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0화
소울 브라더 #1
조기석.
신경호 위원장의 어릴 적 친구이자 카이스트 동기생이기도 한 그는 신경호의 소프트웨어 업체에 병특을 받기 위해 포트폴리오와 소프트웨어의 소스코드를 넘겼는데 그게 그대로 도용되었고 자신은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증거도 없어서 그저 안티 취급당하며 인터넷에서 조롱받고 있었다.
“흐음.”
시현은 인터넷 기사와 커뮤니티에 올라온 조기석의 탄원서를 보면서 혀를 찼다.
‘정황을 보자면, 신경호 위원장이 소스코드를 훔친 게 맞는 것 같은데?’
신경호 위원장은 실적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명문대 생이라는 걸로 지금까지의 인생에선 승승장구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는 명문대 생이라는 것만으로 승승장구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관료사회의 전통이 뿌리 깊게 남아있는 한국에서 국회의원이 된다는 건 격이 다른 슈퍼 엘리트가 된다는 것이다.
위패도 벼슬 안한 사람은 학생부군신위라고 쓰고 벼슬 했던 사람은 그 관직명을 쓰는 게 한국의 전통 아닌가?
죽은 자의 영을 위로하는 행위에서도 관료냐 아니냐, 벼슬했냐 안했냐를 따지는 나라에서 국회의원이 된다는 건 당연히 그만한 검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가 현실 정치에서 뭔가 비전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실무로 실천할 수 있다는 증거, 이 사회에서 유형의 업적을 이룩했다는 증명이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신경호 위원장은 정계입문에서 많은 무리수를 두었다.
그는 선진당을 지지하는 젊은 세력들의 인기를 끌기 위해서 막말을 일삼았다.
선진당을 지지하는 젊은 지지자들에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그 반면 그렇지 않은 자들에겐 미움을 사게 되었다.
이렇게 적을 많이 만들다 보니 그를 반대하는 세력이 적극적으로 정치공세를 해온 것이다.
‘이 사람 인터넷에 너무 오래 상주해 있어.’
신경호 위원장은 거의 인터넷 죽돌이라고 해도 될 만큼 인터넷 SNS에 소통이 잦았고 그러면서 정치가 일 하랴, 소프트웨어 회사 굴리랴, 말이 안 된다.
소프트웨어 회사의 회계감사내용을 보면 더 명확하다.
제대로 된 개발자도 없이 병역특례자들을 모아서 대충 굴리며 운영하다가 갑자기 떡하니 국가 조달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성과를 낸 것이다.
정황 증거로 볼 때 신경호 위원장이 친구인 조기석의 뒤통수를 치고 그의 소스 코드를 강탈한 것은 거의 확정사항으로 보였다.
* * *
시현이 신경호 위원장에 대해 조사하고 있을 때,
또 다른 한 명이 신경호 위원장에 대해서 조사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최형림 검사였다.
‘너무 젊다.’
양천용 의원의 말의 뜻을 헤아리다 보니 자연히 신경호 청년위원장에 대해서 조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도 역시, 조기석이라는 청년의 주장과 탄원들을 발견했다.
“확실히 수상하군. 하지만 사이다패스를 움직일 명분은 없어.”
조사된 자료로는 수상하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리고 그걸로는 사이다패스가 움직이지 않는다.
사이다패스는 가급적 권력자들을, 그리고 확실히 죄인인 자들만 사냥하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물론 신경호 위원장은 자신에게 병역특례를 부탁하는 동기의 소스코드를 빼앗고 그걸 자신의 업적으로 탈바꿈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로서 그것은 의혹일 뿐이고, 사이다패스가 굳이 나서서 죽일만한 일은 아니다.
여기서는 살인예술가가 나서야 한다.
사이다패스가 죽이기엔 가벼운 범죄지만 피해 당사자인 조기석에게는 신경호를 죽일 이유가 차고 넘친다.
살인예술가가 부추긴다면 신경호 위원장을 죽일 수 있고, 청년인재를 잃게 된 선진당은 최형림의 영입을 서두르겠지.
‘그러나….’
최형림은 지은재를 믿어도 되나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넌지시 지은재에게 신경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 * *
지은재와 영사, 최형림 이 셋은 외부의 패킷 감시에서 자유로운 암호화된 채팅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두었다.
그 단체 채팅방에서 최형림은 지은재에게 신경호 선진당 청년위원장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신경호 말이에요? 음 좋은 사람이죠.]
[좋은 사람?]
영사의 답변이 단지 텍스트에 불과했지만 최형림은 영사가 비웃음을 띄고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왜냐면 그 자신도 지은재의 이 반응에 실소가 터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정치판에 뛰어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건 정말 오래, 열심히 검증하고 그 후 완전히 신뢰해야만 갖다 붙일 수 있는 단어다.
[네. 그 사람 아니면 누가 시원하게 우리 젊은이들을 대변해 주겠어요?]
2030 남성을 대변해 속 시원하게 말하는 신경호,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정계에서는 입에 담기 힘든 막말을 파격적으로 한다.
지지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하지만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격렬하게 미움을 산다.
실제로 그것 때문에 신경호는 절대로 지역구에서 선거로 승부할 수는 없다.
지역구 선거에서 승리하고자 한다면 2030 남성 말고도 보다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아내야 하는데 신경호가 선택한 미디어 전략은 그런 지역구에서의 승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은재가 설마 신경호 위원장의 팬이라니. 큰일이군.’
최형림은 난처해했다.
지은재가 가진 능력, 살인예술가의 능력은 매우 강력한 능력이다.
이걸로 조기석을 꼬드겨서 그로 신경호를 죽이게 하면 될 텐데… 문제는 지은재의 능력에 비해서 지은재가 자질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형림이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제가 시켜볼까요?]
영사가 최형림에게 1:1대화로 그렇게 물어보았다.
[당신이요?]
[네. 보아하니 지은재 군에게 신경호 위원을 살해하게 만들고 싶으신 것 같은데…. 저렇게 나오면 좀 곤란하시지요?]
[그렇긴 합니다만….]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영사가 그렇게 말할 때였다.
최형림의 또 다른 전화기, 공식 전화기에 전화가 왔다.
놀랍게도 류장천 회장의 전화였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예?”
최형림은 깜짝 놀랐다.
“류하리 양이 서부지검으로 찾아올 거라고요?”
* * *
류하리는 약혼 건으로 아버지에게 따지기 위해 오래간만에 류장천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녀를 만나는 것을 거부했다.
[이미 정해진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 아무리 아버지라고 해도 제 인생을 그렇게 마음대로 결정하실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2년간 약혼을 유지해라. 그 다음에 결혼할지 말지는 당사자끼리 결정하도록 해라.]
“네?”
[적어도 앞으로 2년은 너와 그의 약혼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류장천 회장은 절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아니 약혼이 무슨 핸드폰 약정요금제도 아니고 왜 그 기간 동안 유지해야 하는데요?”
[실제로 결혼할 지 말지는 네게 달려있으니 그 정도는 별 문제 아니지 않느냐?]
“아니 약혼이 뭐 무료체험 3개월 프로모션도 아니고….”
류하리는 핸드폰 약정요금제나 무료체험 3개월 프로모션처럼 자신의 약혼을 결정한 아버지에게 분개했다.
그러나 그때 가족용 단체톡방에서 류하리의 오빠이자 한강 시스템 창호의 사장, 류현채의 매서운 톡이 날아왔다.
[류하리 너 지금 무슨 말버릇이야! 아버님에게?!]
[오빠는 빠져.]
[빠지긴 뭘 빠져. 아버지가 너 공기권총 선수한다고 할 때, 경찰대학 간다고 할 때 반대한 적 있어? 너 하고 싶은 대로 천방지축 날뛰게 다 해줬는데… 아버지가 오죽하시면 널 보고 형식상으로 약혼을 2년간 유지하라고 하겠어? 너 그것도 못해? 가족을 위해서 그것도 못하냐고.]
“………”
오빠의 질타에 류하리도 할 말이 없어졌다.
그녀는 사실 아버지에게 이미 과분하게 많은 것을 받았다.
경찰 월급은 우습게 걷어차고 상사를 들이받을 수 있는 것도 집에서 많은 것을 해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내 약혼을 그렇게 무단으로 결정하는 건….]
[무단이라니 말조심해. 결혼을 하고 말고는 본질적으로 네 선택에 달려있게 해주잖아. 이게 뭐 결혼을 강제하는 것도 아니고 약혼 형태만 2년 유지하라는 게 그렇게 못할 짓이냐?]
[아니 잘하는 것도 아니지! 그렇게 해야 할 상황이 뭔데? 집안이 정말 힘들어서 그래?]
[그런 건 아니지만 하여튼 아버지도 다 계획이 있으셔서 그러는 거야. 뭐든 간에 고작 형식적인 약혼을 2년 뒤에 결혼할지 깰지 고르라는 건데도 그렇게 싫어서 그래? 그런데도 ‘결혼같은 인륜지대사를 함부로 결정한다.’, ‘딸의 인생을 지나치게 침해했다.’ 라고 반발하려고?]
[으음. 확실히…. 결혼을 안 하고 형태만 약혼을 걸라고 하면….]
류하리 입장에서도 반박할 명분이 약해진다.
[아니 그래도 최형림 선배에게도 실례 아냐? 게다가 만약 내가 지금 남자친구라도 사귀고 있으면 그 사이 파탄 나는 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그 남자친구를 내가 무슨 낯으로 보냐고.]
[하. 네가 연애를 한다고? 류하리 네가?]
[왜?]
[아니 그런데 고모님이 말한 남자친구가 그 최형림 검사라면서? 너 혹시 양다리 걸치니? 딴 남자친구가 또 있어?]
[…….]
[양다리 걸치거나 불륜 하는 것들은 쓰레기라고 하던 누구 씨가 있던 것 같은데? 자기 사정이 되니까 이야기가 다른가 보구나?]
[그, 그런 거 아냐.]
[어쨌건 이번 일은 닥치고 해라. 응? 집안에서 받아먹기만 하던 네게도 최소한의 염치란 게 있다면 말야.]
[……]
류하리는 말문이 막혔다.
그동안 아버지나 오빠가 너무 잘해줬기 때문에 반항하면 너무 염치가 없는 게 된다.
[그, 그래도 최형림 선배를 만나서 이야기라도 해봐야지. 최 선배는 이런 거에 동의했어?]
[나는 잘 모르지. 영사 이사님께 이야기해봐.]
[영사 아저씨?]
류하리는 당황해서 이번엔 영사에게 연락해보았다.
그러자 영사는 최형림이 서부지검에 야근중이니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것이었다.
* * *
“흐음.”
최형림은 영사나 지은재와 연락하는 휴대폰은 치워두고 노트북이나 태블릿 PC도 불필요한 부분은 잠가두었다.
류하리가 데드맨 시현과 함께 있고 시현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류하리가 당도했다고 연락이 와서 최형림은 직접 서부지검 밖으로 나가 입구에서 그녀를 맞이했다.
“아 저, 최 선배님.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워낙 큰일이라서.”
“괜찮습니다. 류 경위님. 이거 참, 갑작스러워서 놀라셨지요?”
“아, 아뇨. 그게. 저… 어찌된 일인지 궁금해서요.”
“류장천 회장님이 정계에 진출하라고, 제 후원자가 되어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제안한 일입니다. 사실 그 제안이 들어왔을 때 류하리 경위의 뜻이 반영되지 않은 제안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따지지 못했군요. 분위기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웃어르신이 괜히 저를 곱게 봐주셔서 이것저것 호기롭게 말씀하시는 데 거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지요.”
최형림은 정말 청산유수로 말하며 겸양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