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79화 (179/269)

제179화

파격 약혼? #5

“아.”

성신아는 시현의 말을 듣고 납득했다.

‘탐정이라고 여기저기 들쑤셔서 원한이 많을 테니까 몸을 사리는 건가? 하지만 웃기는 사람이네. 뭐 사귀기 문턱이라도 가야 그런 소리하는 거 아닌가? 연인도 아닌데 뭘 벌써 그런 걸 걱정해서 핑계로 빼고 있담? 하지만 그런 게 방어기제겠지? 내가 못 꼬시는 게 아니라 안 꼬시는 거다. 그녀의 장래를 생각해주는 나. 이러면서 말야.’

하지만 그녀도 남말할 처지는 아니였다.

‘최형림 선배를 보는 내 입장도 남말할 처지는 아니지.’

성신아는 시현을 바라보며 동병상련을 느꼈다.

“지금 뭔가 상당히 제게 실례되는 시선을 보내셨습니다만?”

“…아니에요.”

성신아는 거짓말을 했다.

* * *

시현 탐정 사무소에서 타자기가 울고 있었다.

[억울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녀의 뒤를 이어 데드맨 계약을 맺어 그녀를 해방시켜주었는데 정작 그녀는 다른 남자와 약혼을 하다니….]

타자기는 시현의 변죽을 올리기 위해서인지 그런 글자들을 쳐냈다.

“멍청한 짓 하지 마. 이렇게 찍다가 그녀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렇잖아도 요새 자기 집 마냥 알짱거리는데… 아니 뭐 사실 그녀 집이긴 하지.”

시현은 머그잔을 들고 타자기 앞에 서서 글자를 내려다보았다.

[설마 당신이 어찌되건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진 않겠지요.]

“그야. 상대가 최형림이니까. 다른 놈이라면 모를까 최형림은 안 되지.”

시현은 여전히 최형림을 의심하고 있었다.

미카엘과 함께 호텔에서 있던 점, 그리고 성취 사건 때 검찰조사원들이 은행 대여금고에 대한 문의전화를 넣었던 점 등등 모든 면에서 수상했다.

머그잔을 입으로 가져갔다가 후우 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누군 되고 누군 안 된 다를 내가 결정하려는 것도 집착이지. 그리고 그 집착이 네놈들을 즐겁게 하는 조미료 같은 거라는 것도 잘 안다만….”

시현이 류하리에게 어떤 형태로든 집착을 하게 되면 저 악마들은 바로 그 집착을 이용하기 위해 류하리에게 손을 댈 수 있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시현은 일부러 냉담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습니까? 도움을 청해보시겠습니까? 데드맨. 저는 당신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있답니다. 당신의 청원을 들어줄 지도 몰라요?]

시현은 코웃음 쳤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난 사이다패스도 최형림도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 내가 그들과 얽히게 하고 싶으면 얽혀있는 계약자를 섭외해와. 너와 나의 계약은 그런 거 아니었나? 네가 보고 싶은 그림이 있다면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계약자들을 데려오라고.”

시현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끼익….

집 밖 골목에서 차량의 브레이크 잡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사무실로 세 명의 사람이 걸어 올라왔다.

[바로 그런 계약자입니다. 만족하시겠습니까?]

“하. 유능하기도 하지. 어떻게 이렇게 금방 구했지?”

시현은 타자기에 끼워져 있는 종이를 세절기에 넣고 새 종이를 꺼내 타자기에 끼웠다.

* * *

시현의 사무실에 들어온 이는 약간 작달막한 체구에 피부가 깨끗한, 어딜 봐도 밥숟가락 보다 무거운 걸 들어본 적 없는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20대 청년이었다.

살이 찐 건 아니지만 체지방 측정을 하면 마른 비만으로 나오지 않을까?

문약해 보이는 청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그가 대동한 이들은 경호원 역할을 수행하는지 덩치가 크고 몸이 단단해 보이는 이들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바로 이 탐정사무소의 소장, 시현입니다.”

“당신이 소장님이십니까? 이거 예상보다 엄청 젊군요. 저는….”

그는 시현이 자신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지 말을 꺼내고 잠시 뜸을 들였다.

“신경호 청년정책위원장이시군요. 선진당의 청년위원장, 맞으시지요?”

“아 네. 맞습니다.”

신경호는 선진당의 청년위원장이었다.

대형 교회 목사의 아들이면서 카이스트 출신의 재원으로 20대의 젊은 나이에 정계에 투신해서 인터넷 상에서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선진당의 젊은 피, 그 대명사라고 할 만한 인물이 바로 신경호였다.

그가 놀랍게도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시현탐정사무소에 찾아온 것이었다.

시현이 탐정업계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BtoB, 즉 탐정들 간에 알려져 있는 것이지 일반 대중에게 알려져 있진 않다.

그런데 그가 여기에 찾아오다니.

‘허름한 사무실이군. 근린상업시설이잖아? 여기. 대로변도 아니고 거의 주택가 한복판인데 이런데서 탐정 업이 장사가 되나? 게다가 직원도 한 명 딸랑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흥신소래도 최소한 몇 명은 있어야 굴러가지 않나?’

신경호 위원장은 반신반의하면서 시현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선진당 청년정책위원장 신경호입니다.”

“이 탐정 사무소의 소장, 시현입니다.”

시현도 명함을 건네주며 다시금 자기소개를 했다.

“그래서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다른 건 아니고… 최근 사이다패스와 살인예술가라는 연쇄살인마들이 날뛰고 있는 건 알고 있지요?”

“네. 그렇습니다만.”

“그리고 지금 괴문서가 돌고 있습니다.”

신경호 위원장은 그리 말하고 수행원들에게 손짓했다.

수행원들이 태블릿 PC를 꺼내어 시현에게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선진당 내부 대화방이나 주식 종목토론방등에서 나오는 선진당 내 표적 리스트였다.

“이건 뭡니까?”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해 라는 청원사이트에 올라온 이들 중 선진당 관련 인사들의 명단입니다. 그리고….”

주식 종목토론방에서 나온 자료라 그런지 그 각 인사들과 연관된 테마주들의 이름이 붙어있었다.

즉 여기에 연관된 사람이 죽으면 관련 테마주의 주가가 어떻게 변동될 것인가?

그것을 정리한 괴문서였다.

바꿔 말하면 주식 투자자들이 여기 적혀있는 사람들 죽으라고 고사지내는 격이다.

“순위가 그렇게 높으시진 않군요.”

“그야, 저는 성취에게 접대 받은 적도 없고….”

권력도 없다.

시의원인 것도 국회의원인 것도 아니고 그냥 선진당에서 젊은이들을 포섭하기 위해 만들어둔 당내의 직위에 불과하다.

위원장이라니까 그럴싸하지만 실권은 별로 없는 것이다.

기성 권력과 법조인들을 증오하는 사이다패스에게 있어서 우선순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괜히 인터넷 상에서 유명하기만 하지.

“그런데 어째서 오셨습니까? 뭔가 짚이는 것이라도?”

시현이 물어보자 신경호 위원장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소리를 죽여서 말했다.

“실은 아무래도 다음 타겟은 저인것 같아서 말이지요.”

“네?”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해, 이곳의 청원 순위대로 사이다패스가 살인을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그런데 그 후 명단에 있는 사람들을 대조해보니… 아무래도 제가 언론노출도 크고 순위도 높습니다. 사이다패스가 과시형 범죄자라면 제게 눈독을 들이고 있겠지요.”

“…….”

그러니까 내가 유명하니까 날 죽일 것이다.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듣다 보면 과대망상증이나 자기과시형 인간으로 들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고작 과대망상 정도로 탐정 사무소에 직접 찾아올 만큼의 비용을 지출할까?’

시현은 신경호 위원장의 진짜 속내를 알아챘다.

“뭔가 짚이는 게 있나보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성취리스트 말고 달리 잘못한 게 있으니까 켕겨서 그러는 거 아니냐?

시현이 그렇게 물어보았지만 정치가인 신경호가 자신의 약점이 될 수 있는 걸 생판 남에게 말할 리가 없다.

상대가 신부나 변호사처럼 직업윤리상 비밀을 엄수해야 하는 이라 해도 반신반의 할 텐데 하물며 탐정나부랭이 아닌가.

탐정 업이 합법화 된 건 매우 최근으로 법률상 합법이 되긴 했지만 아직 그 책임과 권한, 역할이 확정되지 않았다.

직업윤리랄 것이 확정되지 않은 탐정에게 정치 지망생이 자신의 약점을 노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정은 묻지 말고 제 경호를 해줬으면 합니다.”

“흐음. 사정은 묻지 말고 말입니까?”

보통 경호원을 고용할 때는 사정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연예인들이나 부자들은 언제나 인신의 위협을 겪기 때문에 딱히 설명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런 설명 없이 고용했다가 누군가 암살자나 원한이 있는 자에게 노려지고 있다가 죽임을 당할 경우, 그때는 경호원에 대한 배상책임이 발생한다.

적어도 그런 특이 사항들에 대해서는 설명할 것, 그것이 경호 업이 발달한 외국의 사례들이다.

‘사정을 묻지 않고 경호해달라는 건 즉 사정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시현은 힐끔 타자기 쪽을 바라보았다.

타자기의 악마가 불러온 계약자라면 신경호가 가지는 의심은 사실일 것이다.

사이다패스나 살인예술가, 그들에 의해서 신경호 위원장이 위협을 받을게 분명하다.

“알겠습니다. 계약을 하도록 하지요. 다만 제 계약서에는 좀 예상치 못한 요구가 있을 텐데요.”

“예상치 못한 요구?”

“네. 하지만 사정은 묻지 말고 계약의 가부만 결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현은 신 위원장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황당해 하는 신 위원장의 머리 위에 숫자가 명멸하고 있었다.

남은 수명 7일.

젊은 청년이라는 걸 감안하면 지나치게 짧은 여명이었다.

* * *

신경호 위원장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증권 종목 토론방 등에서 가볍게 조사만 해봐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신경호 위원장은 당무 외에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에 추문이 있었다.

조기석이라 하는 프로그래머가 신경호 위원장이 운영하는 회사가 아무런 대가도 주지 않고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게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와 프로그래머 간의 지적재산권 다툼 정도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신경호 위원장의 정치생명이 걸려있는 대참사라는 게 문제였다.

* * *

신경호 위원장은 카이스트 출신으로 ‘우버멘시 소프트웨어’라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서 병역특례를 받고 근무하다 병역특례를 다 마친 후에는 자신이 직접 ‘우버멘시 소프트웨어’를 인수해 사장이 되었다.

이 부분에서 정치공세가 이어졌다.

병역특례를 사실상 돈 주고 산 거 아니냐.

돈으로 병역을 회피한 것이 아니냐.

그런 의혹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 ‘우버멘시 소프트웨어’ 제대로 된 상품 개발이 하나도 없었다.

실적도 없는 회사가 어떻게 병역특례 업체로 지정이 되었는가?

그 과정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었다.

그때, 신경호 위원장이 사장이 된 이후 ‘우버멘시 소프트웨어’는 정부 조달 사업에서 우수한 성과를 내는데 성공했다.

이는 그동안 신경호 위원장이 병역특례를 위해서 유령 소프트웨어 업체를 만들었다는 비난을 일거에 잠재우는 성과였다.

하지만 그 후 인터넷에는 자신이 우버멘시 소프트웨어에게 소스코드를 통째로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한 사람의 청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신경호 위원장의 동향, 동창 친구인 조기석이라는 청년이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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