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81화 (181/269)

제181화

소울 브라더 #2

류하리도 시현에게서 최형림에 대한 의혹을 들어서 경계심이 없지는 않았지만 최형림이 말하는 걸 들으니 홀리는 기분이었다.

“그, 그래요. 아버지가 좀 많이 기분파셔서.”

“후후. 좋은 아버님 같더군요.”

“그렇지는 않아요. 딸의 인생을 이렇게 마음대로 결정지어버리니까. 아 딱히 선배라서가 아니라 상대가 누구건 간에 이렇게 상의 없이 결정해버리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

“그래서 말인데 어떻게 할 까요? 약혼을 없었던 일로 돌리고 싶어서 오신 겁니까?”

“아 그게….”

“아무래도 류장천 회장님은 절 정계에 후원하시려는 것 같은데. 혈육도 아닌 데 민다고 하면 모습이 이상해지니까 약혼을 제안한 것 같습니다. 굳이 결혼을 생각할 것 까지는 없으니까 일단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저도 약혼을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아 물론 남들 보게 약혼식을 할 필요도 없고 그냥 누가 물어보면 약혼했다. 예비사위다. 그렇게 말하는 걸 허락해주시는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식도 없이 그냥 형식상의 약혼만 유지하자 이건가요?”

“네. 사실 약혼도 아닙니다. 그냥 류장천 회장님이나 제가 누군가에게 어떤 관계냐고 물어볼 때 둘러대기 용으로 쓰겠다. 그걸 허락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최형림은 그렇게 말하다 미소를 지었다.

“물론 결혼도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현재로서는 검사일도 너무 바빠서 사실 가정에 충실할 자신이 없군요.”

“아…네.”

류하리는 최형림도 형식적인 약혼이라는 형태에 동의했음을 알고 말문이 막혔다.

주위 사람들이 다 그러는데 나 혼자 싫다고 빼기에는 이미 너무 판이 쫙 짜여있었다.

게다가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지 않은가?

류하리가 남자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으음… 신경 쓰이는 상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겠지만 약혼을 이야기할 때 시현이 신경 쓰인다.

하지만 시현에게 그 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류하리는 지금까지 자기에게 들이대는 사람들만 상대했지 자신이 주도적으로 연애를 하겠다고 궁리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의 입장에서 시현 같은 상대 때문에 괜히 집안사람들에게 물의를 일으켜가면서 형식뿐인 약혼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아 몰라.’

결국 류하리는 형태상의 약혼을 2년간 유지하는 것을 묵인하고 말았다.

* * *

다음날, 류하리는 망설이면서 시현의 사무실에 찾아갔다.

그때 시현은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흠. 마침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아 네. 어디로 가시나요?”

“대덕 연구단지 쪽에 인터뷰 요청을 잡아뒀습니다. 조기석을 조사할까 해서요”

“네? 조기석이요? 그게 누구지요?”

“신경호 선진당 청년위원장을 아십니까?”

“신경호 청년위원장이라. 선진당의 젊은 위원장 말이군요.”

류하리도 익히 알고 있었다.

인터넷 상에서는 상당히 유명인물이니까. 그를 모르려면 어지간히 세상일이나 정치에 관심이 없어야 할 것이다.

“네. 조기석은 그의 동향 친구이자 학교 동창으로 그를 살해할 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마 제가 개입하지 않으면 살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요.”

“살해할 지도 모른다니요?”

“간밤에 신경호 청년위원장이 절 찾아와서 자신을 지켜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아무래도 살인예술가가 신경호 씨를 죽인 다면 조기석 씨를 이용할 가능성이 크지요.”

“그래요?”

“그런데 마침 잘 오셨군요. 지방으로 다녀오는 건데 경찰업무는 괜찮습니까?”

“네. 뭐, 제 경우는 당신을 감시하는 게 본업이잖아요?”

“하긴 그렇군요. 그럼 이걸 좀 써보시겠습니까?”

시현은 그리 말하고 베레모를 꺼내서 류하리에게 주었다.

“네? 뭐에요 이건?”

“탐정의 상징이죠.”

“…왜 제가?”

“아무래도 지금 가는 곳에선 류 경위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요.”

“네?”

* * *

대덕연구단지. 카이스트 출신의 연구자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는 조기석, 신경호 위원장과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던 이들이 많이 있었다.

“아 조기석, 신경호? 뭐야. 아가씨. 언론이야?”

“아뇨 저는… 으음. 탐정입니다.”

“탐정?”

“그, 여기.”

류하리는 시현이 자신에게 준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시현탐정사무소 조사원 류하리라고 되어 있었다.

“와… 아가씨 정말 탐정?”

연구원들은 류하리가 보인 명함을 보고 다들 관심을 가졌다.

류하리처럼 세련된 미녀가 탐정이라니까 호기심이 자극되는 모양이다.

‘어휴. 여기에 그 베레모까지 썼으면 큰일 날 뻔했네.’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해서 망정이지 셜록홈즈 코스프레를 하고 돌아다녔으면 사진 찍혀서 박제 당했음에 틀림없다.

“네. 그래서 두 사람 사이는 어땠나요?”

“음. 뭐라고 해야 하나. 각별했지. 아니 각별한 정도가 아니야.”

“네? 각별한 정도가 아니라고요?”

“그래. 사실 신경호는 좀 카이스트에 맞지 않는 타입이고…. 조기석은 공돌이인데 상태가 좀 심각했어.”

“무슨 뜻인가요?”

“우리도 덕후다 오타쿠다 너드다 그런 소리 듣던 사람들인데 조기석은 한술 더 떴다고.”

“걔는 겨드랑이 페티시인데…. 거의 성도착증 진단 나왔을 거야.”

“….성도착증이요?”

“그래. 학창시절에 여름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여자 겨드랑이를 도촬하다가 걸리기도 했었다지 뭐야. 미성년자 때라 처벌을 받진 않았지만 그 버릇 때문에 조기석은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못했어.”

“본인도 충동이 통제가 안 된다지 뭐야. 정신과에서 처방도 받았을 걸? 아마?”

“그런 몸이다 보니 솔직히 어디를 가나 매를 벌었을 거야. 거 우리도 어디 가서 남들보다 사회생활 잘한다고 못하는 데 그런 우리가 보기에도 조기석은 진짜 고문관이었다고.”

“다행히 신경호가 구해주고 챙겨줘서 무사히 학업을 마쳤다고 하던걸?”

“네?”

“신경호는 집에 돈이 많아. 대형 목사 집 아들이잖아.”

“불량배 애들도 신경호는 건들지 못했어. 목사님 아드님 건드렸다가는 큰일 나니까.”

류하리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경호와 조기석의 관계는 단순히 누가 누구를 착취하는 관계가 아니다.

“조기석씨의 소스코드를 신경호씨가 도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아마 그랬겠지.”

“그러고도 남지.”

다들 그 사실은 긍정했다.

“사실 신경호 걔는 공돌이가 아니라고. 머리는 뭐 나름 똑똑하지만 공돌이 할 생각이 전혀 없이 스펙 쌓으러 온 놈이란 느낌? 실제로 스펙 쌓아서 정치가 되려고 하잖아?”

“아 네.”

“반면 조기석은 프로젝트 중에 자기 꽂히는 거 있으면 그건 정말 잘했어.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천재 과의 인간이야.”

“그 악마 같은 교수들도 재주만은 탐냈는걸? 다만 문제는 그 친구를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신경호 밖에 없었다는 거지.”

“그렇군요.”

“그래서 이정도면 인터뷰는 되었어? 탐정 아가씨?”

“네 감사합니다.”

류하리는 빠르고 쉽게 인터뷰를 따낼 수 있었다.

“아 그럼 이 명함 전화번호로 또 생각나는 거 있으면 연락해도 되지?”

“아하하. 그거 회사 번호에요. 거시면 제 상사가 받습니다.”

“뭐야. 쳇.”

“개인 핸드폰 번호는?”

“그건 나중에요.”

“나중에 언제?”

“글쎄요?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 된 후?”

“…….”

“…….”

류하리는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또 다른 이들을 만나러 가보았다.

* * *

그 외에도 대덕연구단지에서 약속했던 이들을 만나보니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신경호 위원장은 학창시절부터 똑똑했지만 공돌이 취향은 아니었다.

-신경호 본인도 공돌이 공부보다는 정치에 더 관심이 많았다.

-조기석은 학창시절부터 대인활동에 문제가 많아서 교회 친구이자 어린 시절부터 거의 형제같이 지냈던 신경호 위원장이 그를 관리해주었다.

-아마 신경호 위원장이 조기석의 능력과 재능을 많이 뜯어먹었을 것.

-졸업논문도 조기석이 대신 해줬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신경호가 학사만 마치고 카이스트를 그만두자 석박사 통합과정에 있던 조기석은 랩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쫓겨났다.

-지도교수가 조기석을 못 참고 방출시킨 것이다.

-조기석이 병역특례를 필요로 했던 것도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그 전엔 국책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니 병역특례를 청탁할 필요가 없었다.

-조기석에겐 성도착증 같은 게 있으며 이건 거의 병의 영역이라 스스로도 통제가 안 된다. 어지간한 용인술의 달인이라고 해도 통제가 안 되는 천재라고 할 수 있다.

-오직 신경호 위원장만이 조기석을 통제 가능했다.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그런 결론들이 나왔다.

* * *

류하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한 이상으로 신경호 위원장과 조기석의 관계가 복잡했다.

“뭔가 약간 애매하네요. 분명히 신경호가 조기석의 소스코드를 훔쳤을 거긴 하지만 조기석이란 사람은 신경호 위원장이 아니면 제구실을 못하겠는데요?”

류하리는 혀를 찼다.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하다고 가볍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네요.”

“네 그렇지요. 그러니 어떻게든 막아봐야지요.”

시현은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해 사이트를 확인하고 말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해, 라던가 각종 뉴스 사이트에 조기석이 신경호에 대해서 악담을 쓰고 있다는 겁니다. 조기석 개인이 신경호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있어요. 이정도 악의라면 거리낌 없이 죽일 수도 있을 겁니다. 살인예술가라는 존재가 이용하기에 그 이상 좋을 수 없는 상황인 거지요.”

“음 그거 참.”

류하리는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살인예술가가 그를 노릴 거라고 알고 있는 건가요? 혹시 당신의 눈으로 살인예술가의 소행은 보이나요?”

시현의 눈은 어지간한 살인 사건으로 인한 수명변화까지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이다패스의 공격으로 인해 수명이 줄어드는 건 알아보지 못했었다.

살인예술가는 어떨까?

“보입니다.”

“아. 보인다고요?”

“네. 살인예술가가 계약자라고 해도 실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살인예술가에게 선동당한 사람이니까요. 살인범은 조기석이고 조기석은 초능력자도 계약자도 아닌 일반인이니 제 눈을 벗어나진 못하지요.”

“그건 다행이네요.”

류하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현의 눈에 보인다면 시현의 능력으로 충분히 살인사건을 막을 수 있지 않은가?

“안심해서는 안 됩니다. 조기석 같은 사람은… 기우라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파격적인 살인 수단을 쓸 가능성이 있거든요.”

“파격적인 살인 수단이요?”

“독가스나 사제폭탄 같은 것 말이지요.”

“아….”

설령 시현의 눈으로 살인 타겟의 수명을 보고 그를 보호할 수 있다 해도 도심 한복판에서 폭탄이나 독가스를 사용한다면 다른 피해자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조기석이 살인을 집행하기 전에 먼저 그를 찾아내고 막아야 했다.

“좋아요. 그럼 이제 조기석 씨를 찾아볼까요?”

시현과 류하리는 차에 올라타서 조기석의 주소로 향했다.

데드맨3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