인이라는 자가 관여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최형림을 보고 진인이냐고 물어보지?

뭔가 사정이 있나?

최형림이 그런 의문을 품었을 때였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최 검사님. 2년 후에 지방선거가 있지요.”

“네?”

“그때 정계에 나가고 싶다고 들었네만 맞는지요?”

“천박한 과욕을 부려 송구스럽지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저희 쪽에서 최대한 지원을 해드리도록 하지요. 하지만 제쪽에서도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말입니까?”

“제 딸과 약혼을 해줘야 겠습니다.”

“따님이라면, 류하리 경위 말입니까?”

“알고 있으시군요. 아 그렇지. 경찰대학 출신이라고 하셨지요.”

“네, 부끄럽습니다만….”

“이래뵈도 제가 아끼는 딸입니다. 인물도 괜찮고 머리도 좋지요. 어떻습니까?”

류장천은 자신의 딸을 이야기하며 그렇게 물어보았다.

최형림은 당혹감을 느꼈다.

류하리와 약혼?

‘…무슨 뜻이지?’

지금까지 최형림에게 접근해오는 이성은 매우 많았었다.

하지만 최형림은 그러한 이성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연애나 육욕보다 더 큰 야심이 그의 영혼을 불태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류하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녀와 약혼한다는 건 류장천 회장이 적극적으로 그를 도울 수 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왜지?

류장천 회장이 왜 최형림에게 지목해서 딸과의 약혼을 종용하는가?

‘이 사람은 보아하니까 윤회장과 마찬가지로 반달이야.’

뉴욕 마피아 코사 노스트라의 주 수입원중 하나가 바로 건설현장에 콘크리트를 납품하면서 수익을 떼는 것이었다.

건재 사업, 건축 사업은 필연적으로 조직폭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영건설그룹만 해도 초창기에는 깡패들과 유착이 필요했고 그런 어두운 부분을 담당하는 게 바로 최 상무 아니었던가?

류장천 회장이 운영하는 한강건재도 지금은 건실한 상장회사지만 그전에는 틀림없이 폭력배들과 유착했었을 테고 영사를 영업이사로 두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폭력배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류장천 회장은 다른 부자들 입장에서 보면 품격떨어지는 졸부, 혹은 깡패로 보일 것이다.

사돈을 맺자고 하면 절대로 거절할 그런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왜 최형림을 사위로 맞이하려는 지 이해할 수 있었다.

최형림은 표면적으로는 재계의 1인자, SH그룹 회장의 외손자 이니까.

그러나….

“SH그룹 회장님을 가까이에서 모셨다면…제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녕 제게 그런 황송한 제안을 주시는 겁니까?”

“오해가 있나보군요. 최 검사님.”

“….네?”

“회장님이 검사님을 괴롭히자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회장님께서는 긴 안목을 가지고 당신을 한영 건설에 보낸것입니다.”

류장천은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SH의 김 회장을 옹호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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