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76화 (176/269)

제176화

파격 약혼? #2

“긴 안목이라시면?”

“송구스럽게도 그 이상은 제가 말할 게 못됩니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제 딸과의 약혼은?”

“그 전에…. 제가 윤 회장님에게 도움을 좀 받은 게 있습니다만. 그쪽에 폐가 되지는 않을까요?”

최형림은 윤 회장 쪽에 후원을 받고 있었다는 것도 이야기 했다.

딱히 윤 회장 쪽에 엄청나게 의리를 챙겨야 할 이유는 없지만 만약의 경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건 제쪽에서 윤 회장님께 따로 말씀을 드리지요. 그분과도 좀 친분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최 검사님에게 기대하는 것과, 윤 회장이 최 검사님에게 기대하는 건 결이 다르니 별 문제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감사합니다. 다만… 류 경위는 주도적인 여성인데 집안에서 약혼자를 정한다는 걸 받아들일까요?”

“형식적이어도 좋습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외부에서 이 사람은 내 사람이다, 내가 좋게 보고 있다, 점찍었다. 이런 사인이 될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군요.”

최형림은 류장천 회장의 말을 듣고 의아함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할 사람이 있다는 뜻인가?’

대체 누구지?

최형림은 의문을 품었지만 그가 생각을 하기도 전에 류장천 회장이 답을 요구했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전에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서 좀 들어보고 싶습니다.”

최형림은 대답을 회피하고 대체 류장천 회장과 영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걸 물어보았다.

“양천용 의원과의 다리를 놔드리겠습니다.”

“양천용 의원이라면 현 선진당 대표 말입니까?”

최형림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양천용 의원은 선진당의 당대표이며 대선 주자였던 인물이었다.

3% 차이로 대통령이 되지 못했지만 선진당의 대표로 정계의 거물이다.

그런 사람과 만날 기회를 준단 말인가?

“알겠습니다.”

최형림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어 저….”

그때 지은재가 말문을 열었다.

“저 혹시 밥 먹어도 되나요?”

“…이 친구는?”

“지은재 입니다. 제 밑에 들인 직원이지요.”

“….아,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지은재입니다.”

“흠. 지은재 사원인가.”

류장천 회장은 지은재와 악수를 나누었다.

“식사하게.”

“넵. 감사합니다.”

“…….”

최형림은 이래도 되나 싶어서 영사를 바라보았다.

* * *

류장천 회장과의 회담을 끝마치고 최형림은 영사 및 지은재와 함께 자신의 자택으로 돌아왔다.

“잘 하셨습니다. 최 검사님. 류 회장님도 최 검사님을 아주 좋게 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나 뿐인 딸을 약혼시키려고 하지 않겠지.

하지만 최형림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사나 류장천이나 뭔가 최형림이 체크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고 있었다.

‘진인…이 뭐지? 그리고 SH그룹의 김 회장이 내게 뭔가 긴 안배를 하고 있다고?’

류장천 회장은 최형림이 한영 건설 그룹에서 부평초처럼 붕 떠있는 신세라는 걸 알면서도 사위로 삼으려고 한다.

그렇다는 건 저 부분, SH그룹과 관련된 부분에서 최형림에게 그 이상의 메리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다.

‘보아하니 물어본다고 해서 답해줄 것 같지도 않고.’

최형림은 영사도 그걸 알면서 말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음?”

최형림은 자신의 자택으로 가는데 태연히 따라오는 영사와 지은재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늦었는데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잠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저는 이사님이 가시는 대로.”

“……”

지은재는 별 생각 없이 따라오고 있던 모양이었다.

최형림은 한숨을 내쉬고 집의 도어락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의 자택 안에는 사이다패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

사이다패스는 최형림이 영사와 지은재를 대동하고 들어오는 걸 보며 놀랐다.

반면 영사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어?!”

지은재는 사이다패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뭐야? 복작복작하네. 좀 더 넓은 데로 갈 생각은 없어?”

사이다패스가 최형림에게 물어보았다.

“어차피 혼자 살고 직장인 서부지검이 여기서 가까우니까요.”

“…아 함부로 찾아오지 말라고 말하는 거네?”

사이다패스가 그리 말하고 손을 폈다 쥐었다 해보았다.

“힘이 좀 돌아온 것 같아. 슬슬 일을 해도 될 것 같은데? 살인예술가인지 뭔지 병신 같은 게 내 부재중에 나대더라?”

“….어.”

지은재가 그 말에 반응했다.

“말이 너무 심한데… 요.”

“뭐야 넌?”

“그, 내가 바로 살인예술가인데. 아가씨. 몇 살이야? 왜 대뜸 반말을….”

지은재가 그렇게 말하자 사이다패스가 코웃음 쳤다.

“먼저 태어났으니까 뭐? 먼저 가고 싶다고?”

“…….”

“요새 자꾸 어중이떠중이가 느는데, 보아하니 이제 나는 필요가 없나봐?”

“아니 필요합니다.”

최형림이 그렇게 말하자 사이다패스가 끄응 하고 신음했다.

“그럼 빨리 다음 표적을 줘. 요새 좀 일을 안했더니 내가 쓰레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야.”

“그렇지 않아도 해야 할 상대가 늘어났습니다.”

최형림은 노트북을 거실의 모니터에 연결해서 성취리스트를 열어보았다.

“…선진당 관련 인원들 중 성취리스트에 해당하는 이들을 제거하도록 하지요.”

“선진당?”

“예.”

“어? 왜 그러죠? 최 검사님 선진당 들어갈 거잖아요? 거기 당수도 만나기로 약속했으면서?”

지은재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

최형림은 난처한 표정으로 지은재를 바라보았다.

사이다패스가 한 팀이니 여기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차피 공유해야 할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그 공유의 방식, 형식은 최형림이 골라야 했다.

같은 말을 해도 납득이 가게 하는 것과 마치 다른 이들을 팔아넘겨서 혼자 영달을 추구하는 것처럼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법.

그가 말해야 할 것을 지은재가 옆에서 분간을 못하고 설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뭐야? 정계에 들어가려고? 결국 그런 걸 노리는 거야?”

과연 지은재의 말을 들은 사이다패스가 대놓고 짜증을 냈다.

“하아.”

최형림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 목표는 한영건설 그룹 최중선 회장의 실각입니다. 그리고 그건… 평검사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물론 언젠가는 검사로서 승진해서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전에 최중선 회장이 죽을 지도 모르지요. 생각해봤습니까?”

“…….”

“제게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가 죽기 전에 내 손으로 그에게 내가 어떤 원한을 품고 있는지 알려줘야 한단 말입니다. 그가 그대로 재벌 총수로 살다 곱게 죽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습니다.”

최형림은 그렇게 말하고 지은재를 노려보았다.

“원래대로라면 이런 구질구질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지은재의 말실수가 너무 커서 어쩔 수 없이 말해야 했다.

하지만 지은재는 그런 최형림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흠….”

사이다패스는 최형림이 왜 권력을 탐하는 지, 그리고 왜 서두르는 지 이해하는 것 같았다.

역시 누군가를 증오한다는 점에서는 서로서로 일맥상통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시간이 급하다는 건 알겠어. 그런데 왜 선진당 관련 인물을 죽이려고?”

사이다패스가 궁금해 하자 영사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선진당에서 인재를 좀 줄여놓으면 외부 인원을 활발하게 영입하려 하지 않겠는가?”

“켁. 더러운 생각을 하고 있군. 하여튼 검사들이란….”

사이다패스는 최형림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살인을 교사하는 것에 치를 떨었다.

자신이 살인마이면서도 그 살인으로 이득을 얻는 검사, 최형림이 곱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최형림이 자기 이야기를 풀어낸 것에 대해서 깊게 공감하는지 이내 경멸의 표정을 지워냈다.

“그래서? 선진당 의원을 그냥 무작정 죽이는 거야? 그건 또 싫은데. 아무리 정치가나 권력자라고 해도 죽을 만한 죄를 지어야 죽이고 싶거든.”

“안심하세요. 물론 이 표적들은 성취 리스트에도 올라와 있는 인물입니다. 당신이 증오해 마땅한 자라는 뜻이지요.”

“흥. 그래. 성취 리스트에 있는 놈들은 죽일 거야. 권력에 빌붙어 아랫도리 함부로 놀리는 쓰레기 놈들에게 세상이 자신들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걸 가르쳐주고 싶으니까. 다만….”

사이다패스는 몸을 떨었다.

정작 자신도 데드맨에게 패해서 당했던 걸 떠올리는 것이리라.

“괜찮습니까?”

“아무 문제없어. 빨리 표적의 정보를 줘.”

“알겠습니다. 그럼….”

* * *

김중헌 의원은 공안검사 출신의 정치인으로 선진당 3선 의원이었다.

검사 시절에도 여기저기서 부동산 개발정보, 투자 정보 등을 얻어서 쉽게 재산을 불려왔고 그 와중에 성취와 윤 회장에게 향응을 제공받았다.

언론과 시민단체에서 그가 성취리스트에 있다는 걸 지목하기도 했지만 선진당의 중진의원이자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공안 검사 출신이던 그는 자신을 지목하는 언론과 시민단체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정정보도 신청과 소송 예고의 내용증명들이 당도하자 언론은 일찌감치 발을 뺐고 시민단체들도 그를 직접 언급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 김중헌 의원의 의원사무실에서 비서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

“으음. 저 의원님?”

“무슨 일인가?”

“아니 그 당 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경호비 지출이 너무 심하다고 좀 줄일 수 없냐고 물어오는데요. 사이다패스도 요새 안 보이는데 지출이 너무 과하다는 의견이 있다네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하여튼 이런 안전 불감증 놈들, 그러니까 백화점이 무너지고 한강다리가 똑 부러지고 그러는 거 아냐! 그렇게 방심할 때가 끝장이라고!”

김중헌 의원은 자신이 성취 리스트 위에 있고 사이다패스가 주로 성취 리스트에 있는 이들을 죽여 댄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당비를 이용해서 자신의 경호원들을 고용했다.

그런데 이 고용계약이 아주 우습다

우선 김중헌 의원이 고용한 경호원들은 그의 아들 명의로 된 인재파견회사의 직원들인데… 당에 경호원들 비용은 한 명당 월 600만원으로 책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경호원들에게 주어지는 실제 급여는 월 200만원, 나머지는 죄 파견회사가 꿀꺽 먹는다.

이미 여러 성공적인 부동산 투자, 엄청난 변호사 수임료 등으로 부자가 된 김중헌 의원이지만 당의 공적자금조차 알뜰하게 해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경호원들 임금이 당에서도 좀 부담이 되었는지 줄여달라는 게 아닌가?

물론 김중헌 의원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다 내가 죽어도 좋다는 거야? 어림도 없다고 해.”

“아 네, 알겠습니다.”

비서는 빤히 욕심 때문에 거절하는 의원을 보면서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렇게나 나라를 위해 애국하는데 당에서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이것들이….”

당비를 횡령하고 경호원들의 얼마 되지 않는 임금도 횡령하면서 김중헌 의원은 진심으로 자신이 애국을 한다고 믿고 있었다.

분명히 검사출신이라 법을 모르지도 않을 것이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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