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화
소울 브라더 #4
과연 시현은 뭐라고 대답할까?
류하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당신의 가족을 노리고 교회 차에 폭탄을 설치한다는 건 상당히 비효율적인 일입니다. 조기석 입장에서는 보다 더 쉽게 당신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줄 수 있는 곳이 있지요. 어딘지 아십니까?”
[뭔 소리 하는 거야? 지금. 농담 따먹기 할 기운 없으니까 빨리 말해봐!]
신경호 위원장은 시현의 질문에 짜증으로 답했다.
“신바울 목사를 노린다면서 교회 승합차를 터트리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바울 목사가 거기에 탄다 안 탄다를 어떻게 알고 터뜨리겠습니까? 차라리 신바울 목사의 개인차량, 벤틀리 GT이었던가요? 그걸 터뜨리면 되지 왜 굳이 교회용 승합차를 터뜨렸겠습니까?”
[…….]
“아시겠습니까? 범인은 따로 있습니다. 다만 당신도 지금 위험한 상태니까 사무실이나 자택으로 돌아가는 건 피하시고 차도 쓰던 걸 타지 마세요. 경찰이 신변보호를 제안할 텐데 그것에 응하시는 게 좋겠습니다만….”
[내가 조기석이 무서워서 경찰에 살려달라고 빌어야 한단 말야?]
“…….”
듣고 있던 류하리는 혀를 찼다.
신경호 위원장에게 있어서 조기석은 그야말로 깔아보는 존재,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밑바닥 인간인 것 같다.
설령 상대가 폭탄 테러를 하더라도 그에게 머리를 굽히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완벽한 상하관계의 존재.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소리가 나올 수 없다.
“조기석이 주범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주범이 아니라는 소리는 무관계하지는 않다는 거 아냐? 종범이라는 소리 아닌가?]
역시, 상대도 바보는 아니다.
그는 시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사람은 조기석이 아니라 교회 관계자일 겁니다. 당신 아버지 차량에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의심받을 만큼 사이가 안 좋지만 교회의 운영 깊숙이 관여할 수 있어서 교회 승합차에 당신의 아버지가 탑승하면 바로 알 수 있는 위치. 다만… 폭발물 제조에는 조기석 씨를 끌어들였을 수 있습니다. 아시다피시 인터넷에 조기석 씨는 당신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고 차량에 탑승한 이들을 전원 폭사시킬만한 사제 폭발물 제조라는 건 꽤 기술이 필요하니까요.”
[역시!]
신경호 위원장은 시현의 추리를 긍정했다.
자신의 아버지 살해사건에 조기석이 한 다리 걸쳤다. 그 사실을 확인한 것에 만족하는 듯 했다.
조기석을 미워할 이유를 확인하고 만족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현재는 조기석 씨가 위험합니다.”
시현은 그렇게 말했다.
[뭐?]
“조기석 씨를 이용해서 범행을 저지른 이들은 당연히 조기석 씨에게 누명을 씌워서 처리하려고 할 겁니다. 이미 인터넷 상에 당신에 대한 적개심을 유감없이 표출한데다가 아마도 합류시키면서 이런 저런… 함정을 파두었겠지요. 경찰도 조기석 씨를 최우선 용의자로 상정해두고 수사하고 있을 겁니다. 다만 그 경우 조기석 씨가 살아있으면 해선 안 될 말을 하겠지요? 그러니 할 수 있다면 조기석씨를 자살로 처리하려고 할 겁니다.”
[……….]
“진범들은 당신 아버지의 교회를 먹어치우고 죄는 조기석씨가 덮어쓰고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 채로 사건이 종결될 가능성이 높겠군요. 어떻습니까? 그런 상황에 만족하십니까? 조기석 씨가 그냥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고 사건은 이대로 종결되는 걸?”
[아니!]
“다행스럽게도 저희 사무소는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이러한 초법적인 사태에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처음 계약에는 경호까지만 되어있었군요.”
[!!!!!!]
“당신을 경찰에 넘겨서 보호받게 하거나 제가 운영하는 세이프 하우스에서 보내서, 조기석씨가 죽은 채로 발견될 때까지 방치하면 경호 계약은 달성하는 것으로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 잠깐….]
“………”
듣고 있던 류하리가 놀랐다.
우선 시현이 말하는 건 가능성이 꽤 높지만….
어디까지나 추리다.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는 블러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걸로 시현은 어느새 주도권을 자신 쪽으로 끌고 왔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는 복수하려는 자에게 경호계약을 맺었다고, 위험하다고 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정신을 차려보니 고삐가 시현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너무 한 거 아냐? 경호라고 뭐 딱히 할 만한 일이 없었잖아?]
“경호일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겁니다. 경호원들 월급 줄 때 이번 달엔 습격이 없었으니까 안줄거다. 그런 말이 통하던가요?”
[…잠깐만,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겠지?]
“네. 당신의 아버지를 살해한데 책임이 있는 이들의 운명을 당신 손으로 결정지을 수 있는 건 어떻습니까? 경찰에 넘기건 사적 제재를 가하건 당신이 결정권을 쥐는 걸 원하시겠지요?”
[…….]
“경호 계약을 정산해주시면 새 계약을 맺고 그 일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조기석씨가 죽을 지도 모르겠군요.”
[이 자식….]
“진심을 담아서 ‘정산’ 이라고 외쳐주시면 됩니다.”
류하리는 그 모습을 숨죽이며 바라보았다.
세상에.
이럴 수도 있구나.
신경호 위원장 건은 타자기의 악마가 시현을 농락하기 위해 보낸 일종의 암습이었다.
그런데….
시현은 잠깐 사이에 오히려 역으로 상대를 농락한다.
[정산! 됐냐?!]
“네. 감사합니다.”
시현은 그렇게 신경호 위원장에게 기어이 계약의 정산을 받아냈다.
* * *
“세상에…. 정말 놀랍군요.”
류하리는 시현이 단번에 위기를 기회로, 자신을 위협하던 현상을 순식간에 정리하고 수명을 빼앗는 걸 보며 경탄했다.
“어차피 수명계약의 대상은 인간입니다. 상대가 만족하고 정산해주면 아무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이후는 대체 어쩌려고 그러는 거예요?”
“이제는 조기석을 찾아야지요. 빨리 찾지 않으면 죽은 채로 발견될 겁니다.”
“만약 조기석이 정말 주범이면요? 조기석이 주범이 아니라는 건 당신의 생각일 뿐이잖아요?”
“그건 일단 사무실 돌아가서 생각해봅시다.”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차를 사무실로 돌렸다.
* * *
조기석에 대해서는 경찰도 이미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사이다패스에 대한 청원 사이트에서 항상 단골로 글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청원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것은 조기석이 늘 인터넷 페이지에 올리던 글을 정확하게 복사한 것이어서 그것이 조기석 본인이 올린 것이라고 입증할 자료가 없었다.
즉 살인 청원을 했다고 살해 교사 등으로 처벌할 방도가 없어서 지금까지 예의주시하기만 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폭파 사건을 전으로 해서 1주일 전부터 조기석이 실종되었다.
자택에도 없고 다니던 직장, 어린이 코딩교실에도 무단으로 결근한 것이었다.
* * *
“아니 1주일 전부터 무단결근을 했다고 하는데 왜 내버려뒀어?!”
“그게 실종신고가 들어온 것도 아니고 찾아달라고 누가 사건접수를 한 것도 아니라 서요.”
“정보과에서 예의 주시하라고 했잖아?! 그런데 예의 주시 대상이 무단결근을 시작했는데 상부에 제대로 보고도 안했어?!”
“보고는 했는데요.”
“….왜 따박따박 말대꾸야! 진짜!”
조기석이 1주일 전부터 실종상태라는 사실은 이미 제대로 된 지휘체계를 통해서 보고 되었다.
다만 그 후 별다른 일이 없었기 때문에 경찰 측에서는 방심하고 있었다.
조기석이 무단결근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찰들의 정보력, 행정력 대다수는 다시 등장한 사이다패스에게 집중되었으니 인터넷에 뻘글이나 질러대던 성도착증 코딩강사에 대한 감시가 느슨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건 말단에선 보고를 했으니 책임은 이제 상부에서 지게 되었다. 그래서 간부는 괜히 말대꾸한다고 부하 직원에게 신경질만 내고 있었다.
“사이다패스도 골 때리는 데 이건 또 뭐냐고. 신경호 위원장은 어때? 확보했나?”
경찰들 입장에서는 만약 조기석이 폭탄테러의 원흉이라면 신경호 위원장을 반드시 살해할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신경호를 확보해 그를 경호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 만약 신경호가 무슨 여의도나 홍대, 대학로 같은 번화가에 있을 때 폭탄이 날아들기라도 하면…. 대량 살상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경찰들은 고개를 저었다.
“신경호 위원장은 경찰의 보호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뭐? 무슨 생각이래? 그 인간은? 설마 복수라도 할 생각인가?”
* * *
타자기의 악마는 종이 한 장 가득 두다다다다 쳐내고 있었다.
라인을 넘을 때마다 찌릉 하는 차임벨 소리와 함께 페이지가 넘어간다.
원래 사람이 타자기를 쓸때는 손으로 종이를 원위치 시켜야 하는 데 타자기 혼자서 잘도 원 위치 시켜서 계속 쳐댄다.
“그렇게 칠거면 종이도 스스로 알아서 끼지.”
시현이 투덜거렸다.
종이만은 자신이 끼워줘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위기가 오나 했는데 잘도 벗어났군요. 데드맨. 하지만 이건 좀 고객을 농락하는 게 아닙니까?]
“계약의 성과는, 그러니까 정산은 당신의 뜻이 아니라 고객의 뜻에 달린 거 아니겠어? 고객이 만족하니까 정산이 된 거 아냐?”
“아 저기….”
류하리가 물어보았다.
“만약 조기석이 정말 진범이고 그래서 신경호 위원장이 조기석을 죽여 달라고 하면 어쩔 건가요? 지금 당신이 그 신경호 위원장에게 말한 추리가 틀렸다면 말이죠.”
“그렇지만 이미 정산은 받았습니다. 그리고 신경호 씨와는 아직 새 계약을 맺진 않았지요. 맺겠다고는 이야기 했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는 아무것도….”
-타다다닥!
타자기가 경기병대의 질주를 연주하며 글자를 쏟아냈다.
[그런 식으로 처리하다니!]
“…물론 이대로는 제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현 탐정 사무소의 명성에 먹칠을 하게 되겠지요. 그건 사양하고 싶군요.”
“그럼…?”
“당연히 조기석 씨 사건은 본격적으로 조사할 겁니다. 전력을 다해서! 다만 만약의 경우, 같이 죽어줄 의리는 없으니 조사가 끝난 뒤 상황을 보고 할 만하다 싶으면 그때 계약을 하도록 하지요.”
“………”
조사를 먼저 한 후 승산이 있다 생각하면 계약하겠다.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긴, 애초에 핫리딩을 콜드리딩인 것처럼 사기 칠 때부터 알아봤다. 뭐 나쁜 건 아니지. 그는 자기 목숨과 영혼을 걸고 있는데 그렇게 돌다리 두들겨보는 게 어디가 어때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현의 천연덕스러움이 놀랍다.
“그럼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 건가요?”
“우선 살아남은 교회 사람들부터 조사해야겠지요.”
“교회 사람들이요?”
“네. 신바울 목사는 다비치 선교회 주임목사지요? 그가 부재할 경우 권력은 누구에게 가는가? 그리고 그와 함께 차에 탑승해서 죽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 관계는? 그걸 조사할 겁니다.”
신바울 목사가 죽었을 때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