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6화
소울 브라더 #7
“꿈이 박살났다라?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육친의 정을 호소하기 보다는 그 인적네트워크와 당신의 꿈에 더 집중하고 계시는 군요.”
“하아. 거 우리 이러지 맙시다. 내가 매스컴이나 그런데 앞에서나 연기하지 당신 앞에서도 연기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솔직담백한 태도, 오히려 좋습니다. 진정한 고객의 니즈를 알아야 고객을 진심으로 만족 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저희 사무소는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합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며 휴대폰을 꺼냈다.
“그래서. 조기석은 찾았습니까?”
“네. 찾았습니다.”
“뭐, 뭐라고요? 그럼….”
“그전에, 고객님. 조기석의 신병을 확보해서 드리면 계약이 종료되겠습니까?”
“당연하죠! 그 자식을 잘근잘근…!”
“전에 고문을 해보셨습니까?”
“큭.”
물론 긍정할 수 없는 말이다.
실제로도 안했고 설령 실제로 누군가를 고문한 적이 있다 하더라도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솔직히 말씀드려서 지금은 좀 흥분하신 상태입니다. 안일한 감정으로, 충동에 따라 거래를 진행하시면 저야 받아낼 거 받아내고 좋습니다만 진정한 고객만족이라고 할 수 는 없지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아까 전부터 진정한 고객만족이니 니즈니 약을 팔던 게 이 헛소리 하려고 밑밥을 깐 겁니까?”
“만약 당신이 청운의 꿈을 아직 이어갈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뭐?”
시현의 말에 혹했는지 술에 취해있던 신경호 위원장의 표정에 이성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이 혹한 것을 부끄러워했다.
너무 그러면 아버지가 죽었는데도 정치 욕심에만 눈이 먼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시현이 말한 게 가능하다면 확실히 그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긴 하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제 인맥 네트워크에도 젊은 정치가 한 명쯤은 있으면 좋겠거든요. 이래저래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각계각층의 인맥이 두루 필요한 상황이라서.”
신경호는 실소를 터뜨렸다.
지금 이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자신이 정치가가 필요하니까 그를 정치가로 만들어주겠다고?
아직 젊은 남자 주제에, 그것도 재벌가 자제도 아니라 탐정나부랭이가 뭐라도 된 것 마냥 그렇게 말하는 데 어이가 없다.
정치가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돈과 인맥이 필요한지 알고서 하는 말일까?
‘진지하게 들어서 손해 봤군.’
신경호 위원장은 쓴 웃음을 지었다.
“물론 사태의 심각성은 잘 알고 있습니다. 신바울 목사님의 아들이라는 것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면 될 거 아니겠습니까?”
“그걸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대한민국에서 대형 교회 목사라는 게 얼마나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지 알기나 해요? 그 부재를 어떤 수로 메우라는 겁니까?”
“일단은 이 사태를 자력으로 수습해서 아버님이 없더라도 당신이 만만치 않은 인재임을 보여주어야겠군요.”
“그게 말이 쉽지.”
신경호 위원장도 어디 내놔서 인물 빠지는 거 없는 수재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아버지, 신바울 목사의 그림자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조기석 씨는 지금 자신이 주도적으로 신바울 목사를 살해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김상기 목사 일파에게 강제로 납치되어 강요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시현은 이렇게 길게 밑밥을 깔아두고 나서야 조기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뭐? 그 개자식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뻔뻔하게 그런….”
그렇게 말하던 신경호 위원장은 흠칫 놀랐다.
“정말 조기석을 확보했다고요?”
“네. 그렇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놀랍군요. 시간도 얼마 안 걸렸는데”
신경호 위원장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단 하루 만에, 경찰도 아직 못 잡은 조기석을 시현은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통화로 확인해보시겠습니까?”
“아니, 지금 그 녀석 목소리 들으면 속이 뒤집혀서 저도 어리석은 짓을 할 것 같습니다.”
“현명하시군요.”
“그럼 정치가를 계속 하게 해주겠다는 것도….”
“빈말이 아닙니다.”
“진심입니까?”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김상기 목사 일당이 아버님을 살해한 게 맞습니다.”
“조기석 그 녀석은?”
“폭탄의 원격제어부를 만들기 위해 강요되었다고 합니다만 아두이노에 무선 모듈을 붙여서 만든 간단한 기폭장치니까 기폭장치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문을 찍기 위해서 불러들였다고 봐야겠지요. 네. 희생양으로 점찍어진 겁니다.”
“..........”
만약 시현이 그냥 들어와서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면 신경호 위원장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현이 은연중에 '신바울 목사가 없어도 유능하다는 걸 보여줘.'라는 걸 언급 한 후로 신경호는 최대한 생각을 하면서 시현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우선 정말 조기석이 주범이 아니고, 강요당했다는 걸 납득이 가게 설명해주면 좋겠는데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조기석 씨와 있었던 일을 더 자세히 설명 드리지요.”
시현은 자신이 어떻게 조기석을 잡았는지, 그리고 조기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 * *
시현은 조기석과 계약을 맺기로 하고 그와 진지하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아니 그런데 진짜 위험했다니까. 이따만한 떡대들이 찾아와서 날 붙잡아갔다고.”
“그래서. 폭력으로 강제로 당신을 강요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폭발물이라는 걸 모르고 만들었다. 그건가요?”
류하리가 그렇게 물어보자 조기석이 기뻐했다.
“네. 바로 그겁니다!”
“정말 몰랐다 이겁니까?”
시현이 재차 물어보자 그는 시현에게는 반말로 대답했다.
“유감이지만 내가 만들어준 폭탄 제어장치는 초등학교 5학년생인 우리학원 다니는 수강생들도 만들 수 있는 거라고. 내가 그렇게 가르쳤으니까.”
“잠깐만요. 당신이 초등학생을 가르쳤다고요?”
류하리는 조기석의 말을 듣고 기겁했다.
“네 학원에서요.”
“학원?”
이 남자, 분명히 성도착증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던 인물 아닌가?
“오,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어린 애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럼?”
“제가 좋아하는 건 겨드랑이, 그것도 겨드랑이와 대흉근, 가슴 쪽으로 접히는 앞쪽 라인이지요.”
“...네?”
“겨드랑이를 좋아하는 페티시에도 부류가 갈리는 데 접히는 부위 그 자체를 좋아하는 놈들이 있고 털을 좋아하는 놈들이 있고 저처럼 어깨 쪽으로 대흉근 인대가 말려들어가는 부분, 그 연결부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건 메마르거나 너무 살찐 사람은 라인이 잘 안 나와요. 건강미가 넘치고 가슴이 좀 있는 성인 여성이 라인이 잘나오는 법입니다. 어린 애들로 흥분하는 변태와 같은 취급이라니 너무 억울합니다.”
“.........”
본인은 변태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지금까지만 들어봐도 충분한 변태다.
부정하지 못할 변태성이라고 하겠다.
“그럼 당신은 납치당했었다. 그래서 강요에 의해서 폭탄을, 아니 기폭장치도 아니라 원격장치를 만들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요! 바로 그겁니다.”
“정말 신바울 목사에 대한 위해라고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까? 그런데 위험을 알고 용케도 달아났군요.”
“수면제를 늘 가지고 다니거든. 날 감시하는 녀석들 밥에 타고 도망쳤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 죽은 채로 발견되지 않았을까?”
“네 맞습니다. 흐음.”
시현은 류하리를 돌아보고 손짓했다.
둘은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떨어져서 따로 대화를 나눴다.
“얄밉네요. 생긴 건 호구같이 생겼는데, 용케도. 법적으로 걸릴 부분은 피해가서 처벌을 강하게 먹이지 못하겠군요.”
“그렇죠?”
시현과 류하리에게 말한 것만 들으면 조기석은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
우선 김상기 목사 일당에 의해 납치되다 시피해서 강압적으로 어쩔 수 없이 가담했다고 주장하는 것부터가 크다.
이게 사실이라면 정상참작이 될 소지가 크다.
“진짜일까요?”
“아마 처음에는 옳다구나 하고 가담했다가 머리가 좀 식고 나서 정신을 차렸을 겁니다.”
처음부터 사람을 백주대낮에 납치하는 건 어려우니 아마도 조기석이 자발적으로 김상기 목사 일당에 가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들은 신바울 목사를 죽이고 나면 조기석을 희생양으로 만들 기색이 역력했고 강압적인 이들이 그걸 종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수면제로 그들을 재우고 탈출했다. 다만 신바울 목사가 살해당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탈출했다는 점에서 악의가 엿보인다.
“신바울 목사가 살해당하기 전에 탈출했다면 경찰이나 그런데 신고하고 경고해야 한패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요. 즉 그는 신바울 목사를 구조해야 할 의무를 하기 싫어서 죽고 난 후에 탈출했다. 그렇게 볼 수 있겠네요.”
“....얄밉고 재수 없지만 살인범은 아니군요.”
류하리는 혀를 찼다.
시현은 다시 조기석에게 돌아갔다.
“그래서 혹시 김상기 목사 일당의 행위를 입증할만한 증거자료가 있습니까?”
“있으면 당신에게 잡혀서 이렇게 되진 않았겠지. 바로 경찰서로 자진 출두했을 거야.”
그게 없기 때문에 도망쳤고 경찰들에게서도 피신했다.
조기석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탐정나리. 날 위해서 그 목사 일당이 사람을 죽였다는 증거를 마련해줘. 그러면 이 계약을 정산하도록 하지. 하지만 음… 남은 생애 수명의 반절이라니, 내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당신 정신과 가야 하는 거 아냐? 정신과 좀 들러봐. 의외로 깔끔하고 그렇게 무서운 데 아니니까.”
“........”
시현은 조기석의 조롱 같은 말에도 별로 화내지 않았다.
“일단 그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까지는 쉽게 구할 수 있을 텐데 문제는 고객만족입니다.”
“고객 만족이요?”
“네. 사건을 해결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엮여있는 고객님들을 다 만족시켜서 최대한 보수를 받아낼 수 있을까 그걸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
“보다 많은 고객만족을 위해서 궁리하고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시현은 저 김상기 목사 일파를 잡아넣는 건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이 고객(?)들에게 최대한도로 수명을 끌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 * *
시현의 이야기를 들은 신경호 위원장은 표정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당신이 내게 권하는 건? 날 보고 저 김상기 목사 일파가 저지른 범죄를 밝히고 경찰들이 조기석을 범인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그의 누명(?)을 풀어줘라. 뭐 그런 말입니까?”
“네, 바로 그겁니다. 경찰의 초동 수사 방향을 뒤집고 진실을 밝혀내면 사람들에게 당신의 능력을 입증해내는 계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 자식을 용서하는 대신 정치가로 남아라. 그런 소립니까? 지금?!”
신경호는 대경실색했다.
데드맨31